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두 번의 여름을 사는 새
새벽 4시를 알리는 알림이 울린다. 걱정은 역시 걱정일 뿐이었는지, 한 번도 깨지 않고 기절하듯 잠에 들었다. 이 시간쯤 창밖은 아직 어둑해야 하는데, 암막커튼을 걷으니 대낮처럼 밝았다. 잠을 깨기에는 햇살만 한 것이 없다. 주섬주섬 준비를 하고 어제 시내 마트에 들러서 산 바나나와 요거트를 꺼냈다. 그런데 바나나를 입에 물고 요거트 뚜껑을 여는 순간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느꼈다. 요거트인 줄 알고 구입한 것이 실은 오트밀이었던 것이다. 견과류와 건베리류가 들어있어 나름대로 먹을 수 있게 만들어 놓았지만, 한 번 더 먹으라고 하면 차라리 굶기를 선택할 만큼 맛이 없었다. 오늘 점심은 조금 일찍 먹기로 하고, 숙소에서 그리 멀지 않은 롱이어비엔의 남동쪽을 먼저 둘러보기로 했다.
숙소에서 1.5km 떨어진 곳에 북극곰 표지판이 있었다. 약 20분 정도 걸리는 거리를 천천히 걸어가기로 했다. 숙소에서 나와 지름길로 가려는데, 저 멀리 폴짝폴짝 북극여우가 뛰어갔다. 그런데 새들이 북극여우의 머리 위를 맴돌며 쫓아가는 모습이 보였다. 북극여우가 새들을 괴롭힌 걸까? 아니면 새들이 북극여우를 괴롭히는 걸까? 이곳에서 처음 마주한 동물들의 모습이 서로 쫓고 쫓기는 상황이었다는 것이 제법 씁쓸하게 다가왔다.
풀밭으로 보이는 땅에 발을 내딛자 물 먹은 스펀지를 밟는 것처럼 푹신하게 밟히더니 물이 새어 나왔다. 풀밭이라기보다는 이끼밭이었다. 아스팔트가 깔린 길까지 걸으려면 꽤나 가야 하는데, 방수등산화가 아니었다면 양말이 전부 젖어서 걸어 다니는 내내 질걱거렸을 것이다. 이곳에 오기 전 극지연구소에 피복을 대여하러 갔을 때 만난 기지대장님이 방수등산화를 지참하라고 콕 집어 말해주셨는데, 잊지 않고 사 오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아스팔트길에 올라 방금 지나온 길을 돌아보자 알록달록한 마을이 한눈에 들어왔다.
귓가에는 바람소리와 새소리만 들리는 고요한 마을이 현실감 없게 만들었다. 자연이 갖는 고유한 성질 같다. 항상 자연의 일부로 살아가지만 정말 자연에 가까워지면 왠지 비현실적인 순간이 많기 때문이다. 눈앞에서 줄을 지어 길을 건너는 거위들의 모습도 한몫했다. 하얀 얼굴과 대비되는 검은 눈과 부리, 회색 몸통엔 검은 줄무늬를 가진 있는 바나클거위를 만났다.
롱이어비엔을 다니다 보면 가끔 같이 걷기도 하는 친구들이었는데, 대부분 해안가 풀이 있는 곳에 무리 지어 다니는 모습을 포착할 수 있었다. 적게는 네 마리, 많게는 수십 마리에 달했다. 알아보니 극히 사회적인 새인지라 둥지 간의 거리가 불과 몇 미터 밖에 되지 않을 정도로 집단생활에 익숙하다고 한다. 어떤 새들은 집단으로 생활한다고 해도 먹이를 찾을 때는 누구 하나만 다녀오기도 하는데, 바나클거위는 다 함께 이동해 다 함께 먹이를 찾는다. 이러한 모습은 우리가 롱이어비엔에 묵을 때 매일 볼 수 있었다. 하루를 마칠 때 창가에 앉아 데이터 정리를 하는데, 거위 떼 소리가 가까워졌다 멀어졌다 한다. 창가를 보면 무얼 그렇게 맛있게 먹는지 한참을 머물며 먹이활동을 하다가 간다. 먹이는 주로 풀과 초본식물을 뜯어먹는다고 한다. 초본식물이란 목질을 이루지 않아 연하고 물기가 많은 식물인데, 말하자면 이곳에 흔히 보이는 이끼 같은 것들이다.
