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북극에 사는 동물 친구들
베스트레 브뢰거브렌 빙하를 다녀오면서 순록의 사체를 발견했다. 기지대장님은 주변을 더욱 경계했다. 북극곰이 근처에 있을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북극곰이 해빙 위에서 주로 시간을 보냈던 과거에는 물범을 사냥했다고 한다. 하지만 여름철에 해빙이 사라지고, 육지에 머무는 기간이 길어지면서 순록을 사냥하게 되었다. 처음엔 배고픈 북극곰의 우연한 먹잇감이었겠지만, 이제는 북극곰의 식단 중 하나가 되었다.
노르웨이 극지연구소에서는 이러한 북극곰과 순록 사이의 상관관계를 연구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현재 육지에서의 사냥 범위와 순록 개체수에 주는 영향을 조사하며 북극곰의 순록 사냥 장면과 순록 사체의 사진을 제보받고 있었다. 이곳에 며칠 묵지 않는 관광객의 입장에서는 북극곰을 보는 것도 하늘의 별따기인데, 곰이 순록을 사냥하는 타이밍을 잡는다니 우주에 가서 블랙홀로 키링 하나 만드는 정도 될 것 같다. 그럼에도 언젠가 너무도 운이 좋아 북극에 갔다가 이러한 상황을 발견한다면 연구자료로 제공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 싶다. 내게 그 정도의 운이 주어질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물범이 주식이었던 북극곰은 육지에서 새알, 동물의 사체, 해조류까지 먹어보지만 물범이 가지고 있던 지방 함량을 충족하지 못해 에너지 소모가 크다고 한다. 순록은 빠르고 민첩한 데다가 지방도 물범에 비해 적은 편이라 북극곰에겐 여러모로 손해지만 그럼에도 북극곰의 생존에 도움이 되고 있는 모양이다. 북극곰의 배설물을 분석한 결과 순록이 최대 27.3% 였다니 말이다. 연구진들이 촬영한 영상을 보니 바다로 순록을 몰아넣고, 물속에서 순록을 따라잡아 목덜미를 물어 익사시킨 다음에 육지로 끌어올린다. 북극곰은 달릴 때 체온이 급격하게 상승하는 것을 식히기 위해서 물속으로 들어가 체온 조절을 하며 추격을 한다.
순록 입장에서는 청천벽력 같은 이야기일 것이다. 스발바르에 사는 순록은 오랫동안 이곳에 고립되어서 진화해왔다고 한다. 대형 육상 포식자가 없는 환경에서 자라왔는데 북극곰이라니. 실제로 순록에게 포식자 인식 실험을 한 결과, 사람의 모습보다는 북극곰의 형상을 하고 네 발로 다가갔을 때 경계 거리와 도주 시작 거리가 길어졌다고 한다. 일단 하얗고 네 발로 걷는 것이 먼발치에 보이면 도망부터 간다는 것이다. 북극곰이 순록을 먹이로 인식한 것처럼, 순록도 북극곰을 포식자로 인식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 그저 듣기만 해도 순록이 영 불리해 보인다. 포식자가 없었다는 것은 그에 대비하는 것에 취약하다는 이야기일터. 실제로도 추운 기후에 적응하기 위해 지방을 축적하는데, 키가 작고 몸집이 땅딸만 해 민첩성이 떨어진다고 한다. 게다가 앞서 말했던 것처럼 겨울철에 내리는 비 때문에 순록이 아사하는 경우도 생겨 순록에게는 비상이다. 롱이어비엔에서도 순록이 마을에 돌아다니는 것을 심심치 않게 보았고, 롱이어비엔보다도 더 적은 규모의 니알슨 과학기지촌의 중심에도 나타나 풀을 뜯어먹고 있었다. 초식동물이 주변에 사람들도 많이 다니는데 경계를 하지 않고 조용히 식사를 하는 것이 신기하다고 생각하던 참이었는데, 순록에게 이런 이야기가 있었다니 괜히 마음이 짠해졌다.
