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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부엉씨 Feb 15. 2022

북위 - 선비 탁발부의 발자취

한성백제박물관 2021 국제교류전

2월 말까지 진행되는 한성백제박물관 전시다.

한성백제박물관은 올림픽공원에 있다. 잠실 쪽은 내 생활권에서 거리가 멀기도 하고 특별히 방문할 일도 없는 곳이라 생소한 편이다. 그래도 한 가지 다행이었던 것은 내가 다니는 회사에서 한 번에 가는 버스가 있었다는 것. 내가 굳이 황금 같은 평일 오후 반차에 여길 들른 이유다.


가기 전에 몇몇 지인들에게 한성백제박물관 얘길 했는데, 하나같이 '건물이 참 멋있다'는 말을 했다. 직접 가서 보니 정말 멋있었다. 

박물관 입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전시실이 있다. 입구로 들어서면 먼저 북위의 역사에 대해 설명해 주는 영상 자료가 재생된다.

전시는 기본적으로 "선비 탁발부의 발자취"라는 제목에 충실하게 진행된다. 선비족이 기원한 북방 산림지대와 가셴동(알선동)으로부터 황하 유역의 중원까지 남하하는 과정을 영상 자료와 간단한 발굴품을 통해서 보여준다.


가장 눈길을 끌었던 것은 가셴동의 모습(가운데 사진)이었는데 동아시아 역사를 바꾼 유목 부족의 시작점을 사진으로나마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이 되게 묘했다. 동굴 생긴 것도 신기하게 생김. 동굴 안에 북위 황제가 남긴 축문이 전해진다고 한다.


가셴동 이후 이들은 네이멍구 초원지대의 대택을 거쳐 대나라를 세운 성락에 머물렀고 다소간의 혼란을 겪었으나 북위를 세우며 다시 일어난다. 그리고 북위가 중원 국가로 발돋움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던 평성에서 오호십육국 시대를 끝낸 이후 낙양에 자리를 잡는다.


유목 민족의 '발자취'를 따라간다는 구성이 재밌었던 것 같다. 함께 재생되는 영상 자료도 아주 집중해서 봐야 할 내용까진 없었지만 선비 탁발부가 자리 잡았던 중국 북방의 신비롭고 광활한 모습을 잘 보여줬다.


다만, 이게 지리적인 이해가 부족한 상태에서 지명만 때려 넣다 보니 쉽게 와닿질 않았다. 집에 와 포스팅 작성을 위한 자료를 검색하는 과정에서 이번 전시 관련 추천하고 싶은 아주 좋은 글을 찾았다. 윤태옥 작가라는 분이 지난 2015년 주간조선에 연재한 "탁발선비의 북방기행"이란 시리즈다.


내용 흐름이 전시 초반부 구성이랑 거의 똑같다. 기행문으로 쓰인 글이니 현장감이 좋고 동행한 교수님의 설명도 담겨 있어 이해에 도움이 되었다. 작가님 블로그 등 참고 자료는 링크를 첨부한다. 이 전시를 보는 사람은 꼭 함께 보길 바람(기사 링크)(블로그 링크)

이후 동선이 약간 헷갈리게 되어 있어서 순서가 맞나 싶긴 하지만 영상실이 전시실 가장 안쪽에 있기에 그냥 먼저 들어왔다.

영상이 두 편 재생되는 것 같다. 한 편(왼쪽 사진)은 북위와 백제의 교류와 관계에 대해서 다룬 영상이다. 백제 개로왕이 북위에게 고구려 공격을 요청하기 위해 보낸 '개로왕 국서' 이야기도 나오고, 도시 계획이나 불교문화 등에서 백제가 북위의 영향도 받았다는 점 등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북위 시절 불교가 중국사에서 손꼽힐 만큼 융성하여 윈강 석굴, 룽먼 석굴 등 유명한 불교 석굴들이 이 시기 조성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오른쪽 사진의 영상에서 이에 대한 내용을 볼 수 있었다.

다시 전시실로 돌아오면 이제 선비 탁발부 사람들의 주거, 복식, 음식 등 다양한 생활상을 볼 수 있다.

이 파트에서는 다양한 도용을 통해 선비족 특유의 생활풍속을 볼 수 있는 한편, 적극적인 한화 정책을 펼친 효문제의 개혁과 "호풍한운"(이민족 풍속... 근데 이제 한족 느낌을 곁들인...)이라는 개념이 나온다. 효문제의 한화 정책은 그야말로 이후 역사를 바꾼 개혁으로 평가 받는다.

