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북극에서 자라나는 식물
선글라스와 넥워머를 챙기고, 옷은 껴입되 짐은 카메라 외에는 아무것도 가져가지 않기로 했다. 몸을 최대한 가볍게 해야 무사히 다녀올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걱정인형은 기지를 나서기 전부터 겁을 잔뜩 먹었다는 이야기다. 기지대장님을 따라 차량에 탑승했다. 5인승에 인원이 다 들어가지 않아 두 번에 걸쳐 이동하기로 했다. 무시무시한 장총과 함께 트렁크에 몇 명이 함께 실려 미디어팀은 차량으로 갈 수 있는 종점에 먼저 도착해 주변을 스케치했다. 피부에 느껴지는 서늘한 바람과 시계가 가리키는 시간에 비해 밖은 너무도 밝았다. 대낮에 촬영을 온 것처럼 피곤함이 잊혔다. 몸이 속고 있는 것 같았다.
오늘의 목적지는 니알슨 과학기지촌에서 3km 정도 떨어진 베스트레 브뢰거브렌(Vestre Broggerbreen) 빙하이다. 단체로 움직이는 일이기도 하고, 언제든 북극곰이 출몰할 수 있는 지역이기 때문에 빙하까지 가는 길에는 활동은 제한하고, 오는 길에 채집과 촬영을 하기로 했다. 오전에 비해서는 아니지만 바람은 여전히 많이 불어서 걷는 동안 바람의 저항까지 받을 생각을 하니 조금은 아찔했다. 허허벌판으로 보이는 이 툰드라 사막에서 무엇을 채집하고 샘플링하는 걸까?
롱이어비엔에 있을 때도 종종 식물을 볼 수 있었다. 이곳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매일 보는 식물일 수도 있고, 잘 눈에 띄지 않아 굳이 이름을 묻지 않는 것도 있을 것이다. 우리 집 앞에 무슨 풀이 나는 지 어디서 온 건지 모르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식물학자들은 이 작은 생명에 집중해 지구의 미래를 준비하고 있다. 극한 환경에서 자라나는 식물을 연구하는 것은 인류의 새로운 먹거리를 알게 하기도 하고, 생존전략을 분석해 기후변화 적응 연구에 활용하기도 한다.
2024년 발행된 한 기사에서 화성에서 생존 가능한 이끼가 발견되었다는 소식을 읽은 적이 있다. 어쩌면 우리가 꿈꾸는 우주의 삶도 가능하게 만들지도 모른다. 척박한 환경에서 살아남은 이끼가 화성에 심겨 우리가 숨을 쉴 수 있는 환경을 만든다면 미래의 인류는 행성이주를 할지도 모르니까. 첫 번째 식물에 대해 이야기를 하기도 전에 화성까지 다녀와버렸지만, 북극의 식물 연구는 그만큼 중요하다. 인류에게 재앙이 닥쳤을 때를 대비해 450만 종의 씨앗을 보관하는 국제종자저장고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말을 다 했지만 말이다.
다시 롱이어비엔으로 돌아와 보면, 북극에 도착하고 유난히 눈에 띄는 식물이 있었다. 바로 ‘북극황새풀’이었다. 목화꽃과 비슷하게 솜털이 얇은 줄기에 달려있다. 하얀 솜사탕을 축소해 놓은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군락을 이루어 사는지 북극황새풀은 항상 모여 피어있었다. 솜털을 뭉치면 따뜻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는데, 이런 류의 솜털풀들은 원주민들에게 생존의 도구로 쓰였다고 한다. 실제 북극황새풀도 그런 역할을 했는지는 모르지만 낮은 온도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도록 이곳에 피어나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끔은 어떤 것이 필요한 자리에 있도록 설계되어 있으니까.
붉은 강의 오른쪽을 따라 빙하로 향하기로 했다. 발목이 휘청거리는 각진 돌바닥을 밟다 보면 질퍽거리는 이끼땅이 나오기도 한다. 물이 흐르는 곳을 뛰어넘기도 하고, 돌이 쌓인 언덕을 네발로 걸어 올라가기를 반복하다 보면 눈앞에 빙하가 점점 가까워진다. 처음으로 가까이서 보는 빙하였다. 기지대장님이 먼저 안전을 확인한 후 빙하에 올라가 보기도 했는데, 천연얼음 위에 올라와 있다는 것이 조금 무섭기도 하면서 신비롭기도 했다. 아주 얇아져 있는 빙하의 끝부분을 만져보고 싶어 힘을 줘봤지만 금방 깨질 것처럼 생긴 빙하가 엄청 단단했다. 이런 빙하를 녹인다니 지구 온난화는 대체 얼마나 심각한 걸까.
