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팝 보이그룹 사상 최고의 데뷔곡, 코르티스 <GO>

by 박정빈
Yeat, <ORCHESTRATË> (2024)
식케이&릴 모쉬핏, <LOV3> (2025)

레이지(Rage)는 마침내 힙합 씬의 주류가 됐다. 플레이보이 카티(Playboi Carti)의 앨범 [Whole Lotta Red]와 이트(Yeat)의 [LYFESTYLE]은 빌보드 200 차트 1위를 달성했고, 식케이와 릴 모쉬핏의 앨범 [K-FLIP+]은 한국대중음악상과 한국힙합어워즈를 휩쓸었다. 분노와 쾌락으로부터 잉태된 무질서의 에너지가 메인스트림의 질서를 끝내 복속시키고 마는 상징적인 순간이다.


라이즈, <Fame> (2025)

허나 케이팝에서만큼은 레이지가 아직 철저한 비주류에 머물고 있다. 2024년에 이르러서야 세븐틴(<Water>)이나 영파씨(<Scars>)가 뒤늦게 레이지를 들여왔고, 타이틀곡으로는 아직까지 투모로우바이투게더의 <Deja Vu>, 라이즈의 <Fame> 정도가 부분적으로 레이지 사운드를 차용했을 뿐이다. 모든 장르를 스펀지처럼 빨아들이는 케이팝 특유의 하이브리드적 성질을 감안하면 이는 매우 의외인데, 굳이 따지자면 한국 리스너들의 근본주의적 취향과 어긋나는 것이 그 이유가 아닐까 한다. 아직도 오토튠을 '자격 없는 자들이 정정당당한 실력으로 승부하지 않고 가수 행세를 하게 해주는 기만적 도구' 쯤으로 여기는 우스운 시선이 가득하지 않나. (음악은 승부가 아니다. 예술 영역에서마저도 줄세우기에 몰두하는 신자유주의적 세계관에서 좀 벗어나시라)


영파씨, <VISA> (2026)

대중뿐만 아니라 평단도 크게 다르지 않다. 지난달 이즘(izm)의 소승근 필자는 영파씨의 <VISA>를 리뷰하며 레이지를 '음악이 아닌 효과음으로 점철된 노래'로 일축했다. '비대중적인 하이퍼 팝으로 강공 드라이브를 걸었으나 정작 그 안에 음악은 없다. 클럽의 미러볼을 비추는 화려한 조명처럼 번쩍번쩍한 소리에 선율은 사라졌고 가사는 실종됐다'는 그의 원색적 비난은 개인의 힘으로는 결코 넘어설 수 없는 유리천장처럼 완고하게 우뚝 선 국내 음악계의 경직된 배타성을 상징하며, 엄숙주의적인 한국 메인스트림에서 레이지 장르가 이해받을 수 있을 거라는 희망 자체를 꺾어버리는 무력감마저 느껴지게 하는 종류의 것이었다.


코르티스, <GO!> (2025)

이러한 배경을 고려해 보면 코르티스의 <GO!>가 등장한 것이, 그리고 어느 정도의 대중적 호응까지 이끌어낸 것이 얼마나 믿기지 않는 사건인지 알 수 있다. 레이지 장르에 대한 이해도가 전무한 한국 대중음악 산업에서 장르의 역사에 대한 존중과 동시대적 생명력을 함께 성취한 <GO!>는 그저 돌출적인 성과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Trippie Redd, <Miss The Rage> (2021)

레이지 장르의 오랜 팬이라면 <GO!>가 최근의 레이지 트렌드와는 다소 거리가 있는 곡임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사실 형성 초기의 레이지는 그 무시무시한 이름에 비해 생각보다 규격화된 사운드를 지니고 있었다. 드럼과 베이스는 원래의 모태인 트랩과 플럭(plugg)의 구조에서 크게 바뀌지 않았고, 날카롭게 쏘아대는 특유의 슈퍼소우(supersaw) 신디사이저 정도가 다를 뿐이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레이지를 독립된 장르로 분류하지 않거나, 단순히 트랩 내에서 특정 신스를 사용하는 스타일 정도로 여기는 사람도 많았다.


