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설지 않아

7. 북극다산기지

by 윤진

니알슨으로 가는 아침, Vei 238의 44번 주황색 나무집 1층 오른쪽 방문을 열고 나왔다. 어젯밤 감기는 눈을 부릅뜨고 빨래가 건조되기를 기다리면서 데이터 정리를 하고 하루를 기록했다. 건조가 생각보다 길어서 40분 정도 남았을 때는 기절하기 일보직전이었다. 결국 알람을 맞추고 잠시 자다 일어나서 빨래를 꺼냈다. 니알슨에 가기 위해 짐을 최소화한 것도 한 몫했고, 그곳에 가서는 아마 빨래할 시간도 아까울 것이기 때문이었다. 만반의 준비를 마친 우리는 오전 8시 30분, 니알슨으로 함께 가는 연구원님의 픽업을 기다렸다.


롱이어비엔에서 니알슨으로 가는 15인승 경비행기는 오전에 한 대, 오후에 한 대를 운행한다. 연구원님과 함께 움직이는 일정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에 당연히 오전 비행이라고만 생각했는데, 함께 차를 타고 가다가 미디어팀의 비행 일정이 별도의 스케줄로 안내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어찌 된 일인 지는 모르겠으나 줄곧 연구소와 소통하던 메일과 비행에 관한 안내를 받은 메일이 서로 달라 확인하지 못했던 것인데, 착각한 것이 진짜 비행시간보다 빨랐기에 망정이지 비행을 놓치는 일이 있었다면 여기까지 와서 과학기지촌 근처에도 못 가볼 뻔했다.


가슴을 쓸어내리고 공항에 가던 차를 돌렸다. 44번 숙소는 체크아웃 시간이 다가와서 적당히 카페에서 일을 하며 기다릴 참이었는데, 픽업을 와 준 연구원 님이 자신이 묵었던 숙소로 우리를 안내해 주었다. 지난밤 숙소 청소를 잊어버린 주인이 사과의 의미로 몇 시간 체크아웃을 미뤄준 것이었다. 덕분에 갈 곳을 잃고 떠돌 뻔한 우리는 비행시간까지 편안히 잔업을 할 수 있었다. 두 시간 정도 일을 하고 나와 크로아에서 점심으로 피자 세 조각을 먹고는 배를 통통 치며 공항으로 가는 콜택시를 기다렸다.


포니테일로 금발 머리를 묶고 선글라스를 쓴 노르웨이 여자 기사님이 하이텐션으로 인사하며 차에서 내렸다. 트렁크를 열어주면서 우리의 국적을 물었는데, 한국 사람이라고 하니 더욱 반가워했다. 택시기사뿐만 아니라 가이드도 하는데 한국 손님을 많이 만났다고 한다. 자연스럽게 한국이 궁금해져 한국으로 여행도 와 본 모양이었다. 자신이 알고 있는 한글을 쏟아내며 신이 난 모습이 너무도 사랑스러운 사람이었다.


“천천히, 10분, 여기, 쉬다!”


특히 한국 사람들에게 많이 하는 말이라고 했다. 주변을 둘러보면서 천천히 걸어가도 되는데, 둘러볼 겨를도 없이 발 빠르게 움직이는 한국 사람들을 위한 맞춤 단어라고 했다. 게다가 목적지에 도달하는 것이 목표이다 보니 쉬어가는 것도 잘하지 않는다고 쉬어갈 필요성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공항까지 가는데 10분도 되지 않는 시간이었는데 거의 30분은 대화를 한 것 같았다. 꼭 이 동네에서 몇 번이고 마주친 사람처럼 순식간에 친근해졌다. 사람의 마음을 얻는 건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편인데, 맑은 웃음과 긍정적인 에너지는 어느새 마음을 감싸고 있던 장벽을 허물게 하는 것 같았다. 짐을 내리고 마지막까지 밝게 인사하는 기사님의 모습이 꽤 인상 깊었다.


니알슨으로 가는 경비행기 승강장은 다른 곳에 있다. 같은 공항이지만 정문으로 들어가지 않고, 바로 옆 좁은 길로 가서 코너를 돌면 문이 하나 보인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또 바로 연결되는 문이 하나 더 있는데 이곳이 경비행기를 탑승하는 곳이다. 먼저 카운터에서 들고 있는 모든 짐의 무게를 재고 기록한다. 여기서 바로 결제를 하지는 않고, 니알슨에서 나오기 전에 한 번 더 무게를 잰 다음 20kg을 초과한 분에 대한 추가금을 그때 결제하면 된다.


