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극의 울창한 숲

14. 화석 탐사

by 윤진

지금은 빙하를 덮고 있는 북극이 수백만 년 전에는 푸르른 이파리가 가득한 온난한 곳이었다면 믿을 수 있을까? 이토록 척박한 곳에서 풀잎하나 빼꼼 고개를 들면 연구대상이 되는 데 말이다.


오전 8시 50분, 전에 조식을 먹었던 마리안즈 호텔에서 극지 아카데미 학생들과 합류하기로 했다. 벌써 3일째 함께 하는 일정이라 꽤나 심리적으로 친밀했다. 오늘은 롱이어비엔 시내에서 보이는 롱이어브린 빙하를 보러 가는 길에 화석을 채집하는 일정이었다.


차량을 타고 이동해 갈 수 있는 근처까지 가서 주차를 했다. 출발하기 전에 지질학 박사님께 관찰해야 할 것들에 대해서 설명을 들은 뒤 개인정비를 했다. 니알슨 다산기지에서 빙하를 한 번 다녀왔기 때문에 제법 자신이 있었다. 불과 며칠 전이지만 그때는 등산화를 제대로 신는 방법을 잘 모르기도 했고, 베스트레 브뢰거브렌 빙하까지 걸어가는 길에 수많은 돌에 자꾸 발목이 꺾이는 바람에 발목 통증이 꽤나 심했다. 이렇게 저렇게 시도해 보았는데 나는 두꺼운 수면양말을 하나 더 신고 신발을 단단히 매는 것이 잘 맞았다. 이제는 돌길을 오래 걸어도 문제가 없다.


극지 아카데미 학생들이 점심을 챙길 때 간식정도만 챙겨 몸을 최대한 가볍게 하고, 바람이 많이 부는 날이라 옷은 단단히 잠그고, 선글라스를 장착했다. 이 정도면 제법 경험자 티가 나는 것 같다. 여유로움을 풍기며 카메라를 들고 길을 나섰다. 하지만 우리가 이곳에 있는 동안 일 평균 온도가 가장 높은 날이었고, 최고 온도 16도에 구름 한 점 없이 해가 쨍쨍했다. 게다가 경사진 언덕길이라 웃옷을 하나씩 벗어서 허리에 묶기 시작했다. 너무 단단하게 옷을 입은 탓에 허리가 점점 무거워졌다. 그래도 하산할 때는 추울 수도 있으니 따뜻하게 입고 온 걸 후회하지는 않기로 했다.


1시간쯤 걸었을까 롱이어브린 빙하 인근 돌무더기 땅에 도착했다. 이곳은 빙하가 오랫동안 깎아온 암석이 쌓이며 만들어진 지형이다. 빙퇴석이라고 하는데, 롱이어브린의 빙퇴석은 아래 얼음으로 가득 차있다고 한다. 만일 그 얼음이 녹기라도 하면 갑자기 땅이 꺼질 수도 있다고 했다. 그래서 총기를 들고 지원을 온 현지 가이드 분들이 먼저 다니면서 무너지는 곳이 없는지 확인해 주었다.


안전을 확인받고는 본격적으로 화석을 찾기 시작했다. 이미 누군가 돌을 갈라보았거나, 자연이 갈라놓은 돌 위로 화석이 드러나 있기도 했다. 층이 나타나는 돌에 화석의 꽁무니가 보이면 망치에 망치를 대고 톡톡 두드려 깬다. 생각보다 돌이 꽤 깔끔하게 반쪽이 난다. 화석은 한 층이 만들어지면 표면이 가장 약한 상태가 된다고 한다. 그래서 망치로 톡톡 치면 양쪽 면에 화석이 나눠 붙거나 한쪽에 붙어 깨지는 것이다. 처음에는 여기저기 부서져 애써 찾은 화석이 망가지는 것 같아 속상했다. 하지만 점차 익숙해짐에 따라 온전한 화석을 더 많이 찾아냈다. 가끔은 하나의 단면에 여러 화석이 발견되기도 했다.