Homixide Gang, <R50> (2024)
식케이&릴 모쉬핏, <PUBLIC ENEMY> (2025)
코르티스, <FaSHioN> (2025)

이렇게 시작된 레이지는 여러 신예들의 등장과 실험을 통해 역동적으로 변화해 나갔다. 디스트로이 론리(Destroy Lonely)나 호미사이드 갱(Homixide Gang) 등은 슈퍼소우 신스에서 벗어나 일렉트릭 기타 등 다양한 악기들을 접목시키며 레이지 사운드의 스펙트럼을 넓혔다. (코르티스의 <FaSHioN>이 지향하는 지점은 비교적 이쪽에 가깝다)


Che, <MANNEQUIN> (2025)

최근에는 체(Che)와 오사마손(OsamaSon)을 필두로 한 레이지의 뉴 웨이브 아티스트들이 기존의 레이지를 더욱 과격하게 재해석해 난잡하고 지저분한 질감의 프로덕션을 선보이고 있다. 극단적인 과잉의 미학을 추구하는 이러한 시도는 또다른 마니아들을 양성하며 레이지의 저변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고 있다.


Trippie Redd, <Super Cell> (2021)

<GO!>는 그 중에서도 2020~21년 즈음 태동기를 맞던 레이지의 미학을 적확하게 겨냥한 작품이다. 더 정확히는 트리피 레드(Trippie Redd)의 <Super Cell>을 레퍼런스 삼은 것으로 보이는데, 사운드의 골격은 고전적 레이지의 레거시를 충실하게 계승하면서도 2025년의 발전된 기술적 역량을 통해 절묘한 균형감을 조형하는 솜씨가 범상치 않다.


코르티스, <GO!> (2025)

리버브 가득한 패드가 몽환적인 무드를 조성하는 인트로를 지나면 마치 낙뢰처럼 번쩍 치고 들어오는 신스와 동시에 묵직한 808 베이스와 차진 하이햇이 가세하며 그야말로 감각적인 그루브를 만들어낸다. 단순한 훅과 신스 패드로 부유하는 듯한 상승감을 만들어내는 포스트코러스는 또 어떠한가. 칩튠풍의 사각파형 신스 아르페지오가 귀를 간지럽히는 벌스는 또 어떠한가. 집요하다 싶을 정도로 정교하기 그지없는 사운드 디테일과, 그 사운드 소스 각각의 질감을 선명하면서도 조화롭게 세공해내는 믹싱과 마스터링은 또 어떠한가. 오토튠의 능숙한 운용으로 레이지 비트에 대한 뛰어난 이해도를 드러내면서도 재치 넘치는 청춘의 언어로 장르의 공격성을 표백하여 비로소 케이팝으로서 소비될 수 있게 만드는 멤버들의 랩은 또 어떠한가. 곡을 이루고 있는 모든 순간들이 황홀할 정도로 아름답고, 놀라울 정도로 탁월하다.


비록 하이브의 규모가 급격히 성장하면서 엔터 산업이 거대 자본의 독과점에 잠식되고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지만, 역설적으로 이 정도의 압도적인 기술적 완성도를 만들어내려면 거대 자본 없이는 불가능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다. <GO!>는 여지껏 발매된 다른 케이팝-레이지 트랙들과 완전히 궤를 달리하는, 가히 압도적인 수준의 장르 이해도가 돋보이는 곡이다. 올해 최고의 케이팝 노래를 넘어, 케이팝 보이그룹 역사상 최고의 데뷔곡이라 할 만하다. 보잘것없는 내 이름 석 자를 거는 것이 평가의 신뢰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기꺼이 걸겠다. 그토록 나는 <GO!>가 위대한 작품임을 마음 깊이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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