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피디 Aug 12. 2024

아리스토텔레스가 YC 데모데이에 참석했다면

고전수사학으로 본 현대 스타트업 피칭의 비밀

상상해 보세요. 기원전 4세기의 아테네에서 시간여행을 통해 현대 실리콘밸리의 한복판, Y Combinator의 데모데이 현장에 아리스토텔레스가 나타났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그는 아마도 놀라움과 동시에 묘한 친숙함을 느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2400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그가 정립한 수사학의 원칙들이 여전히 강력하게 작동하고 있음을 목격했을 테니까요.


아리스토텔레스는 그의 저서 '수사학'에서 설득의 세 가지 핵심 요소를 제시했습니다. 에토스(Ethos), 파토스(Pathos), 로고스(Logos)가 바로 그것입니다. 에토스는 화자의 신뢰성, 파토스는 청중의 감정에 호소하는 능력, 로고스는 논리적 추론을 의미합니다. 놀랍게도 이 세 가지 요소는 현대 스타트업 피칭의 근간을 이루고 있습니다.


에어비앤비(Airbnb)의 창업자 브라이언 체스키가 초기에 투자자들 앞에서 했던 피칭을 생각해봅시다. 그는 자신의 배경(에토스)을 언급하며 시작했습니다. 디자인 전공자로서 사용자 경험에 대한 깊은 이해를 가지고 있다는 점, 그리고 직접 호스트로 경험을 쌓았다는 점을 강조했죠. 이는 청중에게 "나는 이 문제를 해결할 자격이 있는 사람이다"라는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그 다음 체스키는 여행의 본질적 의미와 현지인과의 교류가 주는 가치에 대해 이야기하며 청중의 감정을 자극했습니다(파토스). "낯선 도시에서 현지인처럼 살아보는 경험", "집을 떠나 또 다른 집을 찾는 여행"과 같은 표현들은 단순한 숙박 서비스 이상의 감성적 가치를 전달했습니다. 


마지막으로 그는 시장 규모, 성장 전망, 비즈니스 모델의 확장성 등 구체적인 데이터와 논리적 분석을 제시했습니다(로고스). 이는 감정에 호소한 후, 이성적 판단을 요구하는 전략으로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수사학의 구조와 정확히 일치합니다.


우버(Uber)의 트래비스 칼라닉도 비슷한 접근법을 사용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연쇄 창업가로서의 경험(에토스)을 언급한 후, 택시를 잡지 못해 좌절했던 개인적 경험을 공유하며 청중의 공감을 얻었습니다(파토스). 그리고 기존 운송 시스템의 비효율성에 대한 데이터와 우버의 해결책을 논리적으로 제시했습니다(로고스).


이처럼 현대의 성공적인 스타트업 피칭들은 놀랍게도 고대 그리스의 수사학 원칙을 충실히 따르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중요한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바로 '카이로스(Kairos)'의 개념입니다.


카이로스는 '적절한 순간' 또는 '결정적 시기'를 의미하는 그리스어로, 수사학에서는 '상황에 맞는 적절한 논증'을 뜻합니다. 현대의 스타트업 생태계에서 카이로스는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습니다. 왜냐하면 기술의 발전 속도가 빨라지고 시장 환경이 급변하는 상황에서, 아이디어의 타이밍이 성공을 좌우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페이스북이 등장했을 때는 인터넷 보급률의 증가, 디지털 카메라의 대중화, 그리고 사회적 관계에 대한 새로운 인식 등 여러 요소가 맞물린 '적절한 순간'이었습니다. 마크 저커버그의 초기 피칭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단순히 그의 수사적 기술 때문만이 아니라, 그 아이디어가 시대적 요구에 부합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현대의 스타트업 피칭은 고전수사학의 원칙을 기반으로 하되, 여기에 카이로스의 개념이 한층 더 강조된 형태라고 볼 수 있습니다. 투자자들은 단순히 아이디어의 혁신성이나 창업자의 능력만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아이디어가 '지금 이 순간' 얼마나 적절한지를 중요하게 판단합니다.


결국 아리스토텔레스가 YC 데모데이에 참석했다면, 그는 자신의 이론이 여전히 유효함을 확인하면서도, 현대 사회의 빠른 변화 속에서 카이로스의 중요성이 더욱 부각되는 것을 발견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아마도 이렇게 말했을지도 모릅니다. "에토스, 파토스, 로고스는 설득의 기본 요소이지만, 카이로스야말로 이 시대의 결정적 요인이로구나."


우리는 이를 통해 중요한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스타트업 창업자들은 자신의 아이디어를 설득력 있게 전달하는 기술을 익히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시대의 흐름을 정확히 읽고 적절한 타이밍을 포착하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투자자들 역시, 피칭을 평가할 때 표면적인 수사적 기술뿐만 아니라 그 아이디어가 가진 시의성을 깊이 있게 고려해야 할 것입니다.


작가의 이전글 이벤트에서 좋은 질문을 던지는 것은 가능할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