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순이 작가의 북극 탐험기

15. 스발바르를 떠나며

by 윤진

마지막 날이다. 저녁 6시 비행기로 스발바르를 떠난다. 오슬로에서 밤을 보내고 카타르를 거쳐 다시 한국으로 돌아갈 것이다. 2주 간 북극에서 지내는 것이 불안하기도 하고 설레기도 했는데, 떠날 때가 되니 아쉽기도 하고 벌써부터 그리웠다. 이곳을 오래도록 기억할 수 있을까? 그나마 다행인 건 그동안 어떤 여행에서도 완성하지 못했던 여행기를 적었다는 것이다. 기억력이 좋지 않아 불안하긴 하지만 사진과 영상이 함께 있으니 새록새록 기억나기를 바란다. 롱이어비엔에서 가보지 못했던 북서쪽 지역을 돌아보고, 그동안의 일정 때문에 미루고 미뤄두었던 스발바르 박물관을 다녀오는 것으로 이곳에서의 일정을 마무리할 생각이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PD님표 조식 뷔페가 준비되어 있었다. 어제 마트에서 장을 봐온 것들로 주방이 꾸며져 있었다. 오른쪽부터 식기가 놓여있고, 바로 아래 서랍을 열면 수저가 있는 아주 효율적인 공간활용. 과일 코너에는 바나나, 천도복숭아, 블루베리가 있고, 순서대로 빵과 통조림 빈, 버터와 딸기잼, 시리얼과 쿠키, 그리고 우유까지. 심지어 우유는 지방함량에 따라 선택해 먹을 수 있었다. 미디어팀끼리 숙소를 꾸리고 나서는 아침을 이렇게 먹었다. 니알슨에서 식사 때마다 차려진 뷔페를 먹은 것이 꽤나 큰 영향을 준 것 같다. 괜히 웃음이 나는 아침이었다.


우리가 잠든 사이 백야를 찍던 타임랩스 카메라를 수거하고 숙소를 정리했다. 짐을 차에 전부 싣고 롱이어비엔 북서쪽으로 향했다. 해안도로를 타는 것처럼 바다를 끼고 울퉁불퉁한 길을 달렸다. 2주 동안 조금은 익숙해진 풍경을 차 안에서 바라보았다. 척박한 땅이지만 멀리서 보면 이다지도 아름다울 수가 없다. 몇몇 집이 보이고 차를 세울 수 있는 곳에 시계탑이 하나 서 있었다. 왜 이질감이 들지? 멀쩡한 시계탑이 이상하게 보였던 이유는 다름 아닌 태양광 패널 때문이었다. 하늘을 보고 있는 우리나라의 태양광 패널과는 달리, 이곳 패널은 세로로 서 있었다. 우리나라처럼 머리 꼭대기에 해가 뜨지 않고 지평선 근처에서 돌기 때문이었다. 같은 물건도 가로로 있다 세로로 있으면 달라 보인다. 당연하게 느껴지는 것도 어딘가에서는, 또 누군가에게는 새롭게 보일 수 있다. 이곳의 이야기가 약 14,000km를 날아온 내게는 새로웠던 것처럼 말이다.


막연하게 새로운 것을 무서워했던 것 같다. 잘 모르니까, 경험해보지 않았으니까. ‘그러지 말아야지.’ ‘도전해야지’ 하면서도 막상 마주치면 몸이 굳고 말은 한마디도 제대로 나가지 않는다. 잘 모르는 것도 유연하게 대처하고 싶은 것이 욕심이라면 욕심이겠지만 세상에 임기응변이 뛰어난 사람들도 있으니까 그렇게 되고 싶은 것이 당연하기도 하다. 그런데 임기응변이 뛰어난 사람을 부러워하기보다 시각을 바꿔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새로운 것’이라고 여기던 무서운 것이 생각보다 새롭지 않을 수도 있다고.


차근차근 따져보니 정말 새로운 것은 극히 드물었다. 새롭다고 칭하는 것은 대부분 무엇과 무엇을 결합하거나, 비틀었거나, 합을 깨트린 것이었다. 어쩌면 그 참신한 발상도 나만 한 것이 아닐 수도 있다. 이미 지구 반대편에서 대단한 베스트셀러 작가가 생각했을 수도 있고, 옆집에 사는 꼬마가 떠올렸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내가 쓴 글을 보며 스스로 새롭지 않다고 느꼈던 순간들이 떠올랐다. 다른 사람들의 글을 보면서는 어떻게 저렇게 새롭고 참신한지 신기해하고 부러워했다. 작가라는 직업을 갖고 있지만 여전히 스스로 작가라 부르기에는 부족하게 느껴졌다. 그런데 새로운 것이 새롭지 않다면? 나는 무엇을 고민했던 것일까.


