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빈의 케이팝읽기' 본 결산에서는 매력적인 케이팝 작품들로 풍성했던 2025년 한 해, 즉 2025년 1월 1일부터 2025년 12월 31일 사이에 발매된 모든 K-POP 트랙 중 '올해 최고의 노래' 20선을 선정하였습니다.
* 본 글의 순위 및 칼럼은 박정빈 개인이 선정하고 집필한 것으로, 개인의 주관적인 견해가 반영되어 있습니다.
* '박정빈의 케이팝읽기'는 음악과는 별개로 리뷰 대상 아티스트의 논란과 범죄 행위를 일체 옹호하지 않습니다.
* 본 글의 궁극적인 목적은 특정 아티스트에 대한 무조건적인 옹호 혹은 비난이 아니라 케이팝 씬에 대한 깊고 넓은 관심을 촉구하고 풍부한 논의를 생산하는 것임을 유념하여 읽어 주시기를 바라겠습니다.
* 2025년 올해 최고의 노래 11~20위
XG의 <GALA>와 캣츠아이의 <Gnarly> 두 곡은 순위에 꼭 포함시키고 싶었지만 고심 끝에 순위에서 제외했습니다. 완성도가 미진해서가 아니라, 이것을 '케이팝'이라고 칭할 수 있는지에 대한 확신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이들 모두가 여전히 케이팝이라고 생각하지만 아직은 그 기준을 설득력 있는 언어로 풀어낼 역량이 제게 없다고 느낍니다. 하지만 두 곡 모두 2025년을 이야기할 때 빠질 수 없는 뛰어난 작품이기에 이렇게라도 언급해 두고자 합니다. (특히 <GALA>는 만약 포함되었다면 전체 1, 2위를 다툴 수준의 걸작이라고 생각합니다) 더불어 이 기회에 과연 어디까지를 케이팝으로 규정할 수 있을지, 케이팝이라는 속성을 결정하는 최소공약수가 무엇인지 함께 고민해 보면 좋겠습니다.
2025년 케이팝 최고의 노래 1위~10위
2024년은 에스파의 해였다. <Supernova>, <Armageddon>, <Whiplash>에 이르기까지, 커리어 내내 한 번 나오기도 힘든 걸작을 연달아 쏟아내며 그야말로 도미넌트한 한 해를 보냈다. 이 정도 수준의 곡들을 이렇게 단기간에 소진해 버리면 이다음부터는 어쩌려고 그러나 걱정되는 수준이었는데 웬걸. SM의 디렉토리에는 아직도 보물이 풍족히 남아 있었나 보다. 2025년 데뷔한 신인 걸그룹 하츠투하츠를 통해 SM은 2024년의 에스파에 버금가는 경이로운 3연작을 다시금 선보이며 물오른 크리에이티브 감각을 재입증했다.
생각해보면 하츠투하츠는 처음부터 달랐다. <The Chase>는 확실히 그 어디서도 들어본 적 없는 데뷔곡이다. 힙합 음악에나 쓰일 법한 두꺼운 베이스가 웅웅대다가 유하의 신비로운 보컬과 피아노가 동시에 예상치 못한 박자로 치고 들어가는 도입부부터 그렇다. 이 도입부의 만듦새는 여러 지점에서 뉴진스의 데뷔작 <Attention>을 연상시키기도 하는데, 차이점이라면 악기들이 점차 서로 부드럽게 스며들면서 이질성이 해소되는 <Attention>에 비해 <The Chase>에서는 그 이질성이 계속 입체적으로 병존하면서 역설적인 구심력을 형성한다는 점이다. 영국의 알앤비 그룹 플로(FLO)가 빚어낸 멜로디와 SM 특유의 보컬 하모니, 배경에서 반짝이는 파스텔톤 신스는 뾰족한 곳 하나 없이 지극히 매끄럽고 달콤한 데 비해, 하이햇과 베이스는 힙합에 가까운 날선 질감으로 세공되어 있다. 코러스에서는 갑작스레 톤다운된 랩으로 전환되며 변곡점을 만들어 의도적으로 전개의 관성력을 끊어내기도 한다.
한편 가사 역시 이질적이기는 마찬가지다. <The Chase>의 노랫말은 그 전체적 의미를 명확히 이해하기 어려운 추상적이고 분절적인 언어만으로 구성되어 있다. 프레드릭 제임슨의 패스티시 이론에 의하면 이러한 텍스트는 마치 무라카미 하루키 혹은 리처드 브라우티건의 소설과도 같이 의미적 환기력을 상실하고 공허한(blank) 표면적 이미지가 된다. 이러한 작사법과 편곡은 총체적으로 베르톨트 브레히트가 말한 일종의 소격효과(Verfremdung)를 발생시켜, 청자가 노래로부터 적절한 거리감을 유지하며 개별적인 소리의 레이어들이 지닌 질감과 색채감 자체에 귀기울이게 만든다. <The Chase>의 마법은 바로 그 지점에서 출발한다.
