척박한 땅, 극지에서 먹는 것

5. 문화가 깃든 북극의 식당

by 윤진

니알슨 과학기지촌에 가기 전 부지런히 빨래를 돌려놓고, 점심식사를 하러 메리앤스 폴라리그(MARY-ANN’S Polarrigg)로 향했다. 1999년 광부 막사였던 건물을 개조해 매리앤 데일이 설립한 호텔이다. 광부 막사였던 만큼 호텔 곳곳에 탄광에서 가져온 물건들도 볼 수 있다. 이곳의 조식은 매일 오전 7시부터 10시까지 먹을 수 있는데, 호텔에 투숙하지 않는 사람들도 결제하고 이용할 수 있었다.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간단한 조식뷔페였다. 스크램블, 베이컨, 소시지, 빈, 스튜, 각종 빵과 과일을 한 접시에 가득 담아 테이블에 앉았다.


‘북극에 사는 사람들은 무엇을 먹을까?’


이곳에 오기 전 백야로 인해 잠에 들지 못하는 것보다 타지에서 제대로 먹지 못하는 것이 더 큰 걱정거리였다. 북극에 먼저 다녀온 취재팀 지인에게 듣길 전반적으로 음식 맛도 없고 부실하다고 해서 이번 취재는 다이어트를 한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이왕 다이어트하는 거 한국에서 먹고 싶은 것들을 다 먹고 여정에 올랐다. 뜻밖에 카타르 항공 기내식이 맛있어서 ‘그래, 이번 끼니까지는 맛있게 즐겨야지.’ 하는 마음으로 경건하게 식사를 했다.


롱이어비엔 마을은 약 10 km²으로 우리나라로 따지면 여의도보다 조금 더 큰 정도다. 도보로 약 1시간 반에서 2시간 정도 걸으면 마을을 한 바퀴 돌 수 있다. 마을이 작은 만큼 식당 개수도 적은데 카페까지 포함해서 약 10여 개 정도 되는 것 같다. 물리적인 양이 적으면 질이 좋은 것을 찾기 어려운 것도 당연하기 때문에 기대를 낮출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땅이 척박한 섬이기 때문에 거의 모든 식자재가 수입된다. 항공편이 결항되면 신선식품 공급이 며칠간 중단되기도 한다고. 그래서 방문 시기가 잘못 맞으면 먹는 것 때문에 고생하는 수가 있는데, 그게 취재팀 지인의 이야기였던 것 같다. 우리는 정말 다행히도 여정을 하는 내내 관광객이 끊임없이 들어올 수 있는 환경이었고, 덕분에 식재료가 풍부한 마트와 식당 인프라를 온전히 누릴 수 있었다.


이곳에 도착해서 가장 먼저 한 것은 제법 별점이 높은 식당을 체크해 두는 일이었다. 그다음엔 지나가다 들러보기도 하고, 전에 와 본 연구원님들에게 후기를 듣기도 했다.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에 따라 사진으로 남겼고, 혀끝에 기억을 저장했다. 프루스트 효과라고 했던가? 어떤 음식의 맛과 향을 느끼는 순간 기억이 떠오르는 현상. 내게도 북극을 떠올리게 만드는 몇 가지 음식이 생겼다.


시내 중심에 벽돌색 붉은 지붕을 쓰고 입구는 쨍한 블루 컬러로 칠해진 롬펜 센터(Lompen Senteret)가 있다. 기념품샵, 약국, 식당이 입점해 있는데, 그중에 스타숀언(Stationen)이라는 로컬 레스토랑 겸 펍이 있다. 롱이어비엔에 머물면서 여기만 세 번을 방문했고, 매번 조금씩 다르게 여러 메뉴를 맛보았다.


왼쪽부터 시그니처 버거, 고래 카르파초, 순록 스튜, 피시 앤 칩스, 스페어립


처음 스타숀언에 왔을 때 메뉴판에 ‘고래 카르파초’와 ‘순록 스튜’를 보고 가장 먼저 주문했다. 타지에 오면 꼭 해야 하는 것 중에 하나가 먹어보지 않은 현지식 맛보기이기 때문이다. 입에 맞지 않을 수 있기 때문에 익숙한 메뉴인 수제버거와 피시 앤 칩스를 함께 주문했다. 음식을 기다리면서 설명을 찾아보았다. 기원이나 만드는 방식을 알고 나면 왠지 더 맛있게 먹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얇게 저민 고기를 올리브유, 레몬즙, 치즈, 허브와 함께 차갑게 먹는 카르파초는 이탈리아 전채요리인데, 이것을 고래고기로 만든 것이었다. 생고기로 조리하기에는 특유의 향을 빼기가 어렵다고 하는데 불편한 냄새는 전혀 나지 않았고, 참치 타다끼와 비슷한 맛이 났다. 참치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큰 거부감 없이 한 그릇을 뚝딱했는데, 사람마다 호불호가 갈리는 것 같았다.


