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유엔 아동권리위원회는
디지털 환경과 관련해 아동을 안전하게 보호하고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논평을 채택했다.
이 논평은 아동의 시민권과 자유, 개인 정보 보호, 차별 금지, 교육, 놀이에 대한 권리 전반을
명확히 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정현선 (경인교대 국어교육과 교수, 미디어리터러시연구소 소장)
유엔 아동권리위원회의 일반 논평 제25호 채택을 계기로
우리나라에서도 어린이가 처할 수 있는 디지털 환경의 보다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위험을 규정하고,
이로부터 어린이를 ‘보호’할 수 있는 입법과 정책 추진, 그리고 사회적 인식 전환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한다.
2021년 2월 4일은 디지털 세상에서 살아가는 어린이들에게 특별한 날로 기록될 것이다. 유엔 아동권리위원회에서 ‘디지털 환경 관련 아동 권리에 대한 일반 논평 제25호’를 채택해, 어린이들의 권리가 실제 세상에서뿐 아니라 디지털 세상에서도 존중받고 보호받으며 실현되어야 한다고 권고한 날이기 때문이다.
디지털 환경 관련 아동 권리에 대한 일반 논평 제25호.
*출처: 유엔아동 유엔인권고등판무관 홈페이지:http://asq.kr/Mc25hGrvWCXqD2
유엔의 일반 논평은 국제 조약이나 실행 계획안을 각 국가에서 해석하고 적용할 수 있도록 제공하는 가이드라인이다. 최근에 유엔 아동권리위원회가 채택한 일반 논평 제25호는 기존의 유엔 아동권리협약이 디지털 환경에서 어떻게 이해되고 실행되어야 하는지에 대해 개관한 것으로, 디지털 산업의 규약 및 디자인 표준에서부터 디지털 리터러시, 데이터 보호, 학교의 기술 인프라 구조, 어린이의 온라인 안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쟁점을 다루고 있다.
이 일반 논평을 작성하는 과정에서 유엔 아동권리위원회는 어린이를 위한 보다 안전하고 포용적인 인터넷 환경을 만들기 위해 많은 국가의 전문가와 국가 기관, 시민 단체 등으로부터 다양한 경험, 의견, 희망을 포함한 광범위한 자문 의견을 수렴하는 한편, 어린이들의 의견도 반영했다. 총 29개국이 의견을 제시했고, 유럽의회, 유럽연합, 유니세프 등 지역 조직과 유엔 기구, 호주 인권위원회 등 여러 나라의 인권 기구, 어린이와 청소년 단체, 그리고 영국영화등급위원회, 커먼센스미디어, 호주 온라인안전위원회, 유럽연합 키즈 온라인(EU Kids Online), 글로벌 키즈 온라인(Global Kids Online), 세이브더칠드런을 비롯한 90여개 전문 단체 및 대학, 연구소 등에서 전문적인 의견을 제출했다.
미디어 리터러시와 디지털 리터러시 분야의 전문가로서, 일반 논평 제25호 관련 자문 그룹에서 활동한 영국 런던정경대의 소니아 리빙스턴 교수는 유엔 아동권리위원회의 일반 논평 제25호 채택을 축하하며 그 의미를 설명했다. 즉, 이번 논평은 실제 세상뿐 아니라 온라인 세상에서도 어린이의 권리를 보호하고 옹호하기 위한 실제적인 조치로서, 어린이의 시민권, 자유, 개인 정보에 관한 권리, 차별받지 않을 권리, 보호, 교육, 놀이 등에 관한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디지털 환경이 어떻게 조성되어야 하는지를 국제 사회에 명확히 제시했다는 점에 의의가 있다. 또한 리빙스턴 교수는 각 국가와 책임 있는 기관들이 이 문제에 관해 왜, 그리고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분명히 설명하고 있다는 점을 높이 평가했다.
미디어 리터러시 전문가 소니아 리빙스턴 런던정경대 교수의 일반 논평 제25호에 관한 글.
