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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빈 May 20. 2024

"오빠 멋져요"는 올바른 감상평일까?

임마누엘 칸트식 케이팝 감상법



인기 아이돌의 뮤직비디오가 업로드되면 댓글창은 매번 극찬 일색이다. "멋지다", "예술적이다", "역시 OO이는 아티스트다" 등등 비슷한 호평이 반복되는 광경을 보고 있자면, 한 가지 의문이 생겨난다. 그들은 정말 이 영상이 순수히 예술적이라고 생각해서 그런 댓글을 남기는 것일까? 만약 그들이 해당 아티스트의 팬이 아니었다면, 그(혹은 그녀)의 외모나 매력이 지금과 달랐더라면, 아무런 사전 정보 없이 영상을 시청했다면 똑같은 반응을 보였을까? 소위 말하는 '팬심' 이라는 사적인 감정이 반영되어 순수한 미적 판단력을 흐리고 있는 게 아닐까?



독일의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는 이 문제에 대한 자신만의 해답을 제시한다. 그의 저서 <판단력비판>에 의하면 취향(geschmack)은 '어떤 대상이나 표상 방식을 일체의 관심을 떠나 만족 혹은 불만족에 의해 판단하는 능력'이다. 이러한 판단에 의해 만족을 도출한 대상은 아름다운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다시 말하자면, 다른 요소의 개입 없이 순수한 무관심 속에서 아름답다고 판단된 것만이 진정 아름다운 것이다.



가령, 경복궁의 모습을 보게 되면 많은 한국인은 한반도의 빛나는 문화적 성취에 대한 민족적 자긍심을 느낄 것이며, 일제의 수탈에도 굴하지 않고 그 자태를 수백년간 유지해온 역사적 맥락에서도 자랑스러운 감정을 가질 것이다. 이러한 과정으로 그는 경복궁이 아름답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칸트의 미학에서는 이 결론을 제대로 된 판단으로 보지 않는다. 무관심한 상태에서 건물 자체의 아름다움을 평가한 것이 아니라, 민족의식이나 역사적 감정 등 다른 관심이 판단 과정에 개입되었기 때문이다.



비슷한 맥락에서 아이돌 팬들의 호평 역시 칸트가 말한 제대로 된 미적 판단과는 거리가 멀다. 팬들의 미적 판단의 근거가 사적인 팬심과 분리되어 있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만약 뮤직비디오의 예술성을 객관적으로 판단하려면 미술, 촬영, 각본 등 영상의 기술적 완성도를 구성하는 요소들을 구체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팬들이 주목하는 것은 ‘우리 가수’의 외모가 영상에 예쁘게 담겼는지의 여부다. 감상법에 정답은 없지만 전적으로 팬심에만 의존하는 감상은 시장의 질적 발전을 저해할 위험성이 존재한다.



때문에 케이팝 음악에서 평론가의 역할은 더욱 중요하다. 아이돌에게 인간적 호감을 느끼도록 구조화되어 있는 케이팝 산업의 비즈니스 모델이 작품에 대한 대중의 무관심적 감상을 더욱 어렵게 하기 때문이다. 이 간극을 메꿔주는 역할을 수행하는 평론가들은 아티스트에 대한 사적인 감정으로부터 한 걸음 물러나 작품을 파악하고 그 예술적 성취도를 객관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평론가가 제공하는 무관심적 감상을 통해 대중은 더 다양한 시각에서 작품을 파악하고 시야를 넓힐 수 있게 된다.



무관심적 판단이 항상 정답은 아니다. 삶을 살아가며 마주하는 수많은 작품들 중에서는 그것을 둘러싼 컨텍스트 속에서 파악되어야 하는 것도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문화 산업이 고도로 상업화되며 바이럴 마케팅과 선정적인 콘텐츠가 난립해 감상자로서의 주관을 잃기가 쉬워진 오늘날, 칸트가 역설한 무관심적 감상의 원리는 문화 소비자에게 자신의 소비 방식을 다시 되돌아보고 반성할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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