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세월호 참사는 전 국민에게 큰 슬픔을 안겨 주었다. 하지만 국내 언론은 더 큰 충격적 상황에 직면했다. 바로 ‘기레기’의 탄생이다.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우리 언론은 “재난 수습에 지장을 주거나 피해자의 명예나 사생활 등 개인의 인권을 침해하는 일이 없도록 각별히 유의”하겠다고 다짐하며 「재난보도준칙」을 제정했다. 준칙 제정 후 약 8년이 지난 지금 한국 언론의 재난 보도는 어떠할까?
박서연 (미디어오늘 기자)
‘데스크 교육’의 필요성도 제기된다. 박영흠 선임연구위원도 “어떻게 해서든 멘트를 따오는 기자들을 잘했다고 칭찬하니 기자가 내몰린다. 기자들이 중압감을 느끼는 것이기에 데스크가 선제적으로 얘기할 필요가 있다. 그런 면에서 데스크에 대한 교육이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이태원 사고로 모두 고생 많으시다. 서초 서울성모병원에 있는 유가족들이 취재로 불편하다는 연락을 해 왔다. 향후 취재하실 때 조금 조심스럽게 접촉해 주시길 부탁한다.” “이태원 참사 관련 내용이다. 국립중앙의료원에 있는 유가족들이 기자분들의 취재 때문에 불편하다고 한다. 향후 취재할 때 조금 더 조심스럽게 해주시길 부탁한다.” 각각 11월 1일 서울 서초경찰서와 서울 중부경찰서가 기자단 간사에게 요청한 공지 사항이다.
지난 10월 29일 서울 이태원에서 발생한 참사로 158명의 희생자가 발생했다. 예상치 못한 참사에 언론은 우왕좌왕했다. 일부 언론사는 현장 사진과 영상을 여과 없이 내보내고, 본질과 동떨어진 보도를 하고, 유가족을 무리하게 접촉해 논란이 됐다. 시간이 흐르면서 보도 행태는 어느 정도 개선됐지만 피해자와 사회의 치유에 기여하는 재난 보도를 위해 취재에서 보도에 이르는 구조를 근본적으로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참사 직후부터 일부 언론의 보도가 논란이 됐다. <연합뉴스>의 “악몽된 이태원 ‘핼러윈 주말밤’…비명·울음 뒤엉켜 ‘아비규환’” 제목의 기사가 대표적이다. 이 기사에는 “서울 이태원 도로에 쓰러진 환자들”이라는 제목의 사진이 첨부됐는데, 해당 사진은 사망자들의 사진을 모자이크 없이 드러냈다. <매일경제> 역시 온라인으로 “[속보] ‘핼러윈 인파’ 이태원서 수십 명 심정지…심폐소생술” 제목의 기사를 보도하면서 흐림 처리 없이 시신이 보이는 영상을 기사에 첨부했다.
방송에서는 현장 중계를 내보내면서 현장 상황이 일부 여과 없이 나가 논란이 됐다. <MBC>는 특보를 전하는 과정에서 경찰·구급대원들이 깔린 사람들을 구조하려 애쓰는 모습, 길거리에서 심폐소생술을 하는 모습 등을 별도의 흐림 처리 없이 보도했다. <SBS> 역시 피해자 구조 모습, 신체 일부가 드러난 채 누워 있는 사상자의 모습 등을 별도의 흐림 처리 없이 특보로 전했다.
참사 상황에서 검증되지 않은 소식이 퍼져 나가기도 했다. 특히 사고 직후에는 사건과 명확한 연관성이 입증되지 않은 ‘마약’ 원인설이 퍼졌는데, 언론이 기여한 면도 있다. <MBC>는 ‘뉴스특보’ 체제를 진행하던 중 이번 사건이 ‘약물’과 관련성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주장하는 시민과 전화 연결을 해 논란이 됐다. 긴박한 상황에서 목격자 인터뷰를 할 수 있지만, 앵커가 정확히 확인되지 않은 사실에 대해 단호한 대처를 하지 않았다는 비판이 나왔다. 현장에서 토끼 머리띠를 한 남성이 “밀어”라고 말했다는 식의 검증되지 않은 주장이 온라인 공간을 통해 급속도로 퍼졌고 언론이 이를 기사화한 사례도 같은 문제를 야기했다.
사안의 핵심이라 볼 수 없는 상황을 전한 선정적 보도도 있었다. 현장에 있던 인파가 참사 상황임에도 ‘떼창’을 했다는 사실을 전한 기사들이다. “구조 현장서 일부 시민들 춤추며 ‘떼창’”(조선일보), “[동영상] 이태원 구급차 막고 춤추며 떼창 핼러윈 경찰 소방 분장”(매일신문), “구급차 바로 옆 ‘섹스온더비치’ 떼창…이태원 현장서 경악할 일”(뉴스1), “발 벗고 CPR 나선 시민 옆 춤추는 사람들…참사 현장 ‘두 얼굴’”(경향신문) 등의 기사다.
