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다면 누구에게나 가족이 있다.
가족은 우리의 삶을 이어주는 질긴 끈이다. 나는 어릴 적 고향의 조그만 항구에서 매일 새벽마다 죽음만큼 푸르렀던 바다로 일을 나가야 했던 아버지들을 바라보며 자랐다. 아버지의 인생이란 삶을 이어가야 하는 힘보다 더 가혹한 부양의 몫을 짊어지고 있다는 사실도 그때 알게 되었다. 나에게 가족은 그렇게 거친 삶을 버텨내며 살아내야 하는 어떤 고난의 덩어리였으며, 일탈할 수 없는 보금자리이기도 했다.
시간은 모든 것들을 무력하게 만든다. 하지만 단 한 가지, 가족은 그 시간의 망각 속에서도 또 다른 진실을 잉태하고 있다. 아버지의 거친 손은 이제는 잡아도 실체가 없는 나약함으로 변했고, 어머니의 고운 손은 검버섯이 피어난 까칠한 세월의 역사를 대변하고 있다. 그리고 웃어줄 수 있었던 어머니 대신 딸은 어머니의 시간을 이어받았으며, 할아버지의 귀여움을 받던 아이는 이제 성인이 되어 다시 가족의 중심이 되어간다.
인생이라는 그 질긴 시간 속에서의 가족은 우리가 아는 모든 단어를 동원해도 표현하지 못하는 다양한 삶의 방식들을 창출하고 존재하게끔 만드는 힘이 있다. 태어나고, 관계하고, 감동받고, 기뻐하며 때로는 분노하고, 갈등하고, 노쇠해져 가는 구성원들 사이에서 나는 과연 어떤 존재였을지 궁금해졌다.
유년의 아련한 기억을 시작으로 고문과도 같았던 아픈 이별까지 겪어내며 느낀 나의 가족에 대한 단편들은 결코 놓을 수 없었던 작은 끈으로 귀결되고 만다. 그것은 내가 기억할 수 있는 질긴 추억의 끈이다. 가족의 시간이라고 말할 수 있는 그 작은 끈 속에서 이제껏 버티고 살아올 수 있었던 또 다른 나를 발견하게 된 것은 아마도 산티아고가 사막의 여인을 만난 설렘만큼이나 즐거운 경험이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