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 또는 디지털 리터러시 교육은
주로 학교라는 울타리 안에서 어린 학생들을 대상으로 이루어졌다.
그러나 자녀의 디지털 리터러시 능력을 온전히 함양하기 위해서는
가정 내 부모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조재희 (서강대 지식융합미디어학부 부교수)
부모가 일정 수준의 미디어 리터러시를 갖추고 있어야만
가정 내 ‘돌봄’을 통해 ‘자녀의 미디어 리터러시 고양’이라는 목표에 도달할 수 있다.
결국, 부모에 대한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이 동반되지 않고서는
진정한 의미의 유아·청소년 미디어교육은 어렵다.
현대 사회에서 디지털 기기의 이용은 이미 ‘편재성’으로도 설명하기 어려울 정도로 일상생활에 침투해 있으며 생존의 필요조건이 됐다. 한국의 스마트폰 보유율은 90%가 넘었고, 사회 전체 체계가 무선 인터넷 기반의 스마트 미디어 생태계로 재편되고 있다. 따라서 디지털 기술의 발달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사람들은 이와 같은 생태계에서 도태되고 종국에는 생존의 위협을 경험하게 된다. 예를 들어 공중 보건 및 의료 분야에서는 모바일 헬스(m-Health) 기반의 치료 및 건강관리 서비스가 급격히 증가했다. 이로 인해 디지털 미디어에 대한 접근 및 이용 능력이 뒤처지는 사람들은 건강 증진의 기회를 상실할 수 있다. 이에 더해 기존의 금융 서비스 역시 무인·비대면 디지털 기술에 기반한 모바일 뱅킹과 인터넷 뱅킹으로 전환하면서, 디지털 리터러시가 부족한 사람들은 기본적인 금융 서비스 접근조차 어려움을 겪고 있다.
디지털 생태계 구축과 그에 따른 디지털 미디어 격차는 디지털 리터러시의 중요성을 의미하기 때문에 정부는 국민의 디지털 미디어 리터러시를 고양시키기 위한 다양한 정책을 전방위적으로 시행하고 있다. 일례로,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디지털 격차를 줄이고 디지털 활용 능력을 높이기 위해 2021년에 전국에 1,000여 개 디지털 지원 센터를 설립한다고 공표했다. 이를 위해 막대한 예산이 투입될 예정이다. 이에 더해 교육부에서도 초중고 학생들에 대한 미디어교육 프로그램을 강화하고 있으며, 문화체육관광부에서는 한국언론진흥재단, 시청자미디어재단을 중심으로 일반인 대상 미디어교육 프로그램을 확충하고 있다. 이와 같은 일련의 현상은 디지털 미디어가 얼마나 현대인의 삶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외국과 마찬가지로 우리나라도 제도권 내 디지털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에 상대적으로 많은 자원과 재원을 투입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정신적으로 아직 덜 성숙한 유아 및 청소년의 디지털 미디어 이용이 다른 연령대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기 때문에 이들에 대한 미디어교육이 절실하다는 의미다. 특히, 디지털 미디어 과이용이나 중독은 유아 및 청소년의 정신과 신체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또 디지털 미디어를 통한 사이버 폭력은 아이들을 자살로 내몰 정도로 심각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이에 더해 아직까지 법적 그리고 제도적 장치가 충분히 마련되지 못했기 때문에, 1인 미디어의 유해 콘텐츠에 아이들이 무분별하게 노출되면 비단 물리적 문제(예. 사이버 폭력)뿐만 아니라 이들의 올바른 가치관 형성에도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즉, 잘못된 콘텐츠에 노출된 아이들이 현실에 대해 왜곡된 가치관을 갖게 되고, 알고리즘을 통한 맞춤형 콘텐츠 제공으로 인한 확증편향은 이러한 현실 왜곡을 심화시킬 수 있다. 그러므로 아이들에 대한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은 아무리 서둘러도 늦지 않다. 학교 안에서 아이들을 위한 미디어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은 체계적으로 안정된 방법으로 미디어 리터러시를 고양시키는 데 큰 도움이 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아이들에 대한 디지털 미디어 리터러시를 보다 근본적으로 고양시키기 위해서는 반드시 ‘가정 내’ 교육이 동반되어야 한다. 부모의 중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아무리 학교 미디어교육이 체계적으로 진행된다 하더라도 교육 내용이 아이들에게 충분히 내재화(internalization)되기란 불가능하다. 학교에서 배운 내용을 가정 내 소통을 통해 재확인하고, 이 과정에서 부모의 의견을 통해 교육 내용이 정제되기도 하며 부족한 부분은 부모가 보탤 수도 있다. 부모의 중재를 통해 아이들의 디지털 이용에 대한 규범화가 이루어진다.