돌에 선명히 나타난 신생대 식물화석


이곳에서 발견되는 화석은 대부분 식물화석이었다. 고사리류의 양치식물, 침엽수잎이나 나무껍질 모양도 찾아볼 수 있었고, 메타세콰이어의 잎 모양도 있었다. 종종 솔방울도 찾을 수 있다고 했지만 역시 자연은 다 보여주지 않는다. 지금으로부터 약 4천만 년에서 6천만 년 전쯤을 신생대 팔레오기라고 하는데, 당시 이곳이 온난하고 숲이 울창한 환경이었다고 한다. 지금은 나무 한 점 없고, 눈과 얼음을 상상하는 것이 더 당연한 북극이 사실은 울창한 숲이었다니 믿어지지가 않았다. 하지만 돌에 새겨진 선명한 잎맥이 그 사실을 말해주고 있었다.


실제로 보지는 못했지만 이곳에서 발견할 수 있는 화석이 더 있었다. 암모나이트, 조개류, 해면동물 같은 것들. 가끔은 어룡 같은 거대한 해양 파충류의 뼈가 발견되기도 한다고. 돌에서 뼈의 모습을 발견하면 정말 짜릿할 것 같았다. 하지만 찾는 족족 식물화석만 나와서 아쉬웠다. 그 화석들은 약 1억 년에서 2억 5천만 년 전, 중생대에 살던 것들이라고 한다. 그 시기에는 이곳이 얕은 바다였다. 신기했다. 숲이었던 때도 있고, 바다였던 때도 있고, 지금은 얼음이 덮인 땅이 되었다. 두 발을 딛고 서 있는 이곳이 수천만 년을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는 곳이라니.


여러 시대를 거쳐 지층은 켜켜이 쌓이다 산의 형태를 하게 되고, 그 위에 내려앉은 빙하는 움직이며 산의 계곡을 깎아 내려온다. 내려오는 길에 산 위쪽에 있는 신생대의 암석과 아래쪽에 있는 중생대의 암석을 들고 와 가장자리에 내려놓는다. 그래서 수천만 년이 차이가 나는데도 한 데에 섞이게 되는 것이다.


시대가 뒤섞이는 비슷한 경험을 니알슨에서도 한 적이 있다. 다산기지에서 모두를 배웅하고 난 뒤, 미디어팀만 기지대장님과 함께 인근에 화석탐사를 갔다. 기지에서는 4km 정도 떨어진 곳이었는데 이곳은 신생대와 고생대가 공존했다. 롱이어브린의 빙퇴석과는 다른 원리로 생긴 현상인데, 신생대 초기에 양쪽에서 밀어붙이는 횡압력이 강하게 발생하면서 역단층이 생기고, 오래된 지층이 최근에 생긴 지층 위로 올라온 것이다. 스러스트 단층. 수능 사회탐구 과목으로 한국지리와 세계지리를 하면서 꽤나 지독하게 지리를 공부했었는데, 그때 스치며 들었던 기억이 난다.


돌무더기들 사이에서 신생대에 살았었다며 존재감을 드러내는 식물 화석을 발견했다. 그리고는 열 발자국 정도 갔을 때 거대한 계단 하나가 있는 것처럼 높은 턱이 보였다. 역단층으로 신생대 지층 위로 올라온 고생대 지층이었다. 그곳에는 산호 화석이 돌에 빼곡히 붙어있었다. 오래전 이곳이 바다였음을 알리는 증거였다. 동그랗고 중앙이 비어있는 듯한 고리형태를 하고 있는 것들이 아주 딱딱하게 달라붙어 있었는데 이것이 산호의 단면이라고 했다. 파이프처럼 생긴 것은 산호의 줄기 부분이라고. 산호화석을 가까이에서 보면서 바닷속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산호군락이 많았다면 아마 따뜻하고 얕은 바다였을 것이다.


고생대 산호화석


시기적으로 연속되기 어려운 시대의 화석은 단층 때문에 생기기도 하지만, 대부정합 때문에 생기기도 한다. 바다 밑에 있던 땅이 물 위로 올라오면서 육지가 되었는데 여기에 퇴적물이 쌓이지 않는 경우가 있다. 오히려 비, 바람, 강물 같은 것으로 인해 깎여 나가기만 하는 것이다. 그러다 다시 지반이 가라앉으면 땅에 올라갔던 시기의 기록은 전혀 남지 않는 것이다. 롱이어비엔의 대부정합으로 인한 기록 삭제의 피해자는 후기 백악기였다. 공룡들이 한창 번성하고, 활발히 활동했지만, 결국 멸종을 맞이했던 그 시기 말이다. 하필 그때 스발바르에 융기와 침식이 일어나는 바람에 공룡 발자국은 얻기 힘들게 되었다. 아예 없는 것은 아니겠지만, 아무래도 찾는 것이 어렵다고 한다.


