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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길동 May 21. 2024

딱 5분 등장하는 결정적 엑스트라

(생의 실루엣, 미야모토 테루)(3/3)

https://blog.naver.com/pyowa/223450800569


작은 체구가 1983년의 내 모습이다. 옆에 있는 아이는 내 친구다. 언제봐도 대비가 강렬한 잘 찍은 사진이다. 사진 오른쪽 발치 앞에서 죽을 뻔 했다.



1983년 여름 나는 물에 빠져 죽을 뻔했다. 진안의 백운동 계곡이었는데, 죽을 뻔한 그 장소에서 찍은 사진이 있다. 죽을 뻔하기 전이었겠지.


사진을 가만히 들여다보니 검푸른 게 꽤 깊어 보인다. 깊지 않은 곳에 들어갔다. 바닥은 모래여서 내 체중으로 조금씩 부서저 내렸고, 나가려고 발바닥을 움직이면 모래는 더 무너져서 나는 조금씩 깊은 곳으로 들어갔다. 물이 깊어지자 부력으로 내 몸은 더 가벼워져 모래를 박차고 물 밖으로 나갈 수 없게 되었다. 순간 발바닥의 느낌까지 선명하다.


바로 그 직전 사진이다. 테루는 사진이란 순간이므로 '순간의 전후'를 생각한다고 했다. 사건이 일어날 조짐을 찾아본다고 했다.


다시 1983년의 사진을 본다. 죽음의 조짐을 사진에서 살펴본다. 회오리치는 물살, 왜소한 체격, 바위 위의 사람들, '물쪽으로 조금 더 들어가보라던' 사진찍는 아저씨의 말, 그리고 경상도 사투리가 떠오른다. 나는 잠시 후 물에 빠져 죽어갔고, 계곡 건너의 20대 아가씨가 나를 구해줬다. 경상도 사투리로 '니 물 몇 컵 먹었노?'라고 말하고 일행으로 돌아갔었다. 아가씨가 나를 구조하고 떠나간 시간은 5분이 채 되지 않았다.


소설도, 에세이도 마찬가지 아닐까. 이야기가 있고, 그 이야기에는 다음 이야기가 있다. 이야기가 시작되어도, 그 전의 이야기가 있고, 이야기가 끝나도 그 이후의 이야기가 있기 마련이다. 그들은 어떤 삶을 살아온 걸까. 그들은 이제 어떤 삶을 살게 될까. 아무것도 알 수 없지만, 당시마다 어떤 조짐이 있는 게 아닐까.


내 삶의 등장하는 엑스트라 같은 사람들도 이전의 이야기가 있고, 이후의 이야기가 있을 것이다. 나를 구해줬던 20대 아가씨는 그날의 조짐 같은 게 있었을까. 나의 이야기와 아가씨의 이야기는 딱 5분동안 근접하다 다시 각자의 이야기로 돌아갔다. 그리고 40년이 지났다. 아가씨는 어떤 이야기를 가지고 살게 되었을까. 60대가 되었을 아가씨는 살면서 가끔은 내 이야기도 했을까. 


딱 5분 등장하는 결정적 엑스트라와 인생의 이야기를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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