순록 스튜는 얇게 썬 순록 고기를 버터, 양파, 베이컨, 크림, 브라운 치즈 등과 함께 볶는 요리였다. 노르웨이 북부 지방의 전통 요리라고 하는데, 북극권의 유일한 유럽계 토착민족인 사미족의 문화를 현대화한 형태라고 한다. 사미족은 북위 60도 이상의 극한 환경에서 생존해야 했기 때문에 자연과 공존하며 얻은 것은 남김없이 활용해 살아간다는 가치를 가지고 있어 고기뿐만 아니라 피, 뼈까지 남김없이 사용하여 음식을 만든다고. 알차게 든 스튜 위에 베리류를 올려 끝을 깔끔하게 해 주었는데, 이것도 전통에서 파생된 것 같았다. 사미 인구는 현재에도 노르웨이에 존재하며 대략 7만 5천 명에서 10만 명 사이로 추정하고 있다고 한다.


시간이 흐를수록 전통은 희미해져 간다. 그럼에도 우리가 전통을 마지막까지 놓지 않는 이유는 그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을 수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과거를 들여다보면 먹는 것, 입는 것, 살아가는 방식 그 무엇 하나 그냥 정해진 것이 없다. 모든 것은 과거로부터 영향을 받고 현재에 이르러 변형되고 수많은 사람을 거쳐 나에게로 온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이 순간도 언젠가의 미래로 이어질 수 있다고 믿게 된다. ‘과거에 연연하지 말고 현재를 살자’는 말이 필요할 때도 있지만, 과거가 있기 때문에 현재를 살 수 있는 것도 같다. 물론 그 속엔 수많은 아픔도 있겠지만, 그 아픔을 통해서만 만들어지는 단단함이 있다는 것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순록 스튜는 한국에 돌아가기 전에 한 번 더 들러 먹기로 했다. 양송이 수프에 고기가 들어간 듯한 맛이었는데, 한 번만 먹기에는 조금 아쉬웠기 때문이다. 실패할 것을 감안해서 주문한 수제버거와 피시 앤 칩스는 그야말로 대성공이었다. 오슬로에서 먹었던 수제버거보다 열 배는 더 맛있었고, 어릴 때 영국에서 먹었던 피시 앤 칩스보다도 더 맛있었다. 그래서 두 번을 더 방문했을 때 두 메뉴는 고정이었고, 다른 메뉴를 이것저것 시켜보았다. 각종 버거 메뉴와 고기류를 돌아가면서 시켜보았는데, 스페어립이 손에 꼽았다. 며칠 사이에 자주 오니 직원도 우리를 알아보았는데, 직원이 꼭 시켜보라며 강력추천한 메뉴였다.


스타숀언에서 길을 따라 조금 더 올라가다 보면 크로아(Kroa)라는 식당이 나온다. 롱이어비엔에서 가장 늦게까지 하는 식당이었고, 오랜 전통이 있는 곳이었다. 통나무집에 들어서자 어딘가 선이 굵고 야성미가 넘치는 인테리어가 우리를 맞이했다. 벽에 걸린 사진부터 의자 위 방석까지 사냥과 채집을 하고 돌아온 사람들을 위한 장소처럼 느껴졌다. 메뉴판 표지도 털가죽으로 되어 있고, 표지를 넘기면 총으로 북극곰을 사냥한 사람의 사진이 나온다. 그들이 지금까지 어떻게 생존해 왔는지 한 장의 사진으로 모든 것을 표현하는 것만 같았다.


크로아 메뉴판과 내부 인테리어, 어니언 수프와 수제버거


크로아의 음식은 분위기만큼이나 선이 굵은 느낌이었다. 피자, 수제버거, 각종 수프 같은 것들을 먹어보았는데 패티에서 뼈도 조금 씹히고, 수프도 한 대접 나오는 것이 상당히 색다르게 다가왔다. 개인적으로는 정갈한 식사를 제공하는 스타숀언이 더 취향이었지만, 일행 중에는 크로아를 좋아하시는 분도 있었다. 크로아는 또 크로아만의 매력이 있기 때문에 메뉴가 겹친다고 해도 꼭 두 군데를 모두 가 보는 것을 추천한다.


