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빈의 케이팝읽기' 본 결산에서는 매력적인 케이팝 작품들로 풍성했던 2025년 한 해, 즉 2025년 1월 1일부터 2025년 12월 31일 사이에 발매된 모든 K-POP 트랙 중 '올해 최고의 노래' 20선을 선정하였습니다.
* 본 글의 순위 및 칼럼은 박정빈 개인이 선정하고 집필한 것으로, 개인의 주관적인 견해가 반영되어 있습니다.
* '박정빈의 케이팝읽기'는 음악과는 별개로 리뷰 대상 아티스트의 논란과 범죄 행위를 일체 옹호하지 않습니다.
* 본 글의 궁극적인 목적은 특정 아티스트에 대한 무조건적인 옹호 혹은 비난이 아니라 케이팝 씬에 대한 깊고 넓은 관심을 촉구하고 풍부한 논의를 생산하는 것임을 유념하여 읽어 주시기를 바라겠습니다.
이 글에서는 아쉽게도 순위권 안에 포함되지는 않았지만 그럼에도 2025년의 K-POP을 이야기할 때 빠져서는 안 될 우수한 트랙들을 다룹니다.
보이그룹 순위외 후보로는, 뛰어난 장르 이해도를 바탕으로 일렉트로클래시의 레거시와 하이퍼팝의 반짝임을 능숙히 버무린 저스트비의 'SNOW ANGEL', 풋풋한 가사와 직관적인 선율의 힘으로 케이팝이 지닌 대중적 소구력을 다시금 일깨우는 킥플립의 '처음 불러보는 노래', 유니크한 질감과 해체주의적 구성의 웡키 사운드를 선보인 텐의 'BAMBOLA', 그야말로 압도적인 보컬 퍼포먼스로 청자를 전율케 하는 우즈의 'I'll Never Love Again', 세련되고 깔끔한 UK 개러지 편곡이 돋보이는 이펙스의 'so nice', 카자흐스탄 프로듀서 Imanbek이 주조한 슬랩 하우스 비트를 바탕으로 강렬한 클럽튠을 완성한 클로즈 유어 아이즈의 'SOB'가 선정되었다.
걸그룹 순위외 후보로는, 브라질리언 펑크 장르 특유의 리듬 패턴이 지닌 매력을 케이팝의 영역에서 생생히 구현한 제니의 'like JENNIE', 장르의 미학을 구성하는 무정형의 분자들을 기민하게 포착한 하이퍼팝의 여왕 이브의 'White cat', Z세대의 일상언어를 담은 재기발랄한 작사가 멜로우한 알앤비 프로덕션과 어우러진 키키의 '딸기게임', 과잉된 드럼앤베이스 편곡 속에서도 케이팝만이 지닌 고유한 미학을 고스란히 발견할 수 있는 트리플에스의 '추리소설', 미니멀한 브레이크비트 사운드와 절제된 구성으로 독특한 음악적 실험을 시도한 이브의 'Study', 레이지의 트렌드를 발빠르게 포착해 하드코어하고 파워풀한 뱅어 트랙을 만들어낸 영파씨의 'YSSR'이 선정되었다.
2025년 케이팝 최고의 노래 11~20위
엔믹스는 평가하기가 참 까다로운 그룹이다. 역대 아이돌 중에서도 손꼽히는 탄탄한 보컬 실력을 지닌 데에 비하여 그들이 지향하는 매니악한 '믹스팝' 작법이 대중적 테이스트와 어긋난 탓에 저평가를 받는 반면, 동시에 그러한 이유로 고평가 역시 받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비록 엔믹스에 대한 평가가 음악 외적인 요소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하더라도, <KNOW ABOUT ME>가 2025년 엔믹스의 최고작이라는 사실만큼은 의심하고 싶지 않다.
<KNOW ABOUT ME>는 엔믹스의 기존 타이틀 넘버들과는 다소 이질적인 곡이다. 역동적인 구성과 맥시멀한 편곡으로 '믹스팝'의 과잉된 작법을 선명히 내세웠던 <O.O>, <DICE>, <DASH> 등의 대표곡들과는 달리, 최소한의 악기만으로 미니멀하고 정갈하게 전개되는 <KNOW ABOUT ME>는 그동안의 엔믹스에게서 느껴볼 수 없었던 절제의 미학이 돋보인다. 몽환적인 트랩 비트에 무심하게 툭툭 내뱉는 벌스의 긴장감은 간결한 코러스의 세련된 흡인력으로 고스란히 이어지며, 현란한 워블 베이스가 날뛰며 텐션을 고조시키는 브릿지 구간을 지나 차분한 코러스로 낙하하는 후반부는 지극히 '엔믹스스러운' 강렬한 낙차감마저 놓치지 않는다. 그 과정에서 엔믹스의 최대 무기인 화음 보컬을 적극 활용해 입체감을 불어넣는 전략도 인상적이다.