중국사를 바라보는 여러 관점이 있겠으나, 이런 의미에서 아마 이 전시를 위해 가장 도움이 될만한 것은 중국사를 '한족과 이민족의 관계'로 보는 관점일 것 같다. 

사실 그 유명한 삼국지로 이어지는 후한 말의 혼란기부터 5호16국 시대, 남북조 시대까지의 전개는 지금까지 한족이 지배하던 황하유역, 즉 중원에 유목 민족이 세운 왕조가 침투하는 과정이라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지기 때문이다(참고 기사)

특히 북위의 경우 효문제의 개혁 이후 수-당이라는 통일 제국 성립의 발판이 됨으로써 이들이 단순히 중국사 일부로 편입되는 것을 넘어 중국사의 중심으로 발돋움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각별한 주목을 받을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이런 맥락에 대한 조명이 부족한 느낌이어서 약간 아쉬운 면도 있었다.

그래도 망명한 동진의 황족 사마금룡 무덤에서 나온 부장품이나 낙타 도용 등을 통해서 북위가 한족, 서역 등의 다양한 문화와 공존하고 교류했음을 알 수 있다.

그다음 공간에 전시되고 있는 의장 행렬 도용은 이번 전시에서 시각적으로 가장 만족스러운 경험이었다. 다른 박물관에 가도 쉽게 보기 힘든 광경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두 개의 무덤에서 출토된 도용을 각각 전시해두었는데 도용 하나하나의 생김새가 개성 있고 아름다워서 꽤 시간을 들여 뜯어볼만했다.

두 번째 의장 행렬 도용에서는 진묘수의 모습이 눈에 띈다. 무령왕릉 석수에 이어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본 진묘수다. 특히 사람 얼굴에 짐승 몸을 한 진묘수는 비현실적인 걸 사실적으로 잘 만들어놔서 약간 불쾌한 골짜기 같은 느낌까지 줬다;; 중국 사람들은 진묘수를 왜 저렇게 기괴하게 만들었을까?

이런 도용을 좀 더 볼 수 없나 찾아봤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유금와당박물관'이라는 곳에서 도용을 좀 많이 소장하고 종종 특별전도 열고 있는 것 같더라. 거기도 적당한 때 찾아가야지...

마지막은 불교문화와 관련된 내용이 전시되어 있다. 북위 평성시기에는 불교 사원이 도성 내부에 100여 개, 주변에 6378개 있었다 하고, 낙양시기의 경우 도성 안팎에 1000여 개가 있었다고 한다. 2014년 통계청의 "전국 사업체 조사 발표"에서 서울에 8000여 개의 기독교 단체(교회, 선교 단체, 기도원 등 기독교 유관 단체)가 있다고 나온 것(참고 기사)을 생각하면... 북위는 대체 어떤 나라였을까 싶다.

전시는 이렇게 마무리된다. 볼륨이 큰 편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전시의 구성이나 흐름, 그리고 의장 행렬 도용 등의 전시품이 꽤 좋아서 만족스럽게 관람을 마쳤다. 개인적으로는 중국사 이해에 있어 남북조시대라는 막힌 혈자리를 하나 뚫고 가는 느낌이었다. 이제 5호16국 시대를 보자 ㅎㅎ...

백제사와의 연계성이 그렇게 강하지 않았다는 것은 처음 기대했던 부분에서 약간 어긋나긴 했지만 이 전시가 열린 취지 자체가 향후 백제와 중국 왕조 사이의 교류에 대한 연구를 촉구하는 면이 있어 나름 또 그런 부분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아닌 게 아니라 올해가 한중 수교 30주년이라고. 참 이게... 어렵다 어려워. 아무튼 간에 중국이 우리로 하여금 참 다양한 감정을 들게 하는 나라인 건 사실이지만, 학자를 비롯해 많은 전문가들이 기획하고 추진한 이런 전시에 있어서만큼은 우리가 순수하게 지적 호기심이나 흥미로 접근하도록 해보는 것이 나쁘지 않을 듯하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전시는 2월 27일 끝나니, 아직 보지 않았다면 끝나기 전에 한 번 가보길 권한다. 그때까지 날 좀 풀리면 올림픽 공원도 돌아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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