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일뿐이라고? 무슨 소리야~ 5박 6일 더 추가요!
벨루가 보드카의 실키한 목 넘김과 향이 아직도 침대에 진득하게 배어 있던 이른 새벽. 원하지 않게 잠에서 깨어나 보니 짧은 여행 일정은 이미 끝나 있었다. 나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머물렀던 현대호텔에서 짐을 챙기고 호텔 주변에서 간단한 기념품을 사면서 마지막 시내 출사를 가졌다. 그리고는 곧바로 공항으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
러시아 캄차카 반도와 블라디보스토크를 경유하는 모든 여행 일정을 마치고 공항으로 가는 버스 안은 의외로 고요했다. 그 간의 빡빡했던 일정으로 인한 피로 때문일까 아니면 여행의 진한 아쉬움 때문이었을까. 그러나 잠시 뒤 그 고요함은 슬그머니 깨졌다. 현지 여행을 안내하던 여행사 직원이 마치 살얼음을 깨듯 잔잔한 목소리로 이런 질문을 한 것이다.
“사람이 평생 웃는 시간이 얼마나 되는지 아세요?”
글쎄, 그런 류의 생각들을 전혀 안 하고 살던 나로서는 잠시지만 좀 난감했다. 그러자 정답부터 말해준다. 88일이란다. 인생을 대충 70세라고 가정했을 때 TV 앞에서 7년, 잠자는 데 23년, 일하는 데 26년, 그리고 결정적으로 화내는 시간은 무려 2년이란다. 그런데 즐겁게 웃고 있던 시간이 고작 88일이라니.. 정확한 거냐고 물으니, 자신도 어디서 봤단다. 정답을 들으니 슬퍼해야 마땅한데도 난 이런 얘기로 답변을 대신했다.
“근데요, 전 거기다 5박 6일 추가해 주세요~”
그랬다. 말로만 들었던 러시아. 거기서도 40억 년 전의 신비스러운 자연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캄차카 반도를 여행하는 시간은 즐거움과 자연의 경이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보니 버스는 벌써 블라디보스토크 공항에 거의 다 도착했다. 웅장한 화산과 얼마 전까지도 내국인에게조차 개방되지 않았던 캄차카 반도에서의 추억이 진하게 머릿속에서 살아 꿈틀거리듯 다시 떠오르고 있었다. 그래, 다시 추억해 보아도 그건 정말 멋지고 즐겁고 유쾌한 오랜만의 여행이었다.
인천에서 페트로 파블로브스키 캄차트스키 공항까지
서울에서 캄차카 반도를 찾아가기 위해서는 직항이 없는 관계로 2시간 정도 블라디보스토크 공항으로 날아가 짐을 옮겨 싣고 국내선으로 갈아탄 뒤 캄차카로 다시 2시간 30분 정도를 더 날아가야 했다. 시간상으로는 5시간이 채 걸리지 않지만 러시아의 공항에서 산술적인 시간 설정은 경계대상이다.
워낙 입국 수속이 까다롭고 지루해 자칫하면 갈아타는 비행시간을 놓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경우 어디 가서 하소연하기 힘들다. 몇 년 전에는 이곳에 직항로가 개설되어 쉽게 올 수 있었다는데 여행객들이 줄어들면서 자연스럽게 직항로도 폐쇄되었다. 우리가 오전 9시 30분 인천공항을 출발해 동토의 땅 러시아 캄차카의 주도 페트로 파블로브스키 캄차트스키에서 약 35km 정도 떨어진 이사벨라 시 외곽 엘리조보 공항에 도착한 것은 현지시각 11시가 넘어서였다.
캄차카 반도의 5월은 백야현상이 나타나 11시가 넘어도 좀처럼 어두워지지 않았다. 공항을 빠져나오자 한국과의 시차는 4시간으로 벌어져 있었고 난 2008년 이곳을 찾은 첫 번째 외지 방문객으로 기록되고 있었다. 엘리조보 캄차카 공항에 도착하자 시뻘겋고 웅장한 까마즈라는 트랙킹 버스가 기다리고 있었다.