지금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모든 것에는 새로워질 수 있는 여지가 분명히 있고, 나의 생각이 흔하게 느껴지더라도 긴장하지 말자, 쫄지 말자. 입 밖으로 꺼냈을 때 타인의 시선에서는 새로울 수도 있고, 아니면 다시 생각하면 그만이다. 새로운 것을 쓰기 위해 고치고 또 고치기만 하지 말고, 밖으로 나가자. 새롭다고 느끼는 것들을 적어나가자. 세상에 나오면 무조건 내가 아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고, 생각보다 아주 다양한 사람들이 세상에 존재한다. 직접 눈으로 보고 나면 결국 모두 우당탕탕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고, 어려울 것이 없어진다. 그러면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될 확률은 더 오르고, 지금을 더 채우지 않으면 나의 삶이 너무도 아깝다는 생각에 이르게 된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이곳에 오기 더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으로 스발바르 박물관으로 향했다. 실은 롱이어비엔에 처음 왔던 날 박물관을 방문할까 했다. 아마도 먼저 이곳에 왔다면 취재의 가이드라인이었겠지만 모든 일정을 마치고 오니 열흘 간의 스발바르의 여정을 정리하는 느낌이었다.


먼저 위도와 경도를 보여주며 스발바르가 어디인지 알려준다. 그리고 스발바르가 실은 수억 년 전에 적도 부근에 위치했다는 기막힌 사실도 알려준다. 이미 돌을 깨 식물화석을 발견함으로써 알게 된 내용이었다. 박물관은 조각조각 알게 된 사실들을 하나로 모으는 역할을 했다. 판구조론을 통해 대륙이 어떻게 움직여왔고, 식물화석은 어떻게 석탄을 형성했고, 빙하기로 인해 피오르드와 영구동토층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분야를 나눠두어서 별개인 줄 알았지만 모든 것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눈으로 확인하는 과정이었다.


벽을 하나 돌아 안쪽으로 들어가니 동물들이 있었다. 높은 층고엔 오로라가 떠 있고, 그 아래 북극곰이 어슬렁 거리고 있었다. 너를 참 보고 싶었는데, 다음 기회에 만나.


다음엔 인사해줘


물개와 물범을 만났을 때 사진과 영상을 촬영했지만, 정확히 어떤 이름을 가진 아이들인지 몰랐다. 종이 같다고 해도 모두 다르게 생겼을 법 한데, 우리가 만났던 아이가 이곳에 와 있는 것처럼 똑같이 생겨서 깜짝 놀랐다. 움직이지 않는 전시품이지만 육상빙하를 보러 갔던 타이스텐 위에서 했던 것처럼 손을 흔들며 인사를 했다.


뒤로 돌아보니 관람객들이 동그란 공에 손을 올리고 있었다. 공이 투명했다면 분명 타로마스터가 가지고 있을 법한 신비한 유리구슬이라고 표현했을 것 같다. 하얀 공에 손을 올리면 온도가 따뜻해지면서 공이 점점 붉게 변한다. 그러면 벽에 그려진 빙하가 전시관을 울리며 무너진다. 지구 온난화를 이렇게 표현한다니, 직관적이면서도 생동감 있는 체험이었다. 같은 장소를 몇 년에 걸쳐 촬영해서 빙하가 후퇴하는 모습을 담기도 했는데, 연구원님들이 빙하가 작년에 비해 이만큼 후퇴했다고 말할 때 실감 나지 않았던 부분을 비로소 체감했다.


탄광의 역사, 상징적인 인물 등 그동안 스발바르를 취재하는 동안 알게 된 이야기들을 돌아보며 박물관 관람을 마무리했다. 주된 인물들은 대부분 소개를 했지만, 딱 한 사람 남겨둔 사람이 있다. 로알 아문센. 이름은 어디서 들어봤는데… 누구지? 처음엔 그랬다.


