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극지에 가기 전에 준비해야할 것
“다음 달 초에 뭐 해?”
“나, 북극 가.”
북극. 평소에는 쉽사리 듣기 힘든 단어다. 어느 다큐멘터리에서만 보았고, 가끔 뉴스에서 듣는 단어. 그래서인지 ‘북극에 간다’고 말하면 다들 하나같이 놀란다. 북극곰이 사는 북극에 가는 게 맞냐고. 맞다. 그 북극이다. 처음에 취재 제의를 받았을 때 나도 그랬다. 북극의 땅을 밟는다고? 생소해서인지 겁부터 났다.
하지만 몇 년 전, 북위 62도, 북극의 문턱이라 불리는 캐나다 옐로나이프에 다녀온 뒤로 도전은 무조건 해보는 게 득이란 생각에 그 자리에서 승낙했다. 12월 겨울 한가운데에서 영하 40도를 맛보고, 해가 6시간 밖에 떠 있지 않는 어두침침한 하늘에, 끝없이 내리다 못해 허리까지 쌓인 눈이 걷는 것을 방해했지만, 별이 쏟아져 내리는 밤하늘과, 시내에서 스키를 타고 룰루랄라 퇴근하는 직장인들의 모습과, 눈 위에 몸을 던져 천사 날개를 만들던 우리의 행복한 표정과, 초록빛 옷에 분홍빛 신발을 신고 하늘에서 춤을 추던 오로라를 여전히 잊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일반적으로 북위 66도 33분선 지역부터 북극점까지를 북극지방으로 보는데, 이번 북극 취재의 최종 목적지는 북위 79도다. 북극 중에서도 사람이 상주하며 연구할 수 있는 가장 북쪽 마을, ‘니알슨(Ny-Ålesund)’으로 향한다.
스발바르 제도에 위치한 니알슨은 ‘니올레순’, ‘뉘올레순’이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노르웨이의 관리 하에 있지만 ‘노르웨이령’으로 본토와는 다른 국제조약으로 규정된다. 북극곰을 보호하기 위한 별도의 환경 규제가 있기도 하고, 노르웨이 조약 서명국이라면 노르웨이 국민과 동등하게 경제활동이나 연구활동을 할 권리를 가질 수 있다. 우리나라도 서명국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니알슨에 기지를 설립하고 자유롭게 북극 연구를 진행할 수 있다.
2002년에 개소한 북극다산과학기지에서는 4월에서 9월 사이 하계기간에 연구활동이 진행된다. 이곳에서 어떤 연구가 이루어지는지 취재하고 오는 것이 우리의 임무였다. 연구원이 아니면 아무나 갈 수 없는 곳이지만, 북극을 취재하는 미디어팀으로서 특별히 허가를 받아 귀한 경험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중에서도 나의 임무는 서브 카메라와 데이터 정리였다. 종종 취재팀을 따라다닌 것이 제대로 도움 되기를 바라며 북극에 갈 준비를 시작했다.
한국의 무더위를 피할 수 있는 8월의 약 2주 간의 여정. 어떤 것을 촬영할지 고민하고 일정을 정하면 된다고 생각했지만, 실질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날씨에 따라 비행기가 들어가지 못할 수도 있고, 배도 뜨지 않을 수 있었다. 개울의 흐름이 바뀌어 목표지점에 가지 못할 수도 있고, 채취하고 싶은 시료가 그곳에 없을 수도 있었다. 모든 것이 변동될 수 있는 상황에서 단 하나 준비할 수 있는 건 사전 교육과 훈련뿐이었다.
1차 온라인 극지일반교육, 2차 육상안전훈련, 3차 해상안전훈련, 4차 기초안전훈련까지. 온라인 교육과 오프라인 교육이 혼재되어 있고, 인천에서 부산까지 오가야 하는 일정이라 처음엔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었다. 하지만 훈련을 받고 직접 기지에 다녀오고 나서 알게 되었다. 아주 기본적이고도 필수적인 훈련이었다는 것을.
