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한 바퀴로 본 기후위기

6. 녹고 있는 영구동토층

by 윤진

메리앤스 폴라리그에서 점심식사를 마치고 숙소에서 카메라를 픽업해 동네 한 바퀴를 돌기로 했다. 총기를 소지하지 않고 갈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몇 가지 확인하고 싶은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북극은 기후 위기를 다른 곳보다 크게 느낄 수 있는 곳이기 때문에 그 징후를 관찰하고자 했다.


북극 지역에서 유난히 온난화가 급속도로 진행되는데 이것을 북극 증폭 현상이라고 부른다. 백야가 온 여름에 눈이 녹는 양보다 극야가 온 겨울 내내 쌓이는 눈의 양이 많아야 빙하가 유지된다. 그리고 최소 2년 이상 장기간 영하의 온도를 유지한 땅을 영구동토층이라고 하는데, 물의 어는점이 0도보다 훨씬 낮은 상태라면 영구동토층이 단단하게 잡히지만, 빙하의 온도가 0도에 가까워져 물기가 생긴 상태라면 영구동토층이 녹는 것은 시간문제인 것이다.


빙하가 녹아버리고 난 다음에 지표면에 눈이 쌓인다면 그것은 오히려 솜이불을 덮은 것이나 다름이 없다. 겨울의 추위를 눈이 막아주는 셈이 되어 오히려 영구동토층의 온도가 올라가게 되고, 땅은 공기보다도 더 오래 열기를 머금어 끊임없이 해빙을 가속화한다. 게다가 여름이 되어 어두운 색의 흙과 바다가 햇빛을 그대로 흡수하기 시작하면 지면의 온도는 더 올라가고 영구동토층은 속절없이 녹아내리게 되는 것이다.


새소리가 들리는 알록달록한 마을, 언덕 위에서 마을을 지켜주는 교회, 창가에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하는 사람들, 자꾸만 올려다보게 되는 커다란 산과 시내를 통과해 바다로 흐르는 강줄기. 겉보기에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만 같은 평화로운 풍경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심각한 기후위기를 겪고 있다.


IMG_kwup.jpg 이끼땅 옆을 지나가는 북극여우


아침에 북극여우를 처음 봤을 때 밟았던 물을 머금은 이끼땅도 영구동토층의 활동층이 녹으면서 생긴 현상이었던 것이다. 여름에 비가 내리거나 쌓여있던 눈이 녹으면 땅속으로 스며들어야 하는데 땅속 깊은 곳에 있는 영구동토층에 막혀 배수구가 없는 땅이 된다고 한다. 나무 대신 자라는 이끼들의 물을 머금는 성질이 여기서 작용해, 사람이 밟으면 물을 먹은 두꺼운 스펀지를 밟는 것처럼 된다. 활동층은 여름에 해동되었다가 겨울에 다시 동결되는 층이어야 하는데, 지구온난화로 인해 지반이 약해지고 땅속 깊이 녹으면서 늪처럼 변하기도 해 아스팔트 길이 아닌 곳을 걸을 때는 조심해야 한다.


다행히도 마을의 메인 길은 잘 닦여 있었다. 숙소에서 나와 시내로 들어서는데, 초입에 커다란 산이 하나 있었다. 처음에 롱이어비엔에 도착해 버스로 들어설 때도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산이었다. 이 산에는 눈사태를 방지하는 펜스가 빼곡히 박혀있었는데, 알고 보니 10년 전에 큰 눈사태를 겪은 후 설치된 것이었다.


IMG_5067.JPG 산사태 방지를 위해 빼곡히 설치된 펜스


2015년 12월 19일 토요일, 수케르토펜(Sukkertoppen)산에 엄청난 눈사태가 발생했다. 이틀 전부터 스발바르 제도에 이례적인 폭풍이 몰아쳤는데, 노르웨이해에서 생긴 두 개의 저기압이 결합하면서 생긴 사이클론이었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북극의 겨울은 바다가 얼어 있어 대기를 차갑게 유지하고 습기를 차단하는 벽과 같은 역할을 해왔는데, 그 해에 바다가 얼지 않아 벽의 기능을 상실했다. 결국 남쪽에서 오는 따뜻하고 습한 공기가 북극의 찬 공기를 만나면서 온도 차이를 에너지원으로 삼는 사이클론을 발생시켰다고 한다. 시속 160km 이상의 강풍이 수케르토펜산으로 눈을 실어왔고, 수개월에 걸쳐 쌓여야 할 눈의 양이 단 이틀 만에 쌓이면서 눈사태를 일으켰다.


