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과 음악, 친구의 하모니
영화 '더 콘서트' 리뷰
영화는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1번 2악장이 흘러나오면서 시작이 된다.
고등학교 시절 보았던 ‘엘비라 마디간’에서도 이 음악이 사용되었기에 벌써 마음이 설렌다. 지휘자 안드레이 필리포프(알렉세이 구스코프)는 우아한 손짓으로 볼쇼이 오케스트라를 지휘한다. 한참 모차르트의 음악에 빠져 들고 있는데 갑자기 핸드폰이 울린다.
환상이었다.
30년 전 안드레이가 지휘하는 볼쇼이 오케스트라는 유대인 바이올린 연주자 레아와 함께 완벽하게 차이코프스키를 연주하고 있었다. 감동의 물결이 절정을 이를 때 갑자기 공연이 중단되고 안드레이의 지휘봉은 꺾이고 만다. 그 당시 서기장 브레즈네프는 볼쇼이에서 유대인 연주자들을 해고시키라고 했는데 그 명령을 듣지 않았기 때문이다. 가장 뛰어난 실력을 가지고 있었던 유대인 연주자 레아와 이쟈크 샤샤가 쫓겨나자 그들을 지켜주지 못했다며 괴로워하던 안드레이도 해고를 당하고 지금은 볼쇼이 극장 청소부로 전락한 상태다. 이렇게 비참한 삶을 살고 있지만 안드레이가 볼쇼이 극장의 청소부가 되면서까지 볼쇼이 근처를 맴도는 것은 연주자에게 가장 어렵다는 차이코프스키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다시 한번 지휘하는 꿈 때문이다. 세월이 흘러도 변함이 없는 지휘자 안드레이의 꿈이다.
볼쇼이 오케스트라 기획자 방을 청소하던 안드레이는 파리에서 보낸 팩스 한 장을 읽게 된다. 내용은 파리 샤틀레 극장에서 공연하기로 했던 LA 필하모닉이 돌연 공연을 취소했기에 볼쇼이 오케스트라에게 긴급 초청장을 보낸 것이다. 이 내용을 안드레이가 몰래 본 것이다.
30년 동안 가슴속에 간직했던 꿈인 차이코프스키 바이올린 협주곡을 연주할 기회가 왔다고 그는 생각했다. 즉시 이 사실을 볼쇼이에서 가장 친한 친구였고 함께 해고당했던 샤샤(드미트리 나자로브)에게 이 사실을 알린다. 이제는 뿔뿔이 흩어져 있는 과거의 멤버들도 모아야 하고, 비자도 발급받아야 하고 또 경비도 필요하다. 그들 앞에 이렇게 어려운 일들이 산재해 있지만 감독은 이런 과정들을 유머로 풀어 나간다. 결국 안드레이와 볼쇼이 오케스트라는 30년 만에 급조가 되어 프랑스로 떠나게 되는데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있다. 30년 전에 차이코프스키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완벽히 연주했던 레아와 같은 솔리스트를 구하는 것이다.
안드레이는 안느 마리 자케(멜라니 로랑)에게 자신의 꿈을 이야기하며 이번 공연에 차이코프스키를 연주해 달라고 부탁을 한다. 그러나 안느는 자신은 한 번도 이곡을 연주한 일이 없다며 냉정히 거절을 한다. 실망하고 있는 안드레이를 보며 절친한 친구 샤샤도 안느를 찾아가서 간청을 해보지만 역시 거절당하고 만다. 이때 샤샤는 마지막으로 안느의 출생의 비밀에 대해 간접적인 이야기를 한다. 안느는 자신의 출생비밀을 알 수 있다는 것과 안드레이에 대한 신뢰감으로 공연에 협연하겠다는 약속을 한다.
이렇게 우여곡절 속에 드디어 리허설 날이 되었다. 안느는 기대감을 가지고 샤틀레 극장에 갔지만 단원들은 보이지 않는다. 순간 자신의 약속이 얼마나 경솔했는가를 안느는 알게 된다. 실망하고 있는 안느 앞에서 샤샤가 첼로를 연주하고 집시 친구가 현란한 기교를 가지고 바이올린을 연주하자 안느의 마음에 조그마한 감동이 있다. 30년의 세월이 흘렀고 볼쇼이 단원들은 음악과는 거리가 먼 직업들을 가지고 근근이 살았지만 그들에게 음악은 가장 친한 친구였다. 비록 푼돈을 받으며 지하도에서 공연을 하기도 하고 손님을 끌기 위해서도 연주를 하지만 그들에게는 이 순간이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다.
