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있는 그대로가 사랑스러운 도시 / 나폴리

나폴리 (Napoli)

by 다모토리
아비규환의 도시를 접수하다


얼마 전 로마로 통하지 않았던 티볼리의 언덕길 올리브 나무 사이에서 기겁을 한 우리 일행.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폼페이로 득달같이 내려가다가 급 브레이크를 잡은 곳은 나폴리였다. 처음엔 나폴리는 일정상 그냥 제치고 폼페이로 내려가자는 게 중론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래도 이태리까지 왔는데 나폴리는 한번 돌아봐야 되지 않겠냐며 생떼를 썼다.


친구는 독일 넘버를 단 덩치 큰 캠핑카를 끌고 나폴리 시내로 들어가는 것에 대해 상당한 우려를 표명했지만 그래도 다른 일행들의 강력한 요구에 결국은 급하게 차를 틀어 나폴리 시내로 들어서고야 말았다. 이번 캠핑 여행에서 암스테르담의 무지막지한 벌금 사례 이후 두 번째 난관은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누가 그랬던가? ‘나폴리는 이태리고, 이태리는 나폴리가 아니다’라고. 나폴리는 누구나 손꼽는 세계의 3대 미항이지만 누구나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3대 추항이기도 하다는 말을 기억하지 못한 것이 결국 화근이 되었다. 고대 휴양도시 티볼리가 청국장처럼 걸쭉한 타임슬립의 즐거움을 안겨주었다면 나폴리는 정체 모를 재료로 뒤범벅된 MSG 비빔밥과 같았다.



하필, 밤이라서 그랬었던 걸까? 시내로 들어가자마자 여지없이 사라진 중앙선. 보기 좋게 꺾여 사라진 신호등. 인도 올드델리의 공항-파하르간지 구간과 중국 오지에서도 경험하지 못했던 놀라운 클랙션 소음까지 불길한 기운이 여기저기에서 감지되기 시작했다. 아! 뭔가 불길해! 우리는 결국 나폴리의 시내 중심지로 진입하고 나서야 친구가 왜 이곳에 들어서기를 주저했는지 온 몸으로 깨닫고 있었다.



참으로 신기한 게 이 동네, 제대로 된 교통신호가 없다. 가로등 근처에 멀쩡하게 경찰이 서 있지만 별 역할을 하지 못하고(아니 그냥 수수방관하고 있다) 뒤엉킨 차량들은 그야말로 아비규환 자체다. 혹시 뤽 베송 감독은 이곳 나폴리를 자주 와 본 적이 없었던 것 아닐까? 아마도 그가 이 도시를 몇 번이라도 들렸었다면 '택시'라는 영화 시리즈는 마르세유가 아니라 여기서 촬영되었어야 옳았다. 영화를 위한 특별 세트를 마련할 필요도 없고 지금 그 자체로도 이미 혼란스러운 상황이었으니까. 더구나 우리는 스포츠카도 아니고 용달차도 아니고 집을 달고 이 곳으로 기어들어 왔으니 혼란스러움이 더욱 가중된 것은 당연지사가 아닌가?


Vulvano Solfatara 캠핑장. 출처: 부킹닷컴
Vulvano Solfatara 캠핑장. 출처: 부킹닷컴


물론 사전에 이 부근에 대한 캠핑장 관련 정보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나폴리 남서쪽 바닷가에 있는 포쭈올리 (Pozzuoli)라는 작은 도시에 활화산 분화구 옆 캠핑장이 있었다. 이름하여 Vulvano Solfatara 캠핑장. 작은 도시지만 주변에 슈퍼마켓은 물론, 시내 곳곳에 작은 상점들도 있는 곳이다. 또한 캠핑장 안에는 수영장도 있고 따로 펜션도 있어서 널널하게 여유를 즐기며 나폴리를 돌아볼 기회가 있었다.


나폴리 인근을 여행하는 캠핑카는 반드시 이곳에 캠핑카를 두고 나폴리는 기차를 통해 들어가야 하는 것이 일반적 상식이었다. 캠핑장에서 포쭈올리 기차역까지 도보로 10분이면 도착하고 나폴리까지 기차로 30분 정도 걸리니 나쁜 일정은 아니었다. (나폴리 행 기차는 대략 1시간에 한 대씩 있다) 하지만 우리는 또 한 번 이런 상식을 무시했다. 우리 일행이 나폴리 인근에 도착했을 때는 밤이기도 했고 적당한 곳에 다가 파킹 한 후 하룻밤 정도 있다가 폼페이로 곧바로 뜰 요령이었기에.



