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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부엉씨 Feb 14. 2022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 [조선의 승려 장인]

승려 장인에게 보내는 러브레터

작하기 전부터 기대를 많이 한 국립중앙박물관 "조선의 승려 장인" 특별전이다. 지난 1월 초에 다녀왔다가 얼마 전에 재관람까지 했다. 이것은 그 두 번의 기록이다.

지난해 12월 7일 시작된 이번 전시는 올해 3월 6일까지 진행된다. 2주 남짓 남았으니 끝나기 전에 꼭 다녀오길 바란다. 입장료는 성인 5,000원. 너무 싸다.

현장 발권도 가능하고 예약은 인터파크를 통해 할 수 있다. 회차는 한 시간 단위로 구성되어 있다. 박물관이 늦게까지 문을 여는 수요일과 토요일은 오후 6시, 7시, 8시 회차도 예약이 가능해 나는 수요일 저녁 7시로 예약을 하고 갔다.


평일 저녁이라 그런지 나 말고도 몇 분 있었지만 손에 꼽을 정도라서 거의 혼자서 볼 수 있었다. 요 근래 몇 년 동안 전시 경험 중 가장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이었고 그래서인지 만족도가 더 높았다.

이번 전시의 주인공, '승려 장인'들의 마음가짐을 보여주는 듯한 문구가 전시장 들어가는 입구에 적혀 있다. 

처음 들어가면 미디어아트 작품이 나온다. 그 사유의 방 초입에 있는 미디어아트 만든 사람이랑 같은 사람의 작품이라고.


사람 많고 정신없었으면 보는 둥 마는 둥 하다가 지나갔을 것이지만 한산한 김에 우두커니 서서 들여다봤다. 손도 나오고 자연도 나오고 스님도 나오고... 여러 이미지가 나오는데 하나하나 뜻은 솔직히 잘 모르겠고, 각기 떨어져 있는 세 개의 동그란 화면에서 영상이 나오는 구성이 신기했다.

"승려 장인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이번 전시 1부의 테마이지만 나는 결국 이것이 전시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라고 생각한다.


학교 등에서 역사를 배우다 보면 각 시대에 특징적인 정체성을 가진 집단들에 대해 듣는 경우가 많다. 6두품이니 신진사대부니 하는 정치적 그룹들부터 경강상인 같은 상인 집단까지, 시험에는 이들의 활동 및 특징에 대해 묻는 문제가 나오곤 했다.


비슷한 맥락에서 이번 전시는 '조선의 승려 장인'이라는 집단? 조직? 정체성? 아무튼 따로 배운 적도 없고 특별히 생각해 보지도 않았던 '사람들'에 대해 한 번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아마 전시를 보는 사람들 모두 이런 주제 의식을 특별히 신경 쓰면서 전시를 보지 않더라도 전시 끝날 때쯤이면 이들에 대해 깊이 느끼고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될 것이다.

미디어아트를 지나면 목판과 불화 초본, 불교 서적이 전시되어 있다. 각각 수행자, 예술가, 종교인으로서 승려 장인이 가진 면모를 보여주는 것 같았다.


사진을 찍진 않았지만 서적에 보면 '비수갈마천'이라는 신화 상의 인물 얘기가 나온다. 최초로 불상을 만들었다고 전해지는 인물이며 그리스 신화의 대장장이 신 헤파이스토스와 비슷한 지위를 가진다고 한다. 개인적으론 처음 듣는 얘기라서 재밌었다.

설레는 마음을 안고 다음 공간으로 이동한다. 전시 1부는 주로 승려 장인들의 활동 및 그 유형을 통해 그들이 어떤 사람들이었는지 전체적인 실루엣을 잡아가는 과정인 것 같았다. 


조선시대 수준 높은 불상이나 불화 등 불교 예술품의 제작을 의뢰한 것은 아무래도 왕실 사람들이었는데 이것을 처음에는 도화서 등 관청 소속 장인들이 주로 맡다가 점차 승려 장인들이 맡아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얼핏 기억하기론 임진왜란을 거치며 승려들의 사회적 지위가 올라갔기 때문이라는 설명글을 본 것 같고, 이렇게 불사를 담당하는 전문 승려 집단이 형성된 것은 조선만의 특징이라고.

이 파트에서는 영주 흑석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이 가장 눈길을 끌었다. 지난해 12월 25일부터 올해 1월 22일까지 한시적으로 공개되는 불상이라서 뭔가 더 제대로 봐야지 하는 생각으로 본 것 같다. 손의 표현이 아름다워서 놀라울 정도였다.


같은 공간에 전시되어 있는 목조비로자나여래좌상을 비롯한 다른 불상이나 복장물 역시 각기 스토리가 있고 조선시대 왕실 주도의 불교 예술품 제작의 특수성을 알 수 있다는 점에서 유의미했다.