1차 온라인 교육은 북극다산과학기지에서 현장활동을 할 때 필요한 안전 매뉴얼을 익히는 것이었다. 일반적으로 ‘안전 매뉴얼’이라고 하면 소방이나 구급과 관련된 단어들을 떠올리기 마련일 것이다. 물론 중요한 내용이고 4차 교육의 핵심이기도 했지만, 여기서는 극지에서만 있을 수 있는 여러 가지 위험과 대처법을 더 중점적으로 다루었다. 어쩌다 한 번 있는 일이겠지만, 북극은 너무도 무서운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곳이었다.
가장 강조되는 위험요소는 북극곰이었다. 그림으로 보면 귀엽고, 영상으로 보면 더 귀엽지만 실제로 눈앞에 나타난다면 그보다 소름이 돋는 일은 없을 것이다. 출발 한 달 전, 니알슨 기지촌 인근에도 심심찮게 나타나는지 엄마 북극곰과 아기 북극곰들이 포착되었다는 메일이 날아왔다. 만일 북극곰을 기지촌에서 마주쳤다면 상점을 제외한 건물로 대피하면 된다. 기지촌 내 모든 건물이 잠금장치가 되어 있지 않고 당기는 문이라서 쉽게 위험을 벗어날 수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제일 못 읽는 단어가 ‘당기시오’라고 하니 주의해서 기억해야겠지만.
빨간 세모 안에 북극곰이 그려진 표지판까지는 안전구역이다. 안전구역이라고 해도 범위 내에서는 두 명이상 다니는 것을 권장한다. 안전구역을 벗어날 때 한 사람은 무조건 위협사격용 총기를 휴대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항상 기지대장님과 함께 동행하기 때문에 별도로 총기를 대여하지는 않았다.
야생동물 외에도 자연환경에서 오는 수많은 위험요소들이 존재했다. 가장 먼저 떠올릴 수 있는 눈과 추위로 인한 동상과 낙상뿐만 아니라 자외선으로 인한 일광화상이나 설맹, 비바람으로 인한 저체온증도 조심해야 한다. 부르면 3분 안에 도착하는 119세권에 살다가, 위험이 닥치면 언제 구조될지 모르는 미지의 땅으로 가려니 여간 불안한 것이 아니었다. 실질적으로 북극에 있는 시간을 열흘 정도였지만, 걱정인형에게 열흘의 불안은 10년치쯤 되는 것 같았다.
‘가도 되는 게 맞나…?’
이미 가기로 되어 있어 의미 없는 걱정이었지만 홀로 시달리며 두 번째 훈련을 맞이했다.
2차 육상안전훈련은 인천에 위치한 극지연구소에서 진행됐다. 입구에서 신분증을 맡기고 출입증을 받은 후, 스마트폰 카메라에 촬영금지 스티커를 붙이고 나면 비로소 연구소 안으로 진입할 수 있다.
강의실에 들어가자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교육을 받으러 와 있었다. 이번 교육에는 남극에 있는 세종과학기지나 장보고과학기지에 가는 연구원 분들이 많았다. 북극에 가기 전 함께 생활할 분들을 만나길 바라 조금 아쉬워하던 찰나 안전교육 담당 연구원님이 우리의 기지대장님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온화한 미소 뒤에 힘을 숨긴 것만 같은 듬직함이 느껴지는 분이었다. 대장님이라 그런가?
극지 비상상황에 실질적으로 대처하기 위한 몇 가지를 실습했다. 원활한 통신을 위한 무전기 사용법, 시야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자신의 위치를 파악하고 기지로 무사귀환할 수 있는 GPS 사용법, 도저히 움직일 수 없어 잠시 머물러야 할 때 사용하는 비상쉘터 설치법. 설명을 듣는 것보다 예시를 보는 게 낫고, 그보다 직접 해보는 것이 백 번 낫다.
“현장 가면 시도 때도 없이 하니까 익숙해질 거예요.”