옹기종기 모여있는 바나클 거위의 주변을 맴돌며 카메라 렌즈를 통해 거위들의 행동을 관찰했다. 물 위에 동동 떠다니며 멍하니 한 곳을 응시하고 있기도 하고, 뭐라 뭐라 쉬지 않고 말을 걸어대기도 했다. 아기 거위들은 서로 몸을 맞대고 뭉쳐있기도 했는데 그 모습이 꼭 아지트에 숨어 작당모의를 하는 어린이들을 보는 것 같았다.
그런데 거위가 날아다니는 모습을 좀처럼 볼 수가 없었다. 이상하긴 했지만 답을 찾는 것을 미뤄두었는데, 니알슨 과학기지촌에서 만난 북극 생태학 박사님과의 인터뷰를 통해 그 이유가 탈피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바나클거위들은 번식 시기와 탈피 시기가 연달아 온다. 번식 후에 새로운 날개를 돋우기까지 너무도 많은 에너지가 들기도 하고, 오래된 깃털이 한 번에 탈락되기 때문이기도 하다. 새로운 깃털이 자라기까지 약 한 달간의 시간이 필요해서 일시적으로 비행불능 상태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안전한 서식지로 풍족한 먹이가 있는 초지이면서 위협이 있을 땐 물로 피할 수 있도록 담수연못이 있는 환경을 찾는다고 한다.
간단한 멘트 영상을 촬영하고, 북극곰 표지판으로 향했다. 하얀 곰이 그려진 붉은 세모 표지판이 안전지대 경계선을 만들고 있었다.
‘Gjelder hele Svalbard’
‘스발바르 전역에 적용됩니다’
이곳에는 문구가 적혀있었지만, 간단하게 그림만 있는 표지판이 대부분이었다. 경계선을 지날 때 그룹 중 한 사람은 총기에 총탄을 채우고 장전한다. 그리고 그 과정을 동행하는 사람들이 보고 확인하는 것이 규칙이다. 이번에 우리는 총기를 신청하기 않았기 때문에 여기서 돌아서기로 했다. 마을에서 나오는 차 한 대가 표지판을 지나 도로를 달린다. 경계를 넘어가면 어떤 풍경이 펼쳐질지 조금은 궁금했다.
거위들을 관찰한 것이 다인데 이상하게도 허기가 지기 시작했다.
‘이렇게 소화가 빠를 거면 맛이라도 있지…’
잘못 고른 건 나지만 오트밀을 탓하며 다시 숙소 쪽으로 돌아가려던 찰나 머리 위에서 피이–! 하고 호루라기를 부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올려다보니 하얗고 작은 새 한 마리가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고 있었다. 곧 근처에 있던 새 두 마리가 합류하더니 머리 위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이 새는 북극제비갈매기(Arctic Tern)로 해마다 북극과 남극을 오가는 철새다. 남극에서 3월 중순부터 북상을 시작해서 북극에 5월 말쯤 도착하는데, 둥지를 트고 눈이 녹기를 기다렸다 번식을 시작한다. 번식기가 끝나면 다시 남쪽으로 이동해 남극 해빙 가장자리에서 남반구의 여름철을 맞이한다. 100g 정도밖에 되지 않는 작은 몸으로 매년 7만 km 이상, 특히 멀리 가는 개체들은 9만 km 이상을 이동한다. 철새 중에 단연 최장 거리인데, 막 태어난 어린 새들도 그 먼 거리를 날아간다고 한다.
멀리 떨어져 공격을 멈춘 새들을 관찰해 보니 땅 위 움푹 파인 곳에 둥지가 있었다. 막 태어난 새끼 두 마리를 품고 있는 어미가 눈에 들어왔다. 아마도 소리를 고래고래 지른 건 아비였겠구나. 그리고 주변에 따로 떨어져 가만히 앉아있는 새들이 보였다. 또 공격을 당할까 봐 가까이 가지는 못했지만 둥지가 여럿 있는 것 같았다. 북극제비갈매기도 집단생활을 하는 개체였고, 다 함께 힘을 합쳐 터전을 지킨 것이었다.
