엠씨는 초집중!
보통 30분~ 1시간 정도의 강연이 끝난 후에, Q&A를 중심으로 한 토크콘서트가 진행된다.
이 시간은 20분에서 길면 40분까지도 주어지는데, 시간대별로 시뮬레이션을 한 번 해보자.
1. 처음 ~ 5분
객석에서는 아무도 손들지 않는다. 강연의 여운이 남아서이기도 하지만, 대한민국에서 이 타이밍에 손을 드는 행위는 '어디가서 튀는 짓 하지 마라'는 어머니의 말씀을 정면에서 위반하는 행동이 된다. 정말 특수한 캐릭터가 아닌 이상 이 타이밍에 손을 드는 사람은 없을 것이기에, 진행자는 강연을 들으면서 '내가 관객이라면 어떤 질문을 하면 좋을까?' 를 생각해두는것이 좋다. 이 첫번째, 두번째 질문을 기획팀이 제시한 사전질문으로 대체하거나, 신변잡기에 관한 질문으로 넘겨버리면 5분~10분 시간대에서 좋은 질문이 나오기 어렵다.
나는 보통 강의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장면을 복기하며 해당 내용에 대한 더 상세한 설명을 요청하거나, 아예 가장 원론적이고 본질적인 문장을 열린질문으로 던지곤 한다. 아래의 예시를 보자.
(1) 상세한 설명 요청하기의 예
(강사가 '푸드테크'와 관련된 전문가로, 미래의 식량에 대해 강연한 후의 예시다)
아까 보여주신 슬라이드에 '인공 쇠고기' 라는게 있었는데요, 아니 사진만 봐서는 그냥 도축해서 나온 소고기 같던데, 그게 실험실에서 만들어진거라고요? 저는 정말 처음들어보는데... 그럼 실험실에서 만들어진 음식이 소고기 말고 또 뭐가 있나요? 무슨 사시미나 치킨같은것도 만들고 그러려나요?
=> '쇠고기'가 충격적이었으니, '쇠고기'와 수평적으로 동등한 개념들, 물고기나 닭고기도 나올 수 있겠다. 맥락상 물고기나 닭고기도 개발된다고 답할 확률이 매우 높고, 개발이 안되어 있더라도 '추후에 계속 개발이 될것으로 보입니다' 라고 답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이렇게 질문을 끌고 가면서 쇠고기, 물고기, 닭고기의 유개념인 '인류의 일상적인 식사'라는 단위로 넘어간다. 다음 질문은 이렇게 되겠지.
==> "그럼 우리 식탁에 올라가는 음식들이 대부분 다 실험실에서 만든것들로 대체가 될 수 있다는 거지요? 그럼 소나 돼지를 키우고, 잡고, 물고기를 잡고, 그 잡을 배를 만들고, 거기 투입될 인력들까지 전부 다 영향을 받는다는건가요? 그럼 이건 뭐 실험실에서 음식만든다고 놀랄게 아니라, 천지개벽이 올 기센데, 거기에 더 놀라야 할 것 같은데요?" 실험실의 식재료가 인류 생활에 직접적으로 큰 영향을 미친다고 확신하면서 질문을 던진다.
북토크나 작가와의 대화같은 토크말고, 전문가를 중심으로 질의응답하는 토크콘서트는 푸드테크던, 예술이던, 정치던 아무튼 패널이 다루고 있는 그 주제가 '엄청난 영향을 미치겠는데요?' 라고 묻는것이 아주 중요하다. 그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다들 시간내서 그거 들으러 온거니까. 이 타이밍부터 다시 집중을 시작한다.
우리는 죽었다 깨나도 토크콘서트 패널이 가진 전문성의 반의 반에도 도달할 수 없다. 질문하기 위해서는 전문성이 아니라 '호기심'이 필요하다. 그가 말한 개념들을 이리저리 조합하고, 스스로의 삶에 대입했을 때 가장 편안하고, 가장 보편적인 수준의 좋은 질문이 형성될 수 있다.
(2) 본질적인 질문 던지기의 예
'예술을 한다...술 중에 제일 독한게 예술이라죠? 어찌보면 우리는 모두 기본적인 표현욕구가 있습니다. 내가 존재한다는 것, 내가 이런 생각을 한다는 것, 내가 이렇게 대단하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서 SNS를 하거나, 동창회에 나가거나 하잖아요? 그런데 예술가들은 이 '표현욕구'를 굉장히 고도화된 작업에 투영해서, 그걸 아예 직업적으로 하는 사람들인것 같아요. ㅇㅇㅇ님은 이 과정에서 피로를 느끼지는 않으실지요? 하루의 시간을 오롯하게 표현에 집중하는 건 참 어려운 일일것 같은데요.
