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팬데믹이 1년 넘게 이어지면서 우울증을 호소하는 이웃이 많다.
외출 자제, 감염에 대한 불안감, 경제 활동 위축과 소득 감소로 인한 스트레스 등
정신적 고통을 겪는 이들의 상황을 정신의학적 관점에서 진단해보고
코로나로 인한 우울을 극복하는 방법을 알아보았다.
김현수 (서울시 코비드19 심리지원단 단장, 명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개개인의 연결이 확장되면 사회적 연대가 된다.
사회적 연대는 우울증 개선에 도움을 주는 사회적 환경의 발판이 될 수 있다.
사회적 연대는 거대한 집단 공동체의 치유제이다. 사회적 연대만큼 강력한 우울증 치료제는 없다.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한 우울증의 경로가 두 가지라고 생각한다. 미국 정신과의사협회는 이 두 가지 경로를 크게 다음과 같이 나누었다. 하나는 봉쇄, 사회적 거리두기와 같은 사회적 관계의 단절 및 박탈과 이 상태의 장기화가 가져다주는 다양한 영향이다. 다른 하나는 코로나 감염을 막기 위해 내린 여러 단절과 중단된 조치로 인한 사회경제적 여파이다. 그리고 이 두 가지 경로는 시계열에 따라 미치는 영향이 세대별로 다르다. 즉, 코로나 초기에 봉쇄가 내려지며 직접적 타격을 받은 젊은 사람들의 우울과, 봉쇄가 장기간 이어지면서 점차 희망을 잃어가는 요양원 노인들의 우울, 그리고 자살의 증가와 같이 양상이 다르게 나타난다고 한다. 전문가들은 각각의 경로와 시간대에 따라 다양한 우울증이 나타날 수 있다고 예측하며 이에 대한 대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코로나 팬데믹이 미친 더 광범위한 영향은 규칙, 일상, 그리고 관행의 파괴라고 지적하는 사람들이 많다. 생활은 주기이고, 리듬이고 습관이며 동시에 예측 가능성의 지배하에 이루어지는데,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이 기본적인 속성들이 파괴됐다. 불규칙, 예외, 예측 불가능성 속에서 융통성의 수용 능력이 큰 사람들과 스트레스를 충분히 다룰 수 있는 예비 자원이 있는 사람들은 대처가 가능했지만, 이런 뷰카(VUCA, Volatility, Uncertainty, Complexity, Uncertainty) 1) 시대의 부상은 사람들에게 마틴 셀리그만이 보고한 우울증 패러다임 ‘학습된 무기력(Learned Helplessness)’을 안겨주기 쉽다. 그러므로 현대인이 우울증을 피하기 위해서는 이 불규칙과 예측 불가능성에 대해 학습해야 한다. 융통성으로 무장하라.
영국의 대표적 아동청소년센터인 안나프로이트센터(Anna Freud National Centre for Children and Families)는 코로나 팬데믹에 대처하기 위해 교사, 부모, 학생에게 ‘자기 돌봄 매뉴얼’을 널리 배포했다. 일상의 단절과 파괴 속에서 사회생활이 불가능하고, 가족끼리만 지내거나 사회적 모임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일차적으로 필요한 능력은 자기 돌봄 능력이다. 혼자 지내야만 할 때, 혼자 지내는 시간을 잘 보낼 수 있는 것이 우선 중요하다. ‘자기 돌봄 매뉴얼’은 시민들이 그 시간을 ‘외롭게’, ‘파괴적으로’ 보내는 것이 아니라 ‘알차게’, ‘자기를 충전하는’ 시간으로 보낼 수 있는 역량을 갖추는 것에 초점을 맞추었다.
다음으로 중요한 우울 극복의 요소는 ‘연결(connection)’이었다. 많은 나라들이 코로나 팬데믹 시기를 맞아 발행한 포스터나 카드 뉴스의 키워드는 대부분 ‘연결’이었다. ‘몸은 떨어졌지만 마음은 가까이’, ‘마음을 가까이 연결하자’는 모토는 단순한 구호가 아니다. 사회적 고립이 주는 온갖 악영향에 대해서 우리는 이미 충분히 알고 있다. 외로움은 우울을 포함한 여러 질병과 관련된 악성 스트레스이다. 하루 동안 외로움으로 가슴이 찢어지게 아픈 것은 담배 한 갑을 피우는 것과 같다는 연구 보고의 내용은 너무도 자주 인용되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 시기 개인들이 사용하는 스마트폰 사용 시간은 적어도 1.5배 이상 늘었으며, 온라인 도박 등의 병적인 고립 활동도 늘었다고 한다.
