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6. 욕심마저 내려놓게 한 아름다운 시골길 <대구–부산>
청도에서 출발한 버스가 25번 국도를 남으로 달리다 삼랑진으로 가는 58번 국도를 만나는 지점에 노루목이란 고개가 있다. 이 고개를 터널로 관통하는 도로는 부산 대구 고속국도이며 완행버스는 이 고갯길을 빙빙 둘러 돌아간다. 이곳은 청도군 청도읍 유호 2리다.
여기에 오래전 설화 하나가 전해진다. 옛날 이곳에 조장자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 조장자는 가난했지만 인정이 많고 마음이 넓어서 마을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다. 어느 날 스님이 찾아와 시주를 청하기에 후하게 시주를 하고 사랑방까지 내주었다. 융숭한 대접을 받은 스님이 앞산을 가리키며 「저 산 잘록한 노루 잔등을 정면으로 보게 대문을 바꾸고, 매년 가을에 햇곡식으로 산신제를 올리라고 알려주었다. 이후 가정의 살림이 넉넉해지고 자손도 번창했다고 한다.
하지만 설화에는 언제나 반전이 있다. 3대에 와서 손주며느리가 시주를 구하러 온 스님에게 ‘우리 집은 지금 복되게 살고 있으니 더 이상 복은 그만두고 제발 손님이나 못 오게 해 주세요.’라고 불평을 했다. 물론 그 이후는 상상하시는 결과대로다. 삼 년 내에 모든 가족들이 유리걸식을 하며 유호리를 떠났다고 한다.
이 설화는 마치 우리네 아버지들이 아들에게 전하는 간곡한 유언 같다. 우리나라 산천은 오랜 옛날부터 사람들에게 뭔가 이야기를 하려는 사람들의 욕망을 자극하는 구조를 지녔다. 유독 힘든 고갯길 설화가 많은 이유다. 힘든 봇짐을 지고 먹고살기 위해 이 동네 저 동네를 헤매고 다녔을 아버지의 거친 손이 절로 떠오르는 대목이다. 버스 안에서 옆자리에 앉아 계신 할아버지의 거친 손을 보니 힘든 역사 속에서 자식을 위해 말없이 꿋꿋하게 살았을 우리네 아버지의 마음이 가슴 아프게 떠오른다.
아버지의 실업으로 힘들게 살던 어린 시절. 촌 동네 시외버스터미널에서 용돈이라도 벌어 보려고 몰래 신문을 팔다가 아버지에게 걸려서 터미널 뒤편에서 두들겨 맞았던 기억이 났다. 그때 나를 혼내고 돌아서는 아버지의 눈가에 눈물이 살짝 맺혀 있었던 게 아직 생생하게 기억난다. 그래서일까. 우리네 아버지들은 자신이 진짜로 말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보는 족족 고개고개마다 죄다 설화로 남겨놓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