북극여우를 쫓아내던 새가 북극제비갈매기라는 것을 깨달았다. 호전적인 방어 행동으로 인해 북극곰이나 여우처럼 대형 포식자를 몰아낸다고 한다. 작은 고추가 맵다는 게 북극제비갈매기를 보고 하는 말이었다. 번식지가 겹치는 바나클거위도 덕분에 울타리를 얻는다고 한다. 북극여우 입장에선 서글픈 일이지만 말이다.
공격하는 북극제비갈매기에게 대처하는 방법은 그날 마트에서 우연히 만난 극지연구소 연구원님들에게 들었다. 안부를 묻다가 주의사항으로 북극제비갈매기를 언급하셨다. 이미 만나 공격당했다고 말씀드렸더니, 검지손가락을 펴고 머리 위에서 빙빙 돌리면 정수리를 쪼이지 않는다고 알려주셨다. 손가락은 쪼일 수도 있긴 하지만 정수리보다는 덜 아플 테니 말이야. 둥지가 사람이 다니는 해안가 인근에 있기 때문에 모르고 자극할 수도 있어서 조심하는 것이 좋다고 언질 해주셨다.
공격받지만 않는다면 새들을 관찰하는 건 꽤 즐거운 일이었다. 왔던 길을 다시 돌아가면서도 여러 무리의 바나클거위와 북극제비갈매기를 마주했다. 불과 세 시간 전까지만 해도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되는 건 다른 세상을 만나는 것과 같다. 세상이 물리적으로 변하는 것도 아닌데, 보고 있는 시선이 달라지면서 완전히 색다른 세계에 입문하게 된다. 바람이 스치는 것처럼 흐르던 새들의 소리가 귓가에 와 꽂힌다. 들을 수 없음을 알면서도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집중하게 된다. 끊임없이 소통하고 움직이는 새들을 한 세 시간쯤 바라보니 이상하게 생각도 많아졌다.
혼자 있고 싶고, 방해받고 싶지 않은 순간이 저들에게도 있지 않을까? 마음대로 하고 싶을 때도 있을 텐데 왜 착실하게 집단생활을 하는 걸까? 아마도 저들은 집단생활이 생존에 가장 큰 영향을 주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은 어떨까? 메커니즘은 다를 수 있겠지만 인간도 똑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혼자 모든 기술을 익힐 수도 없고, 삶에 큰 위기가 왔을 때 혼자서는 막아내기도 버겁다. 하물며 인간은 타인을 통해 자아를 인식하기 때문에 관계가 끊어지면 정체성도 삶의 방향도 모호해진다.
99% 내향형이었던 나는 혼자 있는 것을 좋아했고, 나만이 나를 지킬 수 있으니 결국 혼자 살아가는 것이 맞다고 단정 지었던 적도 있다. 하지만 이제는 제법 함께하는 것을 좋아하게 됐고, 모여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것이 있다는 걸 점점 절감한다. 그래서인지 부모님과 따로 살다가 합가 하기도 했고, 나중에 분가를 하더라도 가족들이나 친구들과 가까운 곳에 거처를 정하고 싶다. 바나클거위와 북극제비갈매기처럼 서로 가까운 곳에 둥지를 틀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옹기종기 모여 사는 것이 살아가는데 꼭 필요하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모르는 것이 있으면 물어보고, 부족한 것이 있으면 채워주고, 도움 받기도 하고 돕기도 하면서 서로를 들여다봐 주는 것이 얼마나 값진 일인지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점심식사를 하러 가기 전, 잠시 빨래를 돌려놓기 위해 허기진 배를 쥐고 숙소에 들렀다. 처음 써보는 세탁기와 노르웨이어로 적혀있는 세제 앞에 잠시 뚝딱거렸다. 빨리 해야 빨리 먹으러 가는데... 그때 숙소 관리인이 오더니 친절히 방법을 알려주었다. 역시, 사람에게는 사람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