홍수처럼 쏟아지는 아이돌 그룹들 사이에도 키스 오브 라이프가 명확히 차별화되는 지점이 있다. 바로 보컬이다. 특히 벨은 현존하는 아이돌 중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재능이라 할 수 있으며, 나띠의 성숙하고 소울풀한 음색은 블랙 뮤직에 부드럽게 녹아든다. 하늘은 스트레이트한 보컬로 곡에 윤기를 불어넣고, 쥴리는 유니크한 보이스를 바탕으로 씬스틸러 역할을 수행한다. 기술적 완성도와 확고한 개성이 조화를 이루는 키스 오브 라이프의 다채로운 보컬 팔레트는 그들이 지닌 최고의 무기이자 대형 기획사의 거대 자본이 결코 따라잡을 수 없는 영역이다. <Lips Hips Kiss>는 키스 오브 라이프의 이러한 강점들이 가장 매혹적인 양태로서 드러나는 작품이다.
<Lips Hips Kiss>는 결코 서두르지 않는다. 침착하게 걸음을 내딛는 느릿한 리듬에 발맞춰 멤버들의 보컬이 교차해 등장하며 여유롭게 음절을 뱉는다. 이윽고 도달한 코러스에서는 벨의 고혹적인 음색과 섬세한 보컬 테크닉이 캐치한 탑라인의 잠재력을 최대한으로 증폭시킨다. 가히 올해 최고의 후렴이라 할 수 있는 압도적인 흡인력이다. 점차 무드를 쌓아올리다 멤버들의 보컬 하모니로 부드럽게 절정부를 풀어내는 후반부 역시 매력적이다. 주어진 최상급의 재료들을 끈기와 절제의 철학으로 멋지게 버무려낸 <Lips Hips Kiss>는 2000년대 R&B 음악의 분자들을 세련되게 재구성해 그들이 이전에 <Sugarcoat>에서 선보였던 최고 수준의 역량에 다시금 도달하는 걸작이다.
마틴 스코세이지의 느와르, 기예르모 델 토로의 판타지, 데이비드 크로넨버그의 바디 호러처럼 영화감독이 지닌 역량은 특정 장르에서 가장 눈부시게 발휘되곤 한다. 이는 케이팝 역시 마찬가지로, 기획사별로 어느 정도의 전문성을 지닌 시그니처 장르가 두드러지는 편이다. 가령 YG는 빅뱅과 투애니원으로 대표되는 힙합, JYP는 트와이스로 대표되는 버블검 팝과도 같은 식이다. 그리고 SM의 경우에는 단연 하우스가 그 자리를 차지한다고 할 수 있겠다. 지금까지 회자되는 에프엑스의 <4 Walls>와 샤이니의 <View>로 대표되는 SM 하우스의 레거시는 라이즈의 <Impossible>, NCT DREAM의 <When I'm With You> 등 아직까지도 그 연속성을 이어오고 있다. 가장 표준화되고 공정화된 A&R 시스템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인지 SM의 하우스 곡들은 사운드의 질감을 비롯한 여러 측면에서 통일성 있게 구현된 만듦새를 보여주는데, 이제는 하츠투하츠가 'SM식 하우스'의 철학을 이어받을 적장자 자리를 계승한 듯 보인다.
<FOCUS>는 오랜 기간 축적되어 온 SM의 노련한 하우스 프로듀싱 노하우가 빛을 발하는 곡이다. 두께감 있는 보이싱과 풍성한 텐션음이 돋보이는 피아노가 시작부터 비전형적인 화성 진행으로 청자를 몰입시키는 가운데, 매혹적인 베이스와 하우스 드럼으로 섹션들을 세련되게 조립한다. 전체적인 균형감을 잃지 않은 채 확실한 '킥'까지 갖춘 편곡에 캐치한 훅까지 가세해 대중음악으로서의 완성도를 한계까지 높인다. 그 중에서도 드럼을 반 박자 밀며 들어오는 2절 프리코러스('It's you / 내 시선의 중심 세상을 뒤로 미는 중')는 곡의 백미로서 멤버 스텔라의 당도 높은 음색이 그 존재감을 또렷이 각인시키는 순간이다. <The Chase>의 몽환적인 탑라인과 <STYLE>의 세련된 하우스 프로덕션이 정반합적으로 융합된 <FOCUS>는 하츠투하츠의 음악세계를 완성하는 기념비적 성취이자 SM의 건재함을 증명하는 마일스톤이다.
