인도네시아살이, 르바란 보너스 주며 가슴 졸이는 이유

외국인 고용주의 ‘잠수 퇴사’ 공포

by Indah



인도네시아의 대명절, 길고 길었던 르바란(Lebaran) 연휴도 어느새 끝자락이다. 한 달간의 고된 금식을 마친 이들에게 르바란은 일 년 중 가장 풍요롭고 가족들과 행복해야 할 시간이다.


하지만 이곳에 사는 외국인 고용주들에게 르바란은 마냥 즐겁지만은 않은, 묘한 긴장감이 흐르는 시즌이기도 하다.


이 시기 고용주들에게는 큰 임무가 하나 있는데, 바로 'THR'이라 불리는 13번째 월급, 즉 르바란 상여금을 지급하는 일이다. 각종 사업체나 회사는 당연하고, 집에서도 일 년 동안 우리 집의 손발이 되어준 기사님, 아이를 돌봐준 내니, 그리고 집안일을 책임져준 가사도우미에게 보너스를 건넨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보너스는 종종 '예고 없는 이별'의 시작이 되기도 한다.


르바란 연휴가 시작되면 자카르타는 거대한 인구 대이동이 시작된다. 수많은 사람이 고향으로 향하거나 휴가를 떠나는 '무딕(Mudik)'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멀리 시골에 가족을 두고 온 이들에게는 일 년 중 유일하게 온 가족이 모이는 소중한 시간이다. 고용주인 우리 역시 이 기간만큼은 그들의 휴식을 보장하며 여행을 떠나거나, 워낙 연휴가 길다 보니 근처에서 호캉스를 즐기며 이 시기를 보낸다.


진짜 문제는 연휴가 끝난 뒤에 터진다. 약속한 날짜가 되었음에도 연락이 안 되거나, 서로 합의한 날짜를 훌쩍 넘겨서야 나타나는 이들도 있다. 각자의 핑계를 대고 늦게라도 오면 차라리 다행이다. 아무런 예고 없이 연락이 두절되는 이른바 '잠수 퇴사'를 맞닥뜨리는 경우도 있다.


고용주 입장에서는 이미 내 생활 방식에 맞춰 손발을 다 맞춰놓았는데, 갑자기 사라진 파트너 때문에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다. 당장 연휴가 끝나고 시작될 아이의 통학부터 가족들의 일상이 한순간에 흔들리기 때문이다. 더 큰 고충은 이 시기에는 새로 사람을 뽑기도 쉽지 않은 것이다.


명절 보너스를 챙겨 고향으로 떠난 이들 중 상당수가 당분간 쉬기를 원하면서 공급은 줄어드는데, 빈자리를 채우려는 수요는 많은 시기이기 때문이다. 인력 업체를 통하더라도 평소보다 몇 배는 힘든 '구인 전쟁'의 기간이다.


백번 양보해 그들의 입장을 추측해 보자면, 미리 그만둔다고 말하면 르바란 보너스를 받지 못하거나 연휴 전에 해고될지도 모른다는 불안함 때문일까. 하지만 서로 신뢰를 쌓아온 시간만큼, 적어도 다른 사람을 구할 최소한의 여유는 주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이곳에 살다 보면 종종 주변에서 듣거나 내가 겪을 수 있는 일이다. 결국 르바란이 지나면 떠났던 이들은 다시 돌아오고, 빈자리는 또 다른 누군가로 채워지기 마련이다.


올해도 한국에서는 겪어보지 못한 이 기묘한 연휴를 지난다. 누군가는 안도하고 누군가는 골치 아플 수 있는 이곳에서, 나는 오늘도 타국살이의 단단함을 키워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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