눈사태는 집을 80m나 밀어낼 만큼 강력했다. 그로 인해 11채의 집이 완전히 파손되었고, 180여 명의 주민들이 대피해야 했다. 필요한 물품을 구할 수 있도록 마켓도 열고, 주민들이 자신의 아파트도 제공하고, 100명의 자원봉사자들이 투입되었지만, 안타까운 소식이 들려왔다. 음악가이자 교사로 활동하던 남자가 4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고, 눈사태로 무너진 집 잔해에서 구조된 2세 여아는 트롬쇠 대학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끝내 눈을 감았다. 이 비극적인 사건으로 인해 롱이어비엔은 눈사태 위험지역을 구간으로 지정해 대규모 이주 프로젝트를 진행했는데, 전체 인구가 2,200명 정도밖에 안 되는 작은 마을에서 약 250채의 가옥이 철거 대상이 되었다. 그 후로 산에 바람의 흐름을 조절하는 펜스를 설치해 눈이 쌓이지 않도록 하고, 산 중턱에는 눈의 하중을 견딜 수 있도록 지지 구조물을 세우고, 주택가 앞에 거대한 방어벽을 쌓아 3중 보안 시스템을 만들었다. 아름다운 마을 풍경에도 깊은 그림자가 드리워있었다.


같은 이유로 폐쇄된 공동묘지가 있다고 해서 마을을 가로지르던 참이었다. 사전 미팅 때 만난 연구원님이 롱이어비엔 마을을 지나다니며 기둥이나 콘크리트 건물을 잘 보라고 하셨던 말씀이 떠올랐다. 유심히 보니 나무로 지어진 집들 사이에 기반을 콘크리트로 만들었거나, 필로티 구조로 세워진 건물들이 있었다. 기존에는 영구동토층에 나무 기둥을 박아 넣으면 강력하게 결합하기 때문에 나무만으로도 건축을 하는 것이 문제가 없었다고 한다. 실제로 나무 표면에 물이 스며 얼면서 콘크리트나 강철 기둥보다 더욱 부착력이 높다는 것을 실험한 적이 있을 정도로 믿을만한 건축방식이었다.


하지만 이상기온이 나타나고 영구동토층이 녹으면서 나무에만 의존할 수 없게 되었다. 나무를 썩게 하는 부후균이 활발하게 활동하는 온도는 일반적으로 18도에서 32도 사이인데, 스발바르의 환경에 적응한 부후균은 5도에서 15도 사이에서 활동을 한다. 과거에는 여름에도 롱이어비엔의 기온이 5도 미만을 유지했는데, 올해 여름 최고기온만 해도 20도를 육박했기 때문에 더 이상 나무로 기반을 만들 수 없게 된 것이다. 게다가 영구동토의 활동층이 전보다 깊어지면서 지반이 물러 건물을 받쳐주지 못하게 되었다.


이곳의 사람들은 강철 말뚝을 영구동토층 아래 단단한 암반층에 고정하고, 건물을 바닥에서 띄워 짓는 필로티 구조를 선택해 주차장이나 창고로 사용한다. 최대한 차가운 공기가 순환할 수 있도록 하는 마지막 보루인 셈이다. 롱이어비엔의 유일한 마트 스발바르부티켄(Svalbardbutikken)과 같은 대형 건물의 경우에는 하중으로 인해 콘크리트 기반으로 건축하기도 하는데, 이 경우 냉각시스템을 설치해서 영구동토층이 녹지 않도록 관리를 한다고 한다. 환경에 대한 인식은 끊임없이 상기하는 우리와는 달리 생활의 불편함으로 곧장 다가오는 북극의 주민들은 매년 눈에 띄게 변하는 세상에서 살아가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시내를 가로질러 교회와 공동묘지가 있는 곳으로 가기 위해서는 강 위에 놓인 다리를 건너야 한다. 산에서 내려와 마을을 통과해 바다까지 이어지는 이 강은 마을 중심에서 정면으로 올려다본 산의 골짜기에 위치한 롱이어브린(Longyearbreen) 빙하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겨울에는 얼어붙어 물이 흐르지 않다가 주로 여름철에 빙하가 녹아내리면서 강을 만들어 낸다. 롱이어브린에서 내려오는 물줄기와 상류에서 또 다른 빙하 라스브린(Larsbreen)의 물줄기가 합류해 바다까지 흐른다.


