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부엉씨 May 25. 2023

서울시립미술관 전시회 [에드워드 호퍼: 길 위에서]

해외 작가 전시로는 올해 가장 큰 기대를 받았던 전시이지 않나 싶다.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 본관에서 올해 4월 20일부터 8월 2일까지 4개월가량 열리는 '가장 미국적인 화가' 에드워드 호퍼의 전시다.

에드워드 호퍼라는 이름이 낯선 사람일지라도 그의 대표작을 보면 '어 이거 어디서 본 것 같은데...'하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그의 작품이 20세기 미국, 그리고 도시를 대표하는 이미지로서 각종 영상물, 심지어는 음악에까지 많이 인용되어왔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유명한 사례가 하나 있다. 배우 공유와 공효진이 출연했었던 쓱닷컴 광고다.

나 역시 호퍼에 대해 그 정도 밖에 알지 못하고 있었다. 피카소나 칸딘스키 이런 화가들은 하다못해 고등학교 비문학 지문에서라도 볼 수 있을 만큼 세계 미술사에 이름을 남긴 화가이지만, 사실 호퍼는 미술사 전체적으로 봤을 때 그정도까진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도 남들 다 본다고 들썩들썩하는데 안 보기도 좀 그렇고... 그래서 인터파크에서 17,000원짜리 표를 사고 서울 시립미술관으로 갔다. 평일 오전이었음에도 사람이 아주아주 많았다. 전시 기간이 4개월로 꽤 긴 편이니 뒤로 갈수록 좀 널널해지지 않을까 싶긴 했으나, 끝날 때까지 난리였던 국중박 합스부르크전을 생각해보면 괜한 기대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시는 2층-3층-1층 순서로 보게 된다. 2층, 3층 전시실은 사진을 못 찍게 해놔서 너무 슬펐다.


[길 위에서]라는 제목처럼 전시는 에드워드 호퍼가 거쳐간 물리적 공간을 중심으로 이뤄졌다. 완전히 시간 순서로 딱딱 정리가 되어 있는 건 아니지만 적당히 그의 삶과 화풍의 전개를 그려나갈 수 있을 정도는 되는 것 같았다.


파리 시기 인상주의의 영향을 받은 작품들이 재밌었다. 막 그림이 좋다 이 정도까지 느낌은 아니지만 그의 대표작들을 아는 상태에서 보니 '아 이런 영향을 받았었구나' 싶은 생각이 들어서 그랬다.


그 외에 각별히 기억에 남는 작품이라면 중년에 그린 "자화상"과 큼지막한 사이즈와 묘한 분위기를 풍기는 "푸른 저녁", 그리고 석양의 색깔이 정말 멋졌던 "철길의 석양"(이번 전시 포스터로 사용된 작품) 정도다.

1층에서는 각종 아카이브 자료를 비롯해 상업화가 시절 작품, 그리고 배우자인 조세핀 호퍼와 에드워드 호퍼의 관계 등을 보여주는 자료가 전시되어 있다.


전시가 전체적으로 재미는 있는데, 약간 뭐가 좀 애매한 느낌이다. 많은 분들이 지적하고 있듯, 일단 호퍼의 대표작이라고 할만한 작품이 거의 안 온 것이 가장 아쉬운 부분이었다. 제일 유명한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Nighthawks)의 경우 스케치가 온 것에 만족해야 했다. '대표작'이라는 게 안 보면 그만이라고 할 수도 있는데 사실 단지 '유명한 작품을 봤다'라는 경험보다는 그 작가의 특징과 능력치를 가장 쉽게 알아볼 수 있는 예시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보기 때문에 그랬다.


모두가 호퍼에 대해 고독, 상실, 외로움  같은 키워드를 이야기하곤 하지만 정작 이 전시에서는 그런 호퍼만의 정서를 느끼길 수 있는 작품이 많지 않았던 것 같다. 물론 호퍼에 대해 어느 정도 공부는 하고 작품을 어떻게 감상해야겠다는 틀은 갖추고 갔지만 상황이 이렇다 보니 뭔가 '고독해서 고독한' 게 아니라 '고독해야 해서 고독한,' 다분히 중2병스러운 느낌을 받게 되었다.

애초에 기대치 자체를 에드워드 호퍼라는 화가를 소개받고 그의 인생에 대해 알아보는 정도로 잡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뭐 고독이 어떻고 현대인이 어떻고...는 이번 전시로는 좀 힘들 듯하다.


한 꼭지를 덧붙이자면, 아내 조세핀 호퍼와의 관계가 이번 전시에서 비중 있게 조명되고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한 이야기를 살펴보는 것도 의미 있을 것 같다. 눈여겨본 기사 두 개를 첨부한다. 톤이 많이 다르긴 하지만 어쨌든 호퍼 부부의 사이가 좋지 많은 않았던 것 같고 그 과정에서 조세핀 호퍼가 적잖은 희생을 한 건 사실로 보인다.

애초에 에드워드 호퍼의 작가 인생을 논하면서도 조세핀 호퍼를 빼놓고 얘기할 수는 없는만큼 이 또한 화가 에드워드 호퍼를 이해하는 데에 있어 필수적인 부분일 것이다.


서울시립미술관은 이번이 처음이라 몰랐는데, 2층에 [영원한 나르시시스트, 천경자]라고 하여 천경자 선생님이 기증하신 작품 다수가 전시되어 있었다. 교과서나 책에서나 보던 작품들이 실제로 있어서 적잖이 놀랐다. 전시실이 크지 않았음에도 1, 2, 3층을 통째로 쓴 에드워드 호퍼 전시만큼이나 큰 재미와 감동이 있었다. 이래서 '안 본 눈 삽니다'라는 말이 생겼나 보다...


아무튼 에드워드 호퍼 전시는 기대에 못 미치는 부분도 있고 자잘하게 마음에 안 드는 점들도 있었는데 워낙 또 유명한 화가이다 보니 다른 사람들도 다 우르르 몰려가는 김에 못 이기는 척 한 번쯤 보기엔 나쁘지 않은 것 같다. 다만 '나는 미국 가서 볼 거다'라거나 '17,000원 너무 비싼 것 같다' 혹은 '인증샷이 중요하다'라는 사람의 경우 '꼭 봐야 합니다!'라고 강권하기에 약간 애매한 느낌이라는 점을 말해두고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국립중앙박물관 청자실 큐레이터와의 대화 후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