본질적으로 하이브리드적인 장르인 케이팝은 다른 장르의 유산들을 지속적으로 흡수하고 재해석하며 성장해 왔다. 특히 2022년 뉴진스의 출현 이후 보다 다양한 서브 장르에 대한 관심이 촉발되며 이전보다도 더욱 넓은 범위의 사운드가 케이팝의 영토로 입국하게 되었는데, 대표적으로는 드럼앤베이스, 저지 클럽, 드릴 등이 있다. 뉴진스의 <Super Shy>, <Ditto>, <New Jeans>, <Zero>, <Right Now>, 르세라핌의 <이브, 프시케 그리고 푸른 수염의 아내>, 세븐틴 <손오공>, 제로베이스원 <In Bloom>... 하나하나 열거하기도 힘들 정도로 범람하는 장르 트랙들 속에 4세대 아이돌 시대는 전례 없는 질적 풍요를 맞았다. 그리고 그 모든 흐름들은 키키의 <BTG>에 이르러 하나로 집약된다.
말하자면 <BTG>는 4세대의 끝자락에 데뷔한 키키가 4세대를 되돌아보며 바치는 헌사이자 4세대 케이팝 프로덕션의 집대성이다. 릴 체리(Lil Cherry)가 참여해 유려한 랩메이킹이 돋보이는 키치한 트랩으로 출발하다가, 잘게 쪼개진 카운터 스네어가 치고 들어오며 드릴 리듬으로 변주된다. 그러다가 프리코러스에서는 하음의 몽환적인 음색을 부각시키는 넓은 공간감의 패드와 함께 저지 클럽으로 바뀌더니, 코러스에서는 직관적인 훅을 떠받치듯 긴박한 드럼앤베이스로 전환된다. 프로듀서 뎀 조인츠(Dem Jointz)는 이렇게 트랩, 드릴, 저지 클럽, 드럼앤베이스 네 개의 리듬을 현란하게 교차해 가며 그야말로 강렬하기 그지없는 청각적 자극을 선사한다. 4세대 케이팝을 이루는 장르적 축들을 탐욕스레 전부 그러모아 화려한 기교로 버무려 고밀도로 압축하면서도, 어느 섹션 하나 이질적이지 않게 고른 텍스처로 구현해내는 편곡의 균형감이 경이롭다. 이 놀라운 사중주는 케이팝 프로덕션의 기술적 역량이 얼마나 높은 수준에 도달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이며, 들을 때마다 매번 새롭게 발견되는 사운드의 디테일에 절로 감탄할 수밖에 없는 환상적인 작품이다.
아이브(IVE)의 성공으로 제2의 전성기를 맞은 스타쉽엔터테인먼트가 새롭게 출범시킨 걸그룹 키키(KiiiKiii)의 데뷔 타이밍은 다소 이른 감이 있었다. 아이브의 데뷔 이후 사실상 3년 남짓한 짧은 간격을 두고 데뷔했기 때문이다. 이 정도로 단기간에 한 회사에서 걸그룹을 두 개나 런칭하는 일은 정말 이례적인데, 아마 장원영과 안유진의 재계약 협상 실패시를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다분히 자본의 이해득실이 개입된 듯 당혹스럽고 의아한 데뷔였지만, 그들의 첫 앨범 [UNCUT GEM]은 기존 스타쉽의 제작 기조와 완전히 다른 해상도의 만듦새로 의심의 시선을 불식시켰다.
그 중에서도 <DEBUT SONG>은 단연 앨범 최고의 곡이라 할 만하다. 재지한 피아노가 부드러운 보컬과 함께 포문을 여는 도입부에선 평범한 알앤비 트랙인가 싶다가, 이윽고 묵직한 베이스가 쿵 떨어지면서 갑작스레 트랩으로 전환된다. 이 곡에서 사용되는 따사로운 플루트 리드는 둔탁하고 느린 트랩 비트와 겉보기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소재인데, 키키는 놀랍게도 이 이질적인 악기들을 키치의 질료로서 부드럽게 묶어내며 전례없이 특별한 질감의 소리를 만들어낸다. 스타쉽을 넘어 케이팝 전체에서 나는 이런 비트를 들어본 적이 없다. 마법과도 같은 프로덕션으로 작곡 행위의 창발성을 드러내 보이는 <DEBUT SONG>은 당신이 케이팝에서 경험할 수 있는 최고의 미학적 희열이다. 자본의 유입과 노하우의 축적으로 기술적 완성도는 높아졌지만 여전히 예술가적 본능으로부터 섬광처럼 번뜩이는 창의적 순간은 찾아보기 어려운 케이팝 산업에서 매우 이례적인 작품이라 하겠다.
<Plot Twist>는 가난한 자들의 <Magnetic>이다. 요 근래 케이팝에서 대기업의 기술적 전문성이 가장 돋보였던 곡은 아일릿의 <Magnetic>이라 할 수 있는데, 앳하트는 <Magnetic>의 테이스트를 미니멀하게 재해석해 그에 비견될 만한 놀라운 순간을 만들어낸다. 소속사 타이탄콘텐츠가 불과 2년 전 설립된 영세한 스타트업 회사라는 점을 고려하면 이러한 성취는 가히 경탄스럽다. 과장 좀 보태, 나는 <Plot Twist>를 2025년 케이팝 결산에 포함시키지 않는 평론가는 신뢰할 수 없다고까지 생각한다. <Plot Twist>는 소형 기획사의 창작적 역량에 대한 편견을 부수고 케이팝 산업의 자본적 양극화를 돌파할 파괴력을 갖춘 걸작이다.
