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드벨벳(Red Velvet) 결산 리뷰

레드벨벳 7년 커리어의 13곡을 되돌아보다

by 박정빈




13위

짐살라빔 (Zimzalabim)


실험은 처음 할 때나 신선하지 두번째부터는 주접이다. 인더스트리얼 뮤직을 K-POP에 부자연스럽게 이어 붙인 짐살라빔의 사운드에서 매력을 찾아볼 수는 없다. '행복'의 레드벨벳과 최근의 레드벨벳을 해체해서 재조립하는 시도의 결과물은 난잡하고 조악하다. K-POP은 작가주의 예술 작품이기 이전에 대중음악이다. 동 앨범의 수록곡 'Sunny Side Up', 'LP'를 추천한다.



12위

Dumb Dumb


레드벨벳의 첫 번째 정규앨범 'The Red'는 상당한 완성도를 가진 작품이지만 정작 타이틀곡인 'Dumb Dumb'의 만듦새는 애매하다. 마이클 잭슨의 곡명을 나열하는 랩의 퀄리티는 거의 조악한 수준이고 구성이나 사운드는 너무나도 산만하며 'Bang Bang' 레퍼런스는 눈살이 찌푸려질 정도로 노골적이다. 그러나 코러스 자체는 나름 중독성 있고 듣기 좋게 뽑혔다. 이 앨범의 수록곡인 'Oh Boy', 'Cool World', 'Day 1'을 추천한다.



11위

Rookie


'러시안 룰렛'으로 한껏 기대감을 올린 레드벨벳이 'Rookie'를 들고 나왔을 때의 실망감은 대부분이 공감할 것이다. 준수한 멜로디 라인을 힘겹게 따라가는 레드벨벳의 가창은 여전히 서투르고, 'Rookie'만을 지겹도록 반복하는 후렴구는 중독적이지만 안일하다. 캬리 파뮤파뮤의 향수가 느껴지는 이 어설픈 팝 곡은 SM엔터테인먼트가 아직 마음 한켠에서 비워내지 못한 '후크송'에 대한 집착을 보여 준다. 동 앨범의 수록곡인 'Little Little'이나 'Talk To Me'를 추천한다.



10위

행복 (Happiness)


보통 K-POP 그룹의 데뷔곡은 어설프고 미숙하기 마련인데 레드벨벳만은 달랐다. 벌스, 브릿지, 프리코러스 전부 수려하게 마감되었다. 그러나 코러스의 구성에서는 아쉬움을 남긴다. 리프레인 정도로나 쓰일 멜로디를 굳이 이렇게 전면에 내세워야 했는지, 작업 시간이 부족했는지 싶은 의문이 들 정도로 '행복'의 후렴구가 주는 인상은 흐릿하고 애매하다. 제대로 된 코러스를 붙였으면 더욱 완성도 있는 곡이 되었을 텐데 아쉬울 뿐이다.



9위

Ice Cream Cake


f(x)에게 줄 곡을 킵해놨다가 줬나 싶을 정도로 f(x) 냄새가 진하게 나는 건 둘째치고, '행복'을 망쳤던 합창이 또다시 출현해 트라우마를 자극하나 이번에는 다행히도 프리코러스로 가볍게 소비한다. 전체적으로 큰 인상을 받지는 못하나 곡은 무난하게 잘 쓰인 편. 코러스의 'It's so tasty~' 부분에서 완급조절을 해 주는 작곡진의 노련함이 돋보인다.



8위

Power Up


훅의 '바나나' 타령은 한숨만 나온다. 코러스 후반부 멜로디와 후크가 이어지는 과정도 그다지 매끄럽지 못해, 후렴이 충분히 캐치한데 왜 굳이 광고음악스러운 훅을 억지로 우겨넣었는지에 대한 아쉬움을 남긴다. 그것만 제외하면 곡의 만듦새는 상당히 수려하다. 꾹꾹 눌러 빚어낸 일렉트로닉 사운드는 매력적이고 시원하게 쭉쭉 뻗어 나가는 멜로디라인 역시 청량하다. 이 앨범의 수록곡 '한여름의 크리스마스'도 기분 좋은 감상을 주는 곡이니 함께 들어 보자.



7위

RBB (Really Bad Boy)


발칙하다. 'RBB'는 하나의 현대미술 같은 작품이다. 재즈, 힙합, 소울 등 다양한 장르의 악기와 장르적 요소들을 죄다 한데 섞고 버무려놓았음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통일된 테마가 느껴지게 하는 결과를 만들어냈다. 이는 여러 장르가 짬뽕된 하이브리드적 특성을 지닌 케이팝이라는 장르의 음악적 근원과 구조에 대한 유머러스한 풍자 혹은 유쾌한 메타포이다. 곡 자체만 따져도 4옥타브를 찍는 샤우팅 등 흥미로운 사운드가 가득하다. '짐살라빔'이 실패한 실험성과 음악성 사이의 줄타기를 성공해낸 작품.



