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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빈 May 12. 2024

민희진 사태를 통해 드러난 하이브 멀티레이블의 명과 암


1. 케이팝 산업과 멀티레이블 시스템
기자회견을 하는 민희진 어도어 대표

케이팝 업계에 큰 파장을 불러온 민희진 어도어 대표의 충격적인 기자회견 이후, 하이브의 경영체제에 대한 시장의 의구심은 나날이 커져만 가고 있다. 가장 대표적으로 지적되고 있는 것은 하이브의 멀티레이블 시스템이다.


ⓒ한국경제

하이브는 국내외로 10개 이상의 산하 레이블을 두고 있는데, 대표 프랜차이즈 스타인 방탄소년단이 소속된 빅히트뮤직을 비롯해 플레디스, 쏘스뮤직, 어도어, 빌리프랩, KOZ 등이 이에 포함된다. 이들은 모두 별도의 법인으로 분리되어 있으며, 하이브의 지원 하에 독립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유니버설 뮤직 그룹

이러한 멀티레이블 구조는 음악 산업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방식이다. 세계 음악 시장을 지배하고 있는 워너, 소니, 유니버설 세 개의 대형 음반사들 역시 공격적인 인수합병 전략을 통해 수많은 하위 레이블들을 거느리고 있다.



반면 케이팝 산업은 대부분 양현석, 박진영, 이수만 등 1인 프로듀서가 제왕적 리더십으로 모든 소속 아티스트를 제작하는 탑다운 형식을 채택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싱글레이블 시스템은 제작 과정에서의 비효율성과 시간 지연 문제가 크고, 단일한 프로듀서의 색채가 반복적으로 강조되어 대중의 피로감 역시 높아지는 단점을 가지고 있었다.


ⓒMnet

이에 케이팝 역시 체질개선을 시작했다. 시작은 JYP였다. 한 회사 안에 4개의 본부를 두고, 각 본부별로 담당 아티스트를 배정했다. 1본부는 스트레이키즈, 2본부는 ITZY, 3본부는 트와이스, 4본부는 엔믹스를 전담 프로듀싱하는 식이다. SM 역시 지난해부터 멀티 프로덕션 체제를 도입해 아티스트별로 다원화된 제작 프로세스를 확립했다.

효과는 확실했다. 본부제 도입 이후 JYP의 아티스트 간 컴백 주기는 눈에 띄게 짧아졌으며, 신인의 육성과 데뷔 속도도 빨라졌다. 스트레이키즈와 트와이스는 글로벌 시장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내며 체급을 몇 배로 키웠다. 하이브 역시 뉴진스, 르세라핌, 엔하이픈, 투어스 등 히트 신인들을 몇 년 내에 연달아 쏟아내며 멀티레이블 시스템의 이점을 톡톡히 실감하고 있는 중이다.


이처럼 멀티레이블 시스템으로의 쇄신은 규모가 커진 케이팝 산업에 효율적으로 적응하고 기획사의 아티스트 관리 역량을 최대화하기 위해 필연적으로 거쳐야만 하는 단계다. 따라서 멀티레이블 그 자체가 문제라고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진짜 문제는 하이브의 멀티레이블 시스템이 본질적으로 멀티레이블답지 못하다는 사실이다.


2. 하이브식 멀티레이블 체제의 허점


단적으로 말하자면, 하이브의 구조는 이름만 멀티레이블일 뿐 그 작동 원리는 구시대적 1인 총괄 체제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멀티레이블의 최대 이점은 아래에서부터 위로 올라가는, 수평적이고 자유로운 제작 환경을 마련할 수 있는 바텀-업(bottom-up) 프로세스를 구축하기에 유리하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JYP나 SM처럼 사내에서 전담 팀을 구분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수많은 레이블들을 별도의 법인으로 독립시킨 하이브라면, 레이블의 자유도와 독립성을 최대로 끌어올려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창출하기가 더욱 용이하다.


ⓒ비즈워치

하지만 어디까지나 이론적인 이야기일 뿐, 실제로는 레이블 간의 독립성이 제대로 보장되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하이브의 방시혁 의장은 방탄소년단을 비롯해 투모로우바이투게더, 엔하이픈, 르세라핌, 아일릿, 앤팀에 이르기까지 6개의 팀을 총괄 프로듀싱하고 있다. 이는 하이브에 소속된 11개 팀의 과반수에 육박하는 숫자다. 한 명의 프로듀서가 4개의 레이블에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멀티레이블 시스템의 이점이 발휘되기 어렵다. 자율성이 보장되어야 할 레이블들이 상부의 지시사항을 수행할 뿐인 하청업체로 전락한다면 멀티레이블은 다시 1인 기획사로 회귀하게 . 이러한 방향성이 하이브 레이블 체제가 이루고자 했던 목표는 분명 아닐 것이다.