유가족에 대한 무리한 취재가 이어지기도 했다. 방송사 소속 A기자는 “신원 확인이 안 되어서 이곳저곳 병원을 돌아다니는 유족한테 20~30명씩 붙어서 브리핑 요구하듯이 따라가더라. 유력 인사가 법원이나 검찰을 나설 때 기자들이 우르르 몰려서 차에 탈 때까지 쫓아가는데 유족이 빈소를 나설 때 그렇게 하는 경우가 있었다. 병원 앞 횡단보도 건너는 곳까지 따라갔다”고 설명했다.
종합일간지 소속 B기자는 다른 현장에서 같은 경험을 했다. 그는 “실종자 가족의 인터뷰 의사와 관계없이 세 겹 네 겹으로 둘러싸며 영상을 찍는다. ‘이야기할 거 없다’고 말해도 다른 병원으로 이동하려고 택시 타는 순간까지 따라붙는다. 피의자가 검찰 조사를 받고 나왔을 때 취재 모습과 다를 바 없어 보였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어떤 유족분은 자가용을 타고 왔다. 병원 주차장 1층 차단기가 올라가기 전 주차비 정산을 하는데, 그 순간에도 사방으로 기자들이 둘러싸고 그분을 찍었다. 그분은 장례식장에서부터 계속 말을 안 한다고 했었다. 너무하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이 같은 보도들은 세월호 참사 이후 한국기자협회가 제정한 「재난보도준칙」에 위배된다. 「재난보도준칙」은 재난 상황에서 언론의 역할을 규정한 준칙이다. 언론의 재난 보도에 방재와 복구 기능이 있음을 유념해 피해의 확산을 방지하고 피해자와 피해 지역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하루빨리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기능해야 한다는 내용이 핵심이다. 또한 피해자의 명예나 사생활 등 개인의 인권을 침해하는 일이 없도록 각별히 유의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구체적인 내용을 보면 제15조 ‘선정적 보도 지양’ 항목을 통해 △부적절한 신체 노출, 재난 상황의 본질과 관련이 없는 흥미 위주의 보도 등은 하지 않고 △자극적인 장면의 단순 반복 보도는 지양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유가족 대상 취재의 경우 △불필요한 반발이나 불쾌감을 유발할 수 있는 지나친 근접 취재를 자제하라고 규정하고 있다.
‘확인되지 않거나 불확인한 정보’의 경우 보도를 자제하고(제13조 유언비어 방지), 불가피하게 단편적이고 단락적인 정보를 보도할 때는 부족하거나 더 확인돼야 할 사실이 무엇인지 함께 언급하여 독자나 시청자가 정보의 한계를 인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제14조 단편적인 정보의 보도)고 규정하고 있다.
사고 직후 언론사들이 「재난보도준칙」을 제대로 지키지 않은 데는 몇 가지 원인을 꼽을 수 있다. 우선, 예상치 못한 성격의 참사였기에 ‘준비가 덜 된 측면’이 있다. 급작스럽게 취재를 하려다 보니 세세한 규정을 적용하지 못한 채 우선 보도부터 내보낸 상황이었다. 특히 사고 초기 방송사들이 현장에 흐림 처리를 하지 않고 속보를 내보냈지만, 추후 지상파 3사 등 방송사들은 반드시 필요한 상황이 아닐 경우 현장 영상 사용을 자제하도록 지침을 마련했다. 현장 사진을 온라인 기사로 내보낸 언론사 중 적지 않은 곳이 처음 문제가 된 기사를 수정하거나 삭제했다.
이와 달리 ‘언론의 과도한 경쟁’ 차원에서 벌어진 문제는 좀처럼 바뀌기 힘들다. 대표적인 것이 과도한 현장 취재다. B기자는 “한두 명이 먼저 물어보면 그 순간부터 물 먹으면 안 된다는 심리로 바로 핸드폰 녹음을 켜서 우르르 달라붙었다”고 말했다. 언론계에서는 경쟁 언론사가 단독 보도를 해 낙종하게 되는 것을 가리켜 ‘물 먹는다’고 표현한다.
A기자 역시 “만약 타사에서 유족 취재가 잘 된 기사가 나오면 데스크급에서 ‘왜 너는 못 했냐’고 질책한다. ‘유족 취재를 최대한 자제하라’고 하지만, 정작 현장에서는 전혀 다르다. 펑펑 울고 있는 유족한테 인터뷰를 요청했다가 쫓겨났다고 보고하면 데스크는 왜 못 땄냐고 혼낸다. 그러면 무리해서 인터뷰 요청을 또 하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장에 투입된 기자들은 윗선에서 여전히 유족 취재를 원하는 관행이 있고, 설령 무리한 유족 취재를 하지 말라는 지시를 받았더라도 저연차 기자 입장에서는 중압감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고 입을 모았다. 경쟁 구도 탓에 취재에 나서지 않을 수밖에 없는 문제, 더불어 세월호 참사 때 문제로 지적됐던 ‘저연차 기자’를 중심으로 현장에 내보내면서 생긴 ‘데스크와의 간극’이 이번에도 일부 나타난 것이다.