이 까마즈라는 차량은 예전에 러시아에서 광석을 주로 운반하던 화물덤프트럭이었는데 이제는 화물칸을 개조해 여행 투어에 많이 쓰이고 있는 특수차량이었다. 바퀴가 사람 키만 해서 웬만한 비포장도로도 끄떡없이 다닐 수 있다고 한다. 좀은 덜컹거리고 멀미가 나긴 하지만 그런대로 매력이 있는 이동수단이었다.
러시아 전통요리 샤실릭
샤실릭은 중앙아시아에서 유래한 러시아 전통 바비큐 요리로 양이나 돼지고기를 샴뿌르라고 하는 쇠꼬치에 끼워서 요리하는 러시아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요리 중 하나다. 먹기도 즐겨하지만 직접 만들어 먹는 것을 즐긴다는 점에서 볼 때 이 음식은 러시아에서 가족 간의 유대와 사회적 친목도모의 역할도 같이 하고 있는 중요한 메뉴이다. 러시아 사람들은 전통적으로 단 맛이 나는 양고기를 주로 이용해 요리하지만 지역과 종교에 따라 돼지와 닭 등 재료가 다양한 것이 이 샤슬릭의 특징이며 밀가루로 만든 전병을 같이 곁들여 먹어야 더욱 맛있다.
너무 늦게 도착해 그 길로 러시아 식당으로 달려가 전통음식인 샤실릭으로 저녁식사를 때우고 늦은 잠을 청했다. 예약문화가 없는 러시아에서 그래도 운이 좋아 우리는 캄차카에서 가장 좋은 호텔이라는 아바차 호텔에서 체크인을 한 후 첫날 지루함과 기대감이 뒤섞인 피곤한 몸을 깊은 잠 속으로 밀어 넣었다. 내일부터 보게 될 화려한 화산 풍경을 꿈꾸며 말이다. 그렇게 이곳은 이제 캄차카였다.
아바차 만을 바라보며 베링해를 꿈꾸다.
과거 러시아 내국인조차 초청장이 없으면 입국이 불가능했던 캄차카 반도는 러시아 연방 동쪽 끝 동경 155도, 북위 50도에 위치한 반도로 이루어져 있는데 면적이 약 47만 평방 km로 우리나라의 4.7배에 달한다. 캄차카 반도는 세계 최대의 화산지대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중 대표적으로 높은 산들은 대부분 평범한 산이 아닌 화산으로 이루어져 있다.
현재 300개의 화산 중 29개는 언제든 용암을 분출할 수 있는 활화산이며 전 세계 화산의 10%가 이곳에 몰려있다. 토착 원주민 예벤족은 이런 캄차카를 '불에 갇힌 도시'라며, 러시아어로 불의 반지라는 의미를 지닌 '아곤노에 칼쵸'라고 부른다. 그렇게 캄차카는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 자연유산이자 최고의 생태지역으로 세계 어느 유명 관광지에 못지않은 다양한 자연체험 테마를 갖추고 있으며, 아시아 대륙을 통틀어 최고의 아름다움을 갖춘 때 묻지 않은 원시 자연지역으로 평가받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천혜의 자연조건을 갖추고 있는 캄차카 반도의 인구는 전 도시를 합해 겨우 37만 명 수준으로 인구는 점차 줄어들고 있는 실정이다. 여기에 25만은 캄차카 반도 남동쪽 아바차 만에 위치한 주도 페트로 파블로브스키 캄차트스키에 밀집되어 있다.
이 도시는 작고 아담한 해양 도시로 구 소비에트 연방 시절에는 미국과 대치하는 극동의 최전방 군사요새로서 북태평양 핵 전함 기지가 자리한 매우 중요한 전략적 위치에 있었으나 이제는 대부분의 군부대가 철수해 점차 쇠락의 길을 걷고 있다.
주민의 대부분도 이젠 어업 및 조선업 등에 관련한 일에 종사하고 있었다. 하지만 잠깐만 도시를 벗어나면 바로 눈앞에 펼쳐지는 거대한 활화산 아바친스키와 장엄한 까략스키의 눈 덮인 영봉들이 병풍처럼 위치하고 있어 대자연의 엄숙함에 감탄을 자아내는 풍경을 지닌 매력적인 도시이기도 했다.