=>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패널이 '예술은 나에게 ~~~이라는 의미이다' 라는 정의를 내려야만 한다. 이 형태의 질문을 던질 거라면, 진행자가 ㅇㅇㅇ 님에게 예술이란 무엇인가요? 라고 직접적으로 질문을 던지는 것보다는, 패널이 직접 질문을 형성하고 답변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 그냥 질문해버리면 너무 재미없고 고루하다. 또 질문의 무게감이나 스케일때문에 패널이 숨이 턱 막혀버리기도 하고
2. 5분~10분
이제 슬슬 사람들이 손을 들기 시작한다. 보통 이 타이밍에 손을 드는 사람들이 가장 좋은 질문을 던진다. 질문자들의 아이스브레이킹이 일어나는 시간대이기 때문에, 아마도 이 타이밍에 손을 드는 사람은 연사가 강연한 주제에 대해 평소부터 관심이 있었고, 연사에 대해 충분한 정보가 있고, 지금 던지는 이 질문도 평소부터 생각했던 내용일 가능성이 높다.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이들의 질문내용을 재구성하는것에 있다.
아무리 똑똑한 사람이라고 해도, 즉석에서 질문할 내용을 주술구조를 딱딱 맞춰서 던지기는 매우 어렵다. 카이스트 박사던, 책을 스무권 낸 작가던, 본인이 질문자로 마이크를 잡으면 대부분 횡설수설하게 마련이다. 그래서 그거 정리하라고 우리같은 사람들이 거기에 의자에 마이크 차지하고 앉아있는거다. 우리가 하는 말은 옆에서 타이핑하는 사람이 받아적었을 때, 토씨하나 수정 안해도 글로써 가치가 있을 만큼 정돈되어 있는 상태여야 한다.
예를 들어, 질문자가 의도한 문장이 아래와 같다고 하자.
"청년들에게 소정의 수당을 주는 정책은 처음 있는 일인데, 이 정책의 1년 후 성과를 어떻게 기대하시고, 성공의 기준을 어떻게 설정하고 계신가요? 그리고 그 이후의 확대방안에 대해서도 궁금합니다"
이렇게 똑 떨어지는 문장으로 질문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만약 있다면 기획팀이 심어놓은 스태프이거나, 이미 답을 알고 있으면서도 연사와의 유대감 형성을 위해 '준진행자'로 질문을 던진것이다.(고마운 사람이지)
질문에는 여러가지 불필요한 정보들이 덕지덕지 붙어서 최종적인 문장으로 출력된다.
감사의 표현, 인연에 대한 이야기, 배경설명, 주관적인 맥락의 설명, 개인사, 겸양의 표현이 덧붙여지면 저 짧은 문장이 이렇게 길게 변한다.
"어...강연 너무 잘 들었구요...예전부터 꼭 직접 와서 강연 듣고 싶었는데 오늘 만나뵙게 되어서 정말 너무 좋았다는 말씀 먼저....드리고 싶었습니다. 저는 경기도에 살고 있는 20대 청년이구요. 지금 학교에서 행정학을 공부하고 있는데, 오늘 이 자리가 저한테 너무 큰 의미가 될 것 같습니다. 저는 두가지 질문을 드리고 싶은데요. 먼저 기본소득에 대한 정책은 우리나라에서도 정말 오래전부터 논의 자체는 진행되었던 것으로 아는데...이게 북유럽 국가들의 모델을 그대로 차용할 수는 없을 것 같고.. 저는 이번에 수당을 받는 대상 나이에서 두살 빗겨나가기는 했는데요, 그래도 이 정책이 우리 청년들에게 정말 큰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은 하고 있습니다. 저도 토익신청을 하거나, 학원을 가거나, 교통비 같은게...은근히 큰 부담이 될 때도 있기는 하는데요, 저보다 더 어려운 처지에 있는 친구들에게는 정말 의미가 있을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과연 이 정책이, 반대하는 사람이 이렇게 많은 상황에서 또 내년에 계속 될 수 있을지, 저희 아버지 같은 경우에는 이 광고를 보자마자 굉장히 화를 내시면서 공짜로 돈을 퍼주는게 어디있냐, 라면서 막 화를 내시기도 했거든요. 어머니는 그래도 수긍을 하시는 편이기는 한데, 보통 50대 60대 부모님 세대에서는 이걸 잘 이해를 못하실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강사님이 생각하시는 이 정책의 3년후의 모습은 어떨지. 저는 좀. 예. 질문을 드리고 싶었습니다"
자 이제 어떡할건가.
