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6. 욕심마저 내려놓게 한 아름다운 시골길 <대구–부산>
조선시대 낙동강의 가장 큰 포구였던 삼랑진은 대동미를 수납하고 운송하는 집산지였다. 그런 이유로 일제강점기에는 전국에서 수탈해 온 쌀을 배로 운반한 뒤, 삼랑진역 철도를 이용해 자국으로 옮겼다. 삼랑진역 근처 번화가에 적산가옥이 많이 남아있는 이유다.
적산가옥이란 일제강점기에 일본인이 지은 건축물을 말한다. 특이한 건 군산이나 목포, 강경 등 주로 서해의 항구 도시에 드문드문 적산가옥이 남아 있는 편인데, 삼랑진은 아예 동네 전체가 적산가옥이란 점이다. 삼랑진의 적산가옥들은 주로 일본인 철도 종사자들이 살던 관사, 물류창고, 기관과 학교 등이다. 삼랑진읍 송지리는 역 근처 철도 관사마을로 상가거리에 아직 적산가옥이 오래전 모습을 잘 유지하고 있다. 건물은 아래가 점포, 위로는 주거로 만들어진 전형적인 주상복합의 일본식 목조주택들이다.
"1960년대까지도 삼랑진은 사람들로 미어터졌어. 기차가 설 때마다 역사에서 사람들이 쏟아져 나왔어. 길바닥에 깔린 게 돈이고 사람이었지. 철도관사는 주민들 살기 편하게 개조했지만 겉모습은 옛날하고 똑같아. 변한 게 거의 없어."
마치 일제강점기 당시를 걷는 듯하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군산이나 포항 구룡포의 유카타처럼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관광용 적산가옥 거리는 반대한다. 방법은 대구의 근대문화 거리처럼 주민들이 편리하게 살 수 있지만 원형은 훼손하지 않도록 지자체가 지원해주는 방식이 좋을 듯하다. 이런 역사적 건축물들을 보기 싫다고 모조리 헐고 없애 버린다면 후세들은 여기서 무엇을 기억해 낼까. 그런 걱정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