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유 독해법: 그녀를 읽는 네 가지 시대론 [하편]

by 박정빈


아이유를 이해하는 것은
곧 대중음악을 이해하는 것이다.



아이유(IU)는 의심의 여지 없이 현재 대한민국에서 가장 강력한 대중성과 흥행력을 갖춘 아티스트다. 20일 미니앨범 [The Winning]으로 화려하게 돌아온 그녀의 커리어를 이 시점에서 다시 한 번 되짚어 보자. 이 글에서는 피카소의 '청색시대'처럼 아이유의 디스코그래피를 그 음악적 성향의 변화에 따라 네 개의 시대로 나누어 분류하고 시간 순서대로 톺아보고자 한다. 이는 대중이 사랑하는 그녀의 음악세계가 성장하고 진화하는 과정을 확인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3. 아이유의 시인시대 (2014~2019)

[Modern Times]의 리패키지 타이틀곡 "금요일에 만나요"는 그 어마어마한 흥행 성적과는 별개로 아이유가 처음으로 자작곡을 타이틀로 내걸었다는 점에서 매우 상징적이다. 기획된 판타지 속의 소녀 '아이유'가 아닌, 인간 이지은그녀의 커리어에 등장하는 첫 순간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사실 곡 자체로만 보면 평이한 어쿠스틱 팝에 불과한 이 노래가 아이유라는 아티스트를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 필수불가결한 작품인 이유다.


이후 발매된 리메이크 앨범 [꽃갈피]를 기점으로 아이유는 아이돌이라는 카테고리로부터 완전히 벗어나, 자신의 고유한 예술세계와 섬세한 자의식을 노래하는 '아티스트'로 확실히 거듭난다. "너의 의미", "나의 옛날이야기", "삐에로는 우릴 보고 웃지" 등 옛 한국의 대중가요를 재해석한 [꽃갈피]의 뛰어난 작품성은 대중과 평단을 모두 포섭하는 데 성공했고, 중장년층으로까지 팬덤의 외연을 넓히며 그녀를 진정한 '국민 가수'의 반열에 오르게 했다. 서태지와 협업한 '소격동' 역시 그 연장선이라 할 수 있겠다.


한편 아이유의 자아가 성장통을 겪는 과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스물셋", "삐삐", "팔레트"는 그녀의 커리어를 더욱 입체적으로 만들어 주는 작품들이다. 자신을 둘러싼 여러 논란들에 대해 다소 도발적인 태도로 맞서는 "스물셋"과 "삐삐"는 음악 내에서 그 예민한 자의식을 다소 서투르게 표출하는 젊은 예술가의 면모를 보여 준다. 시간이 지나 "팔레트"의 아이유는 태풍과도 같았던 성장통이 멈추고 고요해진 자아 속에서 자신을 되돌아본다. 아이돌에서 아티스트로의 과도기를 지나며 생겨난 상처들에 새살이 돋아나면서, 비로소 그녀는 예술가로서의 완전한 성숙에 이르른다.


아이유, "밤편지" (2018)

그 결과물이 바로 의심의 여지 없는 아이유 커리어 최고의 곡, "밤편지"다. 7년 전 그녀를 세상에 알렸던 "좋은 날"은 다채로운 악기들을 동원한 화려한 편곡으로 한껏 치장했었지만, 지금의 그녀에게는 더 이상 그 어떤 장식도 필요가 없다. 오롯이 진솔한 목소리와 단촐한 어쿠스틱 기타 하나만으로 꾸려낸 "밤편지"의 호소력은 가히 마법적인 것이었다. 나는 이 노래를 통해 음악만이 가지고 있는 힘에 대하여 다시 확신하게 되었다.


"가을 아침"과 "Love poem" 역시 목소리 하나만으로 청자를 간단히 압도할 수 있는 경지에 오른 아이유의 예술적 성취를 드러내 주는 훌륭한 작품들이다.


이 시기 아이유는 대부분의 곡을 직접 작사하기 시작했는데, 그 노랫말의 문학적 깊이가 놀라운 발전 양상을 보여 준다. 특히 반짝이는 비유로 가득한 "밤편지"의 가사는 실로 아름답기 그지없다. 예술가로서의 단단한 자아를 완성하며 기성 뮤지션들에 견주어도 결코 뒤지지 않는 싱어송라이터로 거듭난 이 시기를 아이유의 "시인 시대"라고 명명한다.


