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에 손잡고

10. 지구를 지키는 니알슨 과학기지촌

by 윤진

오전 7시 어두운 방 안에 알람이 울린다. 커튼을 걷었을 땐 금방이라도 비가 올 것만 같은 먹구름이 잔뜩 낀 하늘이었다. 어쩐지 새벽 같은 느낌이 들었는데, 구름이 해님을 가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오늘은 외부 활동이 어려운 날이라 기지 내를 돌아다니면서 인터뷰를 하는 것으로 일정이 채워졌다. 덕분에 간밤에 컴퓨터가 끝내지 못한 데이터 정리를 할 시간도 있고 글을 정리할 시간도 조금 생겼다. 강행군이었던 첫날의 체력을 조금 보충할 수 있는 날이라는 것에 조금은 안심이 되었다. 하지만 멀리 나가지 않고, 자연과 맞서지 않는다 뿐이지 부지런히 움직여야 했다. 오전 7시 40분에 아침식사를 하러 가서 오늘 만날 박사님들과 미팅 일정을 잡는 것으로 하루가 시작될 것이다. 아직 잠에서 덜 깬 몸을 휘적휘적 움직이며 준비를 마치고 다산기지를 나섰다.


촉촉한 스크램블과 새끼손가락만 한 소시지 두 개, 싱그러운 토마토와 짜지 않은 햄과 치즈. 새콤하기보다는 달콤에 가까운 자두와 온몸을 깨우는 멜론과 참외의 단맛. 그래놀라와 씨리얼링을 섞은 콘푸로스트를 우유에 흠뻑 적시면 호텔 조식이 부럽지 않은 니알슨표 조식이 완성된다. 니알슨에 식자재를 보급하는 배가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아 풍족하고 신선한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것이라고 했다. 다른 것보다도 과일이 너무 맛있어서 대체 어디서 보급하는 것인지 알고 싶을 정도였다. 지금 생각해도 참외가 유난히 달았다.


오전에는 새를 연구하는 북극 생태학 박사님을 만나 인터뷰를 했다. 25년 간 매년 이곳에 와서 3~4개월을 보내며 북극의 새들을 연구하고 계셨다. 노란색 네덜란드 나막신 클롬펀을 신은 박사님은 깃대에 붉은색 튤립이 꽂힌 개인 연구실로 우리를 안내했다. 그곳에서 바나클 거위와 북극제비갈매기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온전히 다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띄엄띄엄 알아듣는 정보를 기억해 두고 글로 옮겼다.


니알슨 일정을 하며 기지를 돌아다닐 때 간간히 박사님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시그니처 같은 붉은색 후드티를 입고 노란색 나막신을 신고 유유히 기지를 다니시거나, 가끔은 무언가를 관찰하느라 돌바닥에 엎드려 계시기도 했다. 눈이 마주치면 아주 반갑게 인사를 나눴고, 점심식사였는지 저녁식사였는지 헷갈려서 말을 더듬은 내게 안부를 물어주어 고맙다며 활짝 웃어주시기도 했다. 이곳에서의 마지막 날, 니알슨에 있는 박물관을 둘러보러 갔다가 현장에서 새들을 보는 박사님의 사진을 마주했다. 우리가 인터뷰한 박사님이 살아있는 전설이었던 것이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북극을 떠올리면 가장 오래 기억에 남는 분이다.


오후에는 카트벨켓 측지 지구 관측소로 향했다. 니알슨에서 와이파이와 블루투스를 사용하지 못하는 이유가 이곳 때문이었는데, 외부인은 쉽사리 출입할 수 없는 곳이어서 전날에도 취재에 대한 확답을 받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허가가 떨어졌고, 우리는 멀리서도 커다란 존재감을 나타내고 있는 전파 망원경이 위치한 지구 관측소로 향했다. 십자 모양 건물에 남북으로는 양손에 접시를 들고 있는 형태였는데, 2018년에 공식적으로 개소했다고 한다. 과거 ‘라벤’이라는 지역에서 현재의 ‘브란달’로 이동을 한 것인데, 시설이 노후되었기 때문인 것도 있지만 전 세계 측지 시스템의 정밀도를 끌어올리기 위한 결정이기도 했다.


