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판적' 사고력을 키우는 방법
학교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에 바란다
많은 학교에서 미디어 관련 교육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는 점은 매우 고무적이다.
그러나 속을 들여다보면 아직도 미디어 제작 교육에 더 치중해 있고
21세기 핵심 역량으로 간주되는 미디어 리터러시 함양 교육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이 추구해야 할 방향성을 살펴보자.
글 이창호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개인을 둘러싸고 있는 미디어 환경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강조할 필요가 있다.
즉 나에게 미디어는 어떤 존재인지, 나는 어떻게 미디어와 관계를 맺고 있는지,
나의 미디어 이용은 얼마나 책임 있는 행동인지를 스스로 성찰할 수 있어야 한다.
최근 들어 미디어 리터러시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특히 가짜뉴스의 확산이 사회적 이슈로 부각되면서 정보의 진위를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이 점차 중요해지고 있다. 미디어 리터러시는 유네스코, OECD 등 국제기구와 호주, 핀란드 등 외국 교육과정에서 21세기 핵심 역량으로 중요하게 다뤄지고 있다(정현선, 2019). 더구나 학교 현장에서 시민 교육이 강조되고 민주적 시민성이 부각되면서 디지털 시민성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이에 따라 디지털 리터러시, 디지털 시민성, 데이터 리터러시, 1인 미디어 리터러시 등 다양한 이름의 리터러시 교육이 등장하고 있다.
하지만 학교 현장의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은 여전히 주변부에 머물러 있고 미디어를 이해하는 교육보다는 이를 활용하는 교육이 많다. 또한, 강당에 모여 집단적으로 받는 정보통신윤리교육이 대다수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교과교육 내 디지털 리터러시 교육 실태를 분석한 바에 의하면 중학교의 경우 멀티미디어 활용, 인터넷 활용과 온라인 의사소통, 디지털 도구를 활용한 발표 수업이 빈번했다(노은희 외, 2018). 반면, 사이버 안전과 디지털 시민성, 컴퓨팅 사고력을 가르치는 수업은 잘 이뤄지지 않았다. 따라서 디지털 기기에 대한 활용을 넘어 디지털 사회의 윤리 규범이나 태도 등도 중요하게 다뤄질 필요가 있다.
필자는 올해 정부 부처의 지원으로 미디어 리터러시 교수·학습 자료를 개발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학교의 여러 선생님들을 만나 이야기면서 느낀 점을 토대로 미디어 리터러시에 대한 나름의 고민을 공유하고자 한다.
무엇보다도 미디어 리터러시의 본질은 비판적 사고에 있다고 본다. 비판적 사고는 미디어의 구성된 현실을 제대로 읽어냄으로써 자기주도적인 판단 능력을 키워 시민성을 함양시킨다(황치성, 2018). 하지만 아직도 많은 미디어교육 콘텐츠가 미디어를 활용한 교육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 같다. 가령 뉴스에 소개된 내용을 토대로 특정 이슈에 대해 토론하는 경우가 대표적 예라고 볼 수 있다. 엄밀한 의미의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이라면 미디어가 전달하는 메시지에 대해 학생들이 비판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을 함양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즉 동일한 이슈가 왜 매체마다 다르게 보도되는지 학생들이 이해할 수 있어야 하며, 관련 보도가 어떤 점을 강조하고 어떤 점을 배제하는지를 비판적으로 분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뉴스가 기득권 집단의 이익이 아닌 사회적 약자나 시민의 이해를 잘 대변하고 있는지도 봐야 한다. 이 과정에서 특히 중요한 것은 어떤 요인이 뉴스 내용에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 학생들이 비판적으로 사고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우리는 동일한 내용의 뉴스가 언론사마다 다르게 보도되는 경우를 많이 본다. 이 경우 같은 사안의 뉴스가 무엇 때문에 다르게 틀지어지는지 학생들이 충분히 논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가령, 특정 기업의 소식이 지나치게 미화되어 있다면 이 기업과 언론사 간의 관계를 한 번쯤은 의심해볼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또 다른 예로 부동산 관련 기사가 무비판적으로 보도되고 있다면 언론사와 광고주 간의 관계도 학생들이 비판적인 안목으로 바라보도록 해야 한다. 