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수도권에 내린 집중호우와 9월 태풍 힌남노에 의한 포항 지역 침수 피해 등
이제 우리나라에서 기후 위기, 기후변화라는 말이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이러한 재난 상황을 신속히 보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시급하고 필요한 보도는
기후 위기의 원인과 대응 방법 등에 대한 지속적이고 심층적인 보도일 것이다.
기후 보도의 한계점과 대안을 현직 기자의 목소리로 소개한다.
최우리 (한겨레신문 기자)
기후변화팀이 있다는 이유로 다른 부서는 기존 관습대로 출입처 중심으로만 사고하며,
기후 요소를 고려하지 않고 있는 현실의 한계도 자명하다.
결국 출입처 중심으로 구조화되어 있는 편집국 시스템의 현실을 고려할 때,
이를 총괄하는 편집국 내 기후 리더십이 필요하다.
2022년 10월 2일 현재, 기후변화에 관심 없는 한국 언론은 없다. 정치, 경제, 사회, 국제, 문화 등 다양한 영역에서 관련 기사를 찾아볼 수 있다. 최근 3년 사이 기후변화에 대응해야 한다는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 형성됐고, 2020년 문재인 정부의 ‘2050년 탄소중립’ 선언 이후 사회 각 분야에서 차근차근 이행되고 있다.
필자가 재직 중인 <한겨레>는 2020년 4월 한국 언론 최초로 신문사에 기후변화팀을 만들었다. 그리고 이후 <한국일보>, <한국방송>, <헤럴드경제>, <문화방송>, <세계일보> 등에서 순차적으로 기후와 환경을 다루는 팀이 따로 꾸려졌다. 그동안 언론사가 집중하지 않았던 기후 관련 보도를 전담해 이어갈 수 있는 실무 환경을 만드는 모양새이다.
별도 팀은 꾸리지 않았지만 기후 관련 보도에 힘을 쏟고 있는 언론사도 여럿이다. <중앙일보>는 오랜 경력의 환경전문기자를 중심으로 젊은 기자들이 다양한 기후 콘텐츠를 쏟아내고 있다. <경향신문> 역시 환경 담당 기자를 중심으로 각 부서에서 기후 기사를 다루고 있다. <JTBC>와 <SBS>도 환경전문기자가 큰 역할을 하고 있다. <한국경제신문>, <매일경제신문> 등 경제 매체도 산업계의 시각에서 기업 경영 환경의 변화를 빠르게 전하고 있다.
기자 수로만 따지면 에너지 산업과 정책을 취재하는 경제 매체의 기자 수가 가장 많기도 하다. 이런 변화에 더해 한국 언론 중 외국 특파원이 가장 많은 <연합뉴스>는 올해부터 각국에 나가 있는 특파원들이 기후 위기 현장을 찾아가는 현장 뉴스를 보도하기 시작했다.
이처럼 양적으로는 기후 관련 보도를 하는 기자 수가 늘고 관심도 높아졌다. 홀로 외로이 기후, 환경 기사를 쓰던 몇몇 기자의 입장에서는 더 이상 외롭게 기후 보도를 하지 않아도 되는 점이 기쁘다. 하지만 질적으로도 그러한지는 따져봐야 한다. 기후변화 보도가 독자에게 제대로 전해지기까지 기자들이 겪고 있는 현실적 고민이 적지 않다.
3년째 기후 보도를 하고 있는 필자가 바라볼 때, 한국 언론 현실에서 기후변화에 대해 잘 보도하기는 결코 쉽지 않다. 언론사 내부 사정을 잘 아는 한 기후에너지 단체 대표에게 한국 기후 보도의 아쉬운 점을 물어봤다. 그는 당연한 듯이 되물었다. “한국 언론의 모든 모순이 중첩돼 나타나는 게 기후 보도의 문제점 아닐까요?” 기후변화 보도의 문제점을 하나로 콕 집어 말할 수 없다는 그의 말은 필자 생각에도 진실에 가깝다.
기존의 편집 또는 보도국 조직으로는 제대로 된 기후 보도를 하기 쉽지 않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최초로 기후변화 보도에 주목한 <한겨레>는 언론계에서 기후변화 보도의 선례를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지만 아쉬운 지점도 존재한다.
