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당신이 그립습니다
영화 '러브레터' 리뷰
잊혀진 낭만 중 하나가 편지다.
꼭 연인에게 보낸 것은 아니라 할지라도 누군가에게 마음을 표현하기위해 밤새워 편지를 써 본 추억이 있는 사람들은 술 한 잔 하거나 한밤중에 깨어 잠이 오지 않을 때 젊음을 회상한다. 요행으로 책갈피 속에 깊숙이 숨겨뒀기에 아직 아내에게 들키지 않은 편지라도 한통 가지고 있다면 자연스럽게 편지를 꺼내들고 그녀를 가장 이상적인 존재로 여기며 행복한 시간에 젖을 수도 있다. 이때 과거에 읽었던 영화나 책은 그 상상에 큰 도움이 된다. (첫사랑에 대한 추억은 시간이 갈수록 아름답게 각색되기에 실재의 그녀와는 많은 차이가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전화가 귀했던 그 시절. 가장 중요한 소통 수단은 집배원 아저씨를 통해 배달된 편지였다. 지금처럼 카톡이나 문자를 통해 가벼운 대화를 주고받는 젊음은 그 느려터짐에 견딜 수 없는 짜증이겠지만 그때는 밤새워 편지를 쓰고 빨간 우체통으로 달려가 우편함에 넣고 기대와 설렘으로 돌아서는 것이 낭만이었다.
첫사랑의 향수를 짙게 뿌린 ‘건축학개론’이 400만을 넘어섰을 때 입소문 때문에 늦게 그 영화를 봤지만 자신이 지나온 젊음이 아니었기에 별 감동이 없었다. 그러나 ‘러브레터’는 일본 영화지만 편지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사연때문에 첫사랑을 떠올리며 여주인공 히로코(나까야마 미호)처럼 하늘과 대지를 온통 흰색으로 물든 설경을 보며 눕고 싶은 충동이 있다. 아직도 가슴에 찡하게 남아있는 대사 몇 마디와 배경음악은 영화 ‘러브레터’의 가치를 빛나게 하는 소도구들이다.
“잘 지내시나요.? 오늘도 당신이 그립습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듣고 싶은 말, 아니 아직도 누군가 자신을 그리워 할 것이라는 심한 착각 속에서 반드시 그런 사람이 있을 것이란 기대감은 가끔 지루한 인생을 살아가며 얻을 수 있는 마음의 행복이다.
"가슴속에 묻어둔 내 사랑을 찾아 그가 있는 하늘로 편지를 씁니다."
애달프고 시린 히로코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편지의 내용들이 소개되며 하얀 눈으로 덮인 배경 속으로 그녀가 페이드아웃 되며 영화는 시작된다. 멜로영화의 공식 중에 하나는
“주인공이 가지고 있는 상처가 무엇일까?”
라는 궁금증을 자아내는 것이다. 무슨 사연인지 모르지만 그녀가 사랑했던 연인은 이 땅에 없고 남겨진 그녀는 아직도 그 사람에 대한 깊은 사랑을 가지고 있다는 설정은
“이 사랑이 얼마나 깊었나?”를 짐작케 한다.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 비극으로 끝난 사랑은 대부분의 멜로영화가 가지고 있는 장치이고 관객들도 이 아픈 사랑에 공감하며 영화는 진행된다.
그녀가 사랑했던 연인 이츠키(카시와바라 타카시)는 등산 갔다가 조난을 당해 목숨을 잃은지 2년이 되었다. 아직도 이츠키를 가슴에 묻어둔 그녀는 2주년 추모식을 마치고 그의 집에 들렀다가 중학교 졸업 앨범을 발견한다. 그에 대한 그리움 때문에 옛 주소로 안부편지를 보낸다. 답장이 올 것이라고 예상치 못했는데 편지봉투에는 죽은 후지이 이츠키가 발신인으로 적혀있다.
“감기에 좀 걸려서 그렇지 잘 지내고 있고 괜찮아요.”
그러나 이 편지는 그녀의 연인이 보낸 것이 아니라 동명이인인 그의 중학교 동창생 여자 친구인 후지이 이츠키(1인2역 나까야마 미호)가 보낸 것이다. 이때부터 히로코와 이츠키는 편지를 주고받으며 후지이 이츠키에 대한 추억에 젖는다. 히로코는 자신의 연인이었던 이츠키의 학창시절을 알고 싶었고, 한편으로는 이제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기에 그를 잊어야 한다는 아픔을 가지고 있다. 반대로 학창시절의 친구였던 이츠키는 자신의 첫사랑이 동명이인의 이츠키라는 사실을 알고 잔잔한 기쁨을 누린다.
이때 누구나 좋아했던 여자 앞에서 서툴렀던 첫사랑의 모습이 화면 가득이 전개된다. 자전거를 타고 앞에 가는 이츠키(나까야마 미호)를 따라가 봉투를 씌우며 짓궂은 짓을 하는 것은 좋아한다는 표현이고, 새침한 모습으로
“좋아하는 애가 있니?”
라며 묻는 이츠키(나까아먀 미호)의 표정 등은 누구나 첫사랑의 경험으로 가지고 있는 익숙한 모습들이다.
이츠키(카시와바라 타카시)가 조난당한 산을 향해 양손을 모으고
“전 잘 지내고 있어요.”
라며 절규와 오열하는 장면의 찡함은 이제 그를 잊어야 한다는 것이 얼마나 큰 아픔인가를 알게 한다. 히로코는 이츠키를 잊는다. (물론 이것이 마음먹은 대로 되지는 않겠지만) 그녀는 이츠키에게 그동안 주고받았던 편지를 모두 돌려주며
"이 편지에 담긴 추억은 당신거예요 그러니 당신이 가져야 합니다“
라며 마지막 편지를 보낸다. 반대로 이츠키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이츠키(나까아먀 미호)는 이츠키(카시와바라 타카시)가 대출카드 뒤에 그린 자신의 얼굴을 보며 감격해 눈물을 글썽인다. 첫사랑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영화의 감동과 찡함은 여기에 있다.
사랑했던 사람과의 추억을 잊고 새로운 만남을 갖는 히로코의 아픈 절규와 오열, 반대로 학창시절 때 짧게 스치고 간 첫사랑을 이제야 발견하고 감격하는 이츠키. 사랑은 누구에게나 찾아오지만 그 아름다움의 공통점은 순수함에 있다. 젊음이 소중한 것은 누구보다 깨끗하고 맑은 정신이 있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어 회상하는 첫사랑의 모습을 보며 아픈 것은 이제 그 맑음이 많이 사라졌다는 안타까움이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이런 순수를 배반하는 기사로 넘쳐난다
‘돌아온 싱글’에 관한 기사를 읽으며 씁쓸함이 회오리바람처럼 마음을 휩쓸고 지나간 까닭은 사랑보다 현실의 조건이 충족된 만남이 핵심이기 때문이다.
‘능력 안 되면 이혼 재고를, 경제력 있고 출산 경험이 없으면 인기 ’
등 자극적인 단어들이 눈을 어지럽힌다. 사랑은 조건보다 저 러브레터의 배경처럼 순백의 마음을 갖는 것. 어떤 경우라 할지라도 순수함을 잃지 않는 것. 이때 지나간 사랑은 아름답게 가슴에 남는다. 누구나 가슴을 열면 숨겨놓은 사랑 하나쯤 가져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특히 첫사랑을 ...
배경음악은
러브레터 OST 중 'A Winter Story'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