<Plot Twist>의 편곡은 도발적이다. 재생 버튼을 누르자마자 대뜸 보컬 아카펠라가 튀어나오는 발칙한 인트로부터 그렇다. 이어 킥과 스네어가 하우스 리듬을 형성하는가 싶더니, 변칙적인 하이햇 롤이 등장하며 허를 찌른다. 몽롱한 패드와 빈티지한 플럭으로 신비로운 분위기를 잡는가 싶더니 돌연 거친 질감의 신스 베이스와 레이저 베이스가 가세하며 마이애미 베이스로 변모하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보컬은 내내 무표정한 가창으로 일관하며 초현실적인 무드를 조성한다. 이 모든 이질적인 요소들을 순간순간 꺼내어 제멋대로 붙였다 떼며 해체와 조립을 반복하면서도 곡 전반에는 낯선 일관성이 흐른다. 부조화의 조화라고도 부를 수 있을 법한 기묘한 균형감으로 변칙적인 구성을 지탱하는 비범한 감각에 탄복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수미상관의 구조로 곡 마지막에 한 번 더 등장하는 아카펠라는 자신감 넘치는 승리 선언처럼 느껴진다. <Magnetic>이 수많은 작곡진이 협력해 탄생한 볼륨감 가득한 편곡으로 대형 기획사만이 할 수 있는 기술적 성취에 도달했다면, <Plot Twist>는 거대 자본의 심의를 경유하지 않은 주변부 영역에서만 관철될 수 있는 비정형성을 전면에 내세움으로써 인디-케이팝이 뿌리내릴 수 있는 대안적 공간을 제시한다.
퓨처 펑크는 2010년대 초반 인터넷을 기반으로 베이퍼웨이브, 프렌치 하우스, 디스코, 펑크, 시티팝 등 다양한 장르들이 혼합되어 탄생한 레트로-퓨처리즘 장르다. 퓨처 펑크의 가장 큰 음악적 특징은 샘플링이다. 주된 소스는 대부분 1970~80년대의 일본 시티팝, 애니메이션 OST, 디스코 음악으로, 이러한 음악에서 따온 샘플을 피치 시프팅이나 루핑 등 다양한 기법을 통해 현대적으로 변형하여 댄서블한 리듬 위에 얹는다. 하우스나 디스코와 같은 포온더플로어 킥드럼 패턴(4박 모두에 킥이 들어가는 리듬)을 사용하기 때문에 얼핏 비슷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퓨처 펑크만의 경쾌한 사운드 텍스처와 다이나믹한 속도감, 맥시멀리즘적 테이스트는 타 장르와 명확히 차별화되는 요소들이다.
<빌려온 고양이>는 케이팝 최초의 퓨처 펑크 노래다. 첫 시도임에도 불구하고 장르의 특징들을 선명하게 살리며 거의 완벽한 재현을 이뤄냈다. 재생 버튼을 누르면 빈티지한 스트링 샘플이 흘러나오고, 이윽고 끊어치듯 빠르게 피치업되더니 강렬한 비트 드랍과 함께 댄서블한 리듬을 휘감으며 날아오른다. 평범한 소녀에서 화려한 마법소녀로 변신하는 장면을 형상화한 듯한 이 인트로는 세일러문으로 대표되는 퓨처 펑크의 이미지와 아일릿의 마법소녀 콘셉트를 자연스럽게 상응시키며 당위적인 연결고리를 만든다. 여기서 사용된 샘플은 1989년 개봉된 일본의 SF 애니메이션 영화 <파이브 스타 스토리>의 OST <優雅なる脱走(우아한 탈주)>다. 원작 만화가 누계 1000만 부 이상의 판매고를 기록한 이 스페이스 오페라 작품은 80~90년대 일본 애니메이션의 향수를 그 기원으로 삼는 퓨처 펑크의 미학을 정확히 관통한다. 이러한 작품에서 샘플을 따와 현대적으로 편곡했다는 사실에서 아일릿이 퓨처 펑크 장르의 핵심적인 미학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장르의 관습을 존중하며 충실하게 계승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다.