2025년의 엔믹스는 유례없는 대중적 성공을 거둔 <Blue Valentine>으로 기억되겠지만, 그 영광의 뿌리는 <KNOW ABOUT ME>에서의 음악적 성장으로부터 자라났을 것이다. 과잉의 미학을 추구하던 엔믹스는 커리어의 중반부에 이르러 '여백의 미'를 깨우쳤고, 그 정반합에 의해 그들의 음악세계가 내적 완결성을 갖추게 되자 비로소 대중은 응답했다. 그런 의미에서 <KNOW ABOUT ME>는 비록 뚜렷한 상업적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더라도 반드시 그 가치를 인정받고 기억되어야 할 곡이라 하겠다.
의심의 여지 없이, NCT WISH는 미술적인 측면에서 현재 가장 앞서 있는 케이팝 팀이다. 그러나 '위시코어'의 조밀한 비주얼 철학에 비해 음악세계의 해상도는 상대적으로 그리 선명하지 않았다. <WISH>, <Songbird>, <poppop>, <Steady> 등 그들의 대표곡들은 준수한 완성도와는 별개로 그것들을 일관성 있게 하나로 묶어 줄 내적인 정합성은 찾기 어려웠다.
그러나 지난해 발매된 미니앨범 [COLOR]에서는 그러한 약점이 보완되어, 비로소 '위시코어' 사운드 철학의 윤곽이 드러나는 듯 보인다. 그 중에서도 눈에 띄는 곡은 <Cheat Code>다. 게임 음악을 연상케 하는 8비트 신디사이저가 이끄는 비트는 여기저기 흩어져 입자로 반짝이면서도 SM 특유의 달콤하고 세련된 멜로디와 유기적으로 조응한다. 무엇보다도 글리터, 별, 날개 등의 오브제를 활용하는 위시코어 비주얼과 당위적으로 맞물리면서 미술과 음악이 통일성 있게 연결되는 놀라운 순간이 나타난다.
칩튠 사운드를 차용한 케이팝은 아이오아이의 <너무너무너무>부터 레드벨벳 <Power Up>, 오마이걸 반하나 <바나나 알러지 원숭이>, 니쥬 <HEARTRIS>, 아일릿 <Tick-Tack>까지 지속적으로 등장해 왔지만 <Cheat Code>는 그 중에서도 장르 이해도와 완성도가 높은 편이다. 이 곡이 NCT WISH의 커리어뿐만 아니라 한국 칩튠(비트팝)의 역사 속에서도 중요한 자리를 차지할 이유다.
케이팝 보이그룹 시장이 지독한 매너리즘에 빠진 지는 오래되었다. 갈라파고스화가 진행되며 대중과 유리된 보이그룹 산업은 더 이상의 음악적 고민을 저버린 듯 보였고, 보이그룹 음악에 대한 리스너들의 기대 역시 점차 낮아져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정한 케이팝 매니아라면 보이그룹 음악 디깅을 놓아 버려서는 안 된다. 이따금씩 진흙 속의 진주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피원하모니의 <EX>가 그렇다.
<EX>는 드릴 리듬 위에 팝 보컬을 얹은 직관적인 트랙이다. 굳이 장르를 구분하자면 미국의 래퍼 캐쉬 코베인(Cash Cobain)으로 대표되는 섹시 드릴(Sexy Drill)에 가까울 터인데, 몽환적이고 나른한 무드가 특징인 기존의 섹시 드릴에 비해 <EX>는 선명한 멜로디와 산뜻한 패드 사운드가 또렷한 청량감을 준다. 하드한 드릴 힙합에나 쓰일 듯 억세고 둔탁한 질감의 드럼이 상쾌한 편곡과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것이 새롭다. 키키의 <BTG>, 스테이씨의 <I Want U Baby> 등 드릴을 패스티시적으로 차용한 케이팝 트랙은 많았지만, <EX>는 그 중에서도 유니크한 곡이라 할 수 있겠다.