6위

음파음파


실험성에 천착하다 하나의 밈이 되어버린 '짐살라빔'의 실패를 의식했는지 레드벨벳은 거의 진부하다 할 수 있을 정도로 정석적인 곡을 들고 왔는데, 그것이 바로 웰메이드 팝 곡 '음파음파'이다. 선명하고 리드미컬한 멜로디와 재치 있는 구성이 돋보이는데, 왜 진작 이렇게 하지 않았나 싶을 정도로 매끈하다. 독창성은 부족하지만, 깔끔한 프로듀싱 덕분에 굉장히 듣기 좋은 서머송이 되었다.



5위

Bad Boy


이 그루비하고 캐치한 악곡은 SM엔터테인먼트가 왜 외국 작곡가들에게 거액을 주고 곡을 사 오는지 알 수 있게 하는 퀄리티를 자랑한다. 다만 R&B 장르의 특성상 가창자의 개성적인 보컬 표현력이 중요한데 아직 레드벨벳의 곡 소화력이 그 수준에 이르지 못해 곡이 다소 건조하게 들리는 아쉬움을 남긴다. 그렇기 때문에 레드벨벳은 '러시안 룰렛'이나 '피카부'처럼 최대한 보이스를 하나의 악기처럼 죽여놓고 운용해서 공산품처럼 납작하게 찍어낸 일렉트로닉 튠을 선보일 때 최대의 퍼포먼스를 보이는 것일지도.



4위

Psycho


레드벨벳은 'The ReVe Festival' 3부작을 마무리하는 'Psycho'에서 유사한 R&B 장르였던 'Bad Boy'보다 확실히 한 단계 스텝업한 모습을 보여 준다. 사운드와 멜로디가 탁월한 균형감을 가지고 어우러진 데 더해 베이스가 풍성하게 깔아주는 덕분에 상대적으로 느린 템포에도 노래가 심심하지 않다. 섬세한 터치가 느껴지는 사운드 디자인 하나만큼은 2019년 K-POP을 통틀어서도 괄목할 만한 성과다. 성장한 멤버들의 소화력처럼 여러모로 성숙해진 레드벨벳의 음악성을 보여주는 웰메이드 팝 곡.


3위

피카부 (Peek-A-Boo)


심장 깊은 곳을 울리며 쿵쿵대는 베이스 드럼은 곡의 긴장감을 끌어올리고, 감각적인 드랍은 대중에게도 충분히 어필할 수 있을 만큼 캐치하고 멜로딕하다. 잠깐 쓰이는 브라스 같은 악기나 메탈릭하게 긁는 신스도 디테일이 너무 좋아서 감동적일 정도. 이 정도 완성도의 일렉트로닉 트랙이 케이팝 씬에 다시 등장하려면 꽤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이 곡이 실린 'Perfect Velvet' 앨범은 케이팝을 넘어 그 해 한국 음악계를 통틀어 가장 우수한 앨범 중 하나였다. 'I Just' 'Kingdom Come' 같은 수록곡들도 재생목록에 담아두기를 권한다.


2위

빨간 맛 (Red Flavor)


잘 만든 멜로디가 얼마나 큰 파괴력을 가지는지에 대한 답을 보여주는 노래. 2017년 올해의 후렴구라고 해도 좋을 만큼 잘 쓰인 코러스, 완급 조절이 능숙한 구성, 독특한 사운드 소스 선정, 강렬하고 감각적인 멜로디, 후렴을 화음 없는 합창으로 이루는 실험성까지 모든 요소가 고르게 수려하다. 이 정도는 되어야 북한에까지 수출하는 '국민 히트곡'의 자격을 얻는다. 완성도 높은 앨범 수록곡 'You Better Know', 'Zoo'도 함께 들어보자.




1위

러시안 룰렛 (Russian Roulette)


레드벨벳 커리어 최고의 곡이자 2010년대 뉴웨이브 K-POP 음악사를 통틀어서도 손꼽히는 마스터피스. 대중지향적 아이돌 음악으로서의 중독성과 확고한 컨셉은 물론이고 장인정신 넘치는 디테일하고 세심한 사운드 디자인, 깔끔하게 꾹꾹 눌러 조립한 믹스마스터까지 흠잡을 구석이 하나도 없다. 특히 후반부 작정하고 내달리는 현란한 신스 독주는 압권이다. 쉴 틈 없이 유려한 멜로디라인들을 쏟아 내며 강렬하고 선명하게 청자를 사로잡는 이 곡의 압도적인 매력을 거부하기는 쉽지 않다. 만약 당신이 K-POP이 무엇인지 알고 싶다면, '러시안 룰렛'을 들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