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리터러시 역량이성평등 교육의 핵심 - 1부 -
박유신(이하 박): 안녕하세요. <성평등 교육과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 대담의 사회를 맡은 서울 석관초 박유신입니다.
송현민(이하 송): 이화여자대학교사범대학부속이화금란고등학교 국어 교사 송현민입니다. 성평등 교육에 관심을 갖고 이런저런 활동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황고운(이하 황): 고양 강선초 황고운입니다. 성평등 교육하는 교사 모임 ‘아웃박스’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최은옥(이하 최): 고양 일산 대화중 국어 교사 최은옥입니다. ‘전국국어교사모임 매체연구회’와 ‘전국미디어리터러시교사협회 카톰’에서 운영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성평등 교육의 필요성
박: 오늘은 그동안 현장에서 성평등 교육과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을 실천해온 네 명의 교사가 만났습니다. 최근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과 성평등 교육이 굉장히 중요한 이슈로 떠올랐고, 이 둘은 서로 겹치는 부분이 많아서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에서는 성평등을, 성평등에서는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교육 현장에서도 이에 관해 다양한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선생님들께서는 성평등 교육의 필요성을 어떻게 느끼시나요?
황: 질문에 대한 답은 아니지만 미디어에서 ‘젠더 갈등’이라는 용어가 일반적으로 사용되는데,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동등한 위치에 있는 성별 간 대결처럼 보이잖아요. 성차별과 혐오가 드러난 상황을 제대로 부를 수 있는 표현이 필요해요. 젠더폭력, 성차별 등 상황에 맞는 표현을 쓸 수 있을 텐데, 미디어에서는 모두 젠더갈등이라 이름 붙이면서 성별 간 갈등을 부추기는 게 아닌지 우려스럽습니다.
박: 미디어에서 이런 것을 차별이 아닌, 동등한 갈등인 것처럼 다루기 때문에 ‘젠더 갈등’이라는 용어 자체가 문제라는 지적이신데, 맞는 말씀입니다. 다만 이러한 현상을 포함해서 저희가 경험적으로 느끼는 충돌을 설명하기 위해 이 같은 표현을 사용했음을 양해 부탁드립니다. 조금 더 선생님들의 경험을 들어보죠.
최: 제가 근무하는 학교는 남녀 공학 중학교이고 한 반에 반반씩 성별이 구성되어 있어요. 실제 현장에서는 남학생과 여학생이 서로 대립각을 세우고 갈등하는 상황을 거의 못 봤어요. 다만 기술가정 수행평가 수업에 참관했을 때 이런 경험이 있었어요. 주제는 TPO 즉, 시간 장소 상황에 맞게 옷을 연출하는 것이었고, 학생들이 모둠별로 옷차림을 하고 워킹을 했어요. 한 모둠은 추석 명절을 주제로 정했는데, 보니까 할아버지는 분위기 있는 조끼를, 아빠는 정장을 입었어요. 그리고 할머니와 엄마는 앞치마를 두르고 있었어요. 아이들은 편한 트레이닝 복장이었고요. 문제는 할머니가 워킹을 할 때 허리가 아파서 두드리는 연기를 하면서도 여전히 앞치마를 두르고 있어요. 기술가정 선생님은 “흔히 볼 수 있는 명절의 모습을 잘 표현했다”고 총평을 하셨습니다.
마침 그다음 시간이 국어 수업이라 제가 아이들한테 물어보았습니다. “명절에 할머니가 허리도 아픈데 왜 앞치마를 입고 있고, 아빠와 할아버지는 왜 정장을 입고 있었을까?” 아이들이 대답을 못 하더라고요.
이때 저는 아이들이 의도적으로 차별을 하려고 한 게 아니라, 그냥 이건 일상의 문제구나 하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미디어도 일상인데 미디어에서 표현하는 것들이 아이들의 인식에 이런 식으로 영향을 주고 있겠다 싶었어요.