니알슨 과학기지의 중심에 아문센의 흉상이 있다. 니알슨은 북극점과의 거리가 약 1,200km 정도밖에 되지 않아서 북극을 정복하려는 탐험가들에게는 최적의 출발지였다고 한다. 아문센은 1925년에 수상 비행기를 배에 싣고 니알슨에 도착했고, 이때 북극점에 도달하려는 최초의 시도를 한다. 강한 바람과 연료부족으로 인해 비상착륙을 해야 했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전원이 무사귀환을 했다. 1926년에 전략을 수정해 다시 한번 도전을 하는데, 이 모험을 위해 니알슨에 계류탑이 건설된다. 니알슨에 아문센이 비행선을 묶어두었던 계류탑이 여전히 존재한다. 결국 아문센은 비행선 노르게호를 타고 북극점에 도달하게 되고, 인류 역사상 남극점과 북극점을 모두 도달한 최초의 인물로 기록되었다.


그는 스스로를 과학적인 탐험가라고 여겼다고 한다. 북극점에 도달하는 것이 목표였지만, 그 과정에서 기상학, 해양학 등 여러 분야의 데이터를 수집해서 인류의 지식을 넓히는 것이 더 깊은 목표였다. 니알슨 과학기지촌이 그 마음을 이어 지금까지 온 것 같다. 여전히 북극은 미지의 영역이고, 우리는 탐험한다.


이번 여정은 정말 몸이 너무도 고되고 바빴다. 그럼에도 쉬지 않고 모든 일정에 따라 나간 것은 어쩌면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빙하’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어도 니알슨의 모습과 롱이어비엔의 모습은 달랐고, 배를 타고 나가서 본 육상빙하의 모습은 또 다른 경이로움이었다. 내가 본 모든 것을 담으려고 정신없이 뛰어다녔던 것 같다. 흙먼지가 가득한 등산화가 말해주듯이. 하지만 내가 본 것은 극히 일부라는 것을 깨달았고, 더 큰 세상이 보고 싶어 졌다. 어떤 게 더 큰 세상인지도 잘 모르면서 말이다.


언젠가 스발바르에 다시 오게 된다면, 그럴 행운이 다시 나에게 주어진다면, 그때는 취재가 아니라 대자연을 만끽하며 여유롭게 글을 쓰고 싶다. 급하게 일정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빙하 앞에서 오래도록 앉아 얼음이 움직이는 소리를 듣고, 마을에 몇 없는 카페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며 키보드를 두드리는 평화로운 시간을 만끽하고 싶다. 카페가 있는데도 커피 한 잔을 마셔보지 못한 것이 지금까지도 아쉽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마도 그때가 된다면 또 얼굴이 빨갛고 발이 붓도록 돌아다니겠지. 새로운 경험을 해야 한다면서.


떠나야 하는 아쉬움을 달래며 기념품을 쓸어 담았다. 시그니처 북극곰 아이템과 북위 78도가 적혀 있는 기념품. 니알슨에선 이미 북위 79도 킹스베이 배지와 연구소 집업도 사 왔다. 어릴 때는 선물용 기념품을 사는 의미에 대해서 잘 몰랐다. 기념품은 여행의 기념으로 사 오는 것인데, 가지 않은 사람들에게 왜 기념품을 줘야 할까? 여행 횟수가 늘어나고, 선물을 주고받으면서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즐거웠던 시간을 나누는 것이 아닐까. 소중한 사람들과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눌 때 오는 기쁨을 몰랐으니까. ‘굳이’라며 삼키고 나도 별로 궁금해하지 않았다. 그것이 스스로를 외롭게 하는 일이라는 걸 잘 몰랐던 것 같다. 오히려 그때는 고립되기를 바라기도 했으니까.


이번 여행에서 유난히 사람들과 함께 지내야 하는 일이 많았다. 함께 한다는 건 자아를 어느 정도 내려놓아야 하는 일이기 때문에 고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홀로 북극을 보러 왔다면 알지 못했을, 경험하지 못했을 것을 할 수 있었다. 인사조차 어색했던 우린 반갑게 손을 흔들게 되었고, 낯설었던 얼굴들은 ‘북극’의 카테고리에 함께 남은 추억이 되었다. 이제는 사람들과 함께 지내는 것이 제법 재밌다. 낯설지만, 귀찮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면 좋은 것이 되었다.


집 밖은 위험하지만, 탐험할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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