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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세일 Mar 14. 2024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부동산 사랑!!

영화 '강남' 리뷰 

누아르 영화 속의 폭력은 언제나 깊은 슬픔이 내장돼 있다. 
거대한 폭력에 맞서 싸우다 비참한 최후를 맞거나 좌절된 꿈으로 인해 몰락해 가는 개인의 아픔이 진하게 묻어나기에 주인공을 향한 연민이 깊게 남는다. 이를 효과적으로 묘사하기 위해 감독은 주인공을 외적인 포장부터 멋지게 하는데 그 하나가 우월한 외모를 통해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이다.

이병헌, 원빈, 정우성 등이 대표적인 경우인데 유하 감독도 예외는 아니다.
유감독의 거리 3부작 중 첫 번째 작품인 ‘말죽거리 잔혹사’에서는 권상우를 스타로 만들었고 2부작에 해당되는 ‘비열한 거리’는 조인성의 남성미를 발굴했으며 ‘강남 1970’은 곱상한 이미지로 로맨스 영화에 어울릴 이민호를 통해 그의 좌절된 꿈을 깊은 연민으로 담아냈다. 

이런 면에서 감독을 배우의 조련사라고 하는 말은 맞지만 멋진 외모를 가진 남자 배우가 마케팅의 주된 요소가 된다면 영화의 작품성이 사장되는 문제가 발생될 수 있다. 유하 감독의 영화를 작품성으로 평가하고 싶은 것은 그의 영화 속에는 폭력에 대한 미학이 깔려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현실은 총기를 사용해 많은 사람을 살생하는 장면을 영화 속에 담을 수 없기에 싸움의 주된 무기는 회칼과 도끼, 야구방망이 등이다. 주인공과 대치점에 있는 조폭들이 이런 무기를 사용해 패싸움을 하지만 주인공은 언제나 혼자이고 맨손으로 수십 명의 적들을 제압한다. 이때 허공을 가르며 정확히 상대방에게 꽂히는 발차기 기술을 보며 가슴을 졸이다가 안도의 숨을 내쉬는 것이 한국 누아르 영화의 공통된 특색이다. 



그러나 유하 감독은 폭력을 통한 볼거리만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폭력이 자행될 수밖에 없는 어두운 사회상에 주목한다. ‘강남 1970’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땅과 돈과 권력에 대한 욕망이다. 

진흙으로 덮인 황량한 땅은 마치 마카로니 웨스턴 영화처럼 황금에 대한 욕망으로 가득한 사람들이 몰려든다. 자신의 권력을 사용해 가장 쉽게 욕망을 충족시킬 수 있는 정치인은 이중적 인간의 대표적 표상이다. 조직을 가지고 있는 조폭은 정치인 수하에서 한 지역의 패자가 되기 위한 세력을 확장한다. 흔히 마담으로 일컬어지는 여인은 자신의 육체를 무기 삼아 남자들을 정복해 가지만 가장 불쌍한 군상은 선택의 여지없이 생계를 위해 맨 밑바닥부터 기며 욕망을 향해 달리는 종대(이민호)와 용기(김래원)와 같은 인물이다. 자연계의 먹이사슬처럼 인간의 욕망은 철저한 약육강식으로 이루어진다. 그러기에 폭력을 주제로 한 영화는 주인공에 대한 깊은 연민과 시대에 대한 울분 때문에 가슴이 먹먹해지는데 폭력의 미학이 주는 교훈 때문이다.




유하 감독도 ‘강남 1970’에서 이런 구도를 만든다. 

고아 출신이고 넝마를 주워 하루하루를 연명하는 종대(이민호)와 용기(김래원)는 미래는 없었지만 불행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서로 의지하고 힘이 될 수 있는 형제와 같다. 혈육적으로는 남남이지만 그들은 같은 공간에서 가난을 벗 삼아 함께 생활했기에 행복했다. 그러나 그들이 기거하던 무허가 판잣집이 강제철거를 당하자 두 사람은 생존을 위해 철거반원과 싸울 수밖에 없었고 결과적으로 악의 세계로 진출하는 계기가 된다.

선과 악에 대한 판단보다 앞서는 것은 살아남는 것이고 종대와 용기는 마침내 중간 보수의 자리까지 오른다. 그들은 이제 폼 나는 오토바이나 차 한 대 정도는 굴릴 수 있고 원하는 만큼의 땅과 돈도 가질 수 있다. 두 사람은 더 큰 욕망을 향해 달리는데 이런 영화의 결론을 관객도 알고 있기에 이것이 영화 ‘강남’의 한계란 생각이 든다.

그래서일까? 

유하 감독은 영화의 마지막에 용기(김래원)의 배신이라는 카드를 사용한다. 가난했던 시절, 형제보다 가까운 그들이었지만 욕망은 두 사람을 갈라놓고 비극적인 최후를 맞게 한다.



뻔한 결말이라고 말하면서도 종대와 용기에 대한 극한 슬픔을 갖는 것은 1970년대라는 우리 시대를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중앙정보부를 앞세운 권력은 땅 투기의 핵심에 서고 거기에 기생하는 작은 권력과 폭력, 여자, 그리고 이름 없는 사람들은 마치 영화 속의 한 장면처럼 서로의 육체를 탐하며 육체적 욕망을 이루는 공통분모를 갖게 된다.

어쩜 70년대나 지금이나 우리는 그런 욕망 속에서 살고 있다는 아픈 인식이 있다.

특히 영화의 마지막 장면, 햇살이 터널 속으로 들어오고 있는데 종대는 그 앞에서 쓰러진다. 조금만 더 가면 저 어둠 속에서 나올 수 있지만 거기까지가 그의 자리였다는 비애 때문에 영화의 여운은 길게 남는다.

멋진 것은 이때 배경음악으로 후레디 아길라의 ‘Anak’이 흐르는 것이다.
깊은 슬픔을 드러내는 어쿠스틱 기타의 반주를 따라 아버지가 아들을 보며 희망을 심어주는 가사는 종대의 아픔을 진하게 노래한다.

‘이제 먼동이 트면,
너의 날은 시작될 거야.
수많은 삶 속에서도 너는
너의 빛을 만들고 발할 것이며,
너만의 가치를 품을 것이야.‘


아버지의 얼굴도 기억하지 못하는 종대에게 Anak를 통한 격려는 관객들의 마음에 진한 슬픔의 강이 흐르게 한다. 우리 시대의 젊음은 종대와 같이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한 시도도 못하고 좌절하고 있기에 이 노래는 영화의 주제를 잘 들어내는 멋진 선곡이란 생각을 한다.

 악에 의해 침몰해 가는 종대나 용기를 통해 역설적으로 유하 감독은 우리 시대의 악을 고발하고 있기에 단순한 폭력영화가 아니라 폭력의 미학이 주는 아름다움에 공감하는데 모처럼 울분과 함께 슬픔을 동반하며 본 영화로 기억된다.  

배경 음악은 '강남'의 OST로 사용된 
후레디 아길라의 ‘Anak’입니다.


https://youtu.be/OZUbAXDrzy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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