지구는 끊임없이 돌고 있다. 그것도 약간 비스듬히. 지구 관측소에서는 지구가 얼마나 빨리 도는지, 축이 어느 방향으로 기울어져 있는지 측정한다. 수십억 광년 떨어진 퀘이사에서 오는 신호를 받아서 지구의 변화를 기록하는 것이다. 이렇게만 들으면 그걸 알아 무엇하나 싶은데,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GPS가 정확할 수 있도록 기준점을 잡아주는 역할을 한다. 뿐만 아니라 인공위성에 레이저를 쏴서 돌아오는 시간을 계산해, 우리가 느끼지는 못하지만 아주 미세하게 팽창하기도 하고 찌그러지기도 하는 지구의 변화를 감지해서 인공위성의 궤도를 잡아준다. 마지막으로 기후변화까지도 감지한다. 해수면이 상승하는 것은 조위계로, 빙하는 위성레이저를 통해 측정한 후 전파망원경으로 땅의 수직 움직임까지 분석해 주면 지구 온난화가 얼마나 심각해지고 있는지 수치로 알 수 있게 된다. 지구 관측소의 양손 접시는 지구의 표준을 끊임없이 확인하고 기준을 만드는 곳이었던 것이다.


카트벨켓 측지 지구 관측소의 왼팔


카트벨켓 측지 지구 관측소에서 기후변화의 물리적인 결과를 측정해서 현재 상황을 파악한다면, 기후변화의 원인을 감시하는 곳이 있다. 바로 니알슨의 셋째 날 방문한 제펠린 대기 관측소인데, 온실가스 농도 데이터를 산출하여 인류에게 기후위기가 직면했음을 알려준다. 제펠린 대기 관측소는 니알슨 과학기지촌 인근 제펠린 산 정상에 위치해 있다. 해발 474미터 하층 대기 역전층 위에 놓인 덕분에 니알슨의 연구 단지나 과학자들의 주거지에서 발생하는 오염으로부터 해방되어 있어 온전히 순수한 북극 공기를 정밀히 측정할 수 있다.


고도가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기온이 낮아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역전층이라는 것은 지표면의 복사 냉각이 강하게 일어나면서 차가운 공기가 아래에 깔리고 따뜻한 공기가 그 위를 덮게 된다. 얼음을 넣은 뚝배기에 뚜껑을 덮은 것처럼 공기가 서로 섞이지 않아 지표면에서 발생하는 선박 연기, 거주지역의 난방, 먼지 같은 오염 물질이 관측소까지 올라오지 못하는 것이다. 게다가 산꼭대기에서 생기는 오염은 산 밑으로 방출해서 맑은 공기를 유지한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인류가 배출하는 오염 물질이 북극으로 오면 그 경로를 추적하고, 어떠한 온실가스가 얼마나 지구에 영향을 주고 있는지 측정하고 감시할 수 있다.


그동안 꾸준히 측정해 온 대기 중의 온실가스는 상승곡선이었다. 계절에 따라 방출량이 달라 그래프가 수직으로도 움직였다. 2023년에서 2024년에 이산화탄소가 가파르게 상승했고, 그 해에 엘리뇨 현상으로 인해 해수면의 온도가 상승하면서 아마존, 동남아시아 등 열대 지역에 극심한 고온현상이 일어났다. 극심한 가뭄으로 산불도 많이 나고, 식물들은 기공을 닫고 광합성 활동을 줄이는 바람에 탄소 흡수량도 현저히 줄었다. 제펠린 대기 관측소에서 측정한 온실가스 농도 데이터가 그 기원을 추적해 탄소 급증의 원인이 무엇인지 알아낼 수 있는 것이다. 이 데이터는 전 세계적인 기상 관측망을 통해서 기후 모델의 정확도를 높이는 데 사용된다고 한다.


