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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근거림 Oct 22. 2023

나는 공상을 좋아하는 아이였다

수능이 한 달 앞으로 다가왔다. 일 년에 한 번 치르는 수능시험은 진로 방향을 결정하게 되는 생의 중요한 과정이다. 물론, 대학에 반드시 진학해야만 자신에게 적합한 진로를 찾아갈 수 있는 건 아니다. 요즘은 특히 개인의 경쟁력을 강조하는 시기이다. 그러나 사회생활을 해본 사람이라면 학력이 알게 모르게 한 사람의 능력이나 근면함을 판단하는 수단이 된다는 걸 알고 있을 것이다. 학력이라는 단순한 기준으로는 한 사람의 태도, 가치관, 삶의 경험 등을 알 수 없다. 어떠한 계기를 토대로 어울리며 겪어보아야만 자신의 시각으로나마 누군가를 알아갈 수 있다. 


나는 경기도에 있는 사 년제 대학교를 졸업했다. 이마저도 추가 합격을 통해 진학했으니 대학교에 진학했다는 자체가 감사할 따름이다. 나의 고등학교 시절은 방탕(?)했다. 사전적 의미로는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없을 것 같지만, 청소년기의 중요한 과업에 소홀했다는 의미로 사용했다. 청소년기는 자아정체감을 형성해 가는 시기이다. '나는 누구인가?'에 관해 스스로 답해보며 자신의 선호나 흥미, 적성 등에 관해 알아가는 때라고 볼 수 있다. 자신에 대해 스스로 알아가기 위해서는 체험이 필수적이다. 자신의 생각이나 의지, 판단으로 여러 갈래의 중에 가지를 선택하고, 길에 놓인 다양한 사람과 환경, 사물접하고, 끝에서 어떠한 경험이었는지를 돌아보며 스스로 성찰해 보는 과정이 거듭 되어야 한다. 자기 자신으로 삶의 순간들을 경험할 수 없다면, 스스로 돌아볼 수 없다면 누군가에게 의존하며 시도하는 걸 두려워하게 될 수 있다. 자극이 먼저 주어지지 않는 한 스스로 경험해 보려는 노력을 나는 기울이지 않았다. 무엇을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구별할 줄도, 구별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도 모른 채로 성인이 되어버렸다.


"수호는 사회복지학과가 잘 어울릴 것 같은데"


교무실에서 진학 면담을 하던 담임 선생님은 말했다. 수시를 써볼 수 있는 학교로는 어디가 있고, 이마저도 합격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수 있다고. 그리고 사회복지학과가 잘 어울릴 것 같다고. 대학교 진학에 관해 아무런 생각이 없었던 나는 담임 선생님의 제안으로 원서를 쓸 학교와 학과를 결정하게 되었다. 어딜 보아서 사회복지학과가 어울릴 것 같은지, 학과의 전망은 어떠한지, 가서 무엇을 배우게 되는지 물어보거나, 알아보아야 한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수시는 쓰지 않았고, 정시로 대학교에 합격했다. 돌이켜보면, 대학 진학에 관심이 없었던 내가 진학해야만 했던 이유는 '대학은 가야 한다'는 암묵적 규칙 때문이었다,


Image by mcredifine from Pixabay


고등학교 이학년 때부터 야간자율학습을 했다. 지정된 좌석에 앉아 공부를 제대로 해본 적은 단연코 없었다. 당번으로 근무하는 선생님이 복도를 수시로 오가는 삼엄한 경계 속에서도 이어폰을 쉽사리 빼지 않았다. 야자 시간의 대부분을 라디오나 음악을 듣거나, 상상하는 데 사용했다. 나는 일찍이 공상하는 걸 좋아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집에서 혼자 노는 시간이 많았다. 엄마는 집안일에 신경 쓰거나 여가를 즐기느라 바빴고, 아빠는 일을 하느라 좀처럼 여유를 내지 못했다. 누나는 독립적이면서도 활발하여 일찍이 친구들과 바깥에서 어울려 놀았다. 내 방이 없었던 나는 누나가 비우고 떠난 방을 차지하여 노는 편이었다. 로봇이나 인물로 된 장난감을 주로 들고 갔는데, 이불을 산처럼 만들어 놓고 하늘을 나는 캐릭터들과 그들의 격투를 세세하게 묘사하다 보면 금세 밤이 되고는 했다. 


공상을 하는 시간은 점차 삶의 일부가 되었다. 야자 시간에도 이야기를 끊임없이 생산했다. 이때는 어려운 환경에도 불구하고 노력과 인연을 토대로 끝내 이겨내는 극적인 이야기를 주로 상상했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대부분 '나'거나 특정적인 모습이 닮은 인물이었고, 현실의 상황을 옮겨오는 경우가 많았다. 이를 테면, 조용했던 내가 꾸준히 노력한 노래 실력을 축제에서 뽐내며 환호를 받는다든지, 아침저녁으로 부지런히 운동하고 가꾼 외모로 친구들의 관심을 끈다든지, 산에서 우연히 만난 초능력자의 도움을 받아 하늘을 나는 능력을 배워 동네 밖을 마음껏 돌아다닌다든지 하는 이야기는 클리셰에 속하는 편이었다. 

 

잠에 들기 전은 공상하기에 풍족하고 안전한 순간이었다. 어둑하고 고요한 분위기는 이야기를 고조시키기에 적합했다. 나는 꿈도 자주 꾸는 편이었다. 현관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온 검은 정장의 사내들 중 한 명이 쏜 총에 맞아 쓰러지는 꿈, 이모가 살던 아현동 골목골목을 누군가에 쫓기며 도망가던 꿈, 공사현장 꼭대기에 있던 구조물에서 깊은 강물로 끝없이 추락하던 꿈처럼 여전히 생생하게 기억하는 꿈도 많다. 


그중에서 다시 꾸고 싶은, 깨고 싶지 않았던 꿈이 하나 있었다. 초등학교 삼 학년 즈음이었다. 나는 당시 '슛'이라는 만화책을 읽고 있었다. 축구에 관한 내용이었고 세 명의 주인공이 친구로 등장한다. 어릴 때부터 함께 축구를 해오던 이들이 한 팀으로 위기를 함께 극복해 가는 내용이다. 꿈에서 나는 그들의 친구로 등장했다. 축구를 하던 장소는 다니던 초등학교였는데, 그곳에서 우리 넷은 웃으며 축구공을 주고받았다. 엄마의 부름으로 잠에서 깨게 되었지만, 감격한 나머지 꿈에서 빠져나오며 눈물을 흘렸다. 계속 어울리고 싶어 엄마에게 투덜거리며 다시 잠에 들고자 했지만, 그들은 그 이후로 내게 나타나지 않았다. 


시도하는 걸 두려워하는 내게 상상은 달콤했다. 나는 그 무엇도 할 수 있고, 될 수 있었다. 80kg에 육박한 몸이 다부진 체격으로 바뀌기도 했고, 음치에 가까웠던 실력이 가수 못지않게 변할 수도 있었다. 이처럼 상상은 불만족스러운 현실을 역전시키는 마법의 시간이었다.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좋아하는지 알지 못하고, 알아야 할 생각을 하지 못하고, 불현듯 다가오는 상황을 회피하고 싶을수록 눈을 감고 떠올렸다. 시간을 거스르고, 현실을 뛰어넘으며 무엇이든 거뜬히 해내고 위기를 넘기며 성장했다. 눈을 감으면, 눈만 감으면 나는 현실을 외면하고, 마음을 억압하고, 나를 위한 이야기꾼이 되어 다만 위안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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