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숲과 툰드라, 백야와 극야
비행기에서 내리기 전, 작은 창문을 통해 만난 스발바르는 노르웨이 본토와 완전히 다른 풍경이었다. 식생이 가장 눈에 띄게 달랐는데 그중에서도 나무의 유무가 가장 컸다. 노르웨이 가르데르모엔 인근에는 소나무나 가문비나무처럼 키가 큰 침엽수 숲이 있었는데, 스발바르는 나무를 단 한 그루도 찾아볼 수 없었다. 나무는 1년 주기 내에 싹을 틔우고, 광합성을 시작해 에너지를 축적하고, 나이테를 만들고, 월동 준비를 한다. 하지만 극지에서는 이 전체 사이클을 마치기엔 시간이 부족하다. 지반이 연중 얼어있는 영구동토층으로 인해 뿌리가 깊이 침투할 수도 없다. 바람, 수분, 영양조건 등 나무가 생존하는 데 한계가 다분해 무목지대가 된 것이다.
학교에 다닐 때 지리 수업을 들은 학생이라면 툰드라 지대에 대해 한 번쯤 들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극지방이나 고산지대에서 나타나는데, 식물이 거의 없는 돌무더기 사막이다. 식물이 있다고 해도 이끼나 키가 아주 작은 것들 뿐이었다. 자세히 보아야 예쁜 여름 한정 꽃도 어딘가에 피었겠지만 상공에서는 점 하나로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고도 적었다. 그래서인지 하늘에서 내려다본 스발바르는 더욱 거칠고 황량해 보였다. 회갈색 커다란 산 꼭대기는 두껍게 내려앉은 구름에 먹혀들었고,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해 여기저기 각지고 움푹 파인 산등성이에는 아직 눈이 얼어있었다. 불과 3시간 만에 완전히 다른 풍경이라니 믿어지지 않았다. 그저 위치만 조금 달라졌을 뿐인데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이 낯설었다.
특히 낯설었던 것은 밤이 없다는 것. 고위도에 있는 스발바르 제도에는 해가 지지 않는 백야와 해가 뜨지 않는 극야가 있다. 매일 해가 뜨고 지는 당연한 것이 이곳에서는 당연하지 않다.
10월 말부터 2월 중순까지는 극야기간이라고 한다. 3시간에서 5시간 정도는 트와일라잇, 태양이 지평선 바로 아래 있어 우리의 새벽처럼 어스름해지기도 하지만 빛보다 어둠이 강하게 드리우는 기간이다. 하지만 또 다른 빛이 잘 보이는 시기이기도 하다. 지구를 가르듯 은하수가 진한 청흑색 하늘에 반짝거린다. 수많은 별들이 각자의 빛을 내며 자기소개를 한다. 얼마나 말들이 많은지, 그런 하늘을 보고 있으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그렇게 가만히 올려다보고 있으면 하늘의 색이 바뀔 때도 있다. 구름이 끼는 것 같으면서도 구름은 아닌 뿌연 초록빛이 보인다면 오로라를 보고 있는 것이다. 처음엔 오로라인지 모를 수도 있다. 점점 진해지기도 하고 옅어지기도 하면서 존재감을 드러낸다. 커튼을 친 것처럼 또렷한 줄을 긋기도 하고, 순식간에 폭풍처럼 몰아치기도 한다. 고도에 따라 다른 빛깔을 내기도 하는데, 분홍빛 신발을 신고 초록빛 망토를 두른 춤추는 오로라는 인생에서 꼭 보아야 하는 장면이다. 영화 <위키드>에서 엘파바와 글린다가 함께 춤을 추는 장면처럼 말이다.
화려한 우주쇼 아래 사람들은 집안에서 옹기종기 모여 극야를 보낸다. 햇빛이 없어 인공조도를 설계해 루틴을 만들기도 하고, 배터리 관리나 장비 점검 같은 것들을 반복하며 일상을 보낸다. 영하 10도에서 영하 20도 사이를 웃돌고 극단적인 경우에는 영하 40도까지 내려가기 때문에 야외 활동은 최소한으로 하고, 따뜻한 차를 마시는 문화를 통해 보온과 체력회복을 한다고 한다.
아침에 떠야 할 태양이 몇 개월동안이나 없다고 하면 아찔하다. 생체리듬이 흐트러지는 거야 말할 것도 없고, 어둠이 가져오는 감성을 내쫓을 수가 없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창작을 하는 나로서는 밤이 주활동시간이지만 이불킥하는 밤감성이 몇 개월 지속된다고 하면 당장이라도 이성을 찾고 싶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가 지지 않는 백야의 손을 드는 것은 아니다. 4월 말부터 8월 말까지 해가 고개를 내밀지만 우리나라에서 보던 것처럼 해가 머리 꼭대기까지 높게 떴다가 지는 것이 아니라 지평선 근처를 뱅뱅 돈다. 어떤 시기에는 새벽에 노을이 지기도 하지만, 우리가 지내는 시간 동안은 해가 약간 기우는 정도에 그칠 것이다. 그래서인지 숙소마다 암막커튼이 기본적으로 설치되어 있었다.
식사는 언제 해야 하는지, 잠은 언제 자야 하는지 시간을 보지 않으면 알 수 없다. 뭐든 적당한 것이 좋다고, 멜라토닌 분비가 지연되면서 수면을 방해하고, 결국 생체리듬이 흐트러지는 것은 극야나 백야나 매한가지다. 게다가 에너지 소모가 증가하니 피곤해질 수밖에 없다. 피곤한데 잠이 오지 않는 최악의 상황은 오면 안 될 텐데… 한결같은 하늘이 불면증을 불러올까 괜한 걱정을 해본다.