이 도시를 좀 더 자세히 보기 위해서 저 멀리 아바차 만이 탁 트이게 보인다는 전망대 꼭대기에 올랐다. 정상에 오르자 인류 항해의 역사에서 볼 때 사람들의 도전을 가장 거세게 뿌리치기로 유명한 거친 베링 해가 드넓은 아바차 만속에 발을 담그고 있었고 그 베링 해로 하염없이 배를 떠나보내는 페트로 파블로브스키 캄차트스키 제일의 항구가 시원스럽게 펼쳐졌다.
이곳에서 시원하게 뚫린 바다 위로 멀리 보이는 화산지대를 촬영하고 때 마침 운 좋게도 이 언덕에서 페러글라이딩을 즐기는 현지인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을 수 있었다. 이 전망대는 바다에서 언덕 위로 불어오는 바람을 이용해 페러글라이딩을 즐기기에 알맞은 조건을 지니고 있어서 날씨가 맑은 날이면 많은 동호인들이 이곳에서 페러글라이딩을 즐긴다고 한다.
페러글라이딩을 즐기는 현지인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저 멀리 화산에 걸친 환상적인 모습을 촬영하기도 했는데 자신의 페러글라이딩 제품이 한국산이라며 반가워하던 현지인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생생하다. 그렇게 아바차 만의 바다는 청명했고 그 위로 펼쳐진 하늘은 더욱 파랬다. 그 사이 구름 위로 우뚝 솟아난 웅장한 꺄약스키 화산 봉우리는 나의 렌즈 속으로 기꺼이 들어와 요긴한 추억거리로 메모리 되어졌다.
아바친스키 화산지대의 보석, 알피카 산장
캄차카 여행에서 가장 백미이면서 놓치지 말고 경험해야 할 여정은 바로 아바친스키 화산 아래 있는 알피카 산장에서의 트랙킹과 체험이다. 아바친스키 화산과 꺄락스키 화산지대를 사이에 두고 해발 850미터 고지에 위치한 알피카 산장에서 시작해, 대규모 화산 주위를 도는 일주일 일정의 80㎞ 트레킹은 캄차카의 최고 인기 상품이다.
캄차카에서는 툰드라 지형과 타이가가 공존하는 대자연의 모습을 배경으로 수시로 출몰하는 야생동물과 마주치거나, 야영을 하면서 별자리를 보는 것만으로도 세상의 시름을 다 잊을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나 캄차카는 헬리 스키와 패러글라이딩 등 익스트림 스포츠를 즐기는 사람들에겐 더할 수 없는 천국으로 눈이 녹고 자연의 신비가 드러나는 6월부터 9월까지가 생태관광의 적기다.
이 기간에는 예벤족과 이텔멘족, 코략족 등 4만 명에 이르는 유목민을 만날 수 있으며 1만 5000마리의 곰이 활동을 시작해 그야말로 천혜의 자연 그대로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곰을 보려면 헬리콥터를 타고 깊은 곳으로 들어가야 하고, 곰이 달려들 것에 대비해서 가스총으로 무장한 사람이 뒤에 따라다녀야 한다.
변덕스러운 날씨 덕에 기대 반, 걱정 반의 상태로 알피카 산장에 오르는 길은 그야말로 험난한 여정 그대로였다. 그 튼튼하고 우직한 까마즈 마저도 울퉁불퉁 눈이 녹아내리는 설산을 올라가기엔 역부족이었다. 까마즈를 타고 1시간여를 올라갔을까, 이내 골곡이 심한 눈밭 길이 등장했다. 주변에는 러시아의 전형적인 풍경이라고 할 수 있는 자작나무 숲이 아름답게 펼쳐지고 까마즈가 드디어 멈춰 섰다.
둘러보니 더 이상은 까마즈가 오를 수 있는 길이 아니었다. 여기서부터는 진정한 눈밭인 셈이다. 모두 짐을 챙기고 까마즈에서 내렸다. 여기서부터는 눈에 빠지지 않게끔 탱크 식 레일로 설계된 설상차를 타고 산장까지 올라가야 한다. 느리긴 했지만 올라가는 길에 좌우로 펼쳐진 자작나무 편대는 보는 이의 마음을 이리저리 흔들어 놓았다. 쓰러져 있기도 하고 뉘어져 있기도 한 나무들의 무리를 보면서 이런 자연 속에 있다는 사실이 새삼 경외감으로 다가오기도 했다.