비행기에 짐을 싣는 동안 카운터에 비치되어 있는 귀마개를 챙긴 다음 휴게실로 향했다. 신발을 벗고 나선형 계단을 올라가면 휴식공간이 나오는데, 이곳에서 경비행기가 이륙을 준비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4월에서 9월까지 출발 시간은 9시 30분과 15시 30분이었는데, 기상상황에 따라 앞뒤로 시간이 당겨질 수도 미뤄질 수도 있다고 했다. 바람이 조금 강한 날이었지만 날씨가 좋았던 날이라 큰 문제없이 20분 정도 일찍 출발했다. 사실 비행기가 연착되는 일은 있어도 일찍 출발하는 경우는 본 적이 없어서 조금 의아하긴 했지만 말이다.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일찍도 출발한다는 것을 알게 된 이상 니알슨에 갈 때는 미리 와서 따뜻한 휴게실에서 여유 있게 커피 한 잔 하는 것이 좋은 것 같다.


경비행기의 왼쪽 앞 좌석에 탑승하면 대기가 좋을 때 또렷한 빙하선을 볼 수 있다. 북극에 오기 전에 미디어팀이 멋진 그림을 담아갔으면 하는 바람으로 한 연구원님이 알려주신 팁인데 덕분에 인생에서 한 번 볼까 말까 한 아주 멋진 풍경을 담을 수 있었다. 푸른 바다와 저 멀리 보이는 산등성과 빙하. 모든 것을 얼려버릴 것만 같은 빙하선이 점점 가까워진다. 눈이 녹아버린 대륙을 보다가 하얗게 얼어버린 세상을 하늘에서 올려다보니 극지에 온 것이 더욱 실감 났다. 간혹 가다 얼음이 녹아 웅덩이를 만든 곳도 있었는데 바다의 색이 유난히 영롱한 푸른빛을 띠었다.


경비행기 안에서 본 빙하선과 빙상호수


이것을 빙상호수라고 부르는데, 여름철에 빙하의 표면이 녹으면서 낮은 지형으로 흘러 들어가 고여 만들어진 것이다. 빛은 물속으로 들어가면 파장이 긴 빛들을 흡수해 버리고 푸른빛을 내는 짧은 파장만이 남는데, 빙하는 공기방울도 하나 들어가지 않아 투명한 얼음이라 빛이 방해를 받지 않고 깊은 곳까지 들어갔다 나오기 때문에 더욱 선명한 파란색을 띠는 것이라고 한다. 눈과 얼음과 땅만이 존재할 것 같았던 풍경에 한 마을이 보이기 시작했다. 해안가에 위치한 알록달록한 마을, 니알슨 과학기지촌이었다. 이곳에서는 대한민국을 포함해 노르웨이, 독일 등 10여 개국의 연구기관이 북극의 환경을 관찰하고 변화를 감시하며 미래를 예측하고 대비하고 있다.


니알슨 과학기지촌에 도착하기 일보직전


우리가 경비행기에서 내리자 탑승을 기다리던 사람들이 비행기에 올랐다.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낯선 사이지만 그때만큼은 손을 흔들며 서로 인사를 나눴다. 그들이 타고 온 셔틀버스에 몸을 싣고 기지촌으로 들어왔다. 버스에서 내리자 기지대장님과 오전에 인사했던 연구원님이 마중을 나와 계셨다. 짐은 한쪽에 세워두고, 먼저 킹스베이 리셉션에 가서 주의사항을 들으며 서류를 작성했다. 이곳에서 강조하는 몇 가지 주의사항이 있었다. 그중에서도 첫 번째는 와이파이, 블루투스 등 무선기기 사용 금지 조항이었다.


니알슨에는 전파망원경이 있는데, 수십억 광년 떨어진 퀘이사(Quasar)의 미세한 전파를 수신하고, 지구의 자전 속도나 기울기 등을 측정한다. 이때 사용되는 전파의 주파수가 우리가 흔히 사용하고 있는 와이파이, 블루투스 주파수와 겹치기 때문에 데이터의 정밀도가 떨어져 금지하고 있는 것이다. 이곳에서 인터넷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랜선이 필수였다. 사전에 안내받은 준비물 리스트에 있어 준비해 갔는데, 모든 방마다 랜선은 구비되어 있었다. 무선이어폰, 카메라, 스마트워치도 유의해야 하지만, 가장 간과할 수 있는 것이 마우스였다. 아무 생각 없이 마우스를 무선으로 가지고 가서 현장에서 빌려 사용했다. 이러한 모두의 노력 덕분에 우리는 정확한 데이터를 수집하고 분석할 수 있는 것이다.