물이 쏟아져 내려오면서 바닥의 암석을 깎아 싣고 내려오기 때문에 강물이 뿌옇다. 영구동토층에는 여러 광물들이 잠들어 있는데, 그중에서 철과 황이 결합한 황철석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이것이 공기와 물을 만나면 화학반응이 일어나 강한 산성을 만드는데, 이 강물이 흐르면서 주변의 돌에 들어있는 금속을 녹여 내려간다. 뿐만 아니라 붉은 사암이나 석탄층도 함께 쓸려 내려가면서 탁한 회붉은색을 띠는 것이다. 해변에서 보면 강에서 흐르는 회붉은색 물이 푸른 바다와 섞이지 않은 채 대치하고 있었다. 맑은 날에는 왠지 더 잘 보이기도 했는데, 바다는 염도가 높아 무겁지만 빙하가 녹은 물은 염분이 없어 가벼워 섞이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녹아내리는 육지빙하는 서서히 바다에 섞여 해수면을 상승시킨다. 여기서 조금 특이한 점은 스발바르는 거대한 빙하가 땅을 꾹 누르고 있었기 때문에 오히려 해수면은 이전보다 낮아지는 것처럼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마을에 흐르는 강조차도 평범하지 않은 이곳이 어쩌면 우리가 겪게 될 미래를 보여주는 것 같아 슬퍼졌다. 의식하지 않는 순간에도 낭비되고 있는 자원과 이러한 인간으로 인해 상처받고 있는 지구의 모습이 새삼 더 크게 다가왔다. 이곳에 오지 않았다면 이 정도까지의 체감은 들지 않았을 것 같다.


복잡한 마음으로 공동묘지에 다다랐다. 가까이 가기 전부터 엄숙해지는 이곳에는 1918년 스페인 독감 희생자들, 1920년 1번 광산 폭발 사고 희생자들, 1943년과 1942년 제2차 세계대전 전사자들, 초기 정착민들이 안치되어 있다. 1950년까지는 정식 묘지로 사용되었지만, 영구동토층에서는 시신이 썩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질병 유출에 대한 우려로 인해 매장이 전면 금지되었다.


실제로 1998년 과학자들이 스페인독감 바이러스 유전자 조각을 발견했고, 이는 영구동토층이 녹으면 언제든지 세상에 이 균이 나올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고대 바이러스나 어떤 박테리아 같은 것들이 땅이 녹아 세상에 나오면 또 커다란 문제가 될 수 있다. 실제로 2016년 러시아에서 오랫동안 사라졌던 탄저균이 퍼지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언젠가 이런 상황이 발생할 경우를 대비해 세계 곳곳에서 미생물을 연구를 한다고 한다. 이번에 니알슨 과학기지촌 북극다산기지에서 암석에 내려앉은 미생물을 연구하시는 연구원님을 만나기도 했다. 모르는 사이에 우리는 보호를 받고 있었던 것 같다.


IMG_5152.JPG 공동묘지 인근에서 멘트 촬영하는 슈퍼맨이 되고 싶은 작가


스발바르 환경보호법에 따라 문화유산으로서 공동묘지는 그대로 유지했지만, 더 이상의 매장은 금지되었다. 게다가 2015년의 수케르토펜 눈사태에 이어 2016년 10월 공동묘지 근처에 산사태가 벌어지는 바람에 묘지 근처에 경계선이 생겼다. 이때는 폭우가 쏟아졌는데 묘지가 있는 곳이 직접적으로 타격을 받지는 않았지만 지반이 불안정하다고 판단해 묘지는 폐쇄됐다. 이후에도 2017년 수케르토펜 눈사태로 인해 피해를 연달아 입으면서 이곳의 사람들은 더 이상 영구동토층을 믿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나 하나 환경을 생각한다고 세상이 바뀔까?'라는 생각이 들었던 때도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두 시간 남짓 마을 한 바퀴를 돌면서 눈앞에서 기후위기를 체감하자 무엇이라도 할 수 있다면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세상을 위해 이 먼 곳까지 와서 연구를 하고 있는 연구원님들을 마주 했을 땐 더욱 마음이 들끓었다. 눈으로 본 것들을 상세히 전하고 싶어 졌고, 환경을 지키는 수많은 연구에도 사람들이 관심을 기울였으면 하는 바람이 생겼다. 우리가 일생을 살아가는 소중한 터전을 위한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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