두번째 방문했을 때는 영주 흑석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의 자리를 대신하고 있는 칠곡 천주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을 만날 수 있었다. 두 불상은 따로 봤을 때는 참 다르다 싶었으나 사진을 나란히 놓고 보면 공통점이 더 두드러지는 것 같다.


그리고 사람이 없을 때는 괜히 감적으로 불상 그림자 사진도 찍는 등 여유 있는 관람을 할 수 있다.

이후에는 점차 이들을 바라보는 스코프가 넓어져 승려 장인들이 본격적으로 활동하는 조선 후기 사회 속에서 그들의 모습이 다양하게 비춰진다. 

서로 다른 지역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승려 장인 커뮤니티 사이의 협업이라든지 수원 화성 축조와 같은 국가사업에 참여한 모습이라든지, 양반들의 모임에 참여하는 모습, 그리고 의뢰받은 작품을 잘 만들어내는 기술자 및 제작자에서 작업 자체를 기획하는 기획자로 활동폭을 넓혀가는 모습 등을 살펴볼 수 있다.

승려 장인이라는 생소한 집단의 예술적, 사회적 위치를 다각도에서 잘 조명했다고 생각한다. 이번 전시가 2부부터는 연출 측면에서 상당히 돋보이는데 1부 같은 경우에는 승려 장인과 관련된 배경을 전달하는 데에 있어 짜임새와 속도감이 좋아 인상적이었다.

기억에 남는 작품이 많은데, 사진 찍는 게 영 서툴러서 사진을 미처 못 찍은 것도 있고, 사진을 예쁘게 찍기 곤란하거나 찍고 나서 잘 나오지 않은 것들이 많아 하나하나 다 올리질 못하겠다;;; 근데 이번 전시에 나온 유물들은 하나하나가 다 명품이니 블로그 사진으로 보기보다 직접 가서 보길 권한다.

그 와중에 하나 올리는 건 화승 철유의 자화상이다. 비단에 그려서 그런지 먹이 살짝살짝 번지는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2부로 넘어가면 이제 승려 장인들의 작업과 작품으로 초점이 옮겨간다.

크게 조각승(조각가 스님) 파트와 화승(화가 스님) 파트로 나눠지는데, 각 파트에서 '스튜디오'라는 이름으로 재현해놓은 작업 공간이 꽤 운치가 있다. 특히 사진이나 영상은 없지만 '화승의 스튜디오' 분위기가 참 좋더라.

조각승 파트에서는 불상 제작 과정이나 조선 후기 승려 장인들이 불상의 재료로 즐겨 사용했던 불석(제올라이트, 요새는 가습기로 많이 쓰는 재료인 듯...?), 그리고 불상 조성에 얽힌 다양한 이야기들을 접할 수 있다.

가장 왼쪽의 사진은 조각난 목조 불상이다. 안쪽에 글씨가 써져 있는 등 평소에는 볼 수 없었던(감히 보려고 생각도 하지 못했던;;;) 목조 불상의 내부를 살펴볼 수 있는 드문 기회였다. 약간 뭔가 기분이 좀 이상하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고 그랬다.

오른쪽의 두 사진은 대흥사 석조 천불좌상이다. 다 만들어 놓고 배로 옮기다가 배가 표류하는 바람에 불상 일부가 일본에 머물다가 돌아오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불상 어깻죽지에 한자로 '일본'이라고 빨간색으로 적혀 있다. 당시 정약용이 '일본에 있다가 온 불상엔 일본이라고 적자'고 제안해서 그리 했다고.

기구한 사연과는 달리 친근하고 편안한 얼굴 생김새를 하고 계셔서 기억에 남는 불상이었다. 그나저나 '천불'이면 불상이 천개라는 말인데 정말 천개를 다 모아놓고 보면 장관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통도사 팔상도의 경우 화승 파트에서 소개가 되고 있기는 하지만 초본과 완성본을 비교해 볼 수 있는 공간이 따로 마련되어 있다. 팔상도는 석가모니의 생애를 8단계로 나눠 그린 그림이다. 

그림 하나하나가 스케일이라든지 화면 구성, 표현 등에서 상당한 포스를 내뿜고 있었다. 빼곡하게 들어선 인물들의 역동적인 움직임이 그대로 느껴졌다.

초본과 완성본 두 가지의 느낌이 상당히 달라서 꽤 놀랐다. 어떤 부분은 그냥 초본이 좋기도 하고 어떤 부분은 완성본이 좋기도 하고 그랬다. 초본, 완성본 할 것 없이 각각을 그냥 하나의 작품으로 여기고 감상할 만했다. 