다음 주의사항은 아무래도 총기 소지에 대한 내용이었다. 마을 내에서는 절대 장전된 총기를 가지고 다녀서는 안 되며, 마을을 벗어나는 경계에서 탄창을 넣고 총을 장전하는 것을 동행자가 확인해야 한다. 안전을 위해 세 명 이상 함께 다녀야 하고, 주변을 항상 예의주시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리고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이 총기는 곰을 사냥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북극곰도 지켜야 하는 동물이기 때문에 근처에 있다면 위협사격을 하거나, 신호탄으로 쫓아내야 한다. 그리고 마을이나 인근에서 북극곰이 발견될 경우 건물 내부로 대피해야 한다. 다 함께 살아가기 위한 최소한의 규칙이었다.


이곳에서 생활하며 지켜야 할 것들도 있었다. 매 끼니를 공용 식당에서 먹게 되는데, 그저 식사만 하는 곳이 아니라 연구원들 간의 교류가 이루어지는 장이었다. 서로 다른 나라의 사람들이 모여 어떤 연구를 하고 있는지 묻기도 하고, 협력을 얻기도 하고, 만날 약속을 하기도 하는 곳이었다. 그러다 보니 식당에서 스마트폰을 보는 행위는 일반적인 경우보다 더욱 실례가 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모자를 쓰는 것도 예의에 어긋나는데, 후드조차도 되도록이면 착용하지 않는 것을 권고했다. 편하다는 이유로 대부분 후드티를 가져간 나에게는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다행스럽게도 극지연구소에서 받은 옷 중에 모자를 뗄 수 있는 것이 있어서 식사를 할 때면 얇은 티셔츠에 그 옷을 걸쳐 입었다.


스발바르는 과거 탄광촌이었기 때문에 집에 들어갈 때 신발과 외투를 벗고 들어가는 문화가 있다. 노르웨이 오슬로까지만 해도 신발을 신고 집 안으로 들어가는 시스템이었다. 맨발이나 양말로 온 집안을 돌아다니는 온돌 문화에 익숙해서인지 신발을 신고 집안을 누비는 해외에 나오면 불편했다. 그런데 36시간이나 떨어진 스발바르에 도착하고 신발을 벗는 문화를 마주했다. 과거에 광부들의 신발에 묻은 석탄이 실내로 들어오지 않게 하기 위해서 현관에서 신발을 벗던 습관이 굳어진 것이었다. 숙소뿐만 아니라 호텔이나 교회 같은 곳에도 현관에 신발장이 놓여 있었다. 니알슨 과학기지촌도 마찬가지였는데, 식당에서는 특히 신발을 벗고 들어가면 외투를 걸어놓는 장이 있고, 그곳에서 손을 씻어야 들어갈 수 있었다.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인데, 서로 다른 나라의 사람들이 공동체 생활을 하며 이 정도의 청결을 유지하는 것이 새삼 기분이 좋았다.


주의사항을 잊지 않으려 되새기며 기지대장님과 함께 북극다산과학기지에 들어왔다. 북극다산과학기지의 건물은 프랑스와 함께 사용하고 있다. 중앙 계단을 기준으로 왼쪽은 우리나라, 오른쪽은 프랑스가 사용하고 있는데 생각보다 거의 부딪히는 일이 없었다. 다산기지의 1층에는 실험실과 연구공간이 있었는데, 틈틈이 이곳에서 샘플을 제작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2층은 주된 생활공간으로 도미토리, 회의실, 휴게실이 있었다. 한 방에 두 명이 묵는 도미토리였고, 나는 오랫동안 북극의 식물을 연구하신 박사님과 룸메이트가 되었다.


약 3일 동안 이곳에서 함께 생활할 모든 사람들이 회의실에 모였다. 돌아가며 자기소개를 하는데, 식물 연구와 미생물 연구를 하시는 분들이 대부분이었다. 북극다산과학기지의 여름은 보통 그렇다고 했다. 눈이 녹아야 비로소 식물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은 강풍이 불어 낮에 야외활동을 하지 못했다고 했다. 저녁을 먹고 난 이후에야 바람이 잦아든다고 하여 그때 다산기지에 있는 전원이 인근 빙하까지 다녀오기로 했다. 18시 30분 출발해서 약 세 시간 활동 후 복귀하는 일정이었다. 밤에 도착해 데이터 정리까지 할 생각을 하니 조금 아찔했지만, 시간을 가늠할 수 없는 백야가 왠지 가능하게 해 줄 것만 같았다. 거친 툰드라 사막에 카메라를 들고 세 시간을 걸어야 하니 만반의 준비를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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