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 만 3세 육아, 영어 유치원 대신 국제 학교

가정보육 끝에 프리스쿨 입학 후 1학기 적응기를 마치며

by Indah



한국의 영유아 육아 시스템에는 '어린이집'이라는 든든한 보육의 선택지가 있다. 하지만 이곳 인도네시아는 유모를 고용하는 문화가 워낙 보편화되어 있어, 한국식 보살핌 개념의 어린이집을 찾기란 쉽지 않다.


만 2세를 지나 만 3세, 한국 나이로 다섯 살이 된 우리 아이는 지금 보육과 교육 사이에 놓여있다.


이곳에 거주하는 외국인의 입장에서, 만 2세부터 3세는 참 애매한 시기다. 만 2세까지는 선택지가 더 제한적이라 유모에게 도움을 받으며 가정보육을 이어가지만, 만 3세가 되면 '영어 유치원'과 '국제학교 프리스쿨'이라는 두 가지 선택지가 생긴다.


우리는 잠깐 살다 돌아가는 것이 아니었기에, 초등학교까지 쭉 이어서 보낼 것을 고려해 유치원은 애초에 고려하지 않았다. 대신 아이가 조금 더 자유롭고 즐거운 분위기에서 학습할 수 있는 국제학교를 선택했다.


하지만 막상 아이를 입학시키고 한 학기를 보내보니, 그 문턱은 예상보다 높았다. 왜 한국 엄마들이 만 3세 아이들에게 국제학교보다 영어 유치원을 선호하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만 3세면 한국에서는 '5살'이 되어 보통 어린이집에서 유치원으로 넘어가는 시기다. 세세한 보살핌의 어린이집을 떠나 조금 더 큰 집단인 유치원으로 가면 새롭게 적응하느라 힘들어하는 아이들이 있다고 들었다.


비슷하지만 다른 점은 우리 아이의 경우 만 3세까지 가정보육만 했던 터라, 적응 난이도가 더 높게 느껴졌다.


국제학교는 말 그대로 '학교'라서 어린아이들만 모여있는 유치원과 달리, 전 연령대가 함께 한다. 수업은 연령별로 진행되지만, 학교의 주요 이벤트나 주요 스케줄은 전교생이 함께 움직인다.


예를 들어 일주일에 한 번 전교생이 강당에 모이는 집합 시간에는 예외 없이 1시간 동안 모두가 모여 앉아 소위 '교장 선생님' 말씀과 같은 시간을 견뎌야 한다.


물론 매주 지루한 시간만 있는 것은 아니고 이벤트가 많긴 하지만, 초반에 어린아이들은 이 시간이 힘들어서 뒤에 엄마가 있나 확인하며 울먹울먹 하기도 한다.


수업 방식도 생소했다. 만 3세 아이들이 몇 없어 만 4세 아이들과 한 반을 이루고 몇몇 수업은 연령별 아이들끼리 모여서, 대부분 수업은 다른 반과도 따로 또 같이 합쳤다 뗐다 하는 식의 수업이 진행된다.


과목마다 선생님이 다르고 대부분 이동 수업을 해야 하기 때문에 새로운 사람, 장소 낯가림이 심하고 이런 환경을 겪어 보지 못한 아이들에게는 난이도가 높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여기에 적응할만하면 찾아오는 국제학교 특유의 잦은 연휴와 중간 방학은 적응의 흐름을 툭툭 끊어놓기도 한다. 지난주에 웃으며 잘 등원하던 아이가 일주일의 연휴 후에 다시 울기를 반복한다. 가정보육만 했던 아이라서 그런지 괜찮았다가 다시 힘들어하다가를 반복하며 아직도 적응하는 과정에 있다.


입학 전에는 그저 '영어'라는 언어의 장벽만 걱정했다. 하지만 정작 아이를 힘들게 한 건 시스템에 적응하는 것이었고, 이런 걸 미리 알았더라면 유치원이라는 완충지대를 고려해 봤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들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멈추지 않고 1학기를 완주했다. 등원할 때 엄마와 떨어지는 건 여전히 힘들어하지만, 막상 수업이 시작되면 즐겁게 참여하고 하원할 때는 행복한 얼굴로 달려 나오기 때문이다.


아이는 지금 나름의 방식으로 학교 생활에 적응해가고 있다.


이곳에서의 육아는 엄마를 아이의 전담 매니저로 만든다. 아침 일찍 간식 도시락을 챙기고, 등원시키고 돌아서면 다시 하원을 준비해야 하는 3시간의 짧은 자유.


차 안에서 먹을 점심 도시락을 싸 들고 아이를 데리러 가는 분주한 스케줄이지만, 집에서만 가정보육하며 마을 졸이던 때에 비하면 이 분주함이 차라리 감사하다.


1학기를 마치고 선생님과 상담하며 깨달은 사실은, 내가 걱정했던 것보다 아이는 훨씬 잘 해내고 있다는 것이었다. 부모가 되어보니 내가 내린 선택 하나하나가 아이의 삶에 미치는 무게가 얼마나 무거운지 실감한다.


정답지가 없는 타국에서 내가 내린 선택이 정답에 가깝게 만드는 과정, 그것은 아이의 적응을 넘어 엄마인 나의 단단함을 증명하는 것이기도 하다.


가정보육에서 국제학교로, 한 번에 너무 높은 계단을 오르게 한 것은 아닐까 미안할 때도 있다. 하지만 아이의 단단함을 믿기로 했다. 엄마인 내가 먼저 흔들리지 않고 바로 서야 내 아이도 불안해하지 않을 것이기에.


오늘도 나와 내 아이는 이 낯선 땅에서 한 뼘 더 성장하기 위해 조심스럽게 한 걸음을 내디뎌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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