그런데 막상 아이들을 관찰하면 평소에는 성차별적 발언을 하거나 이 문제가 실제 갈등으로 번지는 것 같지는 않아요. 그런데 미디어 속에선 심각하게 느껴지거든요. 특히 청소년이 좋아하는 웹툰의 댓글에서는 남녀 갈등이 심해요.
웹툰 댓글창에 페미니즘 이야기가 많이 나오거든요. 댓글을 보면서 혹시 이 중에 우리 아이들도 있지 않을까 생각하죠. 아이들이 평소에 속마음을 드러내지 않는 것인지, 아니면 미디어에서 싸우는 아이들이 따로 있는 것인지 의아해요. 아이들한테 그런 댓글에 참여하는지 물어볼 기회는 없었어요. 앞으로 이에 대해서도 물어봐야겠다고 생각 중입니다.
송: 비슷한 맥락일 수 있는데 얼마 전에 학생들이 생각하는 사회에서의 성별 갈등 사례와 학교에서 경험한 갈등의 사례에 대해 말해보자고 한 적이 있어요. 익명으로 설문조사를 했는데 결과가 지금 말씀하신 것과 비슷해요.
학교에서 혹은 교실 안에서 직접 경험한 성별 갈등은 딱히 없어요. 오히려 성별 갈등보다는 명확하게 성차별적인 사례만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미디어를 통해 관찰해 본 사회 내 성별 갈등 사례에 대해 물어보면 굉장히 많은 대답이 나와요.
군대 문제, 임신과 출산, 육아 문제, 돌봄 노동의 문제, 남혐과 여혐의 문제, 한남이라는 표현. 우리들이 일상적으로 얘기하는 이런 사례들이 끊임없이 나와요. 그런데 실제로는 학생들이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것이죠.
한참 페미니즘 리부트 시기에 제가 남고에서 근무하고 있었는데, 그때 ‘김치녀’ 얘기가 많이 돌았어요.
학생들한테 실제로 그런 여성을 본 적이 있거나 만나 봤는지 물어봤어요. (학생들이) 연애해본 적도 없고 데이트도 해보지 않았지만, 인터넷에서 봤다고 얘기해요. 내가 실제로 경험하지 않았다고 해도 미디어를 통해 계속해서 접하는 간접 경험은 정체성을 만들어 나가잖아요. 그런 면에서 이원 젠더를 기반으로 성별 갈등 구도를 만드는 언론의 해악이 굉장히 크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최: 설문조사 결과에서 성차별과 관련된 내용이 많이 나왔다고 하셨는데 혹시 남녀 다 골고루 비슷한 결과가 나왔나요?
송: 성별 갈등, 젠더 갈등이라는 키워드로만 질문을 했는데 성차별 사례가 나온 거잖아요. 당연히 여성에 대한 성차별 사례가 많이 나왔죠. 익명이어서 설문에 참여한 학생들의 정보를 정확히는 모르지만 이런 문제에 관심이 있고 적극적으로 응답한 학생들은 아무래도 여학생이 많지 않았을까요.
성별 갈등은 미디어 탓
박: 아이들이 교실에서 드러내놓고 갈등을 일으키지는 않지만 미디어를 통해서 이런 갈등을 주입받는 입장이라는 말씀이군요?
송: 실제 현실에서 경험하는 것은 성별 갈등보다는 성차별인데 미디어가 성별 갈등이라고 계속 이야기를 하니까 학생들에게 분명히 영향을 미치는 것 같아요. 소셜 미디어뿐만 아니라 댓글이나 뉴스 등 다 포함해서요.
황: 제 경우도 비슷합니다. 학생들이 경험해 보지도 않은, 미디어에서 만들어진 이미지를 가지고 와서 실제인 듯이 말하는 상황이 반복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너 페미냐, 메갈이냐”라는 질문이 실제로 갈등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미디어 속 이미지로 접한 ‘페미니스트가 이런 모습일 것이다’라는 고정 관념이 중심에 있을 때예요.