언론사는 편집국장 또는 보도국장 이하 정치, 경제, 사회 등 각 부서장이 국장단이라는 이름으로 보도 방향을 책임진다. 그러나 기후변화팀은 기존 언론사 편집국 조직 체계에는 없던 부서다. 때문에 인사 때마다 이 부서를 담당할 마땅한 경력의 부서장이 존재하지 않았다. 어떤 부서에서 이 팀을 운영할지 합의를 보지 못하니 편집국 내 천덕꾸러기가 되기 일쑤였다. 2년 동안 부서명이 4번 바뀌었다. 그때마다 새로운 부장이 과거에 썼던 기사를 또 한 번 요구하는 경우가 숱했다.
정작 기후 대응 측면에서 사회 전반적으로 큰 변화를 가져오는 정책 뉴스가 있어도 해당 기사의 가치를 동료 기자에게 설득하기도 쉽지 않았다. 지금은 많이 알려진 기후·경제 용어인 RE100과 그린 택소노미는 지난해 하반기만 해도 언론에서 주요하게 다루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기후나 환경 관점에서 바라보지 않다 보니, 경제·산업계 관점으로 쓴 경제 매체와 보수 매체의 보도가 많이 쏟아졌다. 당시 기후변화팀장이었던 필자는 왜 이런 일이 벌어지나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한국 언론에서 환경 담당 기자는 늘 소수였고, 부수적 영역이었으며 편집국은 기후 환경 기사를 주요하게 다루어 본 적 없기 때문에 언론인들이 보도에 자신이 없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기후변화팀을 만들었지만 미래에 일어날 일을 어떻게 예상해 보도할 것인지에 대한 저널리즘 측면의 고민도 부족했다. 또 정치적 역학 구조에 따라 쉽게 결정이 번복되는 한국 사회에서 정부의 미래 정책은 중요하지 않았다. 한국 사회의 단면을 가장 잘 알고 있는 데스크들 기준에서 2030년이니, 2050년 목표이니 하는 기후 환경 정책은 별로 중요하지 않은 그저 장기 계획일 뿐이었다.
하지만 기후변화와 관련해선 오히려 장기 목표를 세우는 것이 기후 위기 대응의 시작일 수 있다. 시험 날짜를 받아든 수험생과 같은 마음이랄까. 그러나 주요 기사를 선정하는 편집 회의 때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 확정과 같은 중요한 기후변화 뉴스 거리를 보고해도 편집국에서 이 뉴스의 중요도를 알아봐 줄 이가 없다면 독자에게 제대로 된 기사를 전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또 기후변화 보도를 스트레이트 뉴스의 영역이 아닌 그동안에 있는 이야기를 묶어서 쓰는 일종의 기획 기사 팀으로만 인식하는 것도 한국 현실에서는 어울리지 않다고 생각한다. 현재 한국 사회는 전 부처 및 각 지방자치단체에서 동시에 기후변화 대응이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언론이 검증해야 할 정책이 실시간으로 진행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의성 있는 뉴스를 쓰지 않고 마치 탐사보도 하듯 기획 기사로만 그 역할을 한정지을 경우 사후약방문 식의 보도가 될 수 있다. 정부가 에너지나 플라스틱 쓰레기 정책을 발표하면 이를 제대로 분석하고 진단할 수 있어야 한다.
아쉽게도 기후변화 기사는 마치 패션처럼 이용되기도 한다. 이상 기후로 인한 피해 사례나 쓰레기 관련 정책만 집중 보도하면 조회 수가 잘 나온다. 그러나 이미 1~2년 동안 계속 써왔던 기사를 심층 보도 없이 똑같은 관점으로 반복 작성하는 것은 무의미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이는 독자를 무시하는 행태라고 생각한다. 이에 관련해 민주언론시민연합은 지난 9월 24일 한국의 기후 보도를 꼬집어 기업들의 홍보의 장으로 전락했거나, 이상 기후가 지나치게 과장 보도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의 기후변화 보도는 이제 좀 더 대안 중심으로 그 관점을 이동해야 한다.