화석 탐사를 마치고 간단한 간식타임을 갖은 뒤로 롱이어브린 빙하에 다가갔다. 빙하 위를 걷는 사람들이 보였다. 우리가 온 길의 반대쪽으로 올라온 모양이었다. 아쉽게도 우리가 서 있는 곳에서 빙하까지는 길이 조금 위험해 보였다. 원래는 다녀도 크게 문제없는 길이었는데 영구 동토층이 무너지면서 가까이 가기 어려워졌다. 롱이어비엔에서는 이런 일들이 종종 생겼다. 현지 가이드들이 원래 다니던 길이라며 안내하지만 요 며칠 사이에 무너져버린 탓에 목적지로 향하지 못한 경우가 더러 있었다.


높은 빙퇴석에 서서 두 번째로 만난 빙하와 사진을 찍었다. 빙하는 폭포가 떨어지는 듯한 소리를 내며 물을 쏟아냈고, 물은 마을로 쏟아지고 있었다. 공동묘지를 보러 가는 길에 본 강의 출처를 가까이서 보니 마음이 좋지만은 않았다.


왕복 3시간쯤 될 줄 알았던 일정은 6시간 남짓 되었다. 간식만 챙겨간 탓에 배고픔에 굶주렸고, 화장실은 갈 수가 없으니 물도 마음대로 마시지 못했다. 일정 내내 피곤하고 힘든 내색을 하는 것이 어려웠지만, 왠지 학생들 앞이라 더 어려웠던 것 같다. 올라오는 길보다 내려가는 길이 더 험하니 긴장을 놓을 수도 없었다. 무조건 밥을 먹으러 가야겠다는 일념 하나로 마을로 내려온 우리는 식당으로 직행해 요리가 나오기도 전에 생맥주 한 잔으로 허기를 달랬다. 술이라고는 평소에 잘하지 않는 데도 불구하고 그날은 참 맥주가 당겼던 것 같다.


고된 하루엔 정말 이만한 게 없네요, Svalbard Bryggeri NÅIPA


극한의 환경에서 그만한 것을 보았다. 물론 힘든 것이 다 지나고서야 하는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살아가면서 수억 년 전의 이야기를 언제 들을 수 있을까? 숲이었던 곳이 바다가 되기까지, 바다였던 곳에 얼음이 얼고, 그 얼음이 다시 녹을 때까지 수많은 생명체가 이곳에 존재했다는 것이 경이롭기만 했다. 우리가 밟고 있는 땅이 세상을 끊임없이 기록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체감됐다. 커다란 변화를 겪는다고 할지라도 완전히 그 모습이 바뀌었다고 할지라도 내가 여기에 있었다고 말하는 것 같다.


‘혹시 화석을 통해서도 기후 변화를 연구하나?’

문득 든 의문이었다.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화석에 남은 생명체의 흔적에서 성장을 볼 수 있다고 한다. 층으로 이러한 흔적이 남는데, 층은 분석하면 당시의 산성도나 이산화탄소 농도 같은 것을 알아낼 수 있다고. 게다가 그 당시 어떤 생물들이 살았고, 혹은 사라졌는지 나타나기 때문에 환경에 의해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도 데이터화시킬 수 있다. 과거에 대해서 분석이 가능하다면 미래에 대한 예측도 가능하다. 물론 과거에 비해 지구 온난화의 속도가 너무도 빠르기 때문에 이를 고려해서 결과를 산출해야 하겠지만 말이다.


지구에 새겨진 기록을 찾아내 우리가 읽어낼 수 있는 기록으로 해석하고 만들어내는 것. 그것이 연구원분들이 하고 계시는 일인 것 같다. 그 이야기들을 간접적으로나마 접할 수 있었던 것에 감사하고, 그 이야기를 조금 더 대중적인 언어로 이야기하고 싶었다. 사실 그동안 적었던 이야기를 돌아보았을 때 아직 부족하다고 느낀다. 그럼에도 보고 들은 것들을 꺼내놓고 싶었다. 전부 담을 수 없음에도 수많은 돌 사이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어 보여주는 화석처럼.


작가의 이전글넓게 보기, 자세히 보기, 다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