중요한 뉴스인데 보도되지 않았다면 왜 언론사가 이를 빠뜨렸는지 충분히 고민하고 논의해야 한다. 이러한 리터러시 교육을 통해 뉴스 내용에 영향을 미치는 여러 요인들 가령, 광고주의 영향력, 언론기업의 이익, 정치적 이해관계 등을 학생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처럼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은 학생들의 비판적 문제의식과 사고 역량을 기르는 데 초점을 두어야 한다. 이런 면에서 단순히 콘텐츠를 만드는 미디어 제작 교육은 미디어 리터러시와 다소 거리가 있다. 하지만 학생들이 제작 교육과정을 통해 미디어가 재현한 세계를 비판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갖는다면 이는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가령 학교 주변에 많은 이주노동자가 근무하는 공장이 있다고 하자. 이주노동자가 한국 사회에 적응하는 데 겪는 문제를 학생들이 취재하는 프로젝트가 있다면, 이는 뉴스 제작에 해당한다. 하지만 여기에 그치지 않고 학생들이 자신이 취재한 내용과 언론에 보도된 이주노동자 관련 뉴스를 비교하면서 뉴스에 대한 비판적 안목을 키운다면 이는 미디어 리터러시 역량을 함양시키는 교육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미디어 제작 교육도 콘텐츠 제작에 필요한 기술을 익히는 것에서 더 나아가 미디어가 전달하거나 묘사하는 사회를 비판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교육과정을 재구조화할 필요가 있다.
그동안 학교 미디어교육은 미디어 중독이나 사이버 따돌림 등 미디어의 부정적 영향을 강조해 왔다. 하지만 디지털 시대에 미디어를 매개로 한 소통과 참여는 중요하다. 미디어의 메시지를 비판적으로 분석할 수 있는 역량과 더불어 미디어를 책임 있고 윤리적으로 활용하는 것도 중요하다. 따라서 일상적 사회 참여와 실천을 위한 중요한 매체로 미디어를 바라볼 필요가 있다. 실제로 필자가 조사한 결과, 청소년들은 소셜 미디어를 활용해 그들이 살고 있는 지역사회와 문화를 해외에 알리기도 하고 독도에 대한 사랑을 실천하기도 한다. 또한 온라인 기부를 통해 저소득층 아이들을 돕기도 한다. 이러한 기부 및 사회 참여 활동을 통해 청소년들은 국가와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며 소속감을 느끼고 공동체의식을 함양해 나가게 될 것이다. 따라서 미디어가 사회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지나치게 강조할 것이 아니라 미디어가 개인에게 미치는 긍정적, 부정적 영향을 균형 있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상의 논의를 토대로 학교의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이 추구해야 할 방향성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개인을 둘러싸고 있는 미디어 환경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강조할 필요가 있다. 즉 미디어가 개인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새롭게 등장하는 매체의 특성은 무엇인지 학생들 스스로 성찰할 수 있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나에게 미디어는 어떤 존재인지, 나는 어떻게 미디어와 관계를 맺고 있는지, 나의 미디어 이용은 얼마나 책임 있는 행동인지를 스스로 성찰할 수 있어야 한다. 오늘날의 청소년은 유튜브 세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유튜브를 통해 정보를 검색하고 이를 즐긴다. 이런 면에서 학생들이 콘텐츠를 직접 제작해 유튜브에 올리는 수업도 시도할 만하다. 이 과정에서 학생들은 유튜브의 조회 수를 높이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경험할 수 있다. 또한 유명한 유튜버가 돼 많은 돈을 버는 것이 얼마나 허황된 꿈인지도 깨달을 수 있다. 자신이 만들어 올린 동영상을 교사나 부모, 친구 등 주변 사람들이 지켜본다고 생각하면 콘텐츠의 품질에도 신경을 쓸 것이다. 즉 오로지 타인의 관심을 끌기 위한 목적으로 자극적이거나 흥미로운 영상을 올리는 행위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다. 따라서 유튜브를 단순히 조회 수를 높여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하나의 도구로 생각하지 않고, 타인과 소통하는 커뮤니케이션 채널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의 목적이 돼야 한다.