가장 왼쪽에 있는 사진은 팔상도 순서상 두 번째인(이번 전시에서는 팔상도 중 네 점만 와서 팔상도 중 첫 번째로 전시되어 있다) 비람강생상의 일부인데, 석가모니의 어머니인 마야부인의 오른쪽 옆구리에서 석가모니가 태어나는 장면이다. 이 모습은 전시 포스터에 사용되기도 했다.

그나저나 내가 부산 출신인데도 통도사를 못 가봤네... 이번 전시 보니까 절도 많이 다녀보고 싶어졌다.


그리고 3부로 넘어가 통로를 따라 들어가다 보면... 

조각승 단응이 주도하여 만든 금빛 세상이 펼쳐진다. 337년만에 사찰 밖으로 나왔다고 하는 용문사 목각아미타여래설법상과 아미타여래삼존좌상이다.

이런 광경은 처음 봐서 말문이 막혔다. 전시 기획 측에서 공간이나 조명 등 연출을 정말 잘 해 놓았다보니 사찰에서 직접 봤다 해도 이 정도의 감동을 느끼긴 힘들었을 것 같다.

뭐라 더 할 말을 찾기 힘든 이번 전시의 백미. 사진으로만 봐도 좋은데 직접 가서 보면 정말 다르다.

미디어 아트를 하나 지나서 들어가면 송광사 화엄경변상도가 전시되어 있다. 뭔가 스케일도 크고 대단한 작품인 것 같긴 한데 화엄경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온전히 무엇인가를 느끼기가 힘들었다.

그 이후에도 3부에 전시된 작품 가지수가 꽤 된다. 특히 회화 쪽. 대표적인 승려 장인들의 작품세계를 깊이 있게 감상할 수 있도록 구성해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마지막 4부. 전시가 막바지에 다다르면서 깔때기처럼 모아지던 집중도와 긴장이 조금 풀어지는 공간이다. 갑분 현대미술이라 약간 당황스럽긴 했는데 과거와 현재의 만남이라는 점에서 의미는 있는 것 같다. 

승려 장인의 작품에 깊이 몰입했던 이전 파트에 비하면 좀 붕 뜨는 느낌이 있긴 하지만 그냥 이 공간 전체가 설치 미술인만큼 그 자체로 받아들이고 느껴보는 것도 하나의 감상 방법이 될 것 같다.

그리고 이번 전시의 마지막 작품, 김홍도의 염불서승도다. 열반에 드는 노승의 모습을 그린 그림이라고.

작품 설명문에 나와있는 것처럼 초연한 뒷모습만 보여주는 노승은 지금까지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승려 장인 중 한 명의 모습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크지 않은 그림을 한참 들여다보게 되었다.


나가는 말까지. 지금까지 내가 본 전시를 통틀어 손에 꼽을 만큼 긴 여운과 감동이 남는 전시였다.

그 이유는 아마도 이번 전시의 시각이 승려 장인이라는 '사람'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그리고 그 시각에서 분석이나 이해보다 애정이나 존경심 같은 아주 순수한 감정들이 더 크게 느껴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제 와서 티켓과 포스터가 핑크색으로 뽑힌 걸 보니 이번 전시 자체가 승려 장인에 대한 한 편의 러브레터나 팬레터인 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스토리텔링이나 연출 같이 관람객에게 메시지를 전달하는 기술적인 측면도 아주 좋았다. 단순하게 '너네 승려 장인이라는 사람들이 누군지 알고 있어?'라는 질문으로 시작해 '이거 한 번 봐봐 이 사람들이 이렇게 멋있는 것도 만들었다?'는 식으로 이어지는 흐름이 매우 자연스러웠고, 등장하는 작품 하나하나가 최고 수준의 명품일뿐만 아니라 흥미로운 이야깃거리를 가지고 있어 전시 내내 깊이 몰입할 수 있었다.

사실, 정규 교육과정을 통해 배운 역사가 기본 베이스인 나는 '불교 예술'이라는 장르 자체가 통일신라 시대 이후 줄곧 하락세였다고만 알고 있었으며 자연스레 '숭유억불'의 나라인 조선의 승려 장인은커녕 불교 예술 자체에 대해 큰 관심이 없었다. 그런 평가가 있을지도 모르겠지마는 어찌되었든 감히 나따위가 하기에는 '조선의 승려 장인'들에게 참 실례가 되는 생각이 아니었나 싶었다.

비단 승려 장인뿐만 아니라 앞으로는 어떤 작품을 볼 때 역사, 예술사에서 정리하고 전하는 '작가'에 대해 공부하는 것도 좋지만 그 작품을 만든 '사람'에 대해서도 존중과 애정을 잊지 않겠노라고 마음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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