이와 관련 종합일간지 소속 C기자는 “희생자 사연에 대해 들어 보라는 지시가 당연히 내려왔다. 사실 희생자 개인의 서사는 이 사안의 핵심이 아니다. 참사의 원인에 집중해야 하는데, 사망자 사연 취재가 큰 보도 가치가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며 “현장에 주로 수습과 인턴 기자들이 보내졌다. 수습이나 인턴 기자는 서로를 동료라고 생각하는 문화가 아직 형성되지 않은 상황에서 압박감에 무리해서 물어보기 때문에 자신들에게도 안 좋은 영향을 미친다. 저연차들은 현장에 보내졌으면 뭐라도 하라는 지시를 받고, 인터뷰에 거부당해도 더 물어본다. 그래서 더 힘든 상황에 노출된다”고 토로했다.
경쟁 환경에서 비롯된 문제는 이뿐이 아니다. 이른바 ‘떼창’과 ‘토끼 머리띠 남성’ 기사는 주요 신문사 지면에서는 살펴보기 힘들었지만 포털에는 주요 언론사들이 쏟아 내다시피 했다. 포털 내 기사 조회 수를 바탕으로 수익을 책정하는 구조에서 그간 주요 언론사의 온라인 커뮤니티 받아쓰기, 무분별한 외신 인용 등을 통한 선정적 온라인 기사가 문제가 되어 왔다. ‘참사’ 상황에서마저 클릭을 유발하는 기사를 쓰며 조회 수 경쟁에 나선 것이다.
그나마 다행은 이전보다 자정 노력이 적극적이었다는 점이다. <MBC> 등 일부 방송사가 선정적 영상 자제 공지를 낸 뒤 방송기자연합회에서는 이 상황을 공지하며 확산을 유도했다. 한국기자협회는 「재난보도준칙」을 위반하는 언론사에 강력한 징계를 검토하겠다고 밝혔고, 전국언론노동조합도 언론에 문제적 보도 자제를 촉구했다.
그러나 보도 측면에선 개선된 면이 있어도 피해자와 사회의 치유에 기여하는 재난 보도를 위해 취재에서 보도에 이르는 구조를 근본적으로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재난 상황일수록 경험이 풍부하고 실권이 있는 데스크급의 역할이 중요하다. 「재난보도준칙」 제9조 ‘현장 데스크 운영’ 조항을 보면 “언론사는 충실한 재난 보도를 위해 가급적 현장 데스크를 두며, 본사 데스크는 현장 상황이 왜곡돼 보도되지 않도록 현장 데스크와 취재 기자의 의견을 최대한 존중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한 각 언론사는 이 준칙이 제대로 지켜질 수 있도록 협의하고 협력하기 위해 필요한 경우 현장 데스크 등 각사의 대표가 참여하는 ‘재난 현장 취재협의체’(이하 취재협의체)를 구성할 수 있다(4항 현장 취재협의체 운영).
하지만 현장 기자들은 또 다시 재난 상황이 발생한다 해도 언론에서는 저연차 기자 중심으로 현장에 투입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한다. B기자는 “최소한 현장에서 풀단(풀기자단, 공동기자단)을 꾸려야 한다. 희생자 유족에게 먼저 인터뷰 의사를 묻는 절차, 어떤 식으로 질문할지 등의 규칙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박영흠 한국언론진흥재단 선임연구위원도 “재난 상황에서 보도 경쟁을 최소화하는 합의가 있었으면 좋겠다. 현장에서 풀기자단을 구성하고 몇 가지 규칙을 만들어 현장에서 약속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C기자는 “만약 현장을 가야 한다면 발제를 하는 1진(고연차)들이 가야 한다. 기자 개인이 취재 범위를 설정할 수 있는 1진이 현장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최소한 수습기자나 인턴 기자한테는 재난 현장을 맡기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보도준칙에 대한 고민뿐 아니라 ‘데스크 교육’의 필요성도 제기된다. 박영흠 선임연구위원도 “데스크 차원에서 자제하자고 해도 어떻게 해서든 멘트를 따오는 기자들을 잘했다고 칭찬하니 기자가 내몰린다. 기자들이 중압감을 느끼는 것이기에 데스크가 선제적으로 얘기할 필요가 있다. 그런 면에서 데스크에 대한 교육이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심영섭 경희사이버대 미디어영상홍보학과 겸임교수 역시 “지금 20대 기자들의 인권 감수성이 상당히 높다고 본다. 하지만 데스크의 인권 감수성은 낮다. 그들이 변하지 않는 이상 저연차 기자들이 할 수 있는 게 많이 없는 건 사실이다. 데스크에 대한 교육이 필요하다”고 했다.
심영섭 교수는 “데스크가 요구한 걸 달성하지 못하면 무능하다는 얘기를 듣게 되니, 억지로 따르게 되는 거다. 포털 중심의 경쟁 구도에서 이런 일이 더 발생한다”며 “피해자와 가족에 대한 심리적 안정과 인권 보호가 가장 중요한데 무시하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 장례식 보도뿐 아니라 SNS나 커뮤니티를 받아쓰는 기사 역시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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