한편으로는 ‘꿍실냐옹‘, ‘둠칫냐옹’ 등 엉뚱한 표현이나 ‘심장아 나대지 마‘, ‘근데 왜 뚝딱대‘ 등의 밈을 활용하는 등 장난스러운 가사를 통해 퓨처 펑크 특유의 유쾌한 정서를 현대적으로 덧입히기도 한다. ‘꿔다 놓은 보릿자루‘와 같은 의미인 빌려온 고양이라는 속담 표현을 내세운 곡 제목 역시 아일릿 특유의 키치한 테이스트가 돋보이는 선정이다. 이처럼 치밀한 기획을 바탕으로 탄생한 <빌려온 고양이>는 세련된 프로덕션을 통해 퓨처 펑크 본연의 청각적 재미를 케이팝과 능숙하게 접합한다. 빌리프랩은 빈티지한 음색의 악기들과 현대적인 전자 텍스처의 소리들을 밀도 높게 레이어링해 댄서블하고 펀치감 있는 퓨처 펑크 특유의 사운드를 성공적으로 구현해낸다. 경쾌한 에너지를 내내 머금고 내달리는 역동적인 속도감이 황홀한 청각적 경험을 선사한다.
오랜 기다림 끝에 퓨처 펑크는 드디어 케이팝의 영토 안으로 입국했다. 그리고 처음으로 손을 내민 주인공은 아일릿이었다. 데뷔곡 <Magnetic>에서부터 옛 마법소녀물 애니메이션의 향수를 적극 활용했던 아일릿이 퓨처 펑크에 손을 뻗게 된 건 어찌 보면 필연적이었으리라. 앞으로 케이팝-퓨처 펑크 곡이 또 나올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빌려온 고양이>가 케이팝 산업 내에서 퓨처 펑크 카테고리를 굳건하게 지탱할 ‘장르의 대표작이자 최고작‘으로 오랫동안 자리매김할 것임에는 의심이 없다.
디지털 시대와 사이버 공간의 개막, 세상을 영원히 바꿔 놓을 거대한 변화를 마주하던 2000년대 중후반을 기억한다. 애플의 아이폰과 마이크로소프트의 운영체제 윈도우가 등장하며 인터넷이 본격적으로 우리의 삶 속으로 깊숙히 들어오기 시작하던 그 시절, 우리 모두의 가슴은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시대가 열릴 거라는 장밋빛 설렘으로 부풀어 있었다. 프루티거 에어로(Frutiger Aero) 에스테틱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 2000년대 중후반의 시대정서는 낙천적이고 희망적이었다. 지금도 <무한도전> 서울구경 특집 속 피처폰과 MP3를 들고 스크린도어 없는 지하철을 타는 서울 시민들의 느긋한 표정은 추억 여행을 위한 타임머신 기능을 충실히 수행한다.
그 시절 유행하던 한국의 '소몰이 발라드'에 질린 일부 음악 매니아들은 상대적으로 선진 문물처럼 보였던 일본 음악에 심취하곤 했다. 그 중에서도 주류를 이뤘던 것은 일명 '시부야케이(시부야계)' 음악이었다. 사실 시부야케이라는 단어는 구체적인 음악적 특징에 의한 분류가 아니라 무드나 트렌드를 두루뭉술하게 지칭하는 용어이기 때문에 어떤 음악이라고 명확히 정의하기는 어렵다. 특히 한국에서는 그 의미가 더욱 변형되어, 싸이월드 미니홈피 '국룰' 배경음악이었던 하바드(Harvard)의 <Clean & Dirty> 같은 신스팝/알앤비부터 빅뱅의 <하루하루>가 영향을 받은 다이시 댄스와 프리템포 등 소울풀 하우스까지 전부 시부야케이로 아울러 칭하고 있다. 이처럼 세련되게 느껴지던 일본 음악들을 장르 불문하고 대충 뭉뚱그려 부르는 정체불명의 분류에 가까워 현재는 사장된 용어이지만, 그럼에도 분명히 당시 한국 리스너들 사이에서 시부야케이라는 이름으로 일종의 관념적인 공감대가 형성되어 집단적으로 향유되었음을 고려하면 비록 추상적이고 주관적일지라도 이를 되돌아볼 가치가 있다 하겠다. 특히 하츠투하츠의 <STYLE>과 같은 곡이 등장했을 때는 더욱 그렇다.
상술한 것처럼 시부야케이에 대한 정의와 용례는 매우 주관적이기에 백 명의 사람이 있으면 백 개의 시부야케이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나에게 시부야케이는 토와 테이(TOWA TEI), 아이뎁(i-dep), 초창기 캡슐(CAPSULE) 류의 멜로우한 하우스풍 일렉트로니카의 추억으로 남아 있다. 유럽이나 미국의 하우스와 비슷하지만 분명 어딘가 다른, 아기자기하고 따뜻한 인간미가 느껴지는 '수공예 하우스' 말이다. <STYLE>은 바로 그 체온을 상기시킨다. 물기를 가득 머금은 촉촉한 패드와 상쾌한 보컬 찹이 넓은 공간감을 형성하면서 베이스가 어쿠스틱한 생동감을 불어넣는 프루티거 에어로풍의 기본 뼈대는 아이뎁의 <Rainbow>를 닮았다. 코드 진행 등 일부분의 측면에서는 토와 테이의 <DIFFERENT NU NU>나 캡슐의 <ポータブル空港>이 연상되기도 한다. 당시 시부야케이의 영향권 내에 있던 국내 아티스트 하우스룰즈(House Rulez)나, 그 시절 유행하던 국산 리듬게임인 오투잼과 알투비트의 게임음악 역시 자연스레 함께 떠오른다.
