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에는 편지 쓰는 걸 좋아했다. 하지 못한 말을 전할 수 있고, 듣지 못한 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전보다 말을 편히 꺼낼 수 있게 되었다. 마음을 스스로 알아주다 보니 적절히 반응할 수 있었다.
편지를 쓴다고 해서 반드시 답장으로 돌아오지 않는다는 걸 또한 깨달았다. 순수하게 편지를 쓴 경우가 드물었다. 무언가를 전하거나, 받기 위해 글자를 써 내려갔다. 마음을 인식하고, 인정하고, 표현하거나 받아들이며 관계가 안정되자 편지라는 도구를 구태여 찾지 않게 되었다.
'편지'라는 주제로 글을 쓰려고 보니, 무언가를 갈망할 때 편지지를 찾았다는 걸 깨달았다. 나 스스로에겐 그토록 허용적이었으면서, 저마다의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겐 왜 바라기만 했을까? 문득, 짤막하게나마 떠오르는 사람들의 입장을 헤아리는 편지를 쓰고 싶어졌다. 현실에서의 나는 움츠러 있었으면서, 편지에서의 나는 온통 내 얘기뿐이었으니까.
# 1
가끔은 네가 어떤 생각일지 궁금할 때가 있어. 그만큼 너는 내게 소중한 대상이야. 네가 행복하기를 바라고, 웃는 순간이 더 많았으면 해. 우리의 관계는 흐르고 흘러 다시 안정된 시기에 접어든 것 같아. 나는 독립을 마쳤고, 너는 회사에서의 적응을 마쳤지. 너의 행복을 위해서는 결국 내가 더 행복해지는 게 필요할 거란 생각이 들어. 내가 행복한 모습을 더 보이면, 너 또한 즐거워하겠지? 위 문단에 분명 저마다의 입장을 헤아리는 편지를 쓰겠다고 했는데. 나는 또다시 내 얘기를 하고 있네. 내가 보낸 수많은 편지가, 편지에서 나는 하지 못하고, 받지 못한 말들을 온통 적어갔을까?
진심은 한편에 감춰두고, 네게 사랑받으려고만 했던 것 같아. 일관되지 않고 불안정한 나를 보며 너는 어떤 마음을 품었었을까? 13년이라는 시간은 결코 짧지 않은데, 곁에 있어주어서, 함께여서 고마워. 그리고 미안해. 나를 향해 전념하던 네 모습이 이따금 떠올라. 그때 넌 어떤 마음이었을까? 우리의 시간은 돌이킬 수 없고, 그때와 같은 마음이 될 수는 없겠지만, 지키기 위해 노력해 볼게. 내가 나를 더 자유로이 받아들이도록. 표현하도록. 함께 보내는 순간들이 서로에게 더욱 편안하도록. 그리하여 네가 기꺼이 머무를 수 있도록.
# 2
문득 생각하면 두 분께 저는 드린 것이라곤 근심 밖에 없는 것 같아요. 아들이라는 이유로 저만 이렇게 특혜를 받아도 되는 걸까요? 두 분은 부모님께 제대로 받지 못했는데, 왜 받지 못한 걸 스스로 더 챙기지 않고 제게 주시나요. 저는 두 분의 방식이 원망스러울 때가 있었어요. 많았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에요. 한 분은 외면하고, 한 분은 간섭하셨었으니까요. 그 사이가 저는 너무 혼란스러웠어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시간을 허비하며 살아왔던 것 같아요.
분노의 계곡에서 한참을 헤매고 돌아오니, 좌절과 사랑이라는 각각의 절벽과 틈이 누구에게나 있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두 분도 그러셨지요? 저와 같은 시기를 거치셨지요? 그리고 저를 낳으시고 갑작스레 가장이 되셨지요? 자녀들을 돌보아야 한다는 의무를 부여받고, 지켜내기 위해 노력하셨지요? 저는 이제 부모님의 좌절을 헤아릴 수 있어요. 두 분을 원망하지 않아요. 그냥 이따금 감사하고, 서운하고, 그런 것 같아요.
갑자기 마무리하는 것 같지만, 함께 지내주어서, 사랑을 주셔서 감사해요.
역시 관계는 서로가 뒤엉키며 이루어지는 과정이다. 사람들의 입장을 헤아리기 위해 내가 필연적으로 등장한다. 나만 혹은 너만 존재하는 관계는 성립하지 못하는 조건인 것 같다. 그리하여 내가 쓴 어느 편지에서나 나는 생생하게 존재한다.
마찬가지로 한 사람을 떠올릴 때 주된 감정은 있어도, 한 가지 감정만 떠오르지 않는 것 같다. 짤막한 편지에도 한 사람을 향한 다채로운 마음이 고스란히 담긴다.
환절기가 되면 두 계절이 공존한다. 한 계절이 시작되고, 다른 계절은 끝이 난다. 후회하는 경향이 큰 나는 다가올 미래보다 지나온 과거에 집착하는 편이다. 갑작스러운 무더위에 지는 봄꽃을 떠올린다. 익어가는 단풍에 희미해 가는 풀향을 떠올린다. 코끝이 시린 추위에 서둘러 지는 석양을 떠올린다. 움트는 새싹에 겨우내 웅크렸던 마음을 떠올린다. 왜 그토록 웅크리고 있을까? 스스로 알아주는 것만으로도 이토록 따뜻하기만 한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