그리고 올라가는 도중에 산장을 향해 크로스컨트리로 트랙킹을 하는 여행객 2명을 만났다. 하얀 설원을 배경으로 그대로 시간이 멈춰진 느낌이었다. 마치 코엔 형제가 만들어 낸 바톤 핑크에서 주인공이 바라보는 기이한 데자뷔가 해변에서 설원으로 옮겨진 것처럼 느껴지듯이 말이다. 선글라스 너머로 보이는 끝없는 설원은 정말 캄차카에서만 느낄 수 있는 그런 혹은 어떤 풍경이었다.
설상차를 타고 출발한 지 30여분이(헥헥--;) 넘어서야 드디어 산장에 도착했다. 알피카 산장은 아바친스키 화산 아래 고즈넉하고 아담한 3개의 동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식당과 주방이 딸려 있는 본 동과 별관 그리고 러시아식 사우나가 있는 사우나 동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산장에서 보는 아바친스키 화산은 과연 웅장했다. 폼페이의 베수비오 화산이 그랬듯이 이 아바친스키 화산 역시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화산 중에 하나로 알려져 있다. 전 세계 위험순위 넘버 1이다. 250년 동안 무려 14차례나 폭발했다. 가장 가까운 시기는 지난 2001년에 폭발한 기록이라고 한다. 물론 지금도 흰 연기를 하루에 몇 차례나 내뿜고 있다.
이 날도 빨간 석양을 받으며 아바친스키 화산은 모르도르에 칩거하는 늙은 용처럼 연실 허연 연기 기둥을 내뿜고 있었다. 하지만 난 그 위험할 것이라는 사실을 전혀 느낄 수 없었다. 만약 알았다면 겁났을까?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그날 석양에 떨어지는 화산의 아름다운 풍경을 본 사람이라면 그 화산이 아무리 강하고 폭발성이 있다손 치더라도 그 장관에 넋이 나갔을 것이 뻔하니까 말이다.
저녁이 되자 숙소를 배정받고 산장에서 우하(연어) 수프와 곡밀 빵으로 만든 저녁식사를 한 후 설원에서 사우나를 즐겼다. 화산지대 드넓은 눈밭에서 즐기는 러시아식 사우나는 각별한 느낌이 있었다. 그러고 나서도 한참 동안 해가 지지 않았다. 백야를 처음 경험하는 나로선 처음엔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지만 나중엔 무척 재미있기까지 했다. 백야가 길어지면 이 곳 사람들은 생체리듬에 따라 문과 커튼을 닫고 일부러 잠을 청한다. 그렇지 않으면 며칠만 지나도 몸이 견뎌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이제 해가 지려고 할 때 멀리서 뭔가가 나타났다. 그건 캄차카에 서식하는 여우였다. 캄차카에서는 연어가 나타는 7월쯤 곰을 볼 수 있는 트랙킹이 유명하지만 지금은 시기가 일러 볼 수가 없다는 아쉬움이 있었다. 그 아쉬움을 야생여우를 만나면서 그나마 풀 수 있었다. 그리고 긴 시간이 지나서야 백야의 끝을 볼 수 있었다.
산장에 근무하는 직원인 알렉세이는 으스름한 저녁이 시작되기 전부터 산장 뒤편에서 캠프파이어와 바비큐 파티를 위해 꼬치구이 불을 피우느라 무던히 애를 쓰고 있었다. 깊은 밤이 되자 모든 일행들이 산장 뒤편으로 쏟아져 나왔다.
거기엔 알렉세이가 마련한 잘 익은 꼬치구이와 장작더미 그리고 시원한 보드카가 준비되어 있었다. 산장의 일꾼들이 직접 만든 90도짜리 보드카는 물을 들고 함께 마시지 않으면 식도가 타 들어갈 정도로 강렬했다. 보드카는 입을 타고 심장으로 들어가 캄차카의 별이 되었다. 난 얼큰하게 술이 취해 하늘을 올려다보며 또 하나의 새로운 사실을 깨달았다. 밤하늘이란 원래 검은 밤의 빛깔보다 찬란하게 빛나는 별이 더 많을 수 있다는 놀라운 사실 말이다.