이처럼 <STYLE>은 무정형의 기억들로 흩어져 있던 시부야케이 일렉트로니카의 사운드를 소중히 그러모아 선명한 해상도로 복원해낸다. SM엔터테인먼트는 이를 케이팝의 문법에 부합하는 탑라인과 부드럽게 버무려 케이팝의 영역 안으로 포섭하는 데 성공한다. SM 특유의 위생학적인 믹싱과 보컬 디렉팅이 프루티거 에어로의 미학과 정합적으로 맞물리면서 시너지 효과가 더욱 증폭되는 것은 덤이다. 또한 켄지(KENZIE)가 작사한 노랫말은 천진난만한 10대의 동심을 깨끗하게 표백된 언어로 형상화하며 시부야케이의 낙관적이고 명랑한 정서를 생생하게 재현한다. 군데군데 미묘하게 촌스럽거나 유치하게 들리는 표현들이 오히려 2000년대 중후반의 시대성이 지닌 내러티브를 강화한다. 이로써 앨범 커버 속 핑크빛 스티커 사진 기계는 찬연한 과거를 오늘날의 스크린에 렌더링하는 타임머신이 된다. <STYLE>은 문화산업이 과거의 향수를 활용할 때 지켜야 할 내적 규약들을 완벽히 체화하고 모든 영역에서 이를 섬세하게 수행함으로써 눈부시게 아름다운 미학적 세계를 완성해낸 역작이다.
아일릿은 센세이셔널한 성과를 이룩한 데뷔곡 <Magnetic>의 그림자에 항상 가려져 있었다. 대중적으로든 비평적으로든 압도적인 찬사를 받았던 작품이기에, 그 이후로 발매되는 아일릿의 모든 곡들은 항상 <Magnetic>과 비교되며 평가절하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그만한 곡을 만들어내지 못했던 것도 사실이다. <Cherish>, <빌려온 고양이>, <NOT CUTE ANYMORE>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음악은 늘 준수한 완성도를 자랑했지만 데뷔곡과 비교하면 여전한 미련이 남았다. 그러나 [bomb] 앨범의 수록곡 <jellyous>를 듣는 순간, <Magnetic>에 비견될 만한 마스터피스가 드디어 탄생했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jellyous>의 프로덕션이 탁월한 이유에 대해서는 몇 시간을 말해도 부족하지만, 가장 먼저 환상적인 속도감을 자아내는 퍼커션에 대해 이야기해야 할 것이다. 매우 묵직하고 부피감 있게 세공된 베이스는 정박에 맞춰 둔탁하게 걸음을 쿵쿵 내딛으며 테크노적인 쾌감을 선사하며, 라틴아메리카식 셋잇단(트리플렛) 박자인 트레시요(Tresillo) 리듬으로 내달리는 스네어와 결합되자 저지 클럽 혹은 드릴을 연상시키는 독특한 리듬감을 형성한다. (이 리듬은 투모로우바이투게더의 <Happily Ever After>에도 사용된 바 있는데, 그때보다 더욱 효과적으로 들린다) 코러스부터 가세하는 작게 믹싱된 하이햇에 주목하면 하우스스러운 리듬이 포착되기도 한다. 악기 하나하나에 귀기울일 때마다 새로운 즐거움을 발견할 수 있는 <jellyous>의 퍼커션 구성은 황홀하기 그지없다.
한편 <jellyous>가 칩튠을 계승하고 있는 방식에 대해서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칩튠(chiptune), 혹은 비트팝(bitpop)은 20세기 아케이드 게임기 혹은 비디오 게임기의 8비트 사운드를 활용한 전자음악 장르를 일컫는다. (90년대 닌텐도 게임보이의 투박한 게임음악을 떠올리면 쉽다) 삼각파와 사각파, 노이즈 등의 파형을 주로 사용하는 칩튠 사운드는 특유의 빈티지한 텍스처와 키치한 테이스트로 꾸준히 마니아층을 형성해왔다. 케이팝에서는 아이오아이(<너무너무너무>), 레드벨벳(<Power Up>), 오마이걸(<바나나 알러지 원숭이>) 등이 칩튠 사운드를 차용한 바 있다. 아일릿의 기획이 뉴진스와는 달리 20세기 일본 서브컬처 문화를 겨냥해 왔다는 점을 고려하면, 칩튠과 아일릿은 그 시대성의 맥락에서 일맥상통하는 지점이 있다. 지난 수록곡 <Tick-Tack>에서 칩튠을 시도한 것 역시 그러한 자기인식으로부터 비롯되었을 것이다.
