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지러움증은 나를 어지럽게 한다.
C.C.(Cheif Complaint - 주 증상) : 어지러워요.
응급의학과 의사로 수련기간의 절반정도를 지나게 되면, 환자를 만나기 전에 간호정보기록지에 적히게 되는 환자의 주 호소증상 (Chief Complain)을 읽어보고 환자를 진료하기 전에 머릿속에 몇가지 감별진단 (Differential diagnosis)을 그리게되고, 이를 토대로 환자에게 문진과 신체진찰을 하면서 덜 끼워 맞춰진 진단명들을 추리는 데에 익숙해진다.
하지만, 그런 익숙함 속에서도 항상 응급의학과 의사들이 기피하고 싶은, 진료하기가 까다로운 환자들이 바로 이 '어지러워요' 환자들이다. 오죽했으면, 응급의학도들이 정석처럼 읽는 Tintinalli 교과서의 'dizziness' 쳅터의 서문조차. '어지러움증은 응급의학과 의사들이 가장 만나기 꺼려하는 증상중 하나'임을 시인하고 있다.
이 어려움은, 이 증상으로 나타나는 감별 진단의 수가 다른 증상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으며, 이에 덩달아 감별하기 위해 시행해야 하는 신체진찰과 문진의 문항도 길어지게 되며, 시행해야 하는 신체진찰도 일반인이 잘 이해하기 힘든, 머리를 여러방향으로 돌려본다던가 손가락을 이리저리 맞춰본다던가 걸음을 걷게 한다거나 하는 시간이 무척이나 소요되는 것들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는데 있다. 거기에다 한창 어지러워하는 환자들에게 이러한 신체진찰을 무리하게 시도하다가 구역과 구토를 악화시켜 제대로된 진찰이 되기도 쉽지 않다.
그렇다고 문진이 쉬운 것이냐? 어지러움으로 내원하는 환자의 7~8할은 갱년기 후의 여성인데, 증상의 발현에 psychogenic feature(신경정신적 특징)가 더해지게 되면, 문진은 아주머니들의 하소연장으로 변모하기 일쑤다.
하지만 이 증상을 주소로 내원한 환자들을 간과해서도 안될것이, 간단하게는 이석증(귀의 균형을 담당하는 반고리관의 장애로 발생하는 어지럼증)으로 감별이 된다면 다행이지만, 뇌경색이나 심근경색, 심지어 최악의 경우에는 대동맥 박리(Aortic dissection)라고하여 대동맥이 찢어져나가는 치명적인 질환까지도 이 증상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치명적인 질환을 놓치는 것은 응급의학과 의사로서는 악몽과 같은 일이다.
결국엔 응급실에 오면 이런 흉악하고 치명적인 질환들을 환자에게서 배제하기 위해 흉부 X-선 사진, 심전도, 혈액검사와 더불어 뇌경색을 감별하기 위해 머리 MRI를 촬영하게 된다. 위의 검사를 모두 시행한 환자들의 대다수는 앞서 언급했던 흉악한 질환으로부터 벗어나게 되며, 증상이 호전될때까지 지켜보다가 귀가를 하게된다..........
..........로 끝나면 좋겠지만, 문제는 머리 MRI 검사가 비급여이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보험체계는 모순덩어리라서 비싼 검사는 검사를 진행했을때 문제가 있으면 급여를 해주고, 검사를 진행했으나 문제가 없으면 비급여 처리가 된다.) 최소 30~40만원의 비용이 발생하며, 응급관리료(국가에서 지정한 응급실 이용비)를 포함한 진료비를 가늠해보면 60~70만원의 비용이 발생하게 되여, '대학병원 응급실은 돈만 밝히는 버러지들만 있다'며 욕을 먹고나서야 진료가 끝나고 마는 것이다. (이 글을 쓸 당시만 해도 머리 MRI는 비급여였으나 요즘은 보험 사정이 나아져서 대부분 급여 촬영이 가능하니 일단 환자분들 부담은 좀 줄었다.)
다쓰고 나니 나도 어지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