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의미하게 지나간 것은 없다

12. 안녕, 다산기지

by 윤진

아침부터 분주한 소리가 들려왔다. 펼칠 공간이 없어서 구석에 세워 놓았던 캐리어를 꺼내 짐을 정리하고, 청소기를 돌리고, 서로에게 빠진 것이 없는지 이것저것 묻는 소리가 조용했던 다산기지를 북적이게 만든다. 오늘은 기지대장님을 제외한 모두가 다산기지를 나가는 날이다. 어? 하니 3박 4일이 순식간에 지나버렸다. 미디어팀은 오후에 나가는 일정이라 여유롭게 모두를 배웅할 준비를 했다. 평소와 같은 시간, 같은 식당, 같은 사람들. 하지만 처음 이곳에 왔을 때와는 완전히 다른 기분이었다. 식당에는 지켜야 할 규칙도 있었고, 낯을 가리는 터라 잘 모르는 사람들과 대화를 하면서 밥을 먹는다는 것이 엄청난 긴장을 요했다. 하지만 마지막 날이 되자 스쳐 지나는 반가운 얼굴에 짧은 인사를 건네고, 눈이 마주치면 미소로 화답하고, 자리에 둘러앉아 이곳에서 겪은 경험담과 흥미로웠던 이야기들을 나누며 한결 편안한 식사를 하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고 나면 낯을 가린 시간들이 아쉽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아도 낯을 가리며 소모한 에너지는 고스란히 피로로 돌아오기 때문에 꽤 많은 시간을 손해 보는 것만 같다. 항상 소중한 경험이 끝날 때쯤 오는 이 아쉬운 시간은 또 다음을 기약하게 하지만 말이다. 공항으로 가는 버스에 사람들이 가득 탔다. 3박 4일간 함께 지냈던 사람들이 창문 너머 손을 흔든다. 정든 모두가 나와서 인사를 나누고 다시 만나길 기원한다. 매일 누군가와 만나고 헤어지기를 반복하며 무뎌졌을 마음을 깨우는 장면이었다. 실은 곧 롱이어비엔에서 다시 만나지만, 괜스레 함께한 시간을 소중히 하는 이 순간의 감정을 만끽하기로 했다. 그러고도 한참 기지 앞을 서성였다. 괜히 다산기지 현판과 셀카를 찍기도 하고, 다시 보기 힘들 니알슨의 풍경도 눈에 담았다.


안녕, 다산기지


롱이어비엔으로 돌아가면 인천광역시 교육청에서 극지 체험을 온 학생들과의 일정이 이어진다. 한국 학생들에게 북극에 올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는 것을 이곳에 와서 처음 알게 되었다. 학창 시절 이런 기회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면 그때의 나는 올 수 있었을까. 예체능을 시작하기 전에는 이과에 가고 싶어 했던 터라 어쩌면 관심을 가졌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알아보니 놀랍게도 2005년부터 대한민국 해양수산부와 극지연구소가 주관하는 북극연구체험단 프로그램 ‘21C 다산주니어’가 있었다. 당시라면 나도 학생이었는데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 것을 보면 몰랐던 것 같다. 아마도 그때는 눈앞의 즐거움을 좇느라 관심이 없었겠지. 괜히 머쓱해졌다. 코로나 19 팬데믹 기간을 제외하고는 매년 꾸준히 진행되어 온 다산주니어는 매년 3~4명 내외로 인원을 모집했고, 그동안 100명 이상의 학생들이 북극을 다녀갔다. 실제 북극 연구 현장에서 과학자들과 소통을 하는 경험을 하는 만큼 잠재력을 지닌 인재 선발 과정은 조금 엄격한 듯했다.


대부분의 일정을 니알슨의 북극다산기지에서 보내는 다산주니어와는 달리 우리가 만난 인천교육청 극지 아카데미는 롱이어비엔을 중심으로 활동한다. 2023년부터 시작한 프로그램으로 올해는 8명의 학생들이 긴 여정을 떠나왔다. 처음 학생들과 만난 곳은 스발바르 국제 종자 저장소 앞이었다.


