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건드리고 간 찰나의 시선들
몸에 감기던 쌀쌀한 바람이 남쪽의 온기를 실어오면 나는 어김없이 봄맞이를 떠나고 싶어진다. 때로는 긴 겨울을 지나 꽃이 피기를 간절히 기다리다 매화를 일찍 보려고 먼 남쪽으로 떠나기도 했었다. 떠날 수 없을 때는 남편과 함께 가까운 강가를 찾는다. 집에서 차로 삼십 분이면 닿을 수 있는 경안천은 겨울이면 철새들의 안식처인 곳이다. 우리는 차안에서 작년 이맘때는 벚꽃이 필 때 왔었고, 철새들은 가고 없을거라는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경안천으로 향했다.
이제는 철새가 거의 떠나고 오리, 물닭, 백로와 간간이 가마우지가 먹이를 찾고 있었다. 넓은 생태공원은 습지를 거닐 수 있는 데크가 있고 주변으로 버들 강아지, 매화, 목련이 피어있는 산책로가 이어진다. 전망대에서는 물고기를 잡고 있는 새들의 모습을 관찰할 수 있다. 물가에서 푸드덕거리며 요란한 소리가 났다. 물가 가장자리 수초에 커다란 잉어들이 산란을 하려고 자리잡는 몸부림인 것이다. 철새가 떠난 자리에 물살을 가르는 힘찬 태동이 생동감있게 다가왔다. 둑으로 올라가면 양쪽으로 늘어선 벚나무의 가지마다 연분홍 꽃봉오리가 부풀고 있었다. 며칠 내로 필 것 같았다.
공원을 한 바퀴 돌며 이제 막 피어나는 꽃들과 눈인사를 나누고 나면, 우리는 각자의 방식으로 본격적인 봄맞이를 시작한다. 남편은 차에서 카메라 가방을 챙겨 메고 강가로 내려갔다. 해마다 이맘때면 그는 같은 자리에서 같은 포즈로 서 있다. 카메라 렌즈를 응시하며 마치 무언가와 깊은 대화를 나누듯 꼼짝도 하지 않는다. 그의 렌즈가 향하는 곳은 강가의 연둣빛 물이 오르고 있는 왕버드나무 군락이다. 가까이서 보면 그저 앙상한 가지 끝에 돋아난 작은 새순에 불과할지 모르지만, 멀리서 바라보는 그 풍경은 안개가 살짝 드리워져 강물 위에 연초록 물감을 풀어놓은 듯 몽환적이다. 남편은 그 찰나의 순간, 겨울의 완고함을 뚫고 솟아오르는 생명의 빛깔을 담아내고 싶었으리라.
지그시 셔터를 누르는 그의 등 뒤로 햇살이 부서진다. 젊은 시절의 꼿꼿했던 등은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조금 굽어 있었지만, 카메라 뷰파인더를 들여다보는 그의 뒷모습만큼은 소년처럼 설레 보였다. 그는 그렇게 눈으로 봄의 채도를 느끼고 나는 손으로 흙의 기운을 감지하며 계절을 맞이한다. 우리는 같은 곳을 보지만, 그는 렌즈를 통해 순간의 아름다움을 기록하고, 나는 손끝으로 각자의 봄을 수확하는 것이다.
나는 긴 제방 길에 쪼그리고 앉아 온 몸으로 따스한 햇볕을 받으며 나물을 캤다. 이제 막 돋아난 살진 쑥과 씀바귀, 고들빼기 등 바구니 가득 나물의 향기가 어우러졌다.
호미 끝에 걸리는 고들빼기의 뿌리가 흙냄새를 풍기며 딸려 나왔다. 이 쌉싸름한 냄새는 어린 시절 동네 친구들과 밭둑길을 걷던 흙냄새와 닮아 있다. 잠시 나물 바구니를 던져두고 냇가의 버들강아지도 꺽고 산 모롱이 진달래까지 한 아름 꺽어 오던 때가 떠오른다. 아슴한 추억과 함께 봄바람은 기어코 나를 들판으로 불러낸 것이다.
어린 시절 들판을 누비던 아이의 손길이 어느덧 세월을 지나 다시 흙을 만진다. 바구니 가득 담긴 것은 나물이 아니라, 다시 돌아온 생의 활기였다. 그렇게 쌉싸름하고 몽롱한 기운이 내 안의 겨울을 밀어내고 있었다.
간간이 노란 민들레와 보랏빛 제비꽃에게도 눈맞춤을 한다. 어느새 꽃다지와 냉이도 꽃이 피어 가느다란 몸을 하늘거린다. 고요한 가운데 새들의 지저귀는 소리가 활기 넘치고 경쾌하다.
두 바구니 나물을 캐고 목련 나무 그늘 아래에서 김밥을 먹었다. 여기 저기 소풍 나온 가족들이 많았다. 옆 자리 부부의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이 바람에 실려왔다. 책장을 넘기는 소리와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뒤섞이는 이 정적인 소란함이야말로 계절이 주는 진정한 선물이었다.
저녁 밥상에는 쑥 부침개와 씀바귀 무침으로 봄향기가 가득했다. 흙 속에서 갓 건져 올린 날 것들은 그 향의 층위가 다르다. 문득 낮에 본 그 부부처럼, 다음번 경안천 나들이엔 어떤 책을 들고 갈지 행복한 고민에 빠진다. 꽃이 피고 나물이 돋는 한, 나의 봄맞이 의식은 다음 페이지로 계속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