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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부엉씨 Apr 12. 2022

기억 記憶

호림박물관 개관 40주년 특별전

보통 박물관이라고 하면 국립중앙박물관을 비롯한 국공립박물관을 떠올리기 쉽지만, 한국박물관협회에 따르면 우리나라에는 350개 가까운 사립 박물관이 운영 중이다. 아마 문화재나 미술품 관람에 크게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이 중 간송이나 리움은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오늘 다룰 호림박물관은 간송이나 리움만큼이나 유명한 사립박물관...이라고는 하지만 나는 얼마 전에 처음 알았다. 홈페이지에 따르면 호림박물관은 1982년 개관했으며 신림본관과 신사분관이 있다. 개인적으로는 신림본관의 경우 내가 사는 집에서 접근성이 좋고, 신사분관의 경우 내가 다니는 회사에서 접근성이 좋아서 참 마음에 들었다.

호림박물관 개관 40주년을 맞아 열리는 [기억] 전시는 신사분관에서 열리고 있다. 회사에서 15분 거리라서 여유가 생겼을 때 후다닥 다녀왔다.

첫 방문이라 박물관으로 들어가는 입구를 찾는 데에 약간 헤맸다... 사진에서 보이는 '마스크 미착용자 출입금지 안내' 종이가 붙은 쪽으로 작은 문이 나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쪽으로 들어가면 된다.


여기서 진행되는 전시의 관람료는 8,000원(일반)이며 매달 마지막 목요일에는 무료 관람을 진행 중이다. 매주 일요일, 월요일을 비롯해 1월 1일, 설 연휴, 추석 연휴 등에는 휴관하고 화요일~토요일 오전 10:30분부터 오후 6시까지 관람할 수 있다. 입장은 관람 종료 1시간 전까지 가능하다고 하니 시간 및 관람료를 사전에 잘 확인할 필요가 있겠다.

2022년 2월 15일 시작한 이번 전시는 2022년 6월 30일까지 진행된다.


전시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과거 사람들의 [기억]과 관련된 물건들을 3부에 걸쳐 다루고 있다. 여길 처음 와서 되게 신기했던 게, 전시실 구조상 전시가 4층-3층-2층 이런 식으로 이뤄져 있다. 이에 따라 1부 [崇(높을 숭) 마음이 우러나다]는 4층부터 시작된다.

1부는 주로 조선시대 사람들이 인간의 탄생과 죽음을 어떻게 여기고 기억하였는지 보여준다. 가장 처음 볼 수 있는 전시품은 태항아리와 태지석이다. 조선 왕실에서는 왕자나 공주가 태어나면 태아를 둘러싸고 있던 태반과 탯줄을 깨끗이 씻은 뒤 항아리에 담아 태지석과 함께 묻었다고 한다.


가끔 어디 왕릉 같은 곳 가면 '태실'이라는 곳을 마주칠 수 있는데 이 태실이 바로 태항아리와 태지석을 묻은 곳이라고 한다.


개인적으로 태항아리를 본 것은 처음인 것 같다. 뭔가 생긴 것만 봐선 유골함인가? 싶기도 했으나 태항아리라는 것을 알고 보면 단정한 모양의 도자기에서 왠지 모르게 애틋하고 따뜻한 느낌이 느껴진다.

태항아리, 태지석과 대비되는 묘지합과 묘지석들이다. 이건 죽은 사람들을 기억하기 위한 것. 꽤 많은 수가 전시되어 있지만 내가 보고 좋았던 것 몇 가지 사진만 올린다.

유리장 안에 다양한 제기(제사 지낼 때 쓰는 기물)가 전시되어 있다. 크기나 모양별로 각 칸에 분류되어 놓인 모습이 보기 좋았다. 태항아리도 그렇지만 백자는 뭔가 재미없어 보이면서도 은은한 불빛 아래에 있으면 넋을 놓고 보게 되는 매력이 있는 것 같다.

더 안쪽으로 들어가면 특이하게 생긴 제기와 명기(무덤에 죽은 사람과 함께 묻는 각종 기물)들이 다량 전시되어 있다. 위에서 제일 왼쪽 사진은 당연히 돼지인 줄 알았는데 소라고 해서 약간 놀랐음;;; 술은 담은 그릇이라고 한다.


1부는 이 정도에서 마무리가 된다. 이제 3층으로 내려가 2부 [連(잇닿을 연) 삶이 이어지다]를 보러 간다.

2부 전시실 들어가는 순간이 이 전시에서 가장 좋았던 부분이다. 입구를 지나 딱 몸을 틀었을 때 위와 같은 광경을 보게 되는데 조명이나 그 조명을 받고 있는 녹슨 갑옷의 모습에 깜짝 놀랐다.


2부는 죽음 이후에 대한 이야기로, 주로 삼국시대 부장품을 전시하고 있다. 고대인들은 죽음이 삶과 이어진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죽은 사람이 생전에 사용했던 물건 중 그의 신분이나 권위를 나타내는 것들을 함께 묻었다는 설명이다.