굳게 닫혀있는 시드볼트


시드볼트는 인류에게 불어닥칠 수많은 위기를 대응하기 위해 만들어진 종자저장고다. 기후위기로 전례 없던 자연재해가 세상을 뒤집을 수도 있고, 전쟁이 발발해 모든 것을 파괴하다 못해 소중한 먹거리가 사라질 수도 있다. 실제로 시리아 내전 때 유전자 은행이 파괴될 위기에 처했고, 스발바르 시드볼트에서 일부 종자를 인출해 대량으로 증식시킨 후 다시 보관한 사례가 있었다. 다행히도 시설은 현지 직원들에 의해 지켜졌지만, 전쟁으로 인해 연구 거점으로 사용할 수 없게 되었다고 한다. 시드볼트는 시리아의 유전자 은행처럼 이미 보관되어 있는 종자를 저장소에 맡김으로써 이중 백업의 역할을 한다. 영상 일을 하다 보면 이중 백업의 중요성을 많이 느끼곤 하는데, 종자 저장소에도 동일한 시스템을 가진다니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언덕 위에 굳게 서 있는 커다란 은색 건물은 영구동토층의 보호를 받고 있다. 인공적으로 설치해 둔 냉각시스템이 행여나 꺼진다고 해도 수십 년 동안 동결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약 10년 전 평년보다 높은 이상기온을 맞이한 스발바르에 눈 대신 폭우가 내리는 일이 있었다. 그때 상상하지도 못했던 침수사고가 일어났다. 종자가 보관된 안쪽까지 물이 들어가지는 않았지만 진입 터널 내부 100미터까지 물이 들어가 노르웨이 정부가 대대적으로 보수공사를 했다. 앞으로 무슨 일이 있더라도 버틸 수 있도록 단단히 준비했겠지만 처음 시드볼트를 지었을 때도 그랬을 것이라 생각한다. 우리가 끝없이 기후변화를 관찰하고 감시해야 하는 이유가 또 한 번 발견된 셈이었다.


니알슨에서 함께 지낸 식물 박사님과 거센 바람을 맞으며 시드볼트로 걸어오는 네이비 바람막이 군단의 첫인상은 와글와글한 호기심 덩어리였다. 질문도 번쩍번쩍, 대답도 시끌벅적. 시드볼트 인근에 피어 있는 식물들의 이름을 맞추고는 쪼그리고 앉아 작은 생명체를 눈에 담아 간다. 샘플을 채취하는 방법도 배워왔는지 제법 온전한 샘플도 확보한다. 극지 아카데미 학생들은 함께 동행하는 박사님들과 이렇게 생태조사를 하거나 지질탐사를 하기도 하고, 노르웨이의 트롬쇠 대학이나 스발바르 대학센터 유니스(UNIS)와의 협업 워크숍으로 현지 교육기관과 교류를 하기도 한다.


유니스는 세계 최북단의 고등교육기관으로 롱이어비엔 마을 초입에 위치해 있다. 공항에서 셔틀을 타고 숙소로 향할 때 내린 곳이 항상 유니스 앞이었다. 펄럭이는 세 개의 깃발이 꼭 정류장임을 알려주는 것 같았는데 생각한 것보다 더 중요한 역할을 하는 기관이었던 것이다. 노르웨이 정부의 지원 아래 9개의 국립대학이 공동 운영을 하는 유니스는 학점은 인정되지만 학위가 수여되는 곳은 아니다. 그것이 다소 아쉽게 느껴졌지만, 현장에서 바로 업데이트되는 연구를 만나고 실제 데이터를 분석하는 경험을 하는 것만으로도 미래의 연구자들에게 중요한 발판이 되어주고 있었다.