연결의 활동은 다양하고 다채로울 수 있다. 코로나 팬데믹 시기 인상 깊은 사진이나 동영상 중 하나로 이탈리아의 발코니 사진들을 들 수 있다. 각자 자신의 발코니에서 기타를 치면서 함께 노래를 부르는 그들의 연결은 많은 인터넷과 종이신문의 지면을 채웠다. 전화, 영상통화, 소셜 미디어로도 사람들은 연결됐다. 직접 만남은 어려웠지만 다양한 방식의 연결을 통해 만남의 박탈을 대신하려는 시도를 했다. ‘클럽하우스’라는 새로운 미디어의 갑작스런 출현도 평가자에 따라 다르지만, 오랜 고립 속에서 시도할 수 있는 연결의 다양성 중 하나로 해석하는 비평가들도 있다. 정신과 의사의 입장에서 이 연결의 박탈은 정말 위험한 정신병리의 진원지이다. 어릴수록 위험하다. 코로나 시기 태어난 아기들이 만일 엄마 이외의 다른 어른을 일체 경험하지 못하고 크고 있다면 아기의 세계는 정말 고립된 세계라고 할 수 있고, 여러 결핍이 아동의 정신에 겹겹이 쌓여가고 있을 것이다. 끔찍한 일이다.
이 개개인의 연결이 확장되면 사회적 연대가 된다. 사회적 연대는 우울증 개선에 도움을 주는 사회적 환경의 발판이 될 수 있다. 사회적 연대는 거대한 집단 공동체의 치유제이다. 사회적 연대만큼 강력한 우울증 치료제는 없다.
우울증의 여러 치료 패러다임은 이미 널리 소개되어 있다. 그중에서도 최근 더 강조되고 환영받고 있는 치료 패러다임은 ‘행동 활성화 패러다임’이다. 과거 데이비드 번즈 박사가 《필링 굿(Feeling good)》이라는 저서에서 소개한 치료법으로, ‘무위주의’라고 불리는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아서, 아무 것도 하고 있지 않는’ 상태가 우울증의 악순환을 부르기 때문에 이를 악물고 움직여야 한다는 것이다. 움직이면, 뇌가 활성화되고, 더 움직이면, 기분이 나아지고, 더 더 움직이면 마음이 밝아지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행동을 활성화할 수 있는 다양한 시도의 방법을 배워야 한다.
코로나 팬데믹 시기, 집안에서 갇혀 지내는, 더욱 움직이기 힘든 상황이라서 사람들은 역설적으로 더 움직여야 한다는 압박을 받기 시작했다. 움직이지 않으면 근육이 굳어지듯이, 마음도 굳어진다. 마음이 굳어지면 마음을 변화시키기란 어렵다. 코로나 팬데믹 시기, 어떻게 움직이냐고 묻지 마라. 사람이 붐비지 않으니까 더 움직이기 쉬울 수도 있다. 집 안에서 운동하는 방법인 홈트레이닝은 코로나 시기 오히려 더욱 발전했다. 더군다나 소셜 미디어를 통한 릴레이 형태의 운동법은 효과를 더욱 증폭시킬 수도 있다. 이 움직임들이 우리를 우울증으로부터 벗어나게 도와줄 수 있을 것이다. “죽고 싶지만 떡볶이를 먹고 싶다”고 말한 어느 작가 2) 처럼 떡볶이를 먹으러 일단 가라. ‘웃으면 복이 온다’는 말처럼 움직이면 우울이 떠나고 즐거움이 온다. 움직여라.
출처와 기원이 불분명한 ‘코로나 블루’라는 용어를 우리나라에서만 이상하리만치 자주 사용하는 것 같다. 코로나 바이러스 팬데믹 사태로 인한 우울증을 ‘코로나 블루’라는 용어로 표현하는 영어권 국가는 거의 없다. 마찬가지로, ‘코로나 레드’, ‘코로나 블랙’이라는 용어도 그렇다. 전문 용어는 더더욱 아니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원고를 통해서라도 이 점이 널리 알려졌으면 한다.
1) 변동성(Volatility)이 심하고, 불확실(Uncertainty)하며, 복잡(Complexity)하고, 모호한(Ambiguity) 사회 환경을 말한다. 1990년대 초반 미국 육군 대학원에서 처음 사용되기 시작했다.
2) 백세희,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흔, 2018.
본 원고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정부광고 수수료를 지원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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