북극곰의 순록사냥과 앞서 말했던 순록 아사사건의 또 다른 수혜자가 있다. 바로 북극여우이다. 눈처럼 하얗고 복슬복슬한 귀여운 모습일 것 같은 북극여우는 여름철에 갈색빛 털을 가지고 있다. 땅과 색을 거의 구분할 수 없어 자세히 보지 않으면 잘 보이지 않는 데다 재빠르기까지 하다. 하지만 스발바르에 머무는 동안 심심찮게 북극여우를 볼 수 있었다. 나도 세 번쯤 본 것 같다. 북극여우를 수혜자라고 지칭한 이유는 북극곰을 쫓아다니다가 곰이 먹다가 남긴 물범이나 순록의 잔해를 먹기 때문이다.
해빙이 풍부했을 때까지만 해도 북극여우는 육지 절벽에 둥지를 틀고 알을 낳는 바다새를 먹거나 바다새가 떨어뜨린 물고기 잔해를 먹곤 했는데, 해빙이 녹으면서 내륙으로 온 여우들은 내륙의 주식이었던 레밍의 개체 수의 변화로 굶거나 번식에 실패했다고 한다. 갓 태어난 순록 새끼 정도는 직접 사냥을 하기도 했는데, 북극곰이 식사를 하는 동안 떨어진 조각을 주워 주린 배를 채우기도 했던 것이다. 그런데 기상이변이 또 이변을 일으킨다. 순록의 사체가 대량으로 발견되면 여우는 직접 사냥을 하지 않고도 생존하고 번식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순록 이전의 북극곰과 북극여우의 식량이었던 물범에는 세 가지 종류가 있다. 이름만 들어도 ‘아, 어떻게 생겼겠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고리무늬물범은 북극의 상징적인 물범인데, 무늬에 정말 고리가 많다. 빙하 위에 쌓인 눈으로 굴을 만들어서 번식을 하는데 겨울철에는 아주 요새를 만들 수 있는 구조도 가능하다고 한다. 파도나 조수 간만의 차 때문에 빙하의 끝부분이 떨어져 나와 겨울철 피오르드 내부의 바다와 얼어붙으면 마치 평지에 바위가 울퉁불퉁 솟아오른 것처럼 지형이 형성된다. 지형에 따라 눈이 다르게 쌓이면서 얼음굴을 만들 수 있는 여건이 완성되는 것이다. 이 굴은 포식자와 추위로부터 그들을 지키는 역할을 한다.
턱수염물범은 동그랗고 귀여운 얼굴에 수염이 풍성히 나 있다. 니알슨 3일 차에 타이스텐이라 불리는 보트를 타고 육상빙하를 보러 갔는데, 그곳에서 턱수염물범을 만났다. 사람에 대한 경계가 없는지 보트를 멈추고 육상빙하 앞에 선 우리에게 멀리서부터 다가왔다. 꽤나 가까이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눈을 한 명씩 다 맞춰주더니 일부러 멋진 모습을 보여주려는 지 물 밖으로 도약해 첨벙- 하더니 유유히 사라졌다. 고리무늬물범과는 다르게 개방수역에서 떠다니는 얼음판 위에서 번식하고, 조개나 갑각류를 먹으며 살아간다. 턱수염물범을 담은 영상은 요즘도 종종 들여다본다. 멋짐을 뽐내는 그 모습이 완전히 다 찍히지는 않았지만, 물속에 고개만 내밀고 다가오는 얼굴이 웃음을 자아내기에.
마지막으로는 잔점박이 물범도 있다. 말 그대로 점이 콕콕 박힌 이 물범은 니알슨 2일 차에 해안가에서 만났다. 바위에 4마리 정도 있는 것을 보고 조용히 접근하는데, 해안가에는 그보다 더 많은 무리의 물범이 누워 쉬고 있었다. 족히 열댓 마리는 되어 보였다. 조금 더 다가가니 한 마리가 우리를 확인하고는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그러자 다른 물범들도 물속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직접 인식한 몇 마리를 제외하고는 ‘왜? 왜? 뭔데!?’ 하면서 덩달아 뛰어드는 것처럼 정신이 없어 보였다. 본래 온대지역에서 서식하던 잔점박이 물범은 따뜻해진 니알슨 인근까지 올라오게 됐다고 한다.