SBS의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 <유니버스 티켓>을 통해 데뷔한 신인 걸그룹 유니스(UNIS)는 데뷔곡 <SUPERWOMAN>에서는 멜로우한 아프로비츠를, <너만 몰라>에서는 로킹한 일렉트릭 기타를 내세운 팝을 선보였다. 여타 중소 기획사 걸그룹이 흔히 그러하듯 다소 일관성이 부족한 행보였지만, 유니스는 세 번째 타이틀 <SWICY>에 이르러 일종의 정반합에 다다른 듯 보인다.
<SWICY>는 QWER의 <고민중독>을 필두로 한 2020년대 초중반 케이팝의 팝 록 열풍 (더 자세히는 J-ROCK의 작법에 영향을 받은)에 방점을 찍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캐치한 탑라인은 올해 발매된 모든 케이팝 곡들 중에서도 단연 군계일학일 만큼 직관적인 파괴력을 자랑하며, 경쾌한 편곡과 컴팩트한 구성은 군더더기 하나 없이 깔끔하다. 팝 록 장르가 케이팝의 영역에서 선사할 수 있는 최대한의 즐거움을 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너만 몰라>의 록 편곡과 <SUPERWOMAN>의 수려한 송라이팅이 맛 좋게 버무려진 <SWICY>는 남녀노소 누구나 호불호 없이 즐길 수 있는 수작이다.
이즈나는 '수록곡이 더 좋은' 팀이다. 다시 말하자면 타이틀곡의 퀄리티는 상대적으로 떨어진다는 뜻이다. 어설픈 래칫 데뷔곡 <IZNA>부터 평이한 디스코 <SIGN>, 클리셰적인 UK개러지 <BEEP>, 루즈한 힙합 <Mamma Mia>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나름대로 여러 시도를 해왔으나 완성도는 미미했다. 하지만 명실상부 지난해 최고의 케이팝 넘버 중 하나라 할 수 있는 <TIMEBOMB>을 비롯한 수록곡들은 웨이크원의 허술한 타이틀 선정 감각 탓에 가려져 있는 이즈나의 음악적 잠재력을 분명히 예감케 했다.
<Racecar> 역시 그러하다. 몽환적인 벌스와 프리코러스로 천천히 고조되다 'And speeding through your mind like a racecar, baby' 라인과 함께 비트가 드럼앤베이스로 전환되며 울퉁불퉁한 신스가 치고 들어올 때 청자는 그야말로 눈이 확 떠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엑셀을 속도계 끝까지 밟는 급박한 드럼 위로 신스는 전혀 예상할 수 없는 변칙적 음계로 움직이고, 갑작스레 잘게 쪼개지며 허를 찌른다. 정말 이런 드랍은 처음이다. 드랍을 제외하면 사실 <Racecar>의 구성은 다소 느슨하고 타성적임에도 불구하고, 오로지 드랍 하나의 파괴력만으로 모든 것을 뒤집는다. 드랍이 유니즌 코러스와 겹쳐지며 절정에 치닫는 결말부가 가히 환상적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이지-리스닝 트렌드로 인해 '폭발력'이라는 개념을 다소 찾아보기 어려워진 케이팝 시장에서 오랜만에 진정한 '폭발력'을 지닌 음악이 어떤 것인지 상기시켜 주는 곡이다.
우주소녀의 해체 이후 홀로 남겨져 스스로 곡을 수급하고 철저히 자기관리를 하며 꿋꿋이 솔로 데뷔를 준비했던 다영의 감동적인 이야기는 이 글을 읽는 사람이라면 대부분 알고 있을 것이라 생각해 따로 서술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사실 <body>는 그 비하인드 스토리와 상관없이 곡 자체로 충분히 우수하다. 최근 케이팝에서 마이너 트렌드로 부상하고 있는 마이애미 베이스를 기반으로 몽환적인 아르페지오 신스가 곡을 이끌다, 비트가 멈춤과 동시에 아주 또렷하게 믹싱된 신디사이저가 느릿하게 등장하며 순간적인 청량감을 선사하는 구성이 인상적이다. 포스트코러스를 배치하는 방식이나 킥이 치고 들어오는 박자와 같은 전략적 디테일도 치밀하기 그지없다.
다시 말하지만 <body>가 고평가받는 것은 다영의 개인적 서사 때문이 아니라, 실제로 곡의 완성도가 그만큼 뛰어나기 때문이다. 사실 스타쉽엔터테인먼트의 최근 A&R 역량이 (별도의 특별 조직을 편성한 듯 완전히 결이 다른 방향성을 선보이는 키키를 제외하면) 눈에 띄는 편은 아니기에 곡의 퀄리티 자체에 기대를 가진 사람은 많이 없었을 테지만, 그러한 예상을 완전히 뒤엎고 다영은 여전히 자신이 트렌드에 발맞춰 걸을 역량이 있는 아티스트임을 당당히 증명해냈다.