그런 나태함은 결국 화근을 불렀다. 나폴리의 교통상황은 이태리의 정체성을 그대로 보여주는 한 단면인 듯 보였다.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지만, 까짓것 못할 것도 하나도 없다’라는 말은 이 나폴리에서 비롯된 말임에 틀림없었다. 덩치 큰 캠핑카를 이리저리 끌고 도망 다니듯 정신없이 시내를 헤매던 우리는 일단 출구를 찾아 이 혼돈의 도시를 얼른 빠져나가기로 했다. 세계 3대 미항이고 나발이고 간에 1시간 만에 두 손 두발 다 들고 아듀를 결정했기 때문이다.


그 와중에 우리를 정말 짜증 나게 하는 '쓰투핏!'한 사태가 드디어 벌어지고 말았다. 지나가는 사람에게 길을 물어봤더니 어떤 진상이 우리를 아예 도심 속 차이나타운의 시장 한가운데로 밀어 넣어버린 것이다. 지금도 생각해 보건대, 일부러 그랬다고 밖에 볼 수 없는 이 사건은 한동안 우리가 나폴리에 대해 이를 박박 갈게 하는 원흉이 되었다. 게다가 빠져나가는 길도 없는 좁은 시장 골목을 캠핑카가 꾸역꾸역 기어 들어오는데도 누구 하나 말리는 사람이 없다. 오히려 말도 안 되는 길을 알려주며 이리로 빠져나가면 된다며 서로 낄낄거리며 웃는데, 안절부절못하던 우리들은 복창이 터지기 일보직전이다. '아휴~이것들을 그냥! --;'



유럽연합의 범생이 왕따 '독일 넘버'를 단 우리 캠핑카는 그렇게 차이나타운 시장에 갇혀 한동안 주변의 웃음거리가 되고 말았다. 하루 전엔 티볼리의 어느 올리브 나무 숲에 보기 좋게 갇히더니 이번엔 정신이 하나도 없는 혼돈의 시장 속에 갇히고 말았다. 이 정도면 완벽한 캠핑카 수난시대다. 그렇다고 조용하기라도 하면 짜증이나 덜 날 텐데 오토바이니 자동차니 뒤에 밀린 차들이 빽빽대고 생 난리를 치자 슬슬 뚜껑이 열리고 인내력의 RPM지수도 급격하게 치솟고 있었다. 세상에, 이런 도떼기시장이 없다. 무당만 없다 뿐이지 완전 버라이어티 생 쇼~ 난리굿 판이다. 하지만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들어온 길이 있으면 나가는 길도 있을 터. 그렇다! 방법은 후진! 그것뿐이었다. 시장을 다 쓸어버리더라도 무조건 고!


나폴리6.JPG


그렇게 겨우 시장에서 돌아 나온 우리는 나오자마자 빵빵거리며 달려드는 뒷 차들에 밀려 도시를 빠져나가기는커녕 아무런 출구도 찾지 못한 체 무지하게 도심을 헤매야만 했다. 그렇게 이 도시를 벗어나고자 안간힘을 쓰다가 어찌어찌하여 기어 들어간 곳은 중앙광장 역 뒤의 스페인 골목(spaccanapoli). 나폴리의 스페인 골목은 16세기에 나폴리 민중의 반항을 누르려는 목적으로 스페인 병사들을 주둔시키며 조성된 지역으로 현재 1만 4천 명 정도의 인구가 밀집되어 살아가는 서울로 치면 도심 달동네쯤 되는 지역이다. 오래전부터 범죄와 매춘 등 불법 및 사회 문제가 끊이지 않아 나폴리 시가 특별하게 관리하는 지역이기도 하지만, 오래된 골목길로 인해 나폴리만의 풍취와 문화를 동반하고 있는 역사를 품고 있는 골목이기도 하다. 우리는 당시엔 몰라서 그랬지만 이런 골목을 캠핑카로 기어들어가는 건 사실 미친 짓이라고 밖에 할 수 없다.