<jellyous>는 아주 간단하게 조형된 8비트 신스를 메인으로 활용하는데, 칩튠 특유의 평면적이고 납작한 소리의 양감이 최소한으로 필요한 공간만을 차지한 채 다른 악기들을 위한 자리를 남겨 준다. 덕분에 입체적인 퍼커션이 더욱 효과적으로 부각되고 담백한 탑라인이 이질감 없이 융화된다. 이 절묘한 균형감각에는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이에 더해 <jellyous>의 뮤직비디오는 노골적으로 닌텐도 시대의 프루티거 메트로 스타일 에스테틱을 인용하며 칩튠 팝의 시청각적 생동성을 성공적으로 복원해낸다. 아일릿의 A&R이 고평가받아야 하는 이유는 기획이 지향하는 시공간의 좌표지점을 명확히 인식하고 기획과 음악이 같은 궤도에서 운동하게 만드는 바로 이 감각 때문이다. 퓨처 펑크를 차용한 <빌려온 고양이> 역시 마찬가지다. 소재가 지닌 대중적 소구력의 태생적 한계는 있을지언정 그 내적 정합성과 완성도만큼은 업계 최고 수준임에 의심이 없다.
아마 <jellyous>는 이 리스트에서 가장 덜 알려져 있는 곡일 것이고, 가장 대중적으로 공감받지 못할 선정일 수도 있다. 올해 최고의 노래를 선정하는 데에는 감동적인 외적 서사를 지닌 엔믹스의 <Blue Valentine>이나 혼성 그룹의 부활이라는 상징성이 있는 올데이 프로젝트의 <FAMOUS> 정도가 무난했을지도 모르겠다. <jellyous>는 그런 면에서는 상대적으로 무게감이 덜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여기서 "내가 <홀리 모터스>를 좋아했던 이유는 거기에 활동사진으로서의 마법 같은 활력이 있었다는 것이지 이 영화가 어떤 깊이 있는 텍스트와 메시지를 수반하고 있었느냐가 아니었다."는 김병규 영화평론가의 문장을 인용하고 싶다. 음악이 아름다운 이유는 맥동하는 생명력을 지니고 역동적으로 자전하는 음표 자체로서의 영적인 감응 때문이지, 시대성을 독해하는 텍스트로서의 기능적 가치가 있기 때문이 아니다. 지금까지 내가 지면을 할애한 상호텍스트적인 해석은 사실 근본적으로는 필요가 없다. <jellyous>의 마법은 언어화되기 이전의 영역에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의 케이팝에서 나는 풍부한 공간감으로 살아 숨쉬는 <jellyous>의 포스트코러스보다 아름다운 순간을 경험한 적이 없다. 그뿐이다.
레이지(Rage)는 마침내 힙합 씬의 주류가 됐다. 플레이보이 카티(Playboi Carti)의 앨범 [Whole Lotta Red]와 이트(Yeat)의 [LYFESTYLE]은 빌보드 200 차트 1위를 달성했고, 식케이와 릴 모쉬핏의 앨범 [K-FLIP+]은 한국대중음악상과 한국힙합어워즈를 휩쓸었다. 분노와 쾌락으로부터 잉태된 무질서의 에너지가 메인스트림의 질서를 끝내 복속시키고 마는 상징적인 순간이다.
허나 케이팝에서만큼은 레이지가 아직 철저한 비주류에 머물고 있다. 2024년에 이르러서야 세븐틴(<Water>)이나 영파씨(<Scars>)가 뒤늦게 레이지를 들여왔고, 타이틀곡으로는 아직까지 투모로우바이투게더의 <Deja Vu>, 라이즈의 <Fame> 정도가 부분적으로 레이지 사운드를 차용했을 뿐이다. 모든 장르를 스펀지처럼 빨아들이는 케이팝 특유의 하이브리드적 성질을 감안하면 이는 매우 의외인데, 굳이 따지자면 국내 리스너들의 근본주의적 취향과 어긋나는 것이 그 이유가 아닐까 한다. 아직도 오토튠을 '자격 없는 자들이 정정당당한 실력으로 승부하지 않고 가수 행세를 하게 해주는 기만적 도구' 쯤으로 여기는 우스운 시선이 가득하지 않나. (음악은 승부가 아니다. 예술 영역에서마저도 줄세우기에 몰두하는 신자유주의적 세계관에서 좀 벗어나시라) 대중뿐만 아니라 평단도 크게 다르지 않다. 지난달 이즘(izm)의 소승근 필자는 영파씨의 <VISA>를 리뷰하며 레이지를 '음악이 아닌 효과음으로 점철된 노래'로 일축했다. '비대중적인 하이퍼 팝으로 강공 드라이브를 걸었으나 정작 그 안에 음악은 없다. 클럽의 미러볼을 비추는 화려한 조명처럼 번쩍번쩍한 소리에 선율은 사라졌고 가사는 실종됐다'는, 장르에 대한 아주 기본적인 존중조차 결여된 그의 원색적 비난은 개인의 힘으로는 결코 넘어설 수 없는 유리천장처럼 완고하게 우뚝 선 국내 음악계의 경직된 배타성을 상징하며, 엄숙주의적인 한국 메인스트림에서 레이지 장르가 이해받을 수 있을 거라는 희망 자체를 꺾어버리는 무력감마저 느껴지게 하는 종류의 것이었다.