*출처: LSE ‘Children and Media’: http://asq.kr/1p6G4JoH7Yi5sD
기존의 유엔아동권리협약은 유엔에서 1989년 11월 20일에 채택되고, 이듬해인 1990년 9월 2일에 발효됐으며, 한국에서는 다자조약 제1072호로서 1991년 12월 20일에 국제 조약으로 비준한 바 있다. 이 협약은 아동의 범위를 만18세 미만으로 규정한다. 협약의 당사국은 아동이나 그 부모·후견인의 인종, 피부색, 성별, 언어, 종교, 정치적 의견, 민족적/인종적/사회적 출신, 재산, 장애 여부, 태생, 신분 등의 차별 없이 이 협약에 규정된 권리를 존중하고, 모든 아동에게 이를 보장해야 한다. 이 협약의 전체 내용은 전 세계 아동을 위한 유엔기구로서 유엔아동권리협약 제45조에 명시된 바와 같이 아동 권리 옹호를 주도하는 유니세프 홈페이지에서 살펴볼 수 있다.1)
사실 기존의 유엔아동권리협약 내용 중에도 미디어교육 관련 내용이 일부 포함되어 있었다. 아동이 사생활과 가족, 가정, 통신에 대해 자의적이거나 불법적인 간섭을 받지 않으며, 명예나 명성에 대해 불법적인 공격을 받지 않고, 이러한 간섭이나 공격으로부터 법적인 보호를 받을 권리를 명시한 내용(제16조), 대중매체 기능의 중요성을 인정해 아동이 특히 자신의 사회적, 정신적, 도덕적 복지와 신체적, 정신적 건강의 향상에 도움이 되는 국내외 정보와 자료에 접근할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한다는 내용(제17조)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디지털 환경이 지속적으로 진화하고 확장되며 다양한 정보와 커뮤니케이션 기술을 아우르고 있는 상황에서, 기존의 미디어와 통신에 대한 내용은 지나치게 포괄적이라는 점에서 기존 협약만으로는 한계가 명확했다. 디지털 기술의 혁신이 어린이의 삶과 권리에 영향을 끼치면서 어린이의 시민적, 정치적, 문화적, 경제적, 사회적 권리 실현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이들이 의미 있는 방식으로 디지털 기술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내용이 유엔아동권리협약에 새롭게 반영할 필요가 생겨난 것이다.
일반 논평 제25호에서 천명한 디지털 환경 관련 어린이의 권리 실현 보장에 필요한 네 가지 원칙은 다음과 같다.
첫째, 협약 당사국은 모든 어린이가 그들에게 의미 있는 방식으로 디지털 환경에 공평하고 효과적으로 접근할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하며, 어린이가 디지털 환경에서 배제되지 않도록 적절한 수단을 강구하여 교육 환경, 지역사회, 가정에서 디지털 테크놀로지에 자유롭고 안전하게 접근하고 사용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정책과 프로그램을 마련해야 한다. 어린이는 디지털 기술과 서비스 사용 시 배제되는 차별을 받을 수 있고, 이러한 기술의 사용을 통해 부당한 대우를 받거나 혐오 메시지를 전달받을 수도 있다. 어린이에 관해 편향되거나, 부분적이거나, 부당하게 수집된 데이터에 근거하여 자동화 과정에 따른 정보 필터링, 프로파일링, 의사 결정이 이루어질 수도 있다. 따라서 각 정부는 어린이가 디지털 기술과 서비스에 접근할 때 성별, 장애, 사회·경제적 배경, 민족과 국적, 언어, 소수자, 난민, 이민자, 성소수자, 성착취 희생자 등 다양한 배경적 원인으로 인해 차별받지 않도록 적절한 수단을 강구해야 한다.
학교에서 사용 가능한 유엔아동권리협약 일반 논평 제25호 홍보 포스터.
*출처: 5RightsFoundation: http://asq.kr/xvB7MSuPkCvhAg
둘째, 디지털 환경은 본래 어린이가 아니라 성인을 위해 설계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디지털 환경은 어린이의 삶에 지대한 역할을 한다. 따라서 협약의 당사국은 디지털 환경의 이러한 속성을 고려하여 어린이 대상 디지털 환경을 제공, 규제, 설계, 운영, 사용하는 데 있어 어린이의 정보 접근, 수용, 전달에 관한 권리 및 각종 위험으로부터의 보호 등 어린이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또한 어린이가 디지털 환경에서 얻는 이익이 무엇인지를 평가함에 있어 투명성을 보장해야 한다.
셋째, 각 국가는 어린이의 삶과 생존, 발달의 권리로서 디지털 환경이 제공하는 기회를 보장하고 위험으로부터 보호해야 한다. 이러한 위험은 어린이가 디지털 기술을 통해 접하는 내용, 디지털 기술을 통해 누군가로부터 받는 연락, 행동, 계약 등을 포괄하며, 특히 폭력적이고 성적인 내용, 사이버 공격과 괴롭힘, 도박, 착취와 남용, 자살 권유, 테러리스트나 극단주의자들의 활동 등을 포괄한다. 또한 각 국가는 디지털 기기 사용이 특히 유아와 사춘기 청소년의 뇌 발달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 결과들을 바탕으로, 디지털 기술이 어린이의 인지적, 정서적, 사회적 발달에 있어 유해한 영향을 미치지 않고 사용될 수 있도록 부모와 보호자에게 적절한 훈련과 조언을 제공해야 한다.