여학생이 어떤 행동만 하면 “너 페미냐? 그런 행동은 왜 해?”, “성폭력 예방 교육을 할 때 그런 질문은 왜 해?” 이런 식으로 반응하고 갈등으로 이어지는 것 같아요.
박: 성평등 교육 때 “너 페미냐?”라고 묻는 남학생이 초등학생 중에도 있다는 말씀이네요?
황: 있긴 있죠. 제가 직접 경험한 건 아닌데, 다른 교사에게 들은 사례가 있습니다.
송: 고등학교에도 많이 있습니다. 일반사회를 가르치시는 다른 학교 여성 선생님인데, 사회문화 영역의 성 불평등 내용을 기초로 아주 기본적인 이야기를 하면 항상 “페미다, 메갈이다” 이렇게 손가락질하는 남학생들이 있다고 말씀하세요.
황: 예전에 어느 강의 때 중고등학교 선생님들을 만났는데 한 선생님이 수업하고 나오면 고등학교 1학년 학생들이 이 선생님의 뒤에서 “페미들은 다 재기해야 돼”라고 말한답니다. ‘재기’는 남성연대 성재기 씨의 사망을 빗대어 사용하는 말인데, 아이러니하죠.
박: 성차별에 대한 인식을 바탕으로 벌어지는 혐오 상황이 교실에서 일어난다는 말씀이 무겁게 다가옵니다. 그렇다면 성평등 교육에 대해서 어떤 필요성을 느끼시나요?
최: 중학교 1학년 학생들을 보면 초등학교에서 성평등 교육을 잘 받았다고 생각해요. 아이들이 성차별적 발언을 지적할 수가 있거든요. 이런 역량이 중고등학교나 사회에 나가서도 꾸준히 길러지면 좋겠어요. 한두 시간의 수업만으로 성평등 인식이 내면화되는 건 아니니까요.
박: 남학생이 남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스킨십이 과하다고 느끼는 경우가 있어요. 하지만 교실에서 젠더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다보니 이런 이야기를 언급조차 못하는 경우가 있어요. 교육에서 다루어야 할 내용들이 수면 아래로 가라앉는 것이죠.
성평등 교육의 주요 이슈
박: 지금까지 교실에서의 갈등 상황은 아이들이 미디어를 통해 접하는 세상의 혐오와 깊은 관계가 있다는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렇다면 미디어와 성평등 교육에서 핵심 이슈는 무엇일까요?
황: 외모나 신체에 대한 이야기가 아이들에게 가장 영향을 많이 주면서 성평등 이슈와도 맞닿아 있다고 생각해요.
성에 대한 고정 관념보다 외모와 관련된 부분이 지배적이에요. 초등 3학년만 돼도 다이어트 한다며 급식을 안 먹어요.
몸의 다양성과 자신의 몸을 긍정적으로 바라봐야 한다고 이야기해도 쉽지 않아요.
미디어에서 강박적으로 몸에 대한 이미지를 주입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초등 고학년부터 고등학생까지 외모와 신체에 대한 교육이 지속적이고 다층적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예를 들어 남자 아이돌 어깨 너비 재고, 여자 아이돌 다리 길이 재서 순위 매기고, 메이크업 유튜브가 대세이고, 육아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공영방송인데도 “이미 완성된 외모” 등으로 어린이들의 외모를 촘촘하게 평가하고 있잖아요.
미디어의 자성이 필요합니다. 소셜 미디어도 마찬가지예요. 인스타그램과 유튜브에서 메이크업, 몸, 아름다운 신체 이미지 등이 압도적으로 조회 수가 많아요. 물론 트위터 등에서는 이런 이야기를 하지 말자는 목소리가 계속 올라오기도 하죠. 하지만 대중적으로 외모나 성차별적 콘텐츠가 많이 소비되는 건 사실이에요.
박: 외모에 대한 강박 관념이 성평등 이슈와 관련되는 이유는 성차별을 바탕에 깔고 있어서라고 생각합니다.
