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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희성 Jun 27. 2020

서른이 되어도 인생은 똑같이 흘러갔고 나는 실망했다

30대는 왜 이렇게 어렵기만 할까?

화창한 봄날에 시험 공부를 하러 도서관에 가는 길이나 피곤에 지친 몸으로 출퇴근하는 것이 따분하게 느껴지는 날이면, 나는 미래의 내 모습을 상상하며 당장의 힘듦을 꾹 참곤했다. 꿈에 그리 던 집에서 우아하게 하루를 시작하고, 잡지에 나오는 모델처럼 머리부터 발끝까지 완벽하게 꾸미고 다니는 모습을 상상하면 괜히 미소가 지어졌다.


이루어질지 아닐지 모를 멋진 미래에 대한 상상은 ‘으쌰으쌰’ 하며 현실에 힘을 불어넣는 나만의 방법이기도 했다. 도저히 흥미가 생기지 않는 일을 해야만 하거나 생각만 해도 부담스러운 일들 을 준비해야 할 때, 동기부여가 되고 자극제가 돼 여러 난관을 헤쳐 나가는데 꽤 효험이 있었다.


내가 상상했던 멋진 나의 모습은 막연히 서른 즈음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마흔은 오지 않을 아득한 미래처럼 보였고, 스물 몇 살에 이루기엔 거창한 꿈 같았으며,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미래인 서른에는 원하는 것을 이루게 될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안정된 직업, 경제적 부, 사회적인 성공, 멋진 일상...... 나에게 서른은 그런 모습이었다.


하지만 서른이 되어도 인생은 똑같이 흘러갔고, 나는 불완전하고 미성숙한 것투성이인 내게 조금 실망했다. 나아진 게 있다면 메뉴판의 가격을 보지 않고 먹고 싶은 음식을 고를 수 있게 됐다는 것. 가격을 먼저 확인하고 체크카드의 잔고를 머릿속으로 계산 하며 메뉴를 주문하던 20대와 비교하면 매우 풍족해지긴 했지만 여전히 성공이라는 단어와는 거리가 멀고 갈팡질팡 헤매며 살고 있다.


서른이 되어도 반전은 없었다. 여전히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맞는지 안 맞는지 모르겠고, 잘 살고 있는지도 헷갈린다. 서른이 되면 더 이상 이런 고민 따위는 하지 않을 줄 알았는데.



공자는 서른을 일컬어 ‘이립而立’이라고 했다. ‘모든 것의 기초를 세우는 나이’라는 뜻이다. 20대에는 ‘서른이 되면 뭔가 되어 있겠지’라고 막연히 생각하지만 실은 사회로부터 주어진 과업을 해내느라 앞만 보고 달리다 그제야 숨을 고르고, 스스로에게 제대로 말을 걸기 시작하는 나이다.

 

20대에는 평생 늙지 않을 것처럼 살았지만 지금의 나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나중에 어떤 할머니가 되고 싶은지 등 인생의 태도에 대해 생각한다. 불과 몇 년전만 해도 나 밖에 모르는 매우 이기적인 사람이었지만 지금의 나는 간절한 도움이 필요할 누군가와 미래 세대가 살아갈 지구의 환경에 대해 생각한다. 인생을 바라보는 시야가 먼 시공간까지 확장된 것이다. 여전히 보험이나 연금 저축 같은 건 하나도 없지만.


죽는 날까지 인간은 겸손해야 하는 존재고, 배움에 대한 열망과 삶을 대하는 태도에 따라 각기 다른 속도로 성장하게 된다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이렇게 30대를 다시 정의하기 시작하자 불안하고 초조한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


그럼에도 나의 30대는 자주 불안할 것이다. ‘벌써 서른이나 됐는데 이룬 게 하나도 없어’, ‘나는 왜 이 모양일까’라는 생각이 자꾸 고개를 내밀 때마다 그 마음을 회피하고 방치하는 대신, 있는 그대로의 나를 마주하기로 했다. 그 과정은 유쾌하지도 친절하지도 않겠지만 나에게 위로와 용기를 주는 최선의 방법이라는 것을 이제는 알기 때문이다.


글 김희성 (@heeseongkim)

그림 김밀리 (@kim_milli_)




제 글을 아껴주시고 사랑해주신 브런치 독자분들 덕분에 <질풍노도의 30대입니다만>이 7월 3일 한 권의 책으로 나오게 되었어요. 30대를 지나며 세상에 홀로 거센 바람을 맞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 때, 머리맡에 두고 조금씩 꺼내 읽으며 위로가 되는 존재가 되었으면 합니다. 앞으로도 30대에 대한 이야기들은 브런치에 계속 써나갈거구요, 조금 더 소소한 30대의 일상과 책과 관련한 다양한 소식은 인스타그램(@heeseongkim)에서 공유할 예정입니다:) 모두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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