출처 : http://www.svelaria.com
출처 : Italy Travel Guide


늑대 피하려다가 코끼리를 만난 것이다. 여기는 차이나 타운보다 더 심각한 좁은 골목길 투성이다. 그것도 심한 오르막 길이다. 그렇게 스페인 골목으로 빠져 들어간 우리 캠핑카는 또 한 번 오도 가도 못하는 좁은 골목길에서 결국 진퇴양난에 빠지게 된다. 또 한 번 동서남북 사면에서 초나라의 피리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캠핑카를 가지고 나폴리 시내에 들어오는 것은 기름을 몸에 바르고 불속으로 기어 들어가는 것과 진배없다는 선배들의 평범한 캠핑카 수칙을 어긴 죄를 온 몸으로 보상해야 하는 시간이 온 것이다.


“젠장~도대체 어떤 놈식이가 여기에(나폴리) 들어오자고 했냐? ”


친구 녀석이 화가 나는지 소리를 버럭 지른다. 바로 그때. 뒤따라오던 오토바이들이 엄청난 소음을 뿜으면서 경적음을 울려대었고, 그렇게 정신없는 사이에 캠핑카 왼쪽 뒤 방향 지시등 하나가 커브를 돌면서 아작하고 박살나 버렸다. '뿌지직!!!' 처음으로 우리 캠핑카가 외부의 무엇인가에 들이 받힌 것이다. 간신히 차에서 내려 박살난 모퉁이를 바라보았다. 쩝, 그야말로 처참했다.



이거 전부 다 돈인데. (디파짓_deposit_에서 다 까이게 생겼다. 캠핑카를 빌리려면 제일 먼저 맡겨야 하는 게 바로 이 디파짓이다. 디파짓은 우리나라의 보증금과 비슷한 제도로 캠핑카의 파손, 기물의 훼손 등을 대비하여 미리 돈을 받아 놓는 일종의 보증금 제도다. 우리는 15년 전 당시 120만 원의 디파짓을 걸었었다. 나중에 자세하게 말하겠지만 우리는 어이없는 이유로 이 디파짓을 다 날리게 된다. --; )


그나저나 우리는 스페인 골목에서 캠핑카 사이드를 해 먹고 난 뒤 공포스럽게 뒤에서 빵빵거리는 오토바이와 차량들을 피해 미친 듯이 도망나오기에 급급했다. 결국 우리는 나폴리를 제대로 둘러보지도 즐기지도 못했다. 아니 나폴리를 그냥 스쳐 지나갔다고 봐도 무방하다. 들어가자마자 나폴리의 교통상황에 질려버려 그만 돌아 나와 버리고 만 것이다.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고 누가 그랬던가. 그런 난리법석을 겪고 나자 모두들 기운이 쭉 빠져서 폼페이도 갑자기 내려가기가 싫어졌다. 하지만 차에는 로마에서 태운 손님들이 여럿 합석하고 있었다. 로마에서 얻어먹을 거 다 얻어먹고 자신 있게 가이드를 자청했는데, 체면상 이것까지 포기할 수는 없었다. 결국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일단은 폼페이로 내려갈 수밖에 없었다.



나폴리를 들려보자고 한 주역이었던 나는 폼페이로 내려가는 동안 '셧-업'을 당하고 캠핑카 구석에 처 박혀 조용히 근신할 수밖에 없었다. 폼페이에서 우리는 나폴리에서 당한 치유할 수 없는 상처를 현지식 피자와 스파게티 요리로 힐링하고 나서야 처음으로 안락하게 잠이 들었다. 며칠 사이 겪었던 티볼리와 나폴리의 끔찍한 경험으로 그날 밤 난 요란한 꿈을 꾸었던 기억이 난다.


이탈리아_이태리_세레나타의 나라. 이태리에는 '있는 그대로를 사랑하라'는 유명한 속담이 있다. 이 말은 이 세상에 빈틈없는 사람은 없으며, 그러니 그런 단점까지 사랑해야 진정한 사랑이 아니냐는 뜻이다. 하지만 이 속담을 듣고서도 우리는 한동안 나폴리의 단점이 아닌 장점을 보지 못한 것을 그다지 아쉬워하지 않았다. 결점이 있기에 사람다울 수 있다는, 그렇기에 아름다운 도시라는 공식이 우리가 겪었던 당황스러움 보다 더 낯설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나폴리는 그런 도시였다. 다양한 문화와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며 이런저런 여러 가지 모험과 상상을 하는 것이 가능한 도시. 그러면서도 우려와 불안이 현실로 존재하는 도시. 그렇게 나폴리에서 이번 캠핑카 여행의 재미와 호기심은 잘 삭힌 홍어처럼 천천히 그렇지만 먹음직하게 무르익고 있었다.


Grazie! Napol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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