왜 여성에게 주로 외모 압박이 발생하는가라는 문제가 있거든요. 최근 청소년 사이에서 극단적으로 마른 몸에 대한 선망,
즉 ‘프로아나’ 문제가 굉장히 심각한데요. 미디어와 관련이 있습니다. 미디어에서는 점점 더 마른 신체의 인물을 이상적인 것처럼 제시해 왔죠. 최근 인스타그램 등 소셜 미디어에서 자신의 몸을 재현하면서 청소년들이 극단적인 다이어트를 선택하고 있어요.
결국 신체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송: 식이장애는 아까 말씀하셨던 신체 이미지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는 생각이 들어요. 제 생각을 조금 보태면 물론 여성에게 더 크게 강박이 작용을 하고 있지만 최근에는 남성적인 몸에 대한 이미지도 고착되고 있습니다.
황: 초등학생 중에서도 덩치가 큰 남학생들이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요. 살이 찌거나 키가 작은 것. 이 둘을 굉장히 신경 쓰는 것 같아요.
최: 중학교 남학생들은 특히 어깨도 신경을 써요. 방학 때 운동을 해서 어깨를 넓혀 오겠다고 선언하는 친구도 있어요.
송: 그러다가 고등학생이 되면 근육으로 (관심이) 가는 것 같아요. 성 고정 관념을 강화하고 또 그것을 닮지 못한 몸을 혐오하고. 이는 여성 혐오로 이어지기도 하지만 동시에 성소수자 혐오로 이어지는 부분도 있어요. 굉장히 여러 가지가 복합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 같아요. 화장에 대해 고민하는 학생에게 “화장은 잘못이야”라고 강압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과연 얼마나 도움이 될까 고민입니다.
‘페미니즘’ 용어의 오염
최: 제가 생각하는 핫이슈는 ‘페미니즘은 정신병이다’라는 문구로 대표되는 페미니즘 관련 용어에 대한 반발감 같아요. 온라인에서나 교실에서나 남성뿐 아니라 일부 여성도 여기에 동조하더라고요. 자세히 보면 미디어에서 요즘 페미니스트, 페미니즘 이런 이슈나 용어를 많이 다루는데, 사람들의 날이 많이 서 있다고 생각해요.
황: 페미니즘이라는 용어가 그런 식으로 비춰진 것도 미디어의 영향이 크다고 봐요.
커뮤니티 중심의 자극적이고 부풀려진 팩트체크가 되지 않은 몇 가지 허위정보가 있었죠.
예를 들면 죠리퐁을 여가부에서 금지했다든가 얼마 되지 않는 여가부의 예산을 31조로 부풀려서 여가부가 예산을 엉망진창으로 쓰고 있다는 거짓 정보를 유포한다든가. 5~6년 전부터 “이건 페미니스트들이 한 짓이다!”라고 거짓 선동을 하는 일들이 많았어요.
여성 페미니스트가 성체 훼손을 했다는 소문이 퍼져 천주교도와 시민들이 분노하는 사건이 있었는데, 실제로는 남성이 한 일로 밝혀졌다든지요. 허위정보가 모여서 페미니즘에 대한 확신을 만들어내고, 또 이를 비판 없이 퍼 나르는 과정에서 커뮤니티와 미디어의 역할이 굉장히 컸다고 생각해요.
박: 선생님들의 말씀을 들어보면 지금 현재 페미니즘에 대한 팩트체크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는 거네요?
학생과 청소년들이 페미니즘이라는 용어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는 게 문제인 것 같습니다.
황: 팩트체크는커녕 페미니즘이 무엇인지 수업을 하기도 어렵습니다. 페미니즘이 뭐냐고 물어보면 대답할 수 있는 학생이나 교사는 많지 않을 거예요.
박: 여자건 남자건 청소년이 미디어를 통해서만 페미니즘을 배우고 실제로는 성평등 교육을 통해서나 학문으로서의 페미니즘에 대한 정의와 이론을 배우지 않았다가 핵심인 것 같아요.