극지 취재를 여러 번 다닌 한 감독님께서 말씀하셨다. 활동을 나갈 때, 활동지역에 도착했을 때, 활동을 하면서 1시간마다, 활동지역에서 복귀할 때, 기지에 도착했을 때 매번 보고해야 하기 때문에 익숙해지지 않을 수가 없다고 격려해 주셨다.
익숙해졌다는 건 여러 번 경험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처음엔 아주 간단한 것도 두렵지만 하다 보면 별 게 아닌 경우가 더러 있다. 짜장면 주문도 떨려서 버벅거리던 내가 이제는 아무 생각 없이 주문을 하는 것처럼 아마 지금 걱정하는 모든 것들은 여정을 마치고 나면 무엇이었는 지조차 잊어버릴지도 모른다. 이렇게 생각하고 나니 왠지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3차와 4차 훈련은 부산에서 1박 2일로 진행됐다. 인근에 숙소를 잡고 북극으로 가는 마지막 관문을 준비했다. 해상안전훈련은 배에 승선하는 경우에만 받는 교육이다. 대부분 쇄빙연구선 아라온호에 탑승하는 경우였지만, 우리는 육상빙하에 가까이 가는 보트를 탑승하기 위해 이 훈련을 신청했다. 아침 9시에 이론수업이 시작됐다. 대학 때도 1, 2교시 수업은 피했었는데… 오전 내내 졸지 않으면 다행이었다. 막상 수업에 들어가서는 미간에 잔뜩 힘을 주고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졸음을 오기도 전에 쫓아버리는 수많은 해상사고 장면을 직접 눈으로 보면서 오후 실습을 끊임없이 시뮬레이션했다.
1분 안에 목에 걸어 입는 구명조끼를 착용하고, 물에 뛰어들고, 사람들과 함께 모여 체온을 유지하고, 구명보트를 탑승하며, 헬기로 구조되기까지 행동요령과 주의사항을 몸으로 익혔다. 몸은 고되었지만, 언제 이런 훈련을 해볼 수 있을까 싶었다. 어릴 때 직업체험 같은 것을 해보지 않았다면 사실상 성인이 되어서는 배울 일이 없는 내용이었다. 어쩌면 수많은 불의의 사고에서 스스로를 구할 수 있는 꼭 필요한 교육이었다고 생각한다.
다음 날 진행되었던 기초안전훈련도 마찬가지였다. 소화기의 종류와 사용하는 방법, CPR 하는 방법, 정전이 된 상황에서 무사히 건물을 빠져나오는 방법을 주로 훈련했다. 소화기 사용이나 CPR 방법은 무수히 많이 듣고, 시각자료도 본 적이 많지만 실제로 해본 것은 전무했다. 직접 해보지 않으면 화재상황에서 소화기를 드는 것조차 무섭다. 다른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주저할 수 있다.
깜깜하고 연기로 뒤덮여서 앞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 건물을 빠져나오는 훈련도 솔직히 너무 무서웠다. 만일 아무런 방식도 모른 채로 이런 곳에 남겨졌다면 어떻게 했을지 감도 오지 않았다. 안타까운 일이었던 2003년 대구 지하철 참사 때 혼자서 탈출한 한 아이가 있었다고 한다. 벽에 한 손을 대고 다른 손은 앞을 훑어가면서 건물을 빠져나오는 훈련을 한 적이 있어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고 했다. 한 번 해보는 것만으로도 언젠가 있으면 안 될 재앙에서 나를 구해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집중해서 훈련을 마쳤다.
예측할 수 없는 현장이 기다리고 있다.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한 훈련도 마쳤고. 매년 연구원 님들이 가는 곳이니 가이드라인만 잘 지켜도 무사히 다녀올 수 있을 것이다. 할 수 있는 걱정은 준비하는 과정에서 다 했다. 이제 마주하는 새로운 모든 것들을 받아들이기만 하면 된다. 내 생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귀한 여정을 하나하나 기록해 가면서 말이다.
“다녀오겠습니다, 북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