혹여나 깨진 빙하가 입으로 들어갈까 한 연구원님이 빙하를 먹지 말라고 단단히 이르셨다. 빙하에 어떤 미생물이 잠재되어 있을지 모르는데 아무런 검증도 하지 않고 먹는 것은 위험하다는 것이었다. 빙하를 갈아 빙수를 만들어 먹거나 하는 콘텐츠를 보았을 때 흥미롭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했었지만, 하고 싶어도 하지 말라는 것엔 이유가 있다. 개인적으로도 위험한 것은 하지 않는 편이고, 하지 말라는 것은 안 하는 편이라 궁금증으로만 남겨두었다. 하지만 돌아오는 길에 먹을 수 있는 것도 있었다. 한 번 들으면 잊어버리기 어려울 것 같은 ‘나도수영’이라는 이름을 가진 식물이었다. 이 식물은 잎을 먹을 수 있었는데, 잎에서 새콤한 맛이 났다. 샐러드로도 해 먹을 수 있는 식물이라는 데 쓴 맛을 내는 이파리보다 훨씬 맛있게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척박한 땅에 인류가 먹을 수 있는 식물이 탄생한다는 것이 다시 생각해도 신비한 일이다. 연구팀에 나도수영처럼 먹을 수 있는 또 다른 식물이 있는지 물어보았다. 그린란드 고추냉이인데, 예로부터 북극에 사는 사람들의 비타민 공급원이었다고 한다. 비타민 C가 많아 괴혈병 예방을 위해 섭취하기도 했다고. 북극 전역에 걸쳐서 광범위하게 분포해 있다고 한다. 땅에서 사방으로 펼쳐지면서 나온 이파리도 아주 작은 흰색 꽃잎과 노란 술도 우리에게 익숙한 냉이와 아주 많이 닮았다. 일정을 마치고 검색해 보니 툰드라 지대에서도 습기가 많은 쪽에 살고 있는 이 식물은 일반적으로는 작고 왜소한 형태로 자라고 있지만, 질소가 풍부한 곳에서는 잎의 크기가 10배는 더 커진다고 한다. 토양이 포함하고 있는 성분에 따라 식물의 성장이 달라지는 것은 당연한 이치지만 그 모든 것을 알아내는 인류의 호기심이 새삼 대단하다고 느낀다.
그렇다면 이러한 척박한 환경에서 가장 먼저 자리를 잡는 식물에는 무엇이 있을까? ‘자주범의귀’가 이곳의 개척자 식물 중 하나인데, 눈이 녹자마자 꽃이 피는 식물이라고 한다. 봄을 좋아하는 것인지 겨울이 지나가 홀가분한 것인지 두 가지 다른 모습으로 이곳의 어떤 식물보다 빨리 고개를 든다. 땅 위를 기는 듯한 형태와 쿠션처럼 생긴 형태가 있는데 모양에 따라 가진 장점도 다르다고 한다. 재작년에 자주범의귀, 나도수영을 포함해서 13종의 유전체 분석을 우리나라에서 성공했다. 언젠가는 이 식물이 왜 땅을 개척할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해서 알게 될 날이 올 것이다. 시간이 지나 그러한 소식이 들려온다면 기쁜 마음으로 오늘의 경험을 떠올릴 수 있을 것 같다.
걷기만 바빴던 길을 천천히 돌아오며 주변을 관찰했다. 넓고 광활한 자연을 세밀하게 관찰하기 시작하자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새끼손톱만 해서 자칫하면 밟을 뻔한 버섯들. 버섯의 이름은 잘 모르지만, 잘 모아서 볶아먹으면 맛있을 것처럼 생겼다. 실제로 먹을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냉큼 집어 먹어도 이상하지 않을 것처럼 익숙한 비주얼이어서 더 그런 상상을 했던 것 같다. 북극의 버섯과 지의류가 순록의 중요한 먹이원이 된다고 한다. 지의류는 이끼와 비슷하게 생겼지만 녹조류와 균류가 공생하는 유기체다. 강인한 생명력을 가진 지의류는 생물이 살 수 없는 환경에서도 선두에 서서 토양의 환경을 형성한다. 그래서 ‘땅의 옷‘이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었나 보다. 건조한 환경에서도 10%의 수분만 있다면 생존할 수 있다고 한다.