황: 페미니즘을 욕하는 사람들이 우리나라 페미니즘은 변질됐다, 진짜 페미니즘은 그렇지 않다고 말하면서 급격한 페미니즘이 문제이지, 성차별 할 생각은 없다고 말하는데 말만 그렇게 하고 실제로 행동은 다른 것 같아요.
박: 실제로 얼마 전에 페미니즘 연구자인 주디스 버틀러가 EBS에서 강의했을 때, 근친상간을 주장했다는 허위정보가 돌면서 EBS 시청자 게시판에 항의 소동이 벌어졌어요. 외국에서 온 ‘진짜 페미니즘’인데도. 어떤 의미에서는 젠더 혐오론자들이 적극적으로 미디어를 활용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러니까 이건 사실...
송: 저는 좀 복잡한 부분이라고 생각하는데, 페미니스트라고 해도 굉장히 다양해요.
그러다보니 그 안에서도 언제나 논쟁이 있어요. 저는 맨 처음 황고운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에 핵심 이슈가 있다고 생각해요. 어떤 두 진영이 싸우고 있다는 이미지를 심어주면서 마치 대등한 발언권을 가지고 있다는 환상을 심어주고, 적어도 인터넷 공론장에서는 이 운동장이 기울어지지 않았다는 환상을 심어줌으로써 이 둘을 대등하게 대치하는 집단으로 만들어버린다는 점이 제일 문제예요.
그런데 그런 식으로 계속 강화되고 내면화하다보면 정체화하게 돼요. 우리가 모두 동일하다는 점을 계속 이야기하다보니 자꾸 생물학적 환원주의로 가고, 생물학적 이원 젠더에서 벗어나는 존재들을 배제하는 방식으로 내부 결속을 하게 돼요.
결국 성소수자들은 갈 곳이 없는 상황이 만들어져요. 그래서 트랜스젠더 배제적 페미니즘 같은 경향이 생겨나는 것이죠. 젠더 다양성을 생각하지 않고 일반화하고 통일시키면서 교차성과 다양성에 대해서 고민하지 않는 부분이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학교 현장에서 트랜스젠더 혐오가 동성애자에 대한 혐오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모두에게서 굉장히 심하게 드러나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 성평등 이슈에서 제일 중요한 부분 중 하나가 트랜스젠더-퀴어 이슈라고 생각합니다.
박: 트랜스젠더 혐오의 문제는 말씀대로 심각합니다. 그리고 더 심화해서 이야기해야 할 주제 같습니다. 상당히 어려운 맥락 속에 있고, 왜 성평등 교육과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이 세계 시민 교육에서 출발하는가와 깊은 관련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미디어와 성평등’ 교육
박: 이야기를 나눌수록 미디어가 성차별 상황에서 굉장히 심각한 이슈이고, 교실 내 성평등 교육을 가로막는 사회적 분위기가 있다는 걸 깨닫게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미디어와 성평등 교육에 관한 선생님들의 경험을 듣고 싶은데요. 선생님들께서는 미디어 리터러시에 초점을 맞추어 성평등 교육을 할 때의 목표는 무엇인지, 또 어떤 수업을 하시는지, 아이들의 반응은 어떠한지 궁금합니다.
최: 제가 운영하고 있는 ‘미디어 인문학’이라는 자유학기 동아리가 있어요. 미디어를 소재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데요.
얼마 전 7월 5일에 지하철에서 어려움에 처한 여성을 남성들이 도와주지 않았다는 내용의 기사가 하나 떴어요. 그 기사를 읽고 제가 놀란 부분은 기사 내용보다도, 여성을 도와주지 않은 걸 잘했다고 평가하는 댓글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입니다.
“무슨 일을 당하려고 도와주냐”, "여성들은 남성이 없으면 아무것도 못하나"는 등의 여성 혐오성 발언이 너무 많았어요. 그런데 사실 이 기사는 오보였습니다. 실제로는 주변 사람들 모두가 쓰러진 여성을 도왔거든요. 그래서 동아리 수업에서 아이들에게 기사를 보여준 뒤 댓글을 달아보라고 했어요. 30명 중에 남학생 2명, 여학생 3명 빼고는 모두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도와줘야 한다고 댓글을 달았어요.