그들이 프랑스 파리로 간 이유도 순수한 연주가 아니라 뭔가 한몫할 수 있다는 이기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지만 음악은 이들의 마음을 하나로 묶어 놓는다. 이것이 음악의 힘이다.
‘레아를 위한 공연’이라는 문자 메시지는 그들의 마음을 하나로 묶는 계기가 되었다. 변변한 리허설도 못하고 그들은 드디어 30년 만에 프랑스 샤틀레 극장의 무대 위에 서게 된다. 지휘를 위해 연미복으로 갈아입은 안드레이의 표정이 비장하다. 입가에 보이지 않는 미소가 흐른다. 30년이다. 그 오랜 세월 동안 그는 온갖 수모를 당하면서 이 순간을 기다려 왔다.
샤틀레 극장을 꽉 메운 관객들 앞에서 안드레이와 안느가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한다. 관객들의 뜨거운 박수가 이들을 격려하고 드디어 안드레이의 지휘에 맞추어 차이코프스키의 바이올린 협주곡이 시작되는 순간이다. 안드레이의 손이 올라갈 때 긴장을 깨고 늦은 단원 둘이 헐레벌떡 들어온다. 순간 관객은 웃음. 아무리 보아도 이 공연은 기대할 수 없다. 한바탕의 웃음이 지나가고 다시 안드레이는 손을 들고 안드레이와 안느, 샤샤의 눈빛 교환이 이루어진다. 드디어 안드레이의 지휘에 따라 바이올린부터 연주가 시작이 되지만 아무리 연주의 달인이라 할지라도 명색이 오케스트라가 아닌가?
파열음이 나고 연주는 조화가 없다. 실망한 관객들은 머리를 좌우로 흔들고 비웃음이 역력하다. 단원들도 놀라는 표정이다. 그러나 안느의 독주가 시작되면서 서서히 분위기는 반전되기 시작한다. 단원들의 표정에서 놀라움이 감지되고 이윽고 안느를 보면서 안도하기 시작한다. 관객들도 서서히 안느의 연주에 빠져들기 시작한다. 이렇게 차이코프스키의 바이올린 협주곡은 감동 속에 10분 정도 연주가 된다. 화면 속의 관객이나 극장 속의 관객이나 가벼운 숨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다. 모두 차이코프스키에 빠져있다.
순간 눈물이 나왔다.
프랑스 영화를 보며 처음으로 웃다가 울었다.
웃음은 이 영화의 양념이고 관객들을 울리기 위한 보조도구에 불과했다. 긴장을 풀고 여유를 갖게 한 뒤에 감독은 마지막 10분 차이코프스키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통해서 관객들의 눈물샘을 자극한다. 마치 마라토너가 마지막 스퍼트를 하며 경기장에 들어올 때 모든 관중들이 일어나 환호하는 것과 같은 모습이다.
나 같은 장년층이 이 영화를 보면서 더 감동할 수 있는 이유는 누구나 한 번쯤은 삶의 좌절과 아픔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부분은 다시 일어서지 못하는 게 우리의 현실인데 이 영화는 그 좌절을 이기고 자신의 꿈을 이룬 안드레이를 통해 삶은 살아나갈 가치가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 영화를 보면서 소중한 것 몇 가지를 기억했다.
1) 음악 - 언제나 가까이하는 편이지만 이제 클래식 쪽으로 방향을 더 틀어야겠다. 나이 든다는 것은 가벼움보다는 무거움이 좋다. 무거움은 인생의 깊이에서 오는 품위를 더 할 때 빛이 난다. 책이나 음악 좀 더 고전 쪽으로 다가가고 싶다.
2) 친구 - 샤샤(드미트리 나자로브) 이 친구 왠지 정이 가는 친숙한 얼굴이다. 마치 예전 배우 피터유스티노프를 연상시킨다. 안드레이의 아픔을 넉넉한 덩치로 받아주고 그와 함께 꿈을 이루는 모습을 통해 좋은 친구의 모습을 발견한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점점 소중해지는 것이 친구다.
3) 꿈 - 내 인생을 살아가는 동기가 되는 것. 비록 남들이 보았을 때는 아무것도 내세울 것이 없지만 인생의 소중한 가치를 마음속에 심겨 좋고 물을 주는 것이 꿈이다.
친구, 음악, 꿈 이 세 가지를 마음에 담아 놓는다. 다시 물을 주고 예쁘게 키워야 한다.
배경음악은
'더 콘서트' 중에서
차이코프스키 영화 바이올린 협주곡 하이라이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