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일릿은 센세이셔널한 성과를 이룩한 데뷔곡 <Magnetic>의 그림자에 항상 가려져 있었다. 대중적으로든 비평적으로든 압도적인 찬사를 받았던 작품이기에, 그 이후로 발매되는 아일릿의 모든 곡들은 항상 <Magnetic>과 비교되며 평가절하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그만한 곡을 만들어내지 못했던 것도 사실이다. <Cherish>, <빌려온 고양이>, <NOT CUTE ANYMORE>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음악은 늘 준수한 완성도를 자랑했지만 데뷔곡과 비교하면 여전한 미련이 남았다. 그러나 [bomb] 앨범의 수록곡 <jellyous>를 듣는 순간, <Magnetic>에 비견될 만한 마스터피스가 드디어 탄생했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jellyous>의 프로덕션이 탁월한 이유에 대해서는 몇 시간을 말해도 부족하지만, 가장 먼저 환상적인 속도감을 자아내는 퍼커션에 대해 이야기해야 할 것이다. 매우 묵직하고 부피감 있게 세공된 베이스는 정박에 맞춰 둔탁하게 걸음을 쿵쿵 내딛으며 테크노적인 쾌감을 선사하며, 라틴아메리카식 셋잇단(트리플렛) 박자인 트레시요(Tresillo) 리듬으로 내달리는 스네어와 결합되자 저지 클럽 혹은 드릴을 연상시키는 독특한 리듬감을 형성한다. (이 리듬은 투모로우바이투게더의 <Happily Ever After>에도 사용된 바 있는데, 그때보다 더욱 효과적으로 들린다) 코러스부터 가세하는 작게 믹싱된 하이햇에 주목하면 하우스스러운 리듬이 포착되기도 한다. 악기 하나하나에 귀기울일 때마다 새로운 즐거움을 발견할 수 있는 <jellyous>의 퍼커션 구성은 황홀하기 그지없다.
한편 <jellyous>가 칩튠을 계승하고 있는 방식에 대해서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칩튠(chiptune), 혹은 비트팝(bitpop)은 20세기 아케이드 게임기 혹은 비디오 게임기의 8비트 사운드를 활용한 전자음악 장르를 일컫는다. (90년대 닌텐도 게임보이의 투박한 게임음악을 떠올리면 쉽다) 삼각파와 사각파, 노이즈 등의 파형을 주로 사용하는 칩튠 사운드는 특유의 빈티지한 텍스처와 키치한 테이스트로 꾸준히 마니아층을 형성해왔다.
케이팝에서는 아이오아이(<너무너무너무>), 레드벨벳(<Power Up>), 오마이걸(<바나나 알러지 원숭이>) 등이 칩튠 사운드를 차용한 바 있다. 아일릿의 기획이 뉴진스와는 달리 20세기 일본 서브컬처 문화를 일관적으로 겨냥해 왔다는 점을 고려하면, 칩튠과 아일릿은 그 시대성의 맥락에서 일맥상통하는 지점이 있다. 지난 수록곡 <Tick-Tack>에서 칩튠을 시도한 것 역시 그러한 자기인식으로부터 비롯되었을 것이다.
<jellyous>는 아주 간단하게 조형된 8비트 신스를 메인으로 활용하는데, 칩튠 특유의 평면적이고 납작한 소리의 양감이 최소한으로 필요한 공간만을 차지한 채 다른 악기들을 위한 자리를 남겨 준다. 덕분에 입체적인 퍼커션이 더욱 효과적으로 부각되고 담백한 탑라인이 이질감 없이 융화된다. 이 절묘한 균형감각에는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이에 더해 <jellyous>의 뮤직비디오는 노골적으로 닌텐도 시대의 프루티거 메트로 스타일 에스테틱을 인용하며 칩튠 팝의 시청각적 생동성을 성공적으로 복원해낸다. 아일릿의 A&R이 고평가받아야 하는 이유는 기획이 지향하는 시공간의 좌표지점을 명확히 인식하고 기획과 음악이 같은 궤도에서 운동하게 만드는 바로 이 감각 때문이다. 퓨처 펑크를 차용한 <빌려온 고양이> 역시 마찬가지다. 소재가 지닌 대중적 소구력의 태생적 한계는 있을지언정 그 내적 정합성과 완성도만큼은 업계 최고 수준임에 의심이 없다.
아마 <jellyous>를 '올해 최고의 걸그룹 노래'로 선정하는 일은 여러 측면에서 공감받지 못할 수도 있다. 올해 최고의 노래를 선정하는 데에는 감동적인 외적 서사를 지닌 엔믹스의 <Blue Valentine>이나 혼성 그룹의 부활이라는 상징성이 있는 올데이 프로젝트의 <FAMOUS> 정도가 무난했을지도 모르겠다. <jellyous>는 그런 면에서는 상대적으로 무게감이 덜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여기서 "내가 <홀리 모터스>를 좋아했던 이유는 거기에 활동사진으로서의 마법 같은 활력이 있었다는 것이지 이 영화가 어떤 깊이 있는 텍스트와 메시지를 수반하고 있었느냐가 아니었다."는 김병규 영화평론가의 문장을 인용하고 싶다. 음악이 아름다운 이유는 맥동하는 생명력을 지니고 역동적으로 자전하는 음표 자체로서의 영적인 감응 때문이지, 시대성을 독해하는 텍스트로서의 기능적 가치가 있기 때문이 아니다. 지금까지 내가 지면을 할애한 상호텍스트적인 해석은 사실 근본적으로는 필요가 없다. <jellyous>의 마법은 언어화되기 이전의 영역에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의 케이팝에서 나는 풍부한 공간감으로 살아 숨쉬는 <jellyous>의 포스트코러스보다 아름다운 순간을 경험한 적이 없다. 그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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