언론사가 기후변화 보도를 잘 하기 위해서는 개별 팀을 두는 것만으로 부족하다. 기존 편집국 조직 체계처럼 분절된 사고로는 기후변화 관련 뉴스를 제대로 하기 어렵다. 특히 경제·산업 분야를 포함해 편집국 전체가 기후변화 대응 관점에서 움직여야 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환경과 경제는 만나야 한다. 예를 들어 한국은행, 기획재정부, 대한상공회의소, 국토교통부, 보건복지부, 농림축산식품부, 각 기업 등 환경부가 아니더라도 기후변화와 관련한 뉴스 거리는 다양한 출입처에 산적해 있다. 개별 팀으로 존재했던 <한겨레> 기후변화팀 기자들도 이를 다 커버할 수는 없었다. 그러다 보니 해당 출입처 기자들이 기후변화 관련 주요 뉴스를 아예 쓰지 않거나, 혹은 기후변화 대응 흐름과는 반대되는 이야기를 분석 없이 단순히 전달하는 경우도 있다.
한편 <미디어오늘> 보도를 보면, 올해 기후정의행동의날인 9월 24일을 앞둔 기후주간(13~19일)에 <경향신문>과 <한겨레>는 각각 16건씩 기후 관련 보도를 했다. 이러한 통계가 나온 이유에 대해 <경향신문>의 한 기자는 “편집국의 모든 기자가 기후변화 뉴스를 쓰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단독으로 운영되는 팀이 없다 보니 “다른 이슈보다 기후 이슈에 역량을 집중한다는 느낌을 주지 못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덧붙였다.
두 사례를 통해 볼 때 결국 출입처 중심으로 취재 영역을 구분 짓는 한국 언론사의 한계 속에서 기후변화팀의 존재는 환경-경제·산업으로 구분되는 출입처의 벽을 깨며 종합적인 시각에서 기후 기사를 쓸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보인다. 그러나 반대로 기후변화팀이 있다는 이유로 다른 부서는 기존 관습대로 출입처 중심으로만 사고하며, 기후 요소를 고려하지 않고 있는 현실의 한계도 자명하다. 결국 출입처 중심으로 구조화되어 있는 편집국 시스템의 현실을 고려할 때, 이를 총괄하는 편집국 내 기후 리더십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연 30조 원에 이르는 한국전력의 적자 문제(기획재정부 소관)와 저렴한 한국의 전기요금 체계(산업통상자원부 소관), 한국가스공사가 수입하는 가스 가격의 인상 문제(경제·산업 기자 담당)와 재생 에너지로의 에너지 전환 계획(기후변화 기자 담당) 등은 부서 벽을 넘나드는 기사일 수밖에 없다. 이런 기사를 종합, 분석적으로 쓸 때 각 언론사의 실력이 드러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한 예로 최근 한 언론사의 환경기자가 세계적으로 풍력 발전 비중이 증가하고 있음을 소개하며 한국 역시 “풍력 발전을 늘려야 한다”는 취지의 기사를 작성했다. 그러나 같은 날 이 언론사의 지역 기자는 제주 추자도 풍력 발전 사업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전했다. 두 기사 모두 충실히 취재하고 쓴 기사였지만, 독자 입장에서는 어떤 기사를 읽어야 할지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2021년 2월 3일 철강업계 6개사가 공동으로 2050년 탄소중립을 선언했다. 그러나 현재 기술로는 제철 과정에서 탄소 배출량을 줄이기 어렵다. 산업 경쟁력을 포기하기 어렵다면 기후 대응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더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 <사진: 포스코뉴스룸 캡처. 필자 제공>
한때 기후변화 보도를 진보와 보수의 관점으로 나누던 시기도 지난 것 같다. 유럽연합의 탄소국경조정제도나 미국의 인플레 감축법의 영향처럼 해외의 기후변화 관련 정책으로 인해 한국 기업의 경쟁력이 약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늘고 있다. 이는 진보와 보수가 서로 다툴 영역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한 보수 신문의 기자는 “재생 에너지 분야를 취재할 때는 모 협회 측에서 보수 매체라 인터뷰를 안 하겠단 말을 들은 적도 있다. 기후, 환경 이슈를 이해당사자들도 정파적인 문제로 접근하는 현실적 아쉬움이 있다”고 말했다.
유럽에서도 기후변화 뉴스의 출발은 고됐다고 한다. 스웨덴의 청소년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가 언론사를 찾아가 기후 강연을 할 만큼 언론의 변화는 느렸다. 최근 2~3년 동안 한국 사회 기후 관련 보도가 양적으로 성장했다면, 앞으로 기후변화 보도가 질적 성장을 겪기 위해선 관리자들의 더욱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
본 원고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정부광고 수수료를 지원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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