기름진 음식만 먹을 수 없어서 버거 사이사이에 먹을 수 있는 메뉴를 찾다가 타이 음식점과 일식집을 발견했다. 쌘펫 타이(Saenphet Thai)는 롬펜 센터 2층에 위치한 타이 음식점으로 연구원님들이 한 번은 꼭 언급하던 식당이었다. 그 사이 밥이 그리웠던 나는 볶음밥과 함께, 팟타이, 딤섬, 똠양꿍, 튀긴 완탕을 주문했다. 신맛에 약한 편이라 한국에서 타이 음식점을 가도 똠양꿍을 잘 먹지 않는데, 꽤나 추천을 많이 해서 먹어보았다. 함께 간 일행에 따르면 북유럽 사람들 입맛에 맞춰서 현지화시킨 것 같다고 했다. 시고 맵고 짠맛보다는 새콤하지만 고소한 맛이 더 강했던 것 같다. 전반적으로 음식이 맛있기도 하지만 양이 많아 배부른 한 끼를 먹을 수 있는 곳이었다.


쌘펫 타이의 똠양꿍과 팟타이
누가의 새우튀김과 스시 앤 캘리포니아롤


누가 스시 앤 누들스(NUGA Sushi & Noodles)는 스발바르 호텔 더 볼트(Svalbard Hotell | The Vault) 내부에 있는 식당이다. 북유럽에서 먹는 일식이라 기대하지 않았는데 스피츠베르겐 로컬 맥주 안주로 먹은 새우튀김이 정말 일품이었다. 라멘, 가라아게동, 캘리포니아롤도 함께 먹었는데 빠지는 음식이 없었다. 물론 일본에서 먹으면 훨씬 더 맛있는 스시를 먹을 수 있겠지만, 극지에서 먹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지 못한 음식이라 그런지 맛있게 느껴졌다. 실제로도 이 식당은 극지에서 가능한 최선의 퀄리티를 목표로 하면서, 정통 스시를 강조하기보다는 세계에서 모이는 국적이 다른 사람들에게 거부감 없이 다가가는 것이 핵심 철학이라고 한다.


문득 이곳에 한국 음식점이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했다. 예전에 한 예능에서 아이슬란드에서 뚝배기 요리를 판매한 적이 있었는데, 문득 그 장면이 떠오르면서 지금 뚝배기로 끓인 곰탕을 한 사발 먹는다면 그 무엇도 부럽지 않을 것 같았다. 그나마 제일 떠오르게 하는 맛이라고 할까, 이곳에서 대체품으로 Mr.Lee 라면이 도움이 되었다.


노르웨이 이민 1세대였던 개발자 이철호 씨가 한국 전쟁 중에 부상을 당하고 노르웨이 야전병원으로 후송되었는데, 전쟁 이후 노르웨이에 정착해 요리를 공부했다고 한다. Mr. Lee라면은 우리가 생각하는 매운 라면이 아니라 꼬꼬면이나 사리곰탕처럼 맑은 국물 라면 쪽으로 분류된다. 매운 것에 익숙하지 않은 노르웨이 사람들의 입맛이 맞춰서 라면을 현지화한 것이었는데, 무료 시식 마케팅으로 시작해서 20여 년 동안 시장 점유율 80% 이상을 유지했다고 한다. 문화와 식습관이 완전히 타지 사람들에게 맞춰 음식을 개발하고 인정을 받는다는 것은 실로 엄청난 일이다.


언젠가 들은 적이 있다.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그 나라의 문화를 먹는 것이라고. 그저 맛있게 먹는 것도 좋지만 이야기와 함께 먹었을 때 제대로 먹은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우리가 해외에 나가서 그들의 음식을 먹으며 궁금해하듯, 외국에서도 우리나라의 음식을 궁금해한다. 그리고 종종 그에 대한 해석이 따라붙을 때도 있는데, 너무도 가까이에 있고 일상에 스며든 식문화인지라 인식하지 못했던 것들까지 알게 되는 것이 꽤나 재미있기도 하다.


한국에 돌아와서도 수제버거를 먹고, 새우튀김을 먹고, 곰탕을 먹으면 북극이 생각난다. 곰탕은 거기서 먹은 것도 아닌데 왜 생각이 나는지 모르지만, 꽤나 먹고 싶었나 보다. 그렇게나 잘 먹고 왔으니… 다이어트는 대실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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