이러한 배경을 고려해 보면 코르티스의 <GO!>가 등장한 것이, 그리고 어느 정도의 대중적 호응까지 이끌어낸 것이 얼마나 믿기지 않는 사건인지 알 수 있다. 레이지 장르에 대한 이해도가 전무한 한국 대중음악 산업에서 장르의 역사에 대한 존중과 동시대적 생명력을 함께 성취한 <GO!>는 그저 돌출적인 성과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레이지 장르의 오랜 팬이라면 <GO!>가 최근의 레이지 트렌드와는 다소 거리가 있는 곡임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사실 형성 초기의 레이지는 그 무시무시한 이름에 비해 생각보다 규격화된 사운드를 지니고 있었다. 드럼과 베이스는 원래의 모태인 트랩과 플럭(plugg)의 구조에서 크게 바뀌지 않았고, 날카롭게 쏘아대는 특유의 슈퍼소우(supersaw) 신디사이저 정도가 다를 뿐이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레이지를 독립된 장르로 분류하지 않거나, 단순히 트랩 내에서 특정 신스를 사용하는 스타일 정도로 여기는 사람도 많았다. 이렇게 시작된 레이지는 여러 신예들의 등장과 실험을 통해 역동적으로 변화해 나갔다. 디스트로이 론리(Destroy Lonely)나 호미사이드 갱(Homixide Gang) 등은 슈퍼소우 신스에서 벗어나 일렉트릭 기타 등 다양한 악기들을 접목시키며 레이지 사운드의 스펙트럼을 넓혔다. (코르티스의 <FaSHioN>이 지향하는 지점은 비교적 이쪽에 가깝다) 최근에는 체(Che)와 오사마손(OsamaSon)을 필두로 한 레이지의 뉴 웨이브 아티스트들이 기존의 레이지를 더욱 과격하게 재해석해 난잡하고 지저분한 질감의 프로덕션을 선보이고 있다. 극단적인 과잉의 미학을 추구하는 이러한 시도는 또다른 마니아들을 양성하며 레이지의 저변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고 있다.
<GO!>는 그 중에서도 2020~21년 즈음 태동기를 맞던 레이지의 미학을 적확하게 겨냥한 작품이다. 더 정확히는 트리피 레드(Trippie Redd)의 <Super Cell>을 레퍼런스 삼은 것으로 보이는데, 사운드의 골격은 고전적 레이지의 레거시를 충실하게 계승하면서도 2025년의 발전된 기술적 역량을 통해 절묘한 균형감을 조형하는 솜씨가 범상치 않다. 리버브 가득한 패드가 몽환적인 무드를 조성하는 인트로를 지나면 마치 낙뢰처럼 번쩍 치고 들어오는 신스와 동시에 묵직한 808 베이스와 차진 하이햇이 가세하며 그야말로 감각적인 그루브를 만들어낸다. 단순한 훅과 신스 패드로 부유하는 듯한 상승감을 만들어내는 포스트코러스는 또 어떠한가. 칩튠풍의 사각파형 신스 아르페지오가 귀를 간지럽히는 벌스는 또 어떠한가. 집요하다 싶을 정도로 정교하기 그지없는 사운드 디테일과, 그 사운드 소스 각각의 질감을 선명하면서도 조화롭게 세공해내는 믹싱과 마스터링은 또 어떠한가. 오토튠의 능숙한 운용으로 레이지 비트에 대한 뛰어난 이해도를 드러내면서도 재치 넘치는 청춘의 언어로 장르의 공격성을 표백하여 비로소 케이팝으로서 소비될 수 있게 만드는 멤버들의 랩은 또 어떠한가. 곡을 이루고 있는 모든 순간들이 황홀할 정도로 아름답고, 놀라울 정도로 탁월하다. 비록 하이브의 규모가 급격히 성장하면서 엔터 산업이 거대 자본의 독과점에 잠식되고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지만, 역설적으로 이 정도의 압도적인 기술적 완성도를 만들어내려면 거대 자본 없이는 불가능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다. <GO!>는 여지껏 발매된 다른 케이팝-레이지 트랙들과 완전히 궤를 달리하는, 가히 압도적인 수준의 장르 이해도가 돋보이는 곡이다. 올해 최고의 케이팝 노래를 넘어, 케이팝 보이그룹 역사상 최고의 데뷔곡이라 할 만하다. 보잘것없는 내 이름 석 자를 거는 것이 평가의 신뢰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기꺼이 걸겠다. 그토록 나는 <GO!>가 위대한 작품임을 마음 깊이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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