자주 눈에 띄는 또 다른 식물은 꽃이 피어있는 이끼, ‘북극이끼장구채’다. 동그란 이끼에 분홍빛의 꽃을 틔우고 간혹 가다 흰꽃을 피운다고 한다. 지나다니는 곳곳에 자주범의귀와 북극이끼장구채가 계속 걸려들었다. 처음에는 색이 크게 다르지 않고 동그랗게 생겨서 잘 구분하지 못했는데, 자주 마주치지 북극이끼장구채가 조금 더 폼실해보였다. 다른 식물과 또 하나의 차이점은 꽃이 동그란 이끼 남쪽에서 시작해 북쪽으로 채워진다는 것이었다. 태양의 고도가 낮아 햇빛이 비스듬하게 쬐니 고루 피지 않는 것이 조금은 이해가 가면서도 다른 식물과 확연히 차이가 있는 것 같아 새로워 보이기도 했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나침반 식물이라는 별칭도 얻었다고 한다. 북극이끼장구채에게 꽤 잘 어울리는 별칭이었다.
연구자들은 새로운 식물을 만나면 이름을 짓는다. 우리 미디어팀과 함께 한 박사님과 연구팀도 꾸준히 식물들의 한글 이름을 적어내고 있었다. 학명과 현지의 특성을 참고해서 의미를 살려 만드는데, 종종 사용할 수 있는 단어와 그렇지 않은 단어가 있어 꽤나 어렵다고 한다. 우리말로 이름을 짓는 것은 연구원들 사이에서도 혼선을 방지하기도 하고, 대중에게 알리는 데도 조금은 수월해진다고. 뿐만 아니라 이름을 통해 식물에 정체성을 부여하고 인류에게 이것이 우리가 지켜야 할 생명임을 인식시키는 일이기에 아주 중요한 작업이다.
김춘수 시인의 <꽃>에 나온 문구처럼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지만,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에는 와서 꽃이 된다. 그만큼 ‘명명한다’는 것은 어떠한 것에 정체성을 부여하는 일이기도 하면서 의미가 탄생하는 일이다. 글을 쓰면서 더욱 그렇게 느낀다. 캐릭터를 상상해서 외모, 성격, 직업 등 모든 것을 설정해도 이름이 정해지지 않으면 살아있는 것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하지만 어울리는 이름을 갖고 나면 글 속에서 스스로 살아나 움직인다. 모든 작가가 그렇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나는 나의 글 속의 인물들을 통제하고 있지 않다고 느낀다. 하나의 자아를 형성하고 자신의 길을 선택하는 것 같다.
거센 바람과 험한 툰드라 사막의 길은 연구팀을 전혀 방해할 수 없었다. 풍화작용으로 인해서 갈라지고 쪼개져버린 돌바닥에도 바싹 엎드려 식물을 관찰하고 구분한다. 한쪽에 쪼그려 앉아 채집하고 있는 박사님을 촬영하고 돌아서면 빙하에 절을 하다시피 바닥에 엎드려있는 연구원 분들이 보였다. 식물의 종자를 연구하시는 분도 계셨는데, 올해는 예년보다 눈이 조금 늦게 녹는 바람에 종자가 영글지 않아 샘플링을 하기가 어렵다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전체적으로 보면 지구온난화로 인해 날이 따뜻해져 일찍부터 땅이 녹는 것이 아닌가 싶었지만, 올해는 봄철 강수량이 많아 눈이 많이 쌓였다고 했다.
하지만 2025년 북극은 역대 가장 뜨거운 온도를 기록했고, 열을 반사하던 해빙은 녹아내렸다. 해수면은 열을 흡수했고 지구의 온도는 어김없이 올라갔다. 지구 온난화로 인해서 북극이 너무나도 빨리 더워지고 있는 것은 모두가 다 아는 이야기다. 강수량에 급격한 변화가 일어나고, 겨울에도 비가 내리는 불상사가 생기는 것도 당연한 일일 터. 그런데 문제는 비가 내리고 다음날 얼어버리는 경우가 문제였다. 이 때문에 식물은 얼어 죽고, 순록은 먹이가 사라지면서 굶어 죽게 되는 것이다. 들어보면 그럴 수 있겠다 싶은 이야기지만, 단 한 번도 비가 얼어 동식물이 죽어갈 것이라고 사고해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인지 개인적으로는 다소 충격적인 사실이었다.
게다가 북극이 따뜻해지면서 더는 살아남지 못하는 식물들도 있다. 이 식물들을 지키는 일이 누군가에게는 머나먼 이야기일지 모르지만 실은 우리의 삶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옳은 비유일지는 모르겠으나 문득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가 떠올랐다. 영화 속에서 미란다와 직원들이 두 가지 블루컬러의 벨트를 두고 심도 있게 고민한다. 그 모습에 앤디는 고민하는 사람들을 유난이라는 듯이 웃어버린다. 그때 미란다가 그런 이야기를 한다. 앤디가 입고 있는 그 블루가 어떻게 태어나 앤디의 옷장까지 가게 되었는지. 전혀 자신과 상관이 없을 것 같았던 일이 이미 나에게 와 있는 일일지도 모른다.
북극은 멀고도 낯선 곳이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살고 있는 곳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