제니의 솔로 데뷔 앨범 [Ruby]는 말 그대로 센세이셔널한 성과를 거뒀다. 메인 싱글 <like JENNIE>가 뛰어난 차트 성적을 거두었음은 물론, 지난달 열린 한대음까지 싹쓸이하며 비평가들의 찬사도 거머쥐었다. 과장 조금 보태 '제니의 해'라고 할 수 있을 만한데, 그 중에서도 특기하고 싶은 곡은 풀 앨범 공개 전 앞서 싱글컷되어 발매된 바 있는 <ExtraL>이다. 한국 리스너들의 취향과 다소 거리가 있어 국내에서는 의외로 잘 언급되지 않는 트랙이지만 이 곡의 프로덕션은 그야말로 굉장하다.
이미 케이팝에서도 익숙한 이름이 된 국제적 스타 프로듀서 뎀 조인츠(Dem Jointz)는 트랩과 저지 클럽을 자유자재로 오가며 현란한 저글링을 선보인다. 우먼 임파워링(woman empowering)을 주제로 한 강렬한 가사에 맞춰 킥 드럼과 베이스를 한껏 묵직하게 키워 둔탁하게 두들겨대는 맛이 시원하기 그지없다. 그 중에서도 2절 벌스에서 등장하는 도이치(Doechii)는 압도적인 도입부로 '올해의 씬스틸러'라고 해도 무방한 임팩트를 남긴다. 제니 역시 랩과 보컬을 능수능란하게 전환하며 밀리지 않는 퍼포먼스를 보여준다. 곡의 주인, 피처링, 프로듀서 모두가 절정의 기량을 선보인 <ExtraL>은 2025년의 제니를 이야기할 때 반드시 거론되어야 할 숨겨진 수작이다.
기승전결이 뚜렷한 '사이다' 전개를 선호하는 성향 때문일까, 전자음악의 불모지인 한국에서도 유독 대중의 외면을 받는 장르가 있으니 바로 테크노다. 2025년에 이르러서도 여전히 테크노 하면 '이박사', '뽕짝' 소리부터 나오며 편견 가득한 시선을 보내니 국내 테크노 팬들은 참 서러운 처지다. 편식하는 아이에게 '그러지 말고 막상 먹어보면 맛있어~ 한 번만 먹어 봐~'라고 애원하는 어머니의 마음이 이러했을까. 그러나 채소를 싫어하는 우리 아이도 예쁜 아이돌들 사이에서 '봄동비빔밥'이 유행하자 생전 안 먹던 야채 밥을 다 먹듯이, 슈퍼스타 블랙핑크가 테크노를 가져오자 멜론 차트에서 테크노가 1등을 하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감격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눈으로 보이는 성과보다도 기쁜 것은 <뛰어>가 지닌 장르음악으로서의 기본기 자체가 매우 탄탄하다는 것이다. 스타 프로듀서 디플로(Diplo)가 주조한 빠른 BPM의 테크 하우스 비트는 날카롭게 제련된 드럼과 묵직한 베이스로 압도적인 속도감을 제공하고, 후반부에는 넓직한 공간감의 테크노로 변주되어 장르적 쾌감을 충실히 구현한다. 이 정도 체급의 아티스트가 이 정도로 제대로 된 테크노를 선보이는 것 자체가 매우 드문 일이기에 더욱 반갑다. 테크노를 좋아하지 않던 리스너도 순식간에 테크노의 세계로 입문시켜버릴 수 있는 강력한 흡인력을 지닌 <뛰어>는 한국 테크노 씬에 찾아온 작은 희망임과 동시에, 블랙핑크의 음악적 저력이 여전히 건재하다는 것을 증명해 주는 기념비적 성과다.
2024년에 에스파의 <Whiplash>가 있었다면 2025년은 <트로피>다. 82메이저(82MAJOR)는 주로 힙합을 베이스로 활동하는 보이그룹인데, 2025 한대음 최우수 힙합 음반상 수상에 빛나는 프로듀서 허키 시바세키(Hukky Shibaseki)와도 협업한 바 있다. 그들이 소속된 그레이트엠엔터테인먼트는 지난해 SM엔터테인먼트의 지분 투자를 받기도 했다. 중소 기획사의 저연차 보이그룹인 82메이저와 SM의 연결고리는 뜻밖에도 이 지점에서 발견된다. 실제로 SM이 음악적 측면에서 얼마나 관여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트로피>는 지극히 SM스러운 세련된 터치가 강하게 묻어나오는 작품이다.