아직도 건재한 레닌 동상을 바라보다
아바친스키 화산 위로 별이 쏟아지는 꿈을 꾸다가 눈을 떴다. 그러자 눈앞에 별이 왔다 갔다 한다. 어제 마신 보드카가 아직 머리를 짓누른다. 하지만 그렇게 머리가 지끈하던 간밤의 숙취가 잠시의 화산지대 트랙킹을 하면서 설원의 공기를 마시니 그야말로 한순간에 씻은 듯이 사라져 버렸다. 도심에 찌들어 살면서 힘들게 하루를 버텨내야 했던 나는 다시 한 번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캄차카의 맑은 공기에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시 산장에서 내려와 찾은 곳은 캄차트스키 시내의 중앙이라고 할 수 있는 레닌광장이었다. 사실 구 소련이 붕괴되면서 많은 도시의 레닌 동상들이 무너져 내렸지만 이곳 페트로 파블로브스키 캄차트스키는 아직도 레닌 동상이 건재해 있었다. 아마도 이곳이 구 소련의 극동 군사전략 도시였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비 오는 날임에도 불구하고 레닌 동상 앞에서 모델을 서 준 발랄하고 젊은 여학생들을 바라보고 있자니 변해가는 러시아의 모습이 역사 속에서 다시 한 번 새롭게 떠올랐다가 담담하게 침전되기도 했다.
빌리첸스키 화산을 바라보며 샤먼 춤을
러시아에 오기 전에 미리 읽어 본 책 중 하나인 안나 레이드의 명저 '샤먼의 코트'는 신비감이 물씬 풍기는 제목과 달리 선홍빛 피와 잔인한 학살로 얼룩진 끔찍한 보고서다. 영국 출신의 젊은 사학자인 안나 레이드가 우랄 산맥부터 태평양 연안까지 '동토의 왕국' 시베리아를 순례하며 역사의 숨겨진 구석을 파헤쳤다.
답사 결과는 꽤 충격적이다. 한민족의 기원으로까지 일컬어지는 시베리아의 참혹한 과거가 양파 껍질 벗겨지듯 하나하나 드러난다. 사실 따지고 보면 새로운 얘기는 아니다. 거기에 이런 얘기가 나온다.
“러시아의 과거와 현재에서 시베리아 원주민의 존재를 떼어내는 것은 멕시코에서 마야의 존재를 떼어내는 것, 호주에서 예보리진을 분리하는 것, 미국에서 아파치 족을 지워버리는 것과 같다”
과거 시베리아에는 인류의 역사만큼이나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 30여 개 정도의 민족들이 살고 있었으며, 이들은 북미의 인디언, 호주의 애보리진과 마찬가지로 수천 년 동안 그곳에서 주인으로 살아왔다. 여기서 살았던 시베리아 원주민들은 사방 모든 것이 살아 있다고 생각하였고, 또 각각의 개성과 활력을 지니고 있다고 믿었다.
재미난 것은 '천둥은 천상의 아이들이 바다표범 가죽 위에서 뛰놀 때 나는 소음이며, 미동도 않는 북극성은 신령님들이 말을 매어 두기 위해 박아 놓은 말뚝'으로 알고 있었는데 이를 보면 이들이 얼어붙은 대륙을 얼마나 활기 넘치는 세상으로 생각하고 만들고 있었는지를 알 수 있다. 이처럼 시베리아 원주민들에게 있어서 '살아 숨 쉬는 따뜻한 세상'을 가져다주는 이가 바로 '샤먼'이다. 다시 말해 만물이 살아 움직이는 세상과 사람을 이어주는 이가 바로 샤 먼, 즉 모든 걸 아는 사람인 것이다.
이번 여행 중 운 좋게도 우리는 빌리첸스키 화산이 배경으로 펼쳐진 들판에서 러시아 소수민족인 시베리아 원주민들이 보여준 전통춤의식인 샤먼 공연을 촬영할 수 있었다. 캄차카에서 시베리아의 샤먼을 그것도 그들의 후손들이 펼치는 전통 공연을 볼 수 있다는 것은 충분히 인상적이고 뜻깊은 조우였다.