3. 카카오식 멀티레이블 체제의 기조


ⓒ플래텀

하이브가 방법론적인 측면에서 참고할 만한 케이스로는 카카오엔터테인먼트가 있다. 카카오의 뮤직사업부는 하이브처럼 여러 개의 기획사들을 자회사로 두며 멀티레이블 체제를 갖추고 있다. 하지만 자회사들의 존재감보다는 '하이브 레이블'이라는 공동의 정체성을 강조하는 하이브와는 달리, 카카오의 운영은 모기업의 존재감은 지우고 각 기획사의 색깔을 극대화하는 기조를 띤다.


(좌) 아이유, (중) 아이브, (우) 스테이씨

카카오 산하 레이블로는 아이유의 EDAM, 아이브의 스타쉽, 스테이씨의 하이업, 에이핑크와 더보이즈가 소속된 IST, 그리고 여러 인디 뮤지션들의 보금자리 역할을 하고 있는 안테나뮤직이 있다. 허나 카카오에게 지원을 받고 있다는 것 이외에는 기획사들 간에 특별한 공통점이나 접점을 찾아보기 어렵다. 카카오가 크리에이티브 측면에서 각 레이블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최대한으로 보장하며 자신들의 존재감을 지우고 막후 지원에만 전념했기 때문이다.


여러모로 하이브와는 대척점에 서 있는 전략이다. 대부분의 대중은 아이브를 스타쉽의 아이브로 인식하고 있지, 카카오의 아이브로 인식하지는 않는다. 아일릿과 르세라핌이 소속사 빌리프랩과 쏘스뮤직보다는 하이브의 아티스트로 인식되는 것과는 정반대다.


4. 상반된 두 전략... 정답은 없다
IST엔터테인먼트 소속 걸그룹 위클리

물론 어느 쪽이 정답이라고 할 수는 없다. 카카오의 방임주의 기조는 레이블들이 창작 면에서 간섭받지 않고 작품을 제작할 수 있는 자유로운 환경을 마련해 주지만, 그것이 꼭 최고의 결과물을 도출해낸다는 보장은 없다. 실제로 카카오 산하 IST엔터테인먼트 소속 걸그룹 위클리의 경우 갑작스러운 콘셉트의 변화로 인한 팬덤의 반발이나 멤버의 탈퇴 등 여러 내홍을 겪고 2년에 가까운 기나긴 공백기를 견뎌야 했다.


하이브 레이블스 유튜브 채널

반면 하이브의 방식은 뚜렷한 중앙 통제력을 토대로 레이블들의 매니지먼트 기조에 통일감과 속도감을 불어넣을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진다. 또한 아티스트들이 하이브라는 브랜드가 가진 인지도를 등에 업고 유리한 지점에서 출발할 수 있다는 것 역시 큰 이점이다. 단적으로, 신인 걸그룹의 뮤직비디오를 구독자 7470만 명을 보유한 하이브 레이블스(HYBE LABELS) 계정에 올리는 것과 신생 유튜브 채널에 업로드하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뉴진스의 성공이 오롯이 자신의 공이라는 민희진 대표의 발언은 명백한 잘못이다. 아무리 그녀의 개인 능력이 뛰어나다 한들 하이브라는 배경 없이 이만한 성과를 거둘 수 있었을 거라고 장담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하이브의 서브 레이블들이 크리에이티브 면에서 충분한 자율성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만큼은 곱씹어볼 만하다. 현재 제기되고 있는 배임 및 경영권 찬탈 의혹과는 별개로, 레이블 소속 아티스트 제작의 주도권을 레이블에게 온전히 넘겨주어야 한다는 그녀의 주장은 하이브 멀티레이블 체제의 개선점에 대해 생각해볼 거리를 남긴다.


5. 결론
ⓒ인베스트조선

멀티레이블 시스템은 그 장점만큼이나 리스크 역시 지대하기 때문에 이번 사태가 아니더라도 하이브의 방법론은 언젠가 그 문제를 드러냈을 것이. 케이팝 시장이 커지고 산업이 고도화되면서 필연적으로 등장할 수밖에 없체제인 만큼 멀티레이블 시스템 자체는 유지하되 세부적인 측면에서 밀도 있는 고도화가 필요하다.


이번 사태를 거울삼아 하이브는 경영 측면에서 지배력을 강화하되, 카카오처럼 크리에이티브 측면에서는 레이블의 자유도를 높여줄 필요가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경영과 창작 두 측면을 구분해 지혜롭게 조정하는 균형 잡힌 솔루션이다.


지난 2일 박지원 하이브 CEO는 최근 일련의 갈등으로 인해 그 취약점이 드러난 멀티레이블 시스템을 점검하고 개선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이브가 이 위기를 성공적으로 봉합하고 케이팝 산업을 건강하게 발전시켜 나가갈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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