문득 궁금해졌다. 세 물범의 서식지가 겹치면서 경쟁이 일어나지는 않았을까? 다행히도 서로의 서식지가 중첩되는 비율이 꽤 높지만, 종에 따라 행동방식이 다르고 먹이를 획득하는 방식도 달라서 직접적인 경쟁 상대는 아니라고 한다. 하지만 향후 서식지가 더 좁아질 경우에는 또 모르는 일인지라 연구진들은 지속적으로 이를 추적하고 있고 한다.
세 시간쯤 울퉁불퉁한 툰드라 땅을 걸으며 수많은 동식물과 환경에 대한 이야기를 카메라에 담았다. 차량이 있는 곳으로 돌아오니 그제야 익숙하지 않은 등산화에 쓸린 발목이 아팠다. 두꺼운 양말을 두 개는 신고 발목을 잘 조여야 아프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나중에는 알게 되었지만, 이때는 정말 다음날 아무 데도 갈 수 없을 것 같았다. 일정 중에 이만큼 걷는 강행군이 또 있을까? 지나고 생각해 보면 모든 일정 중에 이날이 가장 힘들었던 것 같다. 롱이어비엔에서 화석을 보러 가는 일정도 있었지만, 그때는 이미 적응한 뒤여서 그런지 버틸만했다. 강한 바람을 맞았던 첫 강행군은 꽤나 강렬한 기억으로 남았다.
니알슨에서의 첫날이 저문다. 해가 저무는 것을 눈을 보지 못하는 것이 시간을 추측하는데 꽤나 불편하다는 사실을 새삼 느낀다. 데이터 백업을 걸어놓고는 따뜻한 물에 샤워를 하며 툰드라 바람이 남긴 잔여물을 씻어낸다. 꼭 딴짓을 하고 오면 백업은 멈춰있다. 지키고 서 있으면 아무 일도 없으면서 일부러 그러는 것 같다. 다시 남은 데이터를 옮기며 꾸벅꾸벅 졸았다. 옆 자리에서 오늘의 보고서를 작성하시던 박사님이 커튼을 닫고 침대에 누우시는 것을 보고 결심했다. 차라리 내일 예정보다 일찍 일어나자. 거의 기어가다시피 이층침대로 올라갔다. 그런데 이게 무어람…? 이불을 깔아 놓는 것을 까맣게 잊어버렸던 것이다. 어둠 속에서 앉은 채로 사부작사부작 잘 준비를 했다. 매트리스 커버를 깔고, 이불도 하나 깔고, 베개 커버를 끼워 넣고, 덮는 이불까지 펼치고 나니 다소 숨이 찼다. 소리를 안 내려고 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숨을 참았었던 것 같다. 누워서 차분히 숨을 고른다. 눈을 감고 오늘 본 것들을 잠시 떠올린다. 정말 아주 잠시, 찰나.
기후변화는 동물들의 서식지를 바꾸고 식습관을 바꾼다. 바뀐 식습관은 먹이사슬을 달라지게 만들고, 생태계의 균형은 무너지기 시작한다. 오랜 기간 동안 형성되어 왔을 생태계가 매년 빠른 속도로 뜨거워지는 지구로 인해 순식간에 어그러진다. 인간보다 더 예민하게 변화를 인식할 동물들은 어떻게든 살아가기 위해서 대체제를 찾아 적응해 간다. 언젠가 우리도 이들처럼 서식지를 바꿔야 하고 그곳에서 생존할 방법을 찾아야 하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이미 이를 준비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왠지 든든하고도 감사한 일이었다. 그 시간이 조금은 늦게 오기를 바라면서 한국에 돌아가면 환경을 생각하는 행동을 하나라도 실행해 봐야겠다 생각했다. 0.01%도 지구에 도움이 안 될 수 있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