아이들의 디지털 이용과 관련한 부모 중재의 중요성은 기존의 많은 연구에서 이미 밝혀졌으며, 중재 유형에 따른 효과에 대해서도 많은 실증적 근거가 있다. 예를 들어 기존 연구에 따르면, 주어진 정보를 정리·종합해서 판단을 내리기 힘든 어린 아이들의 경우 부모의 보다 적극적인 중재가 필요하고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을 제공해 주는 것이 더 효율적이다. 하지만, 아이들이 자신만의 정체성을 형성하고 더 나아가 자기주장이 강해지는 시기에는 가이드라인을 주기보다는 아이가 원하는 바를 파악하고 아이의 의견을 존중해 주는 방향으로 지도할 필요가 있다. 형식과 상관없이 부모 중재의 핵심은 ‘부모-자녀 간 소통’ 및 ‘부모의 미디어 리터러시’라고 볼 수 있다. 부모가 일정 수준의 미디어 리터러시를 갖추고 있어야만 가정 내 ‘돌봄’을 통해 ‘자녀의 미디어 리터러시 고양’이라는 목표에 도달할 수 있다. 결국, 부모에 대한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이 동반되지 않고서는 진정한 의미의 유아·청소년 미디어교육은 어렵다.
이와 같이 부모에 대한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은 유아 및 청소년을 위한 미디어교육 시스템의 강화를 위해 반드시 병행되어야 하는 필요 요소이다. 그러나 현재의 미디어교육 프로그램 대부분이 아이들 특히 청소년이나 미디어 소수자 중심으로 구성돼 있기 때문에, 학부모를 대상으로 하는 미디어교육 프로그램을 찾기 쉽지 않다. 정부는 이와 같은 상황을 직시하고 디지털 격차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 마련 외에도, 장기적인 시각으로 사회 전반적인 미디어 리터러시를 높일 수 있도록 학부모 대상 교육을 확대할 수 있는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게다가 맞벌이 부부가 늘어나면서 조부모가 아이들의 ‘돌봄’을 담당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는데, 이는 학부모에 대한 미디어교육뿐 아니라 조부모 혹은 노인에 대한 미디어교육이 더욱 확대될 필요가 있음을 의미한다. 코로나19로 인해 온라인 교육이 확대되면서 아이들 간 디지털 기기에 대한 ‘접근’에서 일차적으로 격차가 나타났고, 이어 디지털 기기의 ‘활용’ 면에서도 격차가 발생했다. 즉,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해 디지털 기기 혹은 인터넷망 이용에 제한을 받은 아이들은 온라인 교육을 따라가기 어려웠고, 디지털 리터러시가 상대적으로 부족한 조부모로부터 돌봄을 받는 아이들 또한 온라인 교육에 제대로 참여하기 어려웠다. 이는 부모뿐만 아니라 조부모를 대상으로 하는 미디어교육의 확대에 대해서도 주목할 필요가 있음을 보여준다.
아침에 눈을 뜨고 저녁에 잠이 드는 순간까지 현대인은 셀 수 없이 많이 디지털 미디어와 접촉하며 살아간다. 그 속에서 우리는 하루에도 수없이 가늠하지 못할 만큼의 정보에 노출되면서 살아가기 때문에, 정보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나’라는 존재의 주체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미디어 리터러시가 너무나도 중요하다. 앞으로 한국 사회를 이끌어갈 아이들의 건강하고 건전한 삶의 토대를 마련하기 위해, 이제는 가정 내 미디어교육과 이를 위한 ‘자녀-부모-조부모’ 간의 소통에 기반한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을 더욱 진지하게 고민할 때다.
본 원고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정부광고 수수료를 지원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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