진행자는 일단, 객석질문이 시작되면, 그 내용에 모든 집중을 기울여야 한다. 그리고 가장 필요한 '한 단어' 혹은 '한 문장'을 찾아내야만 한다. 집중하는 이유는 내용을 전부 이해하기 위함이 아니라, 그 한 단어를 찾기 위함이다. 안타깝게도 그 한 단어나 한 문장은 질문자의 입에서 나오지 않는 경우가 많다. 질문자가 핵심 키워드를 형성해내지 못한 것이다.
위에서도 써두었듯이, 감사의 표현, 인연에 대한 이야기, 배경설명, 주관적인 맥락의 설명, 개인사, 겸양의 표현은 듣는 순간 소거하면서 정리해야 편하다. 여유가 된다면야 키워드 도출후에 위 내용들에서 재미요소를 뽑아 좌중을 한바탕 웃게 할 수도 있겠지만, 일단 하는 일에 집중해보자.
"어...강연 너무 잘 들었구요...예전부터 꼭 직접 와서 강연 듣고 싶었는데 오늘 만나뵙게 되어서 정말 너무 좋았다는 말씀 먼저....드리고 싶었습니다. 저는 경기도에 살고 있는 20대 청년이구요. 지금 학교에서 행정학을 공부하고 있는데, 오늘 이 자리가 저한테 너무 큰 의미가 될 것 같습니다. 저는 두가지 질문을 드리고 싶은데요. 먼저 기본소득에 대한 정책은 우리나라에서도 정말 오래전부터 논의 자체는 진행되었던 것으로 아는데...이게 북유럽 국가들의 모델을 그대로 차용할 수는 없을 것 같고.. 저는 이번에 수당을 받는 대상 나이에서 두살 빗겨나가기는 했는데요, 그래도 이 정책이 우리 청년들에게 정말 큰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은 하고 있습니다. 저도 토익신청을 하거나, 학원을 가거나, 교통비 같은게...은근히 큰 부담이 될 때도 있기는 하는데요, 저보다 더 어려운 처지에 있는 친구들에게는 정말 의미가 있을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과연 이 정책이, 반대하는 사람이 이렇게 많은 상황에서 또 내년에 계속 될 수 있을지, 저희 아버지 같은 경우에는 이 광고를 보자마자 굉장히 화를 내시면서 공짜로 돈을 퍼주는게 어디있냐, 라면서 막 화를 내시기도 했거든요. 어머니는 그래도 수긍을 하시는 편이기는 한데, 보통 50대 60대 부모님 세대에서는 이걸 잘 이해를 못하실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강사님이 생각하시는 이 정책의 3년후의 모습은 어떨지. 저는 좀. 예. 질문을 드리고 싶었습니다"
이 질문을 들으면서 이정도의 느낌으로 정리되면 된다.
"아 뭔가 지금 이 정책이 좋다고 생각하고 있고, 계속 되면 좋겠다고 보는 거 같네. 그럼 '좋은 정책이 있다'는 것을 상수로 두고 질문을 짜볼까?"
그럼 여기서부터는 진행자의 기초지식과 주관도 어느정도 얹어가면서 완성된 문장을 만들어야 한다. 좋은 정책이 있다면, 이게 계속되려면 필요한게 뭘까? 반대를 무릅쓰고 추진한거라면, 실제 결과가 세상에 도움이 된다는 걸 보여주면 설득이 되지 않을까? 그럼 평가가 필요하겠지? 그래서 좋은 정책이라는게 설득이 되고 나면, 그 다음에는 혜택받는 사람들이 늘어나야 하겠지. 그 방법은 뭐지?
이런 식으로 질문을 이어가보는 것이다. 그럼 이런 질문이 나오게 된다.
"우리 질문자께서 정말 청년 대표로 질문을 주셨어요. 최근에 가장 핫한 이슈이기도 합니다. 언론에서도 계속해서 보도가 이어지고 있고요. 이 파격적이기까지 한 정책에 우려의 목소리도 많았던 것이 사실입니다. 이제 시행 1년차가 채 되지 않은 상태입니다만, 우리는 어떤. 기준에, 도달해야. 내년 이맘때쯤 '성공'이라는 딱지를 붙여줄 수 있을까요? 그리고 성공했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혜택을 보게 하려면 어떤 준비가 필요할지, 이런 질문을 해주신 것 같은데요.
분량조절 실패로 다음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