시인 시대의 아이유는 우리가 언제부터인가 잊고 있었던 음악의 본질-노랫말, 멜로디, 그리고 눈으로 보이지 않는 무형의 진심, 호소력 같은 것-을 회복시켰다. 누군가를 쉬이 사랑하기 어려운 이 혐오의 시대에 음악이라는 매체가 할 수 있는 역할이 무엇인지, 또 그것이 얼마나 강력한 힘이었는지 다시금 일깨운 아이유의 사랑시들은 한국 대중음악사를 관통하는 핵심적인 물음에 성공적으로 답했다. 작품성 측면에서 그녀가 가장 눈부신 역량을 보여준 최전성기는 바로 이 시인 시대였다고 할 수 있겠다.



4. 아이유의 완성시대 (2019~)


<어벤져스: 엔드게임>에서 끝내 세상을 구한 캡틴 아메리카는 히어로로서의 자신을 내려놓고 옛사랑에게로 떠난다. 모든 것을 이룬 영웅이 더 이상 영웅이기를 포기하고 다시 소박한 개인으로 돌아가는 이 결말은 아이유의 커리어 후반부 양상과 밀접하게 닮아 있다.



사실 "Love poem" 시점에서 이미 예술가로서의 아이유는 완성되어 있었다. 모든 성장통은 끝났고, 완전한 성숙에 도달했다. 아이돌-보컬리스트-싱어송라이터로 차근차근 진화해온 아이유의 서사는 완결을 맺은 상태였다. 그토록 원하던 왕관을 드디어 거머쥔 뒤, 놀랍게도 그녀가 택한 것은 처음으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싱어송라이터의 무게감과 진중함을 내려놓고 다시 커리어 초반의 발랄한 팝으로 돌아간 “Blueming”은 아이유의 완성시대를 알리는 신호탄이다.


이후 몇 년간 발매된 “에잇”, “라일락”, “Strawberry Moon”은 “Blueming”과 더불어 모두 밝고 경쾌한 바이브와 로킹하고 댄서블한 편곡이 돋보이는 음악적 기조를 공유한다. 아마도 ”밤편지“나 ”팔레트“처럼 차분한 무드의 음악으로 아이유를 기억하는 이들에게는 조금 낯설 테다.


아이유, "Celebrity" (2021)

특히 EDM 사운드로 이루어진 “Celebrity” 같은 곡은 구조적으로 완전히 케이팝의 형태를 띠고 있다. 아이돌에서 벗어나 아티스트가 되고자 하는 이미지가 강한 아이유지만, 아마도 그녀가 진정으로 하고 싶었던 음악은 의외로 아이돌 음악에 가까운 것이 아니었을까.



이처럼 아이유는 ”내 손을 잡아“를 부르던 초창기 시절과 유사한 모습으로 회귀했지만, 이는 퇴보가 아닌 진화에 가깝다. 아이돌 시대와 환상 시대의 강력한 대중적 파급력과 시인 시대의 성숙한 사유가 결합하며 종합적 완성형에 가까운 지점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Celebrity”의 가사를 되돌아보자. ‘잊지 마 넌 흐린 어둠 사이 / 왼손으로 그린 별 하나‘, 이 정도로 대중적인 사운드에 이 정도로 깊이 있는 가사를 담아낸 작품은 없었다. 메인스트림 팝과 인디 씬의 음악적 장점만을 고스란히 그러모아 뭉쳐낸 놀라운 결과물이다.



완성시대의 아이유는 대중음악이라는 매체의 기나긴 역사가 내놓은 최종적 답안이며, 동시에 아이유라는 자아가 긴 여정 끝에 마침내 찾아낸 보금자리이다. 이제 그녀는 어깨에 힘을 풀고 가볍게 웃으며 타인을 위로하는 방법을 안다. 이를 증명하듯 2년만에 발표한 신보 [The Winning]의 수록곡 “Shh..”에서 그녀는 뉴진스 혜인, 조원선, 탕웨이, 패티김과 함께 10대부터 80대까지의 여성들이 함께 연대하는 화합의 장을 마련하는데, 주로 개인적 문제에 천착하던 그녀가 이제는 외부 세계의 여성들을 규합하는 리더로 거듭났음을 보여 주는 상징적인 순간이라 할 수 있다. 가수 아이유를 내세우며 인간 이지은을 감추던 아이돌 시대와 환상시대, 그리고 인간 이지은을 가수 아이유보다 앞세우던 시인 시대와 달리 완성시대에 이르러 비로소 가수 아이유와 인간 이지은 양쪽이 화합을 이룬 모양새다.





아이유를 이해하는 것은 곧 대중음악을 이해하는 것이다. 한국 대중의 정서와 음악적 테이스트를 관통하는 존재인 아이유는 현대 한국 음악계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이라 할 수 있다. 그녀의 커리어를 시대열순으로 살펴보며 그 음악세계가 성장하는 과정을 포착한 이 글이 아이유라는 아티스트, 이지은이라는 개인, 더 나아가 케이팝이라는 독특한 생태계의 특질을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되었기를 바라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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