또한 대기 중에 떠다니는 아주 미세한 고체 입자, 에어로졸의 물리적이고 화학적인 성질을 연구하고 있다. 에어로졸은 태양의 빛과 상호작용하면서 지구의 온도를 조절하는 아주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제펠린 대기 관측소는 구름 속에 자주 들어가 지상에서도 구름의 물리적인 특성을 관측할 수 있어 에어로졸 연구를 가능하게 한다. 대한민국 극지연구소에서도 제펠린 관측소에서 에어로졸을 집중 관측하는데, 이는 우리나라에 오는 한파나 폭염과 같은 이상기후를 예측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아무래도 인간이 가장 무서워하는 것은 예측할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끊임없이 예측하고 예상하고 계획을 늘어놓는 것이 아닐까 싶다. 특히 자연은 아무리 예측해도 갑자기 다른 양상을 보이는 것이 비일비재하다. 가을에 태풍이 오다가도 경로를 틀기도 하고 사라지는 것처럼 말이다. 예상을 빗나가는 것이 가벼운 일이라면 모르겠지만, 기후는 인류의 생존이 달린 문제이기 때문에 예측의 불확실성을 최대한 줄여야만 한다. 처음엔 눈에 보이지 않는 입자를 측정하는 것이 훗날 재해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대응 시스템이 된다는 것을 믿기 어려웠다. 하지만 무엇에서 시작해서 무엇으로 끝나는지 차근차근 들여다보니 메커니즘이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대기 관측을 통해 연구를 하는 연구자들은 이곳을 거칠 수밖에 없다고 한다. 허가를 받아 직접 관측하거나 데이터를 요청해 그것을 바탕으로 연구를 진행한다. 인류에게 이토록 중요한 공간에서 놀랍게도 한글을 발견했다. 포항공대와 극지연구소가 공동연구를 통해 개발한 실시간 대기 DMS 연속 분석 시스템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것으로 측정하는 DMS 가스는 바다의 식물성 플랑크톤이 배출하는 기체인데, 이것이 대기 중에 산화되면 에어로졸이 된다고 한다. 지구에 에어로졸이 없다면 지구의 온도는 지금보다 높았을 것으로 예상한다. DMS 가스가 높아지는 지구의 온도에 브레이크를 걸어주는 셈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일정 온도 이상이 되면 이 조절기능마저도 망가질 수 있다 우려도 함께 나온다. 그러니 우리는 대기 연구를 통해 지구의 마지막 방어선을 찾고 있는 것이다.


태양을 트래킹 하는 장비, 입자를 분석하는 장비, 비를 받아 미세 플라스틱을 분석하는 장비. 이곳에 온 수많은 장비들은 너무나도 섬세해서 밖으로 나갈 수 없다고 한다. 담당 엔지니어들은 땅에서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 이 많은 장비들을 관리한다. 연구소 취재에 갈 때마다 느낀 것이지만, 언어불문 다 알아듣지 못한다는 것이 참 아쉬웠다. 현장에서 바로 알아듣고 궁금한 것들을 물을 수 있었다면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공부에 대한 욕구가 단전 밑에서 올라왔다. 잘 모르지만 검색이라도 해보겠다는 일념으로 몇 개의 단어를 메모하면서 그들의 작업 루틴을 카메라에 담고 산을 내려왔다.


제펠린 관측소가 특정 고도에서 대기를 측정하는 것이라면, 제펠린에서 측정된 공기가 지상의 오염과 어느 정도 차이가 나는 지를 판단하는 방법도 있었다.


라디오 존데를 매단 헬륨풍선


매일 오후 12시 무렵, 독일 기지에서 하얀색 커다란 헬륨 풍선이 날아오른다. 기상관측 장비인 라디오 존데가 풍선에 대롱대롱 매달려 약 30km 성층권까지 올라가 온도, 기압, 습도, 풍향 등을 측정해 실시간으로 데이터를 전송한다. 땅에서부터 수직으로 올라가는 라디오 존데는 고도에 따른 변화를 측정하고, 역전층이 어디에 형성되었는지 확인할 수 있어 제펠린 관측소의 대기 측정 결과를 더욱 신빙성 있게 만든다.


날씨로 인해 니알슨 과학기지촌을 돌아다니며 취재를 한 이틀간 여러 기관을 방문했고, 많은 연구진들과 엔지니어들을 만났다. 각각의 기관은 목표에 맞춰 연구를 하고 있었지만, 서로의 데이터가 결합해야만 신뢰할 수 있는 데이터가 되기도 했다. 처음엔 자신의 연구만 몰두하는 사람들을 위해 니알슨의 식당 문화가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하지만 연구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타인의 연구를 들여다보아야 하고, 서로 손을 잡지 않고서는 우리의 지구를 지킬 수 없다는 것을 그들은 이미 알고 소통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역시 커다란 문제는 함께 풀어가야 한다. 힘을 합치면 못 할 것도 없고, 안 되는 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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