유니스에 다니는 미래의 연구자들보다도 더 어린 인천교육청 극지 아카데미 학생들은 대학 내의 연구시설을 견학하고, 현장에서 수집한 데이터와 연구자들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탐사 보고서를 작성하고 토론을 하는 등의 활동을 하고 있었다. 그 모든 생각과 시선을 담은 책도 발간한다고 한다. 당장 볼 수 없는 아쉬운 마음은 학생들이 북극에 다녀와 한 인터뷰로 달랬다. 시드볼트뿐만 아니라 화석탐사, 롱이어브린 빙하, 제7탄광, 오로라 관측소까지 꽤 많은 일정을 함께 했었는데 그곳의 기억이 인터뷰 곳곳에 묻어 있었다.


그저 북극에 있는 자신이 궁금했던 아이도 있고, 얼음을 연구하는 연구자를 동경해 프로그램을 신청한 아이도 있었다. 저마다의 다른 동기를 가지고 도착한 북극은, 글을 읽으며 상상하고 사진을 통해 보는 것과는 많이 달랐던 것 같다. 나조차도 북극에 도착하기 전까지는 백야 아래서 밤잠을 자는 느낌이나 눈보다 돌을 더 많이 밟아 발목이 욱신거리는 통증 같은 건 알 수 없었다. 그저 어렴풋이 그러겠거니 상상만 했을 뿐이다. 미디어 자료를 보고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는 간접경험도 삶에서 꽤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지만 직접경험만큼 소중한 것도 없다. 돌아보면 집에 콕 박혀있기를 좋아하는 나도 그렇게 얻은 것이 많다.


딱 극지 아카데미 친구들만 하던 시절, 일본으로 건너가 무대에 선 특별한 기억은 삶을 살아가면서 내게 굉장한 힘이 되었다. 지금은 노래를 부르지도 않고, 곡을 쓰지도 않고, 무대에 서지도 않고, 일본에 살지도 않지만 타지에서 말이 통하지 않는 외국인들과 지내면서 분위기로 맥락을 읽는 방법을 알게 됐고, 많은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를 해야 하는 자리에서는 목구멍에서 개구리가 뛰는 것처럼 떨지만 티를 덜 낼 수 있게 되었고, 가사를 쓸 때 작곡가나 보컬을 조금은 이해하며 작업을 하게 되었다. 공부를 다시 시작하며 과거는 그저 행복한 추억으로 남기고 연연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과거는 결국 현재의 내 영역을 넓히는 발판이 되었다. 작가가 되겠다고 달려온 삶이 아니었지만 작가가 되어 알게 된 건 무엇하나 무의미하게 지나간 경험이 없었다는 것이다.


경험의 기회를 주저 없이 잡은 이 친구들이 훗날 어떤 멋진 사람이 될지 기대가 되었다. 몇 년 뒤 유니스에서 공부를 하고 있을지도 모르고, 그 후로부터 몇 년 뒤에는 다산기지에서 연구를 이어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기후위기에서 모두를 구하는 대책을 발견할 수도 있으며, 그 연구를 이어갈 또 다른 아이들에게 북극을 보여주고 있을 수도 있다. 왠지 그런 미래가 그려지는 아이들이었다. 그래서일까? 처음 만나는 친구들인데도 불구하고 무척이나 기특해서 내내 애정 어린 눈으로 바라본 것 같다.


스발바르 시드볼트에서의 짧은 만남을 뒤로하고 내일을 기약했다. 집으로 돌아가기 전까지 얼마 남지 않은 시간 동안 아쉽지 않게 다 담아가려면 체력을 비축해두어야 하니까. 스발바르에 와서 처음으로 미디어팀끼리만 사용하는 단독 숙소에 입성하며 내일부터는 또 달라질 여정을 기대했다. 실은 총기를 휴대한 현지 가이드와 지질학 박사님의 동행으로 폭넓은 취재를 할 수 있다는 생각뿐이었는데 아이들을 만나고 완전히 달라진 분위기를 체감하곤 또 다른 기대감이 생겼다. 왠지 새로운 에너지와 영감이 샘솟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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