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음악 평론을 해온 지도 꽤 오래되었습니다만, 이런 일들이 일어날 때마다 이 기형적인 산업의 모순을 계속 용인하는 것이 과연 옳은가, 나 자신 역시 이 천박한 문화의 공범이 되어 그 구조적인 폭력성을 계속해서 재생산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슬픔과 회의감에 빠지곤 합니다.
전세계 어느 음악 갈래를 뒤져 보아도 케이팝처럼 매년 젊은 아티스트들이 극단적 선택으로 세상을 떠나는 산업은 없습니다. 샤이니의 종현을 잃었던 2017년 12월 18일 이후로 한 뼘만큼도 성숙해지지 않은 케이팝 문화는 범지구적 흥행이라는 환각에 취해 그 가혹한 실상을 은폐해 왔습니다.
과정이 부정의하면 결과는 무의미합니다. 쉽게 말해, 사람을 갈아넣어서 얻어낸 성공은 성공이 아닙니다. 새로운 야만의 시대로 접어들고 있는 이 사회에 단 하나 희망이 있다면, 우리 스스로의 성찰과 반성이 응집되어 만들어내는 구심력입니다.
개인의 안타까운 죽음을 거대 담론의 기폭제로서 소비하는 행태는 반드시 지양되어야 하며 항상 경계해야 할 테지만, 개인적 애도에 더불어 케이팝 문화 (더 나아가 근현대 한국 사회의 의식과 관념) 전반에 대한 변증법적 성찰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저 역시 한참 부족합니다만 혐오와 비인간성이 배제된 건강한 케이팝 문화를 만들어나가기 위해 끊임없이 반성하고 노력하겠습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