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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근거림 Nov 19. 2024

부치지 않을 짤막한 편지

과거에는 편지 쓰는 걸 좋아했다. 하지 못한 말을 전할 수 있고, 듣지 못한 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전보다 말을 편히 꺼낼 수 있게 되었다. 마음을 스스로 알아주다 보니 적절히 반응할 수 있었다. 

편지를 쓴다고 해서 반드시 답장으로 돌아오지 않는다는 걸 또한 깨달았다. 순수하게 편지를 쓴 경우가 드물었다. 무언가를 전하거나, 받기 위해 글자를 써 내려갔다. 마음을 인식하고, 인정하고, 표현하거나 받아들이며 관계가 안정되자 편지라는 도구를 구태여 찾지 않게 되었다.


'편지'라는 주제로 글을 쓰려고 보니, 무언가를 갈망할 때 편지지를 찾았다는 걸 깨달았다. 나 스스로에겐 그토록 허용적이었으면서, 저마다의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겐 왜 바라기만 했을까? 문득, 짤막하게나마 떠오르는 사람들의 입장을 헤아리는 편지를 쓰고 싶어졌다. 현실에서의 나는 움츠러 있었으면서, 편지에서의 나는 온통 내 얘기뿐이었으니까.


# 1

가끔은 네가 어떤 생각일지 궁금할 때가 있어. 그만큼 너는 내게 소중한 대상이야. 네가 행복하기를 바라고, 웃는 순간이 더 많았으면 해. 우리의 관계는 흐르고 흘러 다시 안정된 시기에 접어든 것 같아. 나는 독립을 마쳤고, 너는 회사에서의 적응을 마쳤지. 너의 행복을 위해서는 결국 내가 더 행복해지는 게 필요할 거란 생각이 들어. 내가 행복한 모습을 더 보이면, 너 또한 즐거워하겠지? 위 문단에 분명 저마다의 입장을 헤아리는 편지를 쓰겠다고 했는데. 나는 또다시 내 얘기를 하고 있네. 내가 보낸 수많은 편지가, 편지에서 나는 하지 못하고, 받지 못한 말들을 온통 적어갔을까?

진심은 한편에 감춰두고, 네게 사랑받으려고만 했던 같아. 일관되지 않고 불안정한 나를 보며 너는 어떤 마음을 품었었을까? 13년이라는 시간은 결코 짧지 않은데, 곁에 있어주어서, 함께여서 고마워. 그리고 미안해. 나를 향해 전념하던 모습이 이따금 떠올라. 그때 어떤 마음이었을까? 우리의 시간은 돌이킬 없고, 그때와 같은 마음이 수는 없겠지만, 지키기 위해 노력해 볼게. 내가 나를 자유로이 받아들이도록. 표현하도록. 함께 보내는 순간들이 서로에게 더욱 편안하도록. 그리하여 네가 기꺼이 머무를 수 있도록. 


2

문득 생각하면 두 분께 저는 드린 것이라곤 근심 밖에 없는 것 같아요. 아들이라는 이유로 저만 이렇게 특혜를 받아도 되는 걸까요? 두 분은 부모님께 제대로 받지 못했는데, 왜 받지 못한 걸 스스로 더 챙기지 않고 제게 주시나요. 저는 두 분의 방식이 원망스러울 때가 있었어요. 많았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에요. 한 분은 외면하고, 한 분은 간섭하셨었으니까요. 그 사이가 저는 너무 혼란스러웠어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시간을 허비하며 살아왔던 것 같아요.

분노의 계곡에서 한참을 헤매고 돌아오니, 좌절과 사랑이라는 각각의 절벽과 틈이 누구에게나 있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두 분도 그러셨지요? 저와 같은 시기를 거치셨지요? 그리고 저를 낳으시고 갑작스레 가장이 되셨지요? 자녀들을 돌보아야 한다는 의무를 부여받고, 지켜내기 위해 노력하셨지요? 저는 이제 부모님의 좌절을 헤아릴 수 있어요. 두 분을 원망하지 않아요. 그냥 이따금 감사하고, 서운하고, 그런 것 같아요. 

갑자기 마무리하는 것 같지만, 함께 지내주어서, 사랑을 주셔서 감사해요. 


역시 관계는 서로가 뒤엉키며 이루어지는 과정이다. 사람들의 입장을 헤아리기 위해 내가 필연적으로 등장한다. 나만 혹은 너만 존재하는 관계는 성립하지 못하는 조건인 것 같다. 그리하여 내가 쓴 어느 편지에서나 나는 생생하게 존재한다.

마찬가지로 한 사람을 떠올릴 때 주된 감정은 있어도, 한 가지 감정만 떠오르지 않는 것 같다. 짤막한 편지에도 한 사람을 향한 다채로운 마음이 고스란히 담긴다.


환절기가 되면 두 계절이 공존한다. 한 계절이 시작되고, 다른 계절은 끝이 난다. 후회하는 경향이 큰 나는 다가올 미래보다 지나온 과거에 집착하는 편이다. 갑작스러운 무더위에 지는 봄꽃을 떠올린다. 익어가는 단풍에 희미해 가는 풀향을 떠올린다. 코끝이 시린 추위에 서둘러 지는 석양을 떠올린다. 움트는 새싹에 겨우내 웅크렸던 마음을 떠올린다. 왜 그토록 웅크리고 있을까? 스스로 알아주는 것만으로도 이토록 따뜻하기만 한데.  


Image by Pexels from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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