이 5명은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니 안 도와준 것은 잘한 일이라고 댓글을 달았고요.
수업 말미에 이 기사는 취재나 팩트체크 없이, 커뮤니티의 게시물을 바탕으로 쓴 잘못된 기사라고 알려주었어요. 팩트체크 된 기사가 나왔다는 것도 알려주고요. 저는 댓글에서의 여성 혐오를 넘어서, 기사를 둘러싼 사회구조적 측면을 아이들과 살펴보고 싶었어요. 이런 기사가 등장하는 이유부터 이 기사가 팩트체크가 되지 않았을 때 생길 수 있는 문제, 그리고 언론사의 수익 문제 등. 여자는 도와주면 안 된다는 댓글이 달렸을 때 댓글을 남긴 사람들의 성향, 성비, 연령대 같은 것을 보면서 이들이 과연 시민을 대표할 수 있는지도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이 문제를 법의 문제로 보는 친구도 있었어요. 이처럼 미디어 리터러시 역량을 갖추고 사회를 살펴보고, 기사를 접했을 때 비판적으로 한 번 더 생각해보고, 댓글을 다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지, 다른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하는지 탐구할 수 있는 그런 수업이었습니다. 미디어 수업을 할 때 딱 좋은 예제입니다. 양성 평등 이야기도 , 저널리즘 이야기도 할 수 있는 문제인 것이지요.
박: 미디어 리터러시 관점에서 정보를 점검하고, 출처를 밝힘으로써 미디어와 관련된 성평등 교육이 이루어지는 사례를 말씀해주셨습니다. 미디어 리터러시의 기본 원칙은 성평등 교육에서도 유효하다고 봅니다.
황: 초등학교에서는 상상력 키우기에 제일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내가 겪어보지 않아서 모르는 것을 함부로 말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상상해 보기. 예를 들면 내가 겪어보진 않았지만 여자애들이 생리를 하면 얼마나 힘들지에 대해서 열심히 상상해보는 거죠.
그걸 도와주는 콘텐츠를 열심히 찾고 있어요. 성차별 광고를 보고 문제를 지적하거나 새로운 관점에서 만든 새로운 광고를 보여주는 거죠. 예를 들어 후시딘 광고의 경우 예전에는 아이가 뛰다가 넘어지면 엄마를 부르고 엄마가 달려와서 아이를 달래는 내용이었는데, 지금은 어린이들이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서 “울지 않아!” 하는 내용으로 바뀌었어요.
이런 광고를 함께 보며 새로운 관점을 찾아내려 하고 있어요. 차별을 드러내는 것은 한두 번 정도면 충분해서 그다음에는 스스로 일상 속에서 차별적 장면을 지적할 수 있죠. 이제는 미디어가 만든 좋은 사례를 많이 보여주려고 해요.
뉴스를 본 아이들이 찾아와서 “선생님 사우디에서도 여자들이 운전을 할 수 있게 됐대요. 그 전까지는 어려웠나봐요”라고 말하거든요.
그래서 학생들과 아침마다 1분 정도 뉴스를 공유하는 시간을 가지려 해요. 본격적인 수업이 아니더라도 초점을 맞추어가는 것이 중요해요. 저는 계속 말을 해요. 그럴 수 있어, 다를 수 있어. 항상 다양성에 대한 이야기를 실천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어요.
박: 선생님들의 말씀을 들어보니 교실에서 성인지가 필요한 상황을 다루는 것만으로도 학생들이 일상생활 관련 미디어 상황을 발견하고 같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장이 형성된 것 같습니다.
최: 네. 사회에 대한 관심이 더 커진다고 해야 할까요? 예전보다 뉴스도 많이 보고, 알게 된 것을 이야기하며 자랑해요.
박: 굉장히 바람직하네요. 교사들이 교실에서 성평등 교육을 직접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해답이 됐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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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원고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정부광고 수수료를 지원받아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