비행기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스발바르 제도 스피츠베르겐 섬에 착륙했다. 형광 주황색 안전복을 입은 항공기 유도요원이 동그란 유도봉을 흔들며 우리를 환영해 주었다. 외부에서 내려 공항으로 걸어 들어가는데, 찬 바람이 순식간에 체온을 내렸다. 북극치고는 따뜻한 날씨였지만, 그래도 한 겹 더 꺼내 입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롱이어비엔 공항으로 들어서니 아직은 멈춰있는 컨베이어 벨트 위에 북극의 상징, 북극곰이 우리를 맞이했다. 못 보고 가면 아쉽겠지만, 보는 건 너무 무서울 것 같다. 어쩌면 이렇게 모형으로 보는 것이 가장 가까이서 관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일지도 모르겠다.
곧 수많은 캐리어가 컨베이어 벨트로 쏟아져 나왔다. 한참을 반복해 빙빙 돌던 것이 멈추고 나면 공항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세 대의 셔틀버스가 시내로 향할 것이다. 비행시간에 맞춰 운영을 하기 때문에 딴짓할 시간은 주어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컨베이어 벨트가 도는 동안 빠르게 푸티지를 찍자.
푸티지(Footage)는 편집에 사용되는 영상소스를 말한다. 북극의 첫인상을 담아 가려고 부랴부랴 따뜻한 옷을 하나 걸쳐 입고 공항 밖으로 나왔다. 앞머리를 자유분방하게 흩날리는 거센 바람에 대기는 더욱 차가운 톤으로 보였고, 바다 너머로 보이는 빙하가 이곳이 북극이라는 것을 확인시켜 주었다.
공항 입구 정면에는 세계거리표지판이 있었다. 롱이어비엔의 위도와 경도, 그리고 세계 각국이 이곳에서부터 직선거리가 얼마나 되는지 거리표시가 함께 적혀있었다.
Svalbard Lufthavn
Longyearbyen
78° 15′ N, 15° 30′ E
차가운 바람, 순록의 뿔, 북위 78도가 적힌 표지판.
“진짜 북극이야.”
일은 일이고 설레는 것은 설레는 것이니, 찍을 수 있는 모든 푸티지를 담고는 함박 미소를 지으며 관광객 모드로 사진까지 남겼다. 그 사이 모든 캐리어가 나왔고, 컨베이어 벨트가 마지막 짐을 막 내리고 멈춘다.
시내로 가는 셔틀버스는 총 3대. 모두 시내로 향하지만 노선이 다른지 짐을 싣기 전 버스기사님이 우리의 목적지를 물었다. 숙소 주소를 말하자 어느 버스에 타야 하는지, 어느 정류장에서 내려야 하는 지도 알려주었다. 버스에 모든 사람이 탑승하고 나면 기사님이 버스 안을 돌아다니며 한 사람씩 직접 결제를 받았다. 요금은 인당 110 크로네였는데, 이제 보니 셔틀이 약 15,000원이라니 조금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5분이면 시내에 도달하기 때문에 더 그런 기분인 것도 같다. 북극곰에게서 안전하기 위해서라면 기꺼이 내지만 말이다. 어쨌든 기사님이 카드기를 가지고 다니면서 결제하니 혹시 현금을 내야 하는 것 아닌가 긴장할 필요는 없다.
버스를 타고 시내로 향한다. 공항 앞에서 찍은 사진을 가족 단톡방에 보내며 무사 도착을 알리고, 창밖에 시선을 고정한다. 경이로운 대자연 속에… 카약을 타고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여름이라고는 하나 극지인데 카약이라니…! 인지부조화가 왔다. 익숙하고 당연한 통념들이 여기서는 해당되지 않는 것 같았다. 주변 환경 무엇하나 당연하지 않은데 극지에 카약 레저가 있는 것쯤이야 놀랄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카약을 타고 피오르드 안쪽으로 들어가 절벽이나 해안을 따라 경관을 관찰하고, 해양 야생동물에 접근 관찰하는 투어였다. 관광이 목적이었다면 가장 먼저 예약했을 것 같다. 그런데 수영이 가능해야 참여할 수 있다는 문구를 보고는 순간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해양 훈련을 받고 왔지만 북극 바다에서 체온을 유지할 수 있을까? 북극 바다는 얼마나 차가울까?
카약을 타고 나갔다가 바다에 빠져 떨고 있을 때, 물범이 다가와 나를 구해주는 상상을 하다 보니 어느새 내려야 하는 곳에 다다랐다. 익숙하지 않은 지도를 들여다보며 숙소위치를 확인하고 주변을 둘러본다. 알록달록 색을 입은 정갈한 집들이 마을을 이루고 있었다. 숫자와 알파벳을 하나하나 확인하며 숙소를 찾았고, 문을 열었다.
현관에는 신발들이 이미 놓여있었다. 숙소를 잘못 들어왔나? 다시 나가서 확인했지만 맞는 주소였다. 알고 보니 공용주택의 두 개의 방을 예약한 것이었다. 다행인 건 오슬로에서 묵은 숙소보다 깔끔했고, 관리인뿐만 아니라 옆방과 윗방에 묵는 사람들도 친절하고 배려있어서 불편함은 없었다.
내일부터 본격적으로 롱이어비엔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사전취재를 한다. 백야 덕분에 시차적응은 하지 않아도 되어서, 여전히 밝을 새벽 4시에 기상을 할 예정이다. 마을의 안전지대 위주로 다니면서 연구원님들이 사전에 추천한 곳을 돌아보며 이곳이 어떤 곳인지 알아볼 것이다. 자, 이제 블라인드를 내리고, 커튼을 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