넷째, 국가에서 어린이를 위한 디지털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입법, 정책, 프로그램, 서비스와 교육을 마련할 때에는 반드시 어린이의 견해를 존중해야 하고, 어린이의 의견이 반영될 수 있는 방법을 마련하여 어린이의 의견을 청취해야 한다. 또한 디지털 서비스 제공자는 어린이를 위한 적절한 안전장치를 만들고, 제품과 서비스를 개발할 때 어린이의 견해를 적절히 고려하도록 국가가 보장해야 한다. 또한 국가는 어린이의 의견을 청취하는 과정에서 사생활, 자유, 생각과 의견에 관한 권리를 침해하는 부적절한 모니터링이나 데이터 수집을 해서는 안 되며, 적절한 기술 수단과 기능이 부족한 어린이의 견해도 포함하여 정책을 입안해야 한다.
유엔 아동권리위원회 일반 논평 제25호의 목표는 각 국가가 적절한 입법, 정책, 그 밖의 다양한 방법을 동원하여 디지털 환경에서 살아가는 어린이의 권리를 증진, 존중, 보호, 실현하는 데 있어 기존의 유엔아동협약 및 관련 실행 계획안을 어린이의 기회, 위험, 도전이라는 관점에서 어떻게 제공해야 하는지 설명하는 데 있다. 따라서 유엔아동권리협약에 서명한 당사국인 한국 정부도 이번 논평에 포함된 내용들을 이행하기 위한 조치에 착수해야 할 의무가 있다.
예를 들어, 어린이들의 디지털 격차와 이로 인한 교육과 사회적 기회의 격차를 해소하고, 어린이가 디지털 환경에 적절히 접근하여 정보를 활용하고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가 위해 미디어교육 관련 입법, 정책, 교육 프로그램 등에 대한 정부의 구체적인 조치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이미 한국 정부는 디지털 포용 정책, 미디어 리터러시 등에 관한 정책을 추진해 오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정책의 지속적 추진을 위해 학교 교육과정 내 미디어교육을 명시하는 것을 포함해, 호주의 온라인안전위원회가 추진하는 바와 같이 디지털 환경에서 어린이가 처한 사생활 노출, 온라인 괴롭힘, 성범죄 등 구체적인 위험으로부터 어린이를 보호할 수 있는 구체적인 가이드라인 및 입법 마련 등이 시급한 과제라 할 수 있다.
디지털 환경에서 어린이에게 필요한 도움이 무엇인지를 구체적인 질문과 행동 요령으로 알기 쉽게 제시하고 있는 호주 온라인안전위원회(eSafety Commissioner).
*출처: 호주 온라인안전위원회 홈페이지: https://www.esafety.gov.au/kids/i-want-help-with
또한 기업의 디지털 기기 및 서비스 개발과, 교육 목적의 디지털 기술 사용 과정에서 나타나는 어린이에 대한 개인 정보와 데이터 수집이 어린이의 이익에 반하여 이루어지지 않도록 관련 법안과 정책이 마련되어야 한다. 또한 어린이가 접하는 디지털 미디어 환경이 어린이에 대한 편향된 데이터나 부당하게 수집된 데이터에 근거하여 만들어지지 않도록 건강한 미디어 환경이 조성될 수 있도록 정책이 추진될 필요가 있다. 이는 디지털 전환 시대에 새롭게 등장한 어린이의 디지털 권리라는 점에서 사회적 인식 전환과 정책 마련을 위한 전문가와 시민, 어린이들의 의견 수렴이 요구된다.
그간 한국에서는 어린이의 스마트폰, 유튜브, 게임 등 각종 디지털 기기와 콘텐츠에 대한 노출이 영유아 시기로 앞당겨지고, 그에 따른 과의존이 발생하는 현상에 우려하며 이를 예방하기 위한 정책, 어린이의 디지털 미디어 이용을 제한하고 조절하기 위한 보호주의적 차원의 부모 교육 등이 특히 강조되어 왔다. 그러나 어린이가 디지털 환경에 적절히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며, 어떻게 디지털 기기와 기술 서비스를 활용하여 공평하면서도 양질의 교육 기회를 얻을 수 있을지, 또, 디지털 기술을 사용하는 상황에서 노출될 수 있는 사회적 위험이 무엇이고 이로부터 어린이들을 보호할 수단은 무엇인지 등을 명료하게 규정한 구체적인 입법, 정책, 프로그램 등은 부족한 편이다.
유엔 아동권리위원회의 일반 논평 제25호 채택을 계기로 우리나라에서도 디지털 기술과 미디어 자체를 어린이에 대한 위험 요인으로 바라보는 ‘보호주의’ 시각보다는, 어린이가 처할 수 있는 디지털 환경의 보다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위험을 규정하고, 이로부터 어린이를 ‘보호’할 수 있는 입법과 정책 추진, 그리고 사회적 인식 전환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한다.
[참고자료]
1) 유니세프 홈페이지: https://www.unicef.or.kr/child-rights/outline.asp
본 원고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정부광고 수수료를 지원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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