시베리아의 샤먼은 우리나라 신라시대의 역사와 연관성이 있을 만큼 동 아시아의 중요한 역사적 배경을 지니고 있다. 그날 공연에서 그들이 부르짖는 새의 소리, 북의 편차적인 울림 등은 질병을 몰아내고 악귀를 쫓는 데 사용하는 샤먼들의 주술이었다고 전해진다.
화려한 옷차림 또한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었다. 코트에 달려있는 새 모양의 펜던트는 그를 날 수 있게 해 주고, 어깨에서 튀어나온 금속 뿔은 사슴의 날렵함을 안겨 주며, 뱀을 상징하는 길게 끌리는 가죽 끈은 좁다란 공간도 파고들 수 있게 해준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지금 볼 수 있는 이 공연은 사실 끈질기게 살아남은 시베리아 원주민의 역사이기도 하다. 러시아의 통치 아래서 시베리아 원주민들은 수많은 핍박을 받았다. 그들은 총살되거나 헬리콥터에서 내던져졌다. 하늘을 날 수 있다면 지금이 바로 그런 능력을 보여 줄 수 있는 기회라는 얘기를 마지막으로 들으면서 말이다. 이런 모든 박해에도 불구하고 시베리아의 샤머니즘은 살아남았다. 그리고 내 눈앞에 이렇게 전통문화의 형식으로 살아남아 다시금 그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들도 이제는 삶의 한 방편으로서 이런 공연을 하겠지만 그 모습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우리에게는 좋은 체험의 현장이었으며 캄차카에서 색다른 경험을 사진에 담을 수 있었던 뜻깊은 시간이기도 했다.
연해주의 중심, 블라디보스토크를 걷다
다음날, 짧았지만 강렬했던 캄차카 반도의 추억을 뒤로 하고 블라디보스토크행 XF328편에 올랐다. 차창 아래로 4일간의 색다른 즐거움을 주었던 캄차카 반도의 웅장한 화산들이 머리를 들어 떠나는 이를 배웅해 주었다. 그리고 올 때는 들러보지 못했던 블라디보스토크에 잠시 여정을 풀었다.
블라디보스토크는 ‘쁘리모리예르’, 즉 연해주의 주도로 우리에겐 한민족 근대사의 애환을 담고 있는 역사적 장소인 동시에 크리미아 전쟁 당시 부동항이자 군항으로, 러시아 극동에서 태평양으로 뻗어가는 대 관문이자 전략요충지로, 러시아에서 그 존재감이 대단한 도시다. 이런 블라디보스토크의 역사적 배경을 고스란히 지니고 있는 곳은 시베리아 횡단 열차(TSR)가 출발하는 블라디보스토크 중앙역이다.
그날 이곳을 시작으로 영화 <태풍>의 촬영지로 유명해진 역 주변 철길을 따라 벨르이 돔이라 불리 우는 연해주 주정부 청사가 위치해 있는 전사의 광장. 그리고 서울의 대학로 같은 거리인 포키나 거리, 여름철 많은 시민들이 찾는다는 유명한 해변가 나베르즈나야 거리까지 블라디보스토크의 전형적인 명소를 걸으며 캄차카에서 담지 못한 사람들의 표정과 거리 풍경을 온전하게 담아내는 시간을 가졌다.
쉽게 갈 수 없는 땅, 러시아. 유럽으로 통하는 가스밸브를 잠그면 유럽 전체가 먹통이 된다는 최대의 에너지 생산국이자 광활한 대지를 소유하고 있는 나라. 난 지금 그 동쪽에 있는 작은 항구도시 블라디보스토크에 와 있다. 그날 밤, 블라디보스토크의 현대 호텔 12층 라운지에서 바라 본 블라디보스토크의 야경 속에서 그 유명한 벨루가 보드카의 실키한 목 넘김을 경험하는 것은 말 그대로 환상적인 궁합이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바다 건너 캄차카 반도에서 보았던 화산과 설원은 막막한 도시에서 뭔가를 애타게 갈구하던 나에게 삶의 힌트를 건네 준 멋진 커닝 페이퍼였다고 말이다. 그 커닝 페이퍼에는 이런 문구가 적혀있었다.
“공짜 치즈는 쥐덫에만 놓여있고, 진정한 이해란 경험 속에만 놓여있다.” - 러시아 속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