완전히 녹이 슬어버린 갑옷. 엄청 가까이서 들여다볼 수 있는데 조금 징그럽기도 하고 무섭기도 하고 그랬다 ㅎㅎ;;


어두운 복도와 부장품들을 마주치니 뭔가 사후세계 또는 무덤에 들어간다는 느낌이 들어서 상당히 새롭고 재밌는 연출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이날 정말 모든 전시실을 통틀어서 관람객이 나 혼자밖에 없었기 때문에 그런 느낌을 더 많이 받을 수밖에 없었다.

각종 무기류. 어떤 박물관에 가서든지 늘 보던 것들인데 여기서 보니까 뭔가 다른 느낌이다.

갑옷과 무기류 다음으로는 새모양토기가 전시되어 있다. 고대인들은 사람이 죽었을 때 그 영혼을 사후세계로 옮겨주는 매개체로 새나 배, 수레 모양의 토기를 많이 만들었다고 한다. 특히 이런 새모양토기는 낙동강 인근에서 많이 발견되었다.


1부 전시에 비해 전시품 수가 적어서인지 디스플레이에 신경을 많이 쓴 느낌. 전시장에 처음 들어왔을 때의 어두컴컴한 분위기가 계속 유지되는 가운데 새 모양 토기들이 전시된 모습을 보니 이젠 어떤 신비로움까지 느껴진다.

2부 마지막 작품은 임민욱이라는 분의 [새가 날아가서, 나무가 된 나무]라는 현대미술 작품이다. 2부와 3부에는 이렇게 현대미술과 접목한 전시품이 많이 있다.


이 작품에 포함된 것인진 모르겠는데 여기 깔린 효과음? 배경음?이 엄청 소름 끼치고 기괴한 느낌이다. 이 소리가 2부 전시실 안까지 들려서 관람객들을 더 무섭게 만드는 것 같다. 아까도 말했지만 나는 혼자 봐서 그런지 한편으로는 되게 즐거운 경험이라고 느끼면서도 다른 한 편으로는 무서움을 느꼈다.

이제 2층에서 마지막 3부, [眞(참 진) 참이 드러나다]를 본다. 3부는 '기억'이라는 이번 전시 테마와 어쩌면 가장 잘 어울리는 부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순간을 시각화하여 그린 그림이나 사진에 대한 이야기다.


계회도가 많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얼마 전 봤던 서울역사박물관 [육조거리] 전시에서 육조 관원들의 계회에 대한 이야기를 접한 적이 있어 반가웠다. 전시를 여럿 보다 보니 '어, 이거 나 아는 건데'하는 순간들이 점점 늘어가는 것 같아 괜히 우쭐한 마음이 들었다.

초상화도 빼놓을 수 없지만... 뭔가 그냥 3부는 전체적으로 예상했던 범위에서 전시가 구성되었단 느낌이랄까...? 전시된 작품들도 크게 막 와닿는 그런 느낌은 없었다.

마지막으로 사진.

3부 끝나고 나오는 길에 관람객들이 직접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천연당사진관] 프로젝트라는 공간이 나온다. 3부에는 이것 외에도 현대미술 작품이 두 개 정도 같이 전시가 되어 있다. 여기선 기념사진을 찍어서 SNS에 올리면 뭘 준다던가 그러니 한 장씩 좋은 기억 남겨갔으면 좋겠다.




호림박물관에서 본 첫 전시라 설레는 마음이 있었고 1,2부를 보는 과정에서는 기물이나 전시 연출 측면에서 상당히 색다른 느낌을 받았기 때문에 나 개인적으로 만족도는 괜찮은 편이었다.


다만, 이런 전시 보는 데에 큰 취미가 없고 고미술에 대해서는 국사 교과서의 범위를 벗어날 경우 큰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면 추천하고 싶진 않은 전시다. 중간중간 그런 분들 또한 함께 즐길만한 요소가 있다고는 해도 전시가 그다지 길지 않고 엄청 막 감동적이다 할 정도로 기억에 남는 전시품은 없었기 때문에...


스토리텔링 측면에서도 딱히 감명 깊은 부분이 없었다는 생각이다. 특정한 예술사조나 예술품을 주제로 한 전시가 아니라 '기억'이라는 관념을 키워드로 진행되는 전시라 그런지 유기적인 연결성도 좀 부족한 것 같고 마음에 와닿는 것 없이 변죽만 두드리다 끝나는 느낌. 그래도 한 편으론 다행인 게 요즘 내가 되게 감성적인 무드에 빠져 있어서 전시가 너무 몰입하게끔 짜여 있었다면 회사 복귀 못 할 뻔했다.


마지막으로, 관람료가 일종의 진입장벽으로 작용할 것 같다. 솔직히 내가 문화재나 전시 이런 거 좋아하니까 여기에 8,000원 내는 거 하나도 안 아깝다. 이게 다만, 비교 대상이 국공립박물관 특별전이 되다 보니... 그런 곳 관람료가 너무 싼 게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부담스러운 입장은 이해가 가지만 그런 데서 돈을 더 받아줘야 모두 해피하지 않을까? 뭐... 세상사가 다 그렇듯이 쉽진 않을 것 같다.


아무튼 나름 즐거운 경험을 해서 나쁘진 않다고 느꼈던 전시. 위치도 강남에 있으니 근처에 갈 일이 있고 전시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들러보는 것도 괜찮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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