그런 의미에서 <트로피>는 <Whiplash>의 정신적 후속작과도 같이 느껴진다. 기계적이고 쿨한 테크 하우스 편곡은 물론이고, 악기의 질감이나 믹싱 면에서도 두 곡이 공통적으로 지향하고자 했던 지점을 실감할 수 있다. 그럼에도 차별화되는 <트로피>만의 장점은 확실하다. 예컨대 그야말로 뇌쇄적인 톤의 베이스와 드럼이 치고 들어오는 코러스의 비트 드랍은 감히 <Whiplash>의 쾌감 이상이라 할 수 있고, 브라질리언 펑크를 살짝 배합한 2절 벌스나 최후반부의 변주 역시 예측불허의 재미를 준다. <트로피>는 명실상부 올해 케이팝 보이그룹 씬 최고의 성취 중 하나이며, 중소형 기획사에서도 이 정도로 세련된 음악을 만들어낼 역량이 있다는 것을 입증한 쾌거다.
뉴진스(NewJeans)를 필두로 한 4세대 케이팝의 대표적인 프로덕션 기조는 '이지-리스닝'이라는 단어로 통용되는 절제미일 것이다. 악기는 꼭 필요한 것을 제외하고는 모두 제거해 단촐하게 구성하고, 곡의 전개는 큰 낙차 없이 완만하게 진행된다. 구성 면에서도 브릿지와 3절을 생략해 버리고 최소한으로 압축해 대개는 2분, 심하면 1분 대로 러닝타임을 줄이기도 한다. 믹싱 역시 어느 것 하나 뾰족하게 튀지 않도록 소리의 질감을 매끈하게 다듬는 스타일이 주류를 이룬다. 이러한 트렌드는 케이팝이 Z세대가 추구하는 어떤 '쿨하고 세련된' 미학과 조응하는 것을 가능케 했지만, 한편으로는 맥시멀하고 과잉된 테이스트를 양분 삼던 기존 케이팝의 음악적 공감대와는 반목하는 결과를 낳기도 했다. 이지-리스닝 트렌드에 피로감을 호소하며 '숨어서 듣는 명곡' 등의 키워드로 2~3세대 케이팝을 추억하는 움직임이 지속적으로 등장하는 것은 이러한 맥락에 기초한다. 4세대 케이팝의 이러한 변화는 너무나도 견고해서 일견 비가역적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영파씨의 <FREESTYLE>은 4세대 이전의 케이팝이 지니고 있었던 '과잉의 미학'이 아직까지도 유효한 형태로 구현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 주는 작품이다. 멀리는 비스티 보이즈(Beastie Boys), 가깝게는 조이 밸런스 앤 브레이(Joey Valence & Brae)를 연상시키는 펑크 랩(Punk Rap) 풍의 비트가 우선 압권이다. 묵직한 붐뱁 드럼 위로 빼곡히 채워진 더블링이 정신없이 속도감을 증폭시키는 가운데, 지펑크(G-funk) 신스와 스크래치까지 가세해 더욱 본격적인 난장판을 만든다. 직관적인 훅이나 날것 그대로의 하이톤 래핑을 보여주는 프리코러스('내 맘대로 할 건데 / 절대로 척은 못해')은 이러한 편곡과 화학반응을 일으키며 놀랍도록 강력한 원심력을 발생시킨다. 이에 힘입어 2절부터는 갑작스레 차분한 재즈로 변주되거나 비트가 트랩으로 전환되는 등 리듬을 쉴 틈 없이 변형시키며 본격적인 폭주를 선보인다.
이처럼 <FREESTYLE>의 편곡은 지저분하고 난잡하다고 표현해도 좋을 정도로 극단적으로 과장되어 있다. 그것은 비록 당황스럽지만 소화 가능한 배덕적 쾌감으로 다가오는데, 이는 <FREESTYLE>이 4세대 케이팝의 음악적 원칙들을 깨부수고 짓밟는 와중에도 그것의 내적 규율을 충실히 학습해 자신의 과잉을 적절히 통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령 적극적인 한영혼용으로 키치함을 노리는 작사법이나, 브릿지를 생략한 2분 러닝타임의 컴팩트한 구성과도 같은 요소들은 물밑에서 그 이질성을 교묘히 상쇄시키며 이 곡이 동시대성을 지니고 받아들여질 수 있게 한다. 이를 통해 영파씨는 올드-케이팝의 맥시멀리즘적 프로덕션이 새 시대의 질서 하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는지에 대한 완벽에 가까운 답안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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