둘째, 미디어 콘텐츠를 비판적으로 분석하고 이해할 수 있는 능력에 초점을 둘 필요가 있다. 흔히 미디어는 현실을 반영하기보다 구성한다고 이야기한다. 즉 우리는 실제 세계를 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미디어가 재현한 이미지를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용자의 미디어 리터러시 역량을 높여 미디어가 재현하고 있는 사회의 표상과 이미지를 비판적으로 해독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 사회에서 점차 늘고 있는 결혼이주여성의 경우를 예로 들어보자. 학생들은 미디어 리터러시 수업을 통해서 미디어가 온정주의적 시각에서 이들을 우리 사회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으로 묘사하고 있지는 않는지, 혹은 우리 사회의 주체가 아닌 주변인으로 대상화하는 것은 아닌지 비판적으로 사고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과정이 토론과 연결돼 구체적인 대안 제시까지 이어진다면 리터러시 수업의 효과는 매우 클 것으로 기대된다.
셋째, 미디어가 우리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특히 모든 것이 연결되고 공유되는 소셜 네트워크상에서 타인을 비방하거나 조롱하는 글 또는 영상이 순식간에 퍼질 수 있다는 것을 학생들이 깨닫도록 해야 한다. 오프라인 세계와 질적으로 다른 온라인의 여러 특성을 이해하게 된다면 사이버 폭력이 얼마나 전파력이 강하며 피해자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는지 알게 될 것이다. 이와 더불어 소셜 네트워크 공간이 생각이나 지식, 신념, 가치를 공유하는 사회 자본이 될 수 있음도 알아야 한다. 따라서 공동체가 직면하고 있는 여러 사회 문제 해결에 미디어가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다양한 사례를 통해 알려야 한다.
최근의 연구 결과는 미디어 리터러시가 이용자의 사회 참여를 촉진하고 시민성을 증진시킨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요컨대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은 청소년의 공동체 역량 등 시민성을 함양시키는 것으로 나타났으며(이숙정, 양정애, 2017), 뉴스 리터러시 시범 수업 후 청소년들은 뉴스에 대한 관심이 많이 생겼고 뉴스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됐으며 뉴스를 좀 더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됐다고 언급했다(양정애, 김경보, 2018).
따라서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을 통해 함양된 이러한 비판적 사고 역량이 뒷받침된다면 어떤 새로운 미디어가 출현하더라도 학생들은 책임 있고 윤리적으로 미디어를 이용할 수 있으리라 본다. 최근 들어 유튜브의 추천 알고리즘 같은 빅데이터에 기반한 데이터 리터러시에 대한 사회적 관심도 높아지고 있는데 어떤 형태의 리터러시가 등장하더라도 비판적 사고가 그 근저에 있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참고문헌>
노은희·신호재·이재진·정현선 (2018).
“교과교육에서의 디지털 리터러시 교육 실태 분석 및 개선 방안 연구”.
진천: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연구보고서》.
양정애·김경보 (2018). “뉴스 리터러시 교육의 단기 효과 연구:
중고생 대상 시범 수업 및 교육 평가 사례를 중심으로”. 《한국언론정보학보》, 87, pp. 172~212.
이숙정·양정애 (2017). “뉴스 리터러시가 의사소통 역량과 공동체 역량에 미치는 영향”.
한국방송학보》, 31(6), pp. 152~183.
정현선 (2019).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의 평가 방법에 관한 연구:호주 Pearson 출판사의
7-10학년 영어교과서와 교사용 지도서의 사례를 중심으로”. 《교육논총》, 39(2), pp. 235~259.
황치성